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와 폐허의 땅
조너선 메이버리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좀비(Zombi)는 영화, 만화, 소설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제는 매우 익숙한 존재가 되었다. 원래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를 의미하며 아이티를 비롯한 국가에서 믿던 부두교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죽어있는 시체를 살려 농사를 짓는 등의 노동력으로 사용되었다던 좀비의 모습은 빅터 헬퍼릭 감독의 <화이트좀비(1932)>에서 처음 나타난다. 노동력을 제공하던 좀비가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이 개봉하면서 부터이다. 이후 좀비는 짐승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대상을 따라 걷기 시작했고, 달리고, 사람을 물어뜯고 먹으며 공격적이고 공포스러운 대상으로 그려지게 되었다.

매체마다 풀어내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인간을 먹는다는 것이다. 좀비가 인간을 먹는 것을 보며 인간은 좀비를 자신과 다른 대상으로 바라보았고, 죽여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하였다. 인간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인간을 지키기 위해 좀비를 죽이기 시작했다.

조너선 메이버리의 「시체와 폐허의 땅」 에서 인간은 좀비를 피해 마운틴사이드 마을에 모여 살고 있으며 좀비 사냥꾼을 마을 밖으로 내보내 좀비들을 죽이기도 한다. 이 소설의 전반부는 전형적인 좀비소설로 그려진다.

좀비가 나오기 시작한 첫 번째 밤에 부모님을 잃은 이무라 형제, 어머니를 버리고 온 형 톰 이무라를 겁쟁이로 여기며 미워하는 동생 베니 이무라. 좀비를 죽이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사람들에게 거칠게 구는 좀비사냥꾼 찰리와 해머. 15살 어린 친구들도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마을의 모습. 바깥으로 조금만 나가면 우글거리는 좀비들. 전형적인 좀비 아포칼립스 이후의 인간들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극중 초반의 인간과 좀비의 대결이 후반에서는 인간과 인간의 대결이 되는 형태 또한 일반 좀비소설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다만 이 소설의 특이점은 인간과 인간의 대결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좀비를 우리와는 다른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한 가지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 즉 첫 번째 밤 이전에는 인간이었던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좀비가 되기 전의 인간들 또한 이무라 형제처럼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이고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아니, 아니, 아니야. 상황이 달라. 형, 저들은 좀비야. 사람들을 죽이고 뜯어 먹는."

"한때는 저들도 사람이었어."

"지금은 죽었잖아!"

"그래. 캐시 이모나 모기에 아버지처럼."

"아니. 캐시 이모는 암으로 돌아가셨고, 미첼네 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셨어."

"그래.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안식 절차를 밟아 주지 않았다면 그분들도 산송장이 되어 깨어나셨을 거야. 모르는 체 하지마. 캐시 이모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해봤다고도 하지마."

「시체와 폐허의 땅」 70p


동생인 베니 이무라는 형은 톰 이무라가 찰리와 해머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떠벌리지도 않고, 어머니를 버리고 도망쳤다는 과거의 기억때문에 형을 겁쟁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베니는 톰이 하는 일을 보고 나서는 좀비와 형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다. 톰 이무라는 좀비가 된 자들의 가족들에게 의뢰를 받고 좀비가 되어버린 그들에게 가족들의 마지막 말을 전하고, 목에 칼을 꽂아 편하게 보내주는 안식 절차를 통해 좀비들을 죽이고 있었다.


"죽은 사람들 모두 존중받아야 마땅해. 살아있지 않아도,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일지라도,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할 때조차도. 저들은 그냥 '좀비'가 아니야. 어떤 병의 부작용이나, 방사능이나, 어쩌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물질 때문에 저렇게 된 사람들이야. 난 과학자가 아니니 자세히 알 수는 없어.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지."

「시체와 폐허의 땅」 74p


톰 이무라는 좀비를 죽인다. 또 다른 좀비 사냥꾼들과 찰리와 해머 또한 좀비를 죽인다. 결과론적으로 보았을 때 좀비 사냥꾼은 좀비를 죽이는 존재이지만 과정이나 원인은 매우 다르게 그려진다. 톰 이무라는 좀비를 죽은 '사람'들이라고 여기며 한 때 인간이었던 자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죽이는 것이지만 다른 좀비 사냥꾼들과 찰리와 해머는 좀비들을 죽여야 하는 대상 혹은 오락거리로 여기고 심지어 어린 아이들을 납치하여 좀비와 싸움을 붙인다. 같은 결과이지만 그 과정과 이유, 방식은 현저하게 다르다.

갑작스러운 좀비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삶은 망가졌고, 베니 또한 좀비에 대한 분노로 그들을 증오하였지만 '그들도 한 때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라는 형의 말에 가치관에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인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인간들은 무리지어 내가 속하는 곳을 경계로 선을 긋는다. 이는 현명하면서도 무서운 방법 중에 하나이다. 나의 구역에 속하지 않는 사람을 타자화함으로서 우리에 속하지 않는 자들을 '그들'로 나누고 폭력을 가한다. 톰은 좀비들을 '한 때는 누군가의 가족이었던 존재'인 동시에 이해하고 싶은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다른 좀비 사냥꾼들은 철저하게 좀비를 타자화하여 그들에게 공격을 가한다.

좀비는 이미 죽은 자이기 때문에 인간처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본능이 시키는대로 인간들을 따라가고 잡아뜯고 먹을 뿐이다. 그러나 좀비 사냥꾼들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존재이고 본능보다는 이성이 앞선 존재이다. 그들이 좀비들을 괴롭힌 것은 어쩌면 순수하게 그들을 장난감거리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본능에 따르는 좀비와 의도를 가지고 그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인간 중에 과연 누구를 더 악한 존재로 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형은 마을 사람들이 자기가 믿고 싶은 진실을 믿는다고 했어요."

"톰이 맞아.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지. 진실을 알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옳은 질문을 하지 않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당연히 궁금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는 뜻이야."

「시체와 폐허의 땅」 150p

소설에서는 어째서 첫 번째 밤이 찾아왔는지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톰도 그저 병의 부작용, 방사능 등이라고 넘겨짚을 뿐이다. 마을 사람들 또한 그들이 왜 좀비가 되었는지, 좀비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또한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물어보지 않는다. 정작 담장 밖에는 언제든 자신들을 잡아먹을 좀비들이 가득 있는데도 말이다. 좀비를 전부 죽이지 못하다면 인간은 결국 좀비와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들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궁금해하지 않은 채 그저 담장 안에서 살아간다. 언제든 첫 번째 밤과 같은 일들이 또 벌어질 수 있는 것을 망각한 채.

찰리는 좀비를 오락거리로 삼고 잔인하게 죽인 자신을 후세에는 영웅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엔 찰리 또한 자신이 믿고 싶은 걸 믿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인간일 뿐이었다. 궁금해하지 않으면, 질문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에 먹혀들어간다. 작가는 찰리를 통해 궁금해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말하고 있다.

톰과 베니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던 찰리와 해머를 없애고 어느 출입제한 주택지로 향한다. 집 안에는 묶여있는 여자 좀비가 있었고, 베니는 울면서 그 좀비의 마지막을 편하게 보내준다. 일을 마무리한 톰과 베니는 닉스와 함께 동쪽, 시체들의 땅 저편으로 가보자고 말한다. 그들이 본 비행기를 떠올리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묘하게 「진격의 거인」이 떠올랐다. 인간을 잡아먹는 거인을 피해 벽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 나갈 수 없으면서도 바다를 보자고 말하는 아르민, 자유를 찾아 벽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엘런, 비행기를 보고 동생과 함께 제한구역 밖으로 나가는 엘런의 아빠 등. 이 소설에는 유독 「진격의 거인」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많다. 그러니 진격의 거인을 재밌게 읽은 사람도 재밌게 읽지 않을까 싶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서 가볍게 생각하고 읽었다가 인간의 존엄성이나 타자화 등 묵직한 주제를 건드려서 꽤나 무겁게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과연 우리는 인간의 존재를 어디까지로 봐야할 것인가.

작가는 덤덤하고도 담백하게 물음을 던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샤이니 - 정규 7집 Don't Call Me [PhotoBook Ver.][버전 2종 중 랜덤발송] - 포토북(88p)+접지포스터(1종)+접지가사지(1종)+엽서(1종)+포토카드(1종)
샤이니 (SHINee) 노래 / SM 엔터테인먼트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문번호 001-A458952517입니다. 버전 다르게 세트로 부탁드릴게요! 언제나 잘 구매하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샤이니 - 정규 7집 Don't Call Me [Jewel Case Ver.][커버 4종 중 랜덤발송] - 부클릿(12p)+가사집(10p)+AR포토카드(1종)+AR클립카드(1종)
샤이니 (SHINee) 노래 / SM 엔터테인먼트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문번호 001-A458952517 입니다... 두장샀는데 민호랑 태민이 부탁드립니다... 믿고 있습니다 갓라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