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의 궤적』에서 현 시대는 '여섯 번째 세상'이다. 아마 우리 시대로 보이는 '다섯 번째 세상'이 대홍수와 전쟁으로 멸망한 뒤의 세상으로 보이고, 생존자들은 보호구역에 갇혀 있던 나바호족이다. 특이한 점은 '다섯 번째 세상'이 사라진 뒤 나바호족의 신화 전설상의 신, 영웅, 괴물들이 나타났고 생존한 나바호족 사람들(디네라고 부른다) 중 일부는 부족 혈통에 따른 클랜 파워를 가진다는 것이다. 『천둥의 궤적』이 4부작 시리즈의 첫 작품이니 후속편에서 인과관계가 설명될지 모르겠으나, 이에 대한 설명은 없다. 세계관과 설정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매우 아쉬웠다.
주인공 매기 호스키는 '민첩성'과 '호전성'이라는 클랜 파워를 가진 괴물 사냥꾼이다. 소설 첫머리에 괴물 사냥 의뢰를 받은 주인공이 괴물을 추적해 혈투를 벌이는 액션신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마치 영화의 장면이 머리에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아주 흥미로운 출발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뒤로 주인공의 명확한 목표가 보이지 않고, 소녀 감성의 로맨스가 시작되면서 별 의미 없는 '밀당'식 대화가 이어지고, 오픈 월드 게임에서 그때그때 발생하는 단발성 퀘스트 같은 답답한 스토리에, 그렇다고 주인공이 경험치를 쌓아 발전하는 모습도 딱히 없는 내용이 이어져 흥미가 반감되었다. '여섯 번째 세상'의 본질에 대한 실마리가 주어지고 주인공이 이에 대한 사명을 가지는 방향으로 갔다면 플롯이 전개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천둥의 궤적』은 리베카 로언호스의 장편 데뷔작으로 로커스상의 신인상?(Best First Novel)을 수상했고, 휴고상과 네뷸러상 후보에도 올랐다. 요새 SF/판타지 분야에 주류 백인 남성이 아닌 비주류 작가의 약진이 눈에 띄는 것 같다.
매력적인 세계관과 수상 스펙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취향 저격 소설이었으나 소설 내용은 내 취향과 좀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서평단 리뷰로서 홍보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아니라서 출판사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