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8개의 비상구

자유의 감옥 ㅣ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요즘 정말이지 세월이 '하수상'하다. '살 맛 안 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 이리 채이고 저리 받히고, 참 지독하게 재미없고 숨막히는 세상이다. 그렇게 숨이 턱턱 막힐 때마다, 모든 걸 다 잊고 (솔직하게 -  '다 때려치우고')  '또 다른 세상'으로 훌쩍 떠나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러나 어쩌랴, 매인 몸인 것을!  열대의 해변을, 호젓한 산장을 상상해보다가 오히려 더 큰 한숨 한 번 푹 쉬고 또 다시 찌든 일상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슬픈 현실이 아닌가!  '나만 그러는 거 아니니까'라는 슬픈 위안을 달아보지만 헛헛한 마음은 어쩔 수 없을 터.

그런데 그럴 때, 이 곳과는 전혀 다른, 한 번도 보도 듣도 못한 신기한 사건과 풍경이 펼쳐지는 그런 작은 문이 있다면? 그래, 그런 문을 '비상구'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 부른단 말인가!  문을 연 사람이 어리둥절해질 정도로 전혀 다른 환상의 세계로 통하는 8개의 비상구. 그 문들이 바로 이 책 안에 있다. 미하엘 엔데라는 사람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또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7개의 문을 뚫어 놓고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거짓말쟁이이자, 상상을 초월하는 상상력을 지닌, 그래서 악동처럼 느껴지는 작가 미하엘 엔데. 참 대단한 사람이다. 이 사람 소설 읽으면서 '이 사람이 사기꾼으로 나섰으면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내내 들었으니까. '판타지'라고 하면 아니할 말로 '새빨간 거짓말'인데 이 사람만큼 재미있게 거짓말 할 줄 아는 사람도 정말이지 드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다른 그 어떤 점보다 '정신없이 재미있다'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다. 요즘 뜨는 유행어처럼 '빠져듭니다! 빠져봅시다!'  딱 그거다.

이 책은 예전에 같은 제목으로 나왔다가 그 출판사가 문을 닫으며(내 기억이 맞다면 고려원이다) 절판되었던 책이다. 미하엘 엔데의 많은 팬들이 참으로 아쉬워했었다. 그런데 때마침 보물창고에서 이 책을 복간해 주었다.  왜 '때마침' 이냐고? 이 책은, 미하엘 엔데는 요즘 처럼 머리 복잡하고 가슴 답답한 시절에 '딱' 인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 열대의 해변 못 가고, 호젓한 산장 못 간다. 그러나 '오냐, 미하엘 엔데의 새빨간 거짓말에나 한 번 빠져보자. 모든 걸 다 잊게 만들어주니까!' 하면서 책을 펴 들면 그 순간 그 곳은 또 다른 세상이 되는 것이다. 찌든 거, 복잡한 거 다 잊고 그의 거짓말에 홀린 채 정신 없이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아주 기특하고 유쾌한 refresh다. 시원하고 맑은 바람 한 번 맞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 책  <자유의 감옥>의 복간은  '때마침'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딴 생각 없이, 책에 '폭' 빠져서, 다른 거 다 잊고 미하엘 엔데의 신나는 거짓말을 '야, 그 놈 참!' 감탄하면서, 손가락 끝에 침 연신 발라가면서 책장을 신나게 넘겨보자. 그게 '판타지'라는 쟝르가 가진 매력의 본령이 아니던가. 그렇게 '빠져들기에'  이 책의 매력은 차고도 넘친다. 그렇게 '빠져들게 만드는 솜씨'가 좋은 작가로서 미하엘 엔데는 세계에서 열 손가락안에 틀림없이 드는 인물이니까.

복잡하다, 답답하다, 짜증난다, 다 잊고 싶다, 떠나고 싶다, 확 다 때려치우고 싶다! 이런 증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라면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미하엘 엔데가 만들어 놓은 '또 다른 세상'으로의 방문을 한 번 권해본다.  정말 찌들어 사는 나같은 놈에게도 효과가 훌륭했기에 감히 권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