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민트 창비청소년문학 112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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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주로 사랑에 관련된 일들과 책임은 자주 엮이는 것 같다는 생각으로 출발해 본다.
우선 이 책의 주요 인물들인 시안과 해원. 아직 10대인 시안이지만 그녀에게 익숙한 공간은 학교나 학원, 혹은 집이 아니라 병원이다. 그래서 독자인 나로서는 시안이의 모든 언행과 생각들이 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생경했다. 나를 비롯한 누군가에게 병원이라는 장소는 잠깐 머물렀다 빨리 떠나가고 싶은 곳이라면, 시안에게는 이제 그녀와 아빠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엄마를 보살펴야 할 공간으로 자리잡아 버렸다. 즉 다시 돌아가야 할 곳으로.
재회한 시안과 해원은 지금도 어리지만 더 어릴 적 그 때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을 상기시킨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노닐다가 엄마에게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만큼은 철저히 지키는 시안. 영문을 모르는 해원은 시안에게 한없이 서운해지기만 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어김없이 병원으로 가는 시안, 그리고 매일 같은 시간에 학원으로 향하는 해원. 한 때는 같은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던 두 친구의 삶은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어떤 기억은 너무 달콤했기에 다시 쟁취하게 되면 금세 익숙해진다. 시안은 돌연 그 달콤함을 거스르고 해원에게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시안이 은폐하던 진실을 마주한 해원은 자신의 엄마로 인해 식물인간이 된 이모의 모습에 일말의 죄책감을 느낀다. 지금까지 그 사실을 숨기고 자신을 만나왔던 시안에게는 이름 모를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한다.
가장 궁금했던 점은 "왜 시안은 갑자기 해원에게 엄마의 상태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을까?"하는 것이다. 우선 시안은 해원이 "자기 삶에 대한 각별함과 애틋함"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일종의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사실은 시안도 해원과 같은 보편적인 10대의 삶을 꿈꾸고 소망한다는 것을 작가가 보여주는 장치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자신이 영위하지 못하는 삶에서 오는 열등감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법이므로. 그래서 시안은 해원의 삶의 일부가 되고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완벽해 보이는 삶에 침투한다면 자신도 조금은 그 삶을 흉내라도 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모종의 투정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서사가 진행되는 내내 어른스러워 보이기만 했던 시안이 보통의 10대 소녀같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찡해졌다.
다시 돌아와서 "책임"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다시 이야기를 진행해 본다. 시안은 자신보다는 엄마를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게 된 인물이고, 해원은 자신의 가족들이 감염병의 근원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비난받던 과거에서 겨우 벗어나 자신의 미래를 꾸려나가는 일에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친구라는 단어로 얽혔던 두 사람이 결국은 본의 아니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게 되면서 각자 다른 책임을 지는 모습이 서사 후반부의 주된 이야기로 구성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를 책임지고, 또 책임지게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그려지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두 친구의 책임이 내린 답은 결국 사랑이 아니었을까. 우정도 사랑의 일종이라고 여기는 사람으로서 나는 두 사람이 참 서로를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읽는 내내 멈출 수가 없었다. 저자의 전작인 <유원>에서도 그랬듯이 불의의 사고로 인해 운명이 되어버린 두 사람. 그리고 두 친구가 그려내는 것이 모두 사랑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사람을 자라게 해주는 좋은 양분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시안과 해원은 서로를 어떤 방식으로든 껴안으면서 "그늘을 벗어나 한걸음, 햇볕이 있는 곳으로" 함께 나아가고 있다. 서로의 슬픔을 반으로 나누어 곁을 지켜준다는 것이 <페퍼민트>가 내린 사랑의 정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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