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온 여왕 - 남자 도살자, 벨 거너스
해럴드 셱터 지음, 김부민 옮김 / 알마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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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읽다

 

책을 특히 소설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의 어떤 삶에 관해서 알아가는 일이다.

그것이 1인칭 시점이던지 전지적 작가 시점이던지 아니면 어두침침한 미로 같은 카프카의 소설이거나 짧은 찰나의 충격을 가하는 이언 맥큐언의 단편이거나 그 주인공들의 삶에 천착하는 일은 꽤나 흥미진진하다. 독자인 나는 그저 한적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소설책을 읽고 들여다보며 내 삶과 다르거나 같거나 하는 심리적 경험을 나눈다.

 

논픽션 소설 <지옥에서 온 여왕, 남자 도살자 벨 거너스>에도 제목처럼 어떤 여자가 남자를 도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벨 거너스에 대해서도 그녀의 도살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없는 충격에 빠졌다, 마치 저자 헤럴드 섹터가 언급한 것처럼 그것은 너무나도 거대한사건이었다, 100여 년 전에 실제로 일어난.

 

벨 거너스 사건의 연구자들은 벨의 사악함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설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벨 거너스가 사춘기에 겪은 것으로 보이는 잔혹한 폭행 때문에 남성을 중오하게 되었다거나, 병적인 탐욕이 벨 거너스를 이윤을 추구하는 푸른수염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벨 거너스가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지르면서 내보인 사악함은 이러저러한 이론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과연 벨 거너스가 불 속에서 살아남았는가라는 질문보다 훨씬 더 심오한 미스터리와 맞닥뜨리게 된다. 성경에서 죄악의 신비라 부르는 미스터리와 말이다.’ -440p-

 

1970년대 연쇄살인범이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전인 1902년에서 1906년 사이에 연쇄살인이라는 죄악을 저지른 벨 거너스는 분명 지옥에서 왔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악의 화신일 것이다. 그녀가 겪은 지옥은 무엇이었을까. 악취가 났던 가난이었을까. 어린 나이에 당했던 폭력과 유산이었을까. 이 미스테리한 악을 서술하면서 작가 헤럴드 섹터는 존재하는 증거자료와 사료를 철저히 사용한 듯 모든 장면들이 생생하다. 그래서 악을 집행하는 벨 거너스도 악의 현장을 대하는 형사와 주변 인물들도 모두 이 사건에서 결코 멀리 있지 않다고 느껴진다. 책을 읽는 이 시대의 독자마저도 바로 어제 일어난 사건처럼 인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헤럴드 섹터의 능숙한 필력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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