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느리게 오는 편지 - 최돈선의 저녁편지
최돈선 지음 / 마음의숲 / 2015년 10월
평점 :
어느 날은 갑자기 편지가 그리운 날이 있다.
누군가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면서 편지를 쓰고 싶고 우편함에 들어 있는 편지봉투를 꺼내 편지 봉투의 끝을 만지며 집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 매일 연락하는 친구에게도 낯간지럽게 뜬금없는 편지를 보내고 싶어 크리스마스 핑계를 대며 카드를 보내기도 했었고 또 언제는 다 써둔 편지를 깜빡 잊고 주지 못해 내 서랍안에 남아 있는 편지도 있다.
편지함에서 우편물들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면 걸음이 빨라지는데 어딘가에서 보낸 홍보물, 검은건 글씨요 하는 우편물들 그리고 그 사이에 반가운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는 편지를 볼땐 계단을 올라가며 손끝으로 편지봉투를 만지며 가늠해본다.
어떤 날씨를 거쳐 왔을까? 찬 바람이 부는 날 편지를 썼을까, 비는 맞고 오지 않았을까 편지봉투를 보며 잡다한 생각까지 한다.
이 안에 몇 장이 들어있을까, 얼마나 썼을까?
장수가 적다고 마음이 가벼운건 아닌데 왠지 장수가 많으면 그 편지를 쓸 동안 내 생각을 하는 것 같아 괜히 더 반갑다.
예전에 편지를 기다리는 동안 이미 편지를 써둔적이 있었다.
그리고 찢고 편지를 다시 썼는데 그러다보니 무슨 내용을 썼는지도 기억이 안나 정작 답장을 써야할땐 빈 종이만 하염없이 보다가 편지를 기다리지 않은듯 일상의 이야기만 담긴 답장을 다시 보냈었다.
이번에 읽은 느리게 오는 편지는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마치 일기처럼 유년의 기억부터 어느 날의 일정과 날씨까지 무심히 쓰여진듯한 글들은
나에게 보낼 날만을 기다리면서 하나씩 써둔 편지들을 모아둔 것 같다. 가을에 만나 더 가을같아지는 책. 답장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가 이야기하고 싶어서 보내는 편지들이에요, 일기같은 편지들을 읽다보면 문득 가을이 머물러 있음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