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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숨은아이 > 얄팍 명료한 입문서 이상은 아님
인도신화의 계보 살림지식총서 13
류경희 지음 / 살림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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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9월 27일 써두었던 것을 조금 다듬었습니다. *

살림지식총서 013권으로 나온 책입니다. 2003년 6월에 나오기 시작한 살림지식총서는 책세상 문고를 본받아, 오늘날 지식 탐구의 주제로 떠오른 것들을 두루두루 섭렵하되 한 권 한 권 얇고 가벼운 판형, 크기와 비교적 싼 책값(정가 3300원)으로 박리다매를 추구하려 한 모양입니다. 작년 8월 30권 가량 나온 이 시리즈를 처음 보았는데, 001권부터 010권까지 미국에 관한 주제로 도배한 걸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001권이 [미국의 좌파와 우파]  002권 [미국의 정체성:10가지 코드로 미국을 말한다]  003권 [마이너리티의 역사 혹은 자유의 여신상]  004권 [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 성서로 보는 미국 노예제]  005권 [MD 미사일방어체제]  006권 [반미]  007권 [영화로 보는 미국:할리우드 영화의 문화적 의미]  008권 [미국 뒤집어보기]  009권 [미국 문화지도]  010권 [미국 메모랜덤]입니다.

이 중에서 004권 [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과 011권 [위대한 어머니 여신:사라진 여신들의 역사], 013권 [인도신화의 계보]를 사보기로 했습니다. 처음 읽은 게 [인도신화의 계보]입니다.

책세상 우리시대 문고의 첫 책 <한국의 정체성>을 읽고서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글쎄, 책이 얇으니 담을 수 있는 내용 역시 얄팍 명료해야 하는 걸까요?

당시 '인도의 문명과 신화'란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강의를 듣는 한편 이 책을 읽으니 인도신화 속, 신의 수만 3억 3000이 넘는다는 복잡한 세계에서 중심 되는 신들의 체계는 잘 정리되었어요. 그러나 소설도 국어 시간에 밑줄 긋고 '복선'이라고 앞뒤에 표시하고 유파 문예사조 등등, 공책에 번호 매겨 짜 맞춰 적으면 재미없어 보이듯이, 넓디넓은 인도신화의 풍요로운 세계를 흥미롭게 안내해주는 느낌은 덜했습니다. 아, 저도 인도신화의 세계가 넓디넓다는 것만 알지, 얼마나 어떻게 넓고 풍요로운지는 아직 잘 모르지요.

'인도의 문명과 신화' 강의를 해주신 선생님께서 이 책의 내용 중 잘못된 것을 몇 가지 지적해 주셨습니다. 18쪽 브라흐마 신상이라고 나온 사진은 쉬바 신의 아들인 까르띠께야 신의 상이랍니다. 브라흐마 신은 거위(혹은 백조)를 탄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사진 속의 조각상은 공작새를 탔어요. 지금은 고쳤을지도 모르겠군요.

힌두 문명의 특징 중 하나가, 어떤 신상이든지 그 신상을 표현하기 위한 규정(어느 신은 손에 어떤 무기를 들어야 하고, 어떤 짐승을 타야 하며, 얼굴이 몇 개로 표현되고 등등)이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고, 또 신화 속의 여러 장면을 표현한 그림이나 벽화, 조각이 인도 전역의 힌두 사원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는 거래요. 그래서 강의 중에도 어떤 신에 대한 설명을 2시간 듣고 나서는 30분 동안은 바로 그날 강의 들은 내용을 표현한 인도 현지의 그림이나 조각상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며 확인했답니다.

41쪽 비슈누 신의 10대 화신(아바따르)을 열거하면서 물고기 마쯔야, 거북이 꾸르마, 멧돼지 바라하, 반인 반사자 나라싱하(책에는 '나라심하'라 나오는데 나라싱하가 맞답니다), 도끼 든 빠라슈라마, 전설적인 영웅인 라마(책에는 '람'이라 나오는데 현대 힌두어로는 '람'이라 발음하지만 고대어로는 '라마'라고 한대요)와 끄리슈나, 불교 창시자인 붓다와 함께 발라라마를 화신의 하나로 들었는데, 발라라마도 비슈누 신의 머리카락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긴 하지만, 끄리슈나와 동시대 인물이고, 또 10대 화신이라 하면 세 걸음에 온 우주를 걷는 난쟁이 바마나를 꼽는다구요.

그리고 42쪽에 람의 조각상이라고 실은 사진도 쉬바 신의 상이랍니다. 조각상 발치에 있는 황소 아난따 조각을 보면 알 수 있다구요. 라마는 비슈누의 화신이기 때문에 쉬바 신이 타고 다니는 황소상이랑 같이 조각될 리 없대요. 이 조각상은 또 손에 파괴 에너지를 표현하는 불꽃을 들고 있군요. 불꽃도 쉬바 신이 손에 드는 것입니다.

51쪽에 나오는 끄리슈나의 외삼촌 깐사도 '깡사(Kansa : n 아래 점이 하나 찍혀 있습니다)'로 읽어야 하고, 52쪽의 고버르단 산도 '고바르다나(Govardhana)' 산, 브라즈 마을도 브라자(vraja : 맨 끝의 a 위에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삐치는 부호가 있습니다) 마을이라 해야 한답니다.

그리고 책에 언급해 놓고 그게 무언지 설명을 안 해줘서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79쪽에 가네샤 신이 무한한 지고의 기쁨인 자유를 의미하는 '스위트'란 것을 들고 있다던데, 스위트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83쪽에 강가 여신을 설명했는데, 강가(Ganga)란 우리가 흔히 영어 이름으로 갠지스(Ganges)라 알고 있는 바로 그 강이란 것도 언급했으면 좋았으리라 봅니다. 그 정도는 사람들이 다 알리라 생각했나?

그리고 같은 쪽에 '야크샤는 특히 꾸베라 신과 연관되는 일종의 난장이 또는 요정'이라 해놓고 그러면 꾸베라 신은 어떤 신인지 일언반구도 없네요. 꾸베라(Kubera) 신은 도적의 신인데, 이 꾸베라 신이 바로 야크샤라는 존재들의 대표 격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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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기랑 > 흥미로운, 그러나 분명한 한계가 있는...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박창범 지음 / 김영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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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의 천문 기록을 컴퓨터를 통해 복원하고 실제 발생 여부를 확인해보는 실험은 대단히 흥미로운 작업이다. 저자의 전공이 천문학이었기에 가능한 발상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사료의 빈곤함 때문에 허덕이고 있는 한국 고대사 연구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저자의 자연과학적 접근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저자인 박창범 교수는 기본적으로 기존 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듯 하다. 즉 역사학적인 이해 없이 오로지 자연과학적인 방법으로 실험에 임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내놓은 실험 결과는 기존 사학계의 연구 성과와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내용의 것이다. 박창범 교수가 책으로까지 위 실험내용을 공개했다는 것은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보다 자신이 실험을 통해 도출해낸 결과가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내가 보기에 문제는 박창범 교수의 실험에 있다. 그가 제시한 실험 내용을 살펴본 결과 실험의 조건과 결과를 대단히 자의적인 기준으로, 심하게 말하자면 편파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느낀 것은 결국 중요한 것은 실험 그 자체라기보다 실험 결과에 대한 해석의 문제라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연과학의 실험이 절대적인 객관성을 보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도 이번에야 알았다. 박창범 교수는 처음부터 모종의 기대를 가지고 실험에 임했고 어떻게 보면 그가 결론 내린 것과는 정반대의 결론이 가능한 실험 결과물들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무리하게 해석하고 있다.

가장 찜찜한 것은 이 책이 자연과학자가 저술한 것이라는 점만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책의 내용을 역사학자들의 그것보다 훨씬 객관적이고 정확하다고 믿을 것이라는 점이다. 자연과학의 권위가 인문학의 권위를 압도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이 자연과학에 밀려 바닥까지 추락해버린 인문학의 위상을 반영하고 있는 서글픈 결과물이라고 본다면 그저 인문학 전공자의 예민한 반응이라고만 할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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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명재 >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출간 유감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1
박지향, 김일영, 이영훈 외 지음 / 책세상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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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8월, 주간 <교수신문>이 각 분야 전문 학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광복 이후 학문적으로 가장 높은 영향력을 발휘한 저서는 어떤 책이라고 보는가?’가 질문 요지였다. 이 설문에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해전사>)이 6등을 차지했다.

   1979년 말 1권이 발간된 후 1989년 6권으로 완간되기까지 10여년의 시공은 우리의 현대사에서 가장 큰 격동기에 해당한다. 유신 독재정권이 종말을 고했으며 뒤이어 들어선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이 사상과 양심 그리고 학문의 자유를 극도로 제약하던 시기였다. 이 때 <해전사> 6권이 순차적으로 발간된 것이다. 글을 쓴 사람들이나 출판사 모두에게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최근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이라는 책으로 세상이 다소 시끄럽다. 현대사 연구에 물꼬를 틀었다고 평가되고 학문적 성과물로도 인정받고 있는 <해전사>를 비판하고 나섰다고 해서 세간에 집중 조명을 받은 탓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내용이 너무 진부하다는 것이었다. 기존 보수 우파적 역사인식을 그대로 따온 데다 대부분 특별히 진전된 내용도 없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아니라 재탕으로까지 여겨질 정도였다. 몇 가지 문제점만 지적하려고 한다.

   먼저 필자들의 비전문성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해방전후사는 분명 역사이고 우리와 가까이 닿아있는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어야 하는데 참가 필자 중 한국 현대사를 연구한 사람이 극소수라는 사실이다. 이 책을 책임지고 엮었다는 편집위원들 중에도 우리의 해방전후사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이것은 비전문가가 전문가에게 시비를 거는 것 같은 현상이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전체 필자들 중 편집위원을 비롯한 몇 명이 책의 성격을 자의적으로 규정하고 선전하는 것도 문제이다. <재인식>은 기존에 발표되었던 논문들을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해전사>를 일정한 틀에 근거해서 비판하는 것이 못된다. 어떤 논문은 오히려 <해전사>의 연구를 뒷받침해주는 것도 있다. 그런데 보수 우파적 역사관을 갖고 있는 편집위원 몇 사람이 자신들의 공격적인 글 속에 다른 논문들을 종속시켜 전체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더 세분화되겠지만, <재인식>은 크게 세 가지 논점에서 <해전사>를 비판하고 있다. <해전사>에 담긴 역사인식이 ‘민족지상주의’와 ‘민중혁명 필연론’, ‘좌파적 편향’에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다.  아전인수식 주장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민족지상주의라는 것은 우리 민족만을 위해서 다른 민족을 희생시키고 이용하는 것일 텐데, <해전사>에 실린 글들은 외세에 휘둘리기만 해온 우리 민족이 다른 강대국과 동등하게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중혁명 필연론에 대해서도 그들은 선입관을 갖고 있다. 체제를 비판하는 것을 무조건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기초한 민중혁명론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그들의 시야가 몹시 협소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국민이 잘못된 정권을 비판하고 바로 잡는 것은 민중혁명이 아니고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장기 독재 정권에 시달리던 국민이 기본적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를 추구해 나가는 것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사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아닌가.

   학문 연구는 진리를 찾아가는 지난한 노력의 과정이다. 우에 장점만 있을 수 없고, 좌에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좌우의 장점을 찾아 조화롭게 또 균형 있게 굴러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그런데 <재인식>은 <해전사>를 좌파적 편향의 역사 서술의 책으로 미리 상정해 놓고 군사독재 시절에나 위력을 발휘했을 반공 이데올로기 중심의 우편향적 시각으로 시비를 걸고 있다. 역사 연구에서의 ‘균형 잡기’와 ‘업그레이드(Upgrade)’라는 외피를 씌우고 말이다.

   <재인식>에서 보여주고 있는 몇 개의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고 이 글을 마칠까 한다. 한국전쟁의 원인을 미소냉전에서 승리하기 위한 스탈린의 세계 전략 결과로 <재인식>은 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동아시아에 대한 이해가 일천했던 7,80년대 구미 학계 일각에서는 주장했던 설이다. <해전사>는 이와는 달리 6.25전쟁이 내부의 권력투쟁과 항일 무장투쟁경험의 연장선 위에서 김일성이 선택했던 전쟁노선의 산물로 보고 있다. 전쟁의 원인을 김일성이 이니셔티브를 쥔 전쟁으로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고 있는 이 주장은 국내외 학계로부터 폭넓게 인정을 받고 있다.

   일본군 성피해 여성에 대한 인식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일본인 학자의 논문 형식을 빌리긴 했으나 종군 위안부 피해 책임을 조선 사회의 모순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위험한 시각이다. 그들을 고통과 희생으로 내몬 것은 조선 사회의 양성적 불평등, 가정 폭력 그리고 가부장적 문화도 주요 원인이며 조선인 업주에 의한 동원도 있었다고 본다. 이것은 일제가 자행한 구조적 횡포를 조선 내의 문제로 돌려서 개별화 파편화해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자칫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아직 과거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일본 지도자들에게 면죄부를 안겨 줄 우려도 없지 않다. 

   이승만에 대한 평가도 대단히 왜곡되어 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전례를 많이 남긴 인물이다. 현대사 연구자들은 대체로 그를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한 부정적 인물로 자리매김해 왔다. 하지만 <재인식>은 이승만을 약소국 대한민국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 한미방위조약 등을 최대한 활용한 마키아벨리스트이고, 미국으로부터 최대한의 달러를 얻어내 그것으로 경제자립화를 이루려 했다고 주장한다.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시각의 한 편린에 다름 아니다.

   조선어학회 활동에 대해서도 기왕의 입장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조선어학회가 일제에 저항한 대표적 민족문화단체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재인식>은 이 단체를 조선총독부 정책에 협조했기 때문에 식민지 권력과 대립적인 관계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총독부의 전면적인 행정력은 조선어문통일을 정당화하는 실제적 권위의 근거가 되어 조선어학회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실증적인 논구가 더 수반되어야 하겠지만, 우리말을 매개로 간접적 항일을 한 문화운동 단체인 조선어학회를 직접적 항일운동(무장투쟁) 단체와 같은 선상에서 운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친일파의 문제도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한다. 예를 들어 친일파의 대명사격인 춘원 이광수를 ‘친일 민족주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행위만 보지 말고 친일한 동기까지 고려하면 이렇게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언어의 유희에 다름 아니다. 즉 형용모순이다. 기본적으로 민족주의는 식민주의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일제를 용인하는 민족주의’, ‘친일적 민족주의’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재인식>의 필자들은 랑케식의 역사 독법에 근거해서 주장을 펴고 있다. 랑케의 역사관은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서 개인적인 견해나 해석이 가미되어서는 안 되며,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한다는 실증주의적 역사관을 말한다. 실지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유물과 문헌(문자)인데 이것은 주로 지배 계층을 설명해 주는 좋은 소재들이다. 여기에 근거해서 역사를 있는 그대로 서술한다면 지배계층만의 역사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랑케의 역사 독법은 매력을 잃었다. 모든 사람의 역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현상이든 주어진 조건에 따라 보는 시각도 다를 수 있다.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면서 토론하는 것은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서로 주장이 다를 때 정확한 논거를 찾아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은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재인식>은 <해전사>와 대립 구도를 만들어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 얺짢다. 탈냉전의 흐름이 세계사의 주류로 자리 잡은 지도 한참 지났고, 남북 관계도 교류와 협력을 통한 상생 발전의 흐름이 대세가 되었다. 또 대통령을 북한 김정일 정권의 앞잡이라고 일간지에 대문짝만하게 광고를 내도 잡아가지 않을 만큼 민주주의도 성장했다. 이러할 때 <재인식>의 출판은 냉전시대의 잣대를  들고 나와 시대를 역류시켜 보겠다는 발버둥처럼 생각되어 보는 사람을 무척 안쓰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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