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예술혁명 - 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
이지영 지음 / 파레시아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BTS의 인기가 지속되면서 일어나고 있는 끊임없는 인기 편승의 혐의를 뒤집어 씌우는 리뷰가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잠시 고민해본다.

 

우선적으로 엄청난 시간을 들여서 긴 글을 쓰는 고생은 편협한 시각을 대변한다. 충분히 알지 못하고 속단하여 판단하는 것은 쉽다. 어려운 것은 자세히 보고 좋은 점과 싫은 점을 찾아내는 그 노력이다.

 

책의 리뷰에서 필요한 것은 이 저자가 과연 어떤 시각으로 현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다. 반인류애적, 반사회적인 부분이 없다면 어느 정도 열린 마음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 또한 책의 카테고리에 있어서 인문-사회 교양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도 충분히 인지해야 한다. 물론 이 리뷰를 쓴 사람은 모르겠지만 이미 이 책은 학계에서 BTS의 논의를 할 때 지속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인기 편승으로 인한 학계의 주목일 수 있으나 다시 한번 제대로 바라보자면 현재의 문화 현상에서 BTS 이외의 특별한 부분이 없다는 반증적 요소로도 읽을 수 있다.

 

BTS와 들뢰즈의 리좀을 엮어낸 저자는 충분히 철학적 사유를 진행하고 있다. 더 깊은 분석으로 넘어가지 않은 부분은 교양서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보통 들뢰즈-가타리는 영화 분석을 위한 기본적 이론적 토대가 되는데, 분명 더 깊이 들어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당한 수준에서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이 이해가능한 수준에서 저술하였다.

 

또한 철학적 사고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하는 부분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리뷰의 한 대목이었다. 흔히 문--철을 인문학이라고 표현한다. 어느 순간부터 철학은 인간의 삶과 동떨어져 교양으로서만 머무르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물론 문학도 마찬가지다. 순수 문학/대중 문학과 같은 부분으로 이원화되면서 가치를 폄하받기 일쑤다. 그러나 인문학이라면 당연히 사람의 삶에 접하는 면적이 넓어야 한다. ‘순수한 가치는 누구도 손댈 수 없어, 다수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때의 다수는 대중을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다. 결국 철학도 대중을 향해야 한다. 그때서야 제대로된 함의를 지닐 수 있다.

 

빠순이라는 폭력적 단어는 아버지의 단어다. ‘빠순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분명 찾아보지 않은’, ‘아무것도 안 보고 안 듣고 싶어하는사람의 전형에 불과하다. 당연히 모든 문화는 소비를 전제로 한다. 누구도 듣고, 보고, 관심을 지니지 않는다면 이는 문화적 힘을 전연 가지지 않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언급했듯 문화는 전문가라고 하는 공인(비평가 혹은 등단과 같은)이 인정한 순수 문화가 아니면 폄하의 대상이 되었다. 이를 음악 문화로 생각하면, 클래식이라고 하는 순수 음악 문화, 대중 음악 문화로 이원화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대중 음악 문화에서도 위계질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이돌은 이때 대중 음악에서도 서브 컬처에 해당하게 된다. 이때 이를 취하는 다수의 팬들은 문화적 동반자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닌, 단순히 문화의 소구력으로만 취급당한다.

 

그렇다면 모든 빠순이는 소구력으로만 판단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발생한다. 우습게도 하위 문화하위에 속한다는 마이너리티한 출생지로 인해 아이돌 팬덤은 유독 문화적 생산력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모든 문화에서 팬덤은 당연히 존재해야만 한다. 끊임없이 누군가가 사랑해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소비해야만 지속된다. 그러나 아이돌 팬덤에서는 이 부분이 비판의 대상이 된다. 축구, 야구를 소비하며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취미생활이 되지만, 아이돌의 음반을 소비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덕질이 된다. 이 모든 평가는 아버지의 언어로 평가되는 것이다. ‘아이돌의 노래는 들을 필요가 없다는 편견 또한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로인해 부친 살해라는 부분의 해명이 된다.

 

마이너리티한 태생에서 메이저 빌보드의 본상 수상까지, BTS가 보인 행보 자체가 부친 살해이며, 이들의 음악과 콘텐츠로 감응하고 공명한 아미가 바로 부친 살해의 예다. BTS의 음악의 메시지에 동감하여 아미들이 기부를 하고, BTS의 음악을 듣고 마음을 바꾸었다는 수많은 리뷰, 언어도 통하지 않는 외국의 아미들이 한국의 역사까지 공부한다는 일화들은 아버지의 눈에는 아마 끝끝내 빠순이짓으로만 보일 것이다.

 

혁명은 꼭 피를 흘려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도 혁명이다. BTS가 행하고 있는 일들, BTS의 팬들이 행하고 있는 일들을 찬찬히 살펴본 후 모든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그때의 비판은 비판으로서의 의미를 갖을 수 있으나, 현재의 리뷰는 너무나도 막무가내식 비난이다.

 

, 이럴 때 BTS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KEYBOARD DROP, 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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