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뭐라도 되고 있었다
김지희 지음 / 자화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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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수북히 찾아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필코 싫어하던 것들을 하나둘 줄여나가려는 노력 또한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좋아'의 반대말은 '싫어'가 아니다. 좋아하는 감정이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과 같아서, 지금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단지 '아직 좋아해보지 않은 무엇'일 뿐인 거다. 그렇담 지금 내가 몹시 싫다고 느끼는 것들 역시(절대 불변의 혐오 대상이 아니라) 내일이라도 당장 좋아하게 될 수 있는 후보군인 셈이다. 솔직히, 좋다가도 금세 싫어지는 게 우리의 변덕 아니던가.(22p)

 그러나 '아직'은 남이 나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 같다. 타인이 말해주는 '아직'은 동력이 약하다. '아직'이란, 단순한 붙잡음이 아닌 까닭이다. '아직'은 확신 가득한 계획으로 빚어낸 결의 같은 것이다. '더 강행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그 선택에 대한 해답은 확고한 '자기 믿음'과 확실한 '로드맵'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역할은 딱 거기까지인 것 같다.(66p)

 질투는 나를 명쾌하게 한다. 선택의 순간, 두 가지 기로에서 방황하게 될 때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나는 무엇을 이룬 사람에게서 더 질투를 느낄 것 같은가?' 질투의 저울이 더 크게 휘청대는 쪽이, 가장 '나다운 선택'일 것이다.(77p)

 질투도, 경쟁도, 과시도 없는 표준의 상태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수시로 나의 관점을 조율해볼 참이다. 적어도 우리가 만나는 날만큼은, 너 역시 그때 그 모습으로 조율되어 있기를. 너와 나 사이, 완전한 교감을 꿈꾼다.(297p)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가끔 있다. 첫아이를 낳고 집에 있을 때 그 우울감이 최절정에 이르렀던 것 같다. 우리 사회는 밖에 나가 돈을 벌지 않으면 그러니까 생산성이 있지 않은 인간에겐 잉여인간이라는 좋지 않은 꼬리표를 붙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또한 집에서 애'나' 키우는 엄마들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 슈퍼우먼이길 바라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집에서 애'만' 키우는 내가 어찌나 한심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느껴지던지. 그때 만약 이 작가처럼 글을 썼다면 세계 최고 우울한 글이 탄생했을 텐데.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으나 뭐라도 되고 있었다! 그 시기를 지나 나는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엄마가 되었으며 (내 스스로) 효녀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누구보다 더 남편을 생각하여 행동한다고 자부한다. 대외적으로 이룬 것은 없어 보일지언정 내 스스로가 많이 자란 것이다. 요즘은 아이들 좀 크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종종 하는데, 배우고 했던 일이 간호일이라 간호사를 계속해야 하나, 그렇다면 병원을 가야 할까, 공무원을 준비해야 할까, 이 고민의 끝에는 아이를 키우며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좀 더 수월할까가 가장 큰 문제다. '나다운 선택'은 태어나서 지금까지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집안이 강압적이어서가 아니라 나 다운 게 뭔지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거다. 질투의 저울이 더 크게 휘청대는 쪽이 가장 나 다운 선택일 거라는 작가의 말에 더욱 혼란스러워지지만(명예를 가진 사람, 돈이 많은 사람 번갈아가며 볼 때마다 질투가 난다. 나란 인간.) 생각하는 시간을 갖다보면 언젠가 어떤 결론에 이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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