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길일대와 임진록
현병주 지음 / 바오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편집자의 의지와 역량이 또렷이 드러나는 책을 접했다. 책을 읽는 재미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저자고 다른 하나는 내용이다. 우선 저자가 내 눈길을 끌었다. 현병주. 처음 접하는 저자다. 전두환 장군이 대한민국의 정권을 틀어쥐기 꼭 100년 전에 태어난 조선의 사내다. 서점을 운영하고 출판사를 경영하던 그는 조선의 보통 사람이었다. 하지만 신문물과 신학문을 접하고 수십 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긴 그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이 비범한 조선 사내의 문장을 접하며 책보다는 사람에 더 주목하게 된 건 비단 나만이 아니리라.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또 다른 조선의 사내들인 유영모와 김교신을 떠올렸다. 결은 다르지만 난세를 살다간 거목을 만나는 일은 한편 두렵고 한편 즐겁다. 유영모와 김교신에 비해 현병주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 한 권의 책을 읽고 그에 대해 안다고 하기는 뭔가 쑥스럽다. 그의 다른 저작이 그리워지는 이유다. 편집자의 집요함과 끈질김이 기다려진다.

 

  내용 또한 두 부분으로 나뉜다. 상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서술이다. 1592년부터 무려 7년 동안이나 계속된 임진왜란을 일으킨 주역에 대한 저자 나름의 객관적 묘사가 이어진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이 우리 민족에게는 조선 침략의 원흉을 처단한 영웅인 반면, 일본에게는 자국의 근대화와 서구화를 이룩한 위인을 살해한 범죄자로 취급받듯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시 일본인들에게는 전국을 통일하고 오랜 숙원이었던 대륙 진출의 꿈을 실천에 옮긴 영웅인데 반해, 한국인들에게는 국토와 백성을 처참하게 유린하고 온 나라를 피비린내로 물들게 한 전범일 뿐이다. 이토록 극명하게 대비된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을 피해 당사자인 우리가 과연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임진왜란을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하며, 일본을 알기 위해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온전히 파악해야 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본시 아내와 불합하던 끝에 히데요시가 누이를 준다는 것이 비위에 당기어 먼저 히데요시에게 양자로 주었던 히데야스는 도로 찾아오기로 하고, 히데요시의 누이를 데려왔다. 히데요시는 기어코 이에야스를 교토로 불러들이려 하여 다키카와 다쓰토시를 보내어 자기 어머니를 이에야스의 집에 볼모로 내어줄 터이니 오라하는 말을 전하였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가 이쯤 하는데야 구태여 고집할 것이 없다 하여 단출한 일행을 이끌고 교토에 들어가 히데요시를 찾아보는데, 갑주를 벗어버리고 예복으로 히데요시의 앞에 나가서 관백에게 보이는 예를 보였다.

 

   히데요시가 2인자인 이에야스를 얻기 위해 끈질기게 삼고초려 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면서도 순간적으로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다.

 

   하편은 왜란에 대한 기록이다. 각종 문서와 소설,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 등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임진왜란은 그 처참한 실상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7년 전쟁의 과정과 결과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조선의 강토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요행히 살아남은 질긴 목숨에게는 초근목피조차 사치였다. 자식이 부모를 잡아먹고, 부모가 자식의 살덩이를 목구멍으로 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산목숨의 주린 배는 최소한의 규범도, 윤리도, 상식도, 체면도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조선은 국가로서의 모든 기능이 무너져 내렸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그것은 나라도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임진왜란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의무가 있다. 임진왜란에서 영웅 이순신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에 대해 유심히 살펴야만 한다. 그러나 당시에도 그 이후에도 우리는 그것을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임진왜란 이후 불과 한 세대 만에 우리는 또 다시 병자호란의 참화를 맞기에 이르며, 300여 년 뒤 경술국치의 치욕을 잇달아 맞이하게 된다. 역사는 지독스러울 정도로 같은 모습을 띤 채 반복된다.

 

   조선의 남도는 수백 년 동안 전쟁이란 것은 꿈에도 해보지 못하던 일이라 홀제 칼날을 번득이며 총을 놓으며 쳐들어오는 일본 군사 앞에서 수령 방백들이 억지로 민병대나 붙잡아들여 막는다는 것은 모래를 던져 폭포를 막으려 하는 셈이다.

   경성에서는 일본 군사가 부산에 상륙하였다는 급보를 받고 조정은 일변으로 도체찰사 유성룡을 내세워서 남로로 장수를 분발하는데, 가운데 길목은 순변사 이일이 내려가고, 왼편 길로는 방어사 성응길이 내려가고, 오른편 길로는 방어사 조경이 내려갔다. 조방장 변기는 조령 목을 지키게 하고, 조방장 유극량은 죽령을 지키게 하고, 팔도순변사 신립은 남도를 순회하며 장수들을 지휘하기로 하였는데, 군안을 들여놓고 군사를 부르니 들어오는 군사가 모두 시정의 작란군(장난꾼)들이다.

   쓰나 못 쓰나 몇 명씩 거느리고 떠난 뒤에 신립이 떠나려 하니 군사도 없고 말도 없어서 군사는 뒤에 보내주기로 하고 대신 집의 말을 빌어 타고 나섰다.

 

   일국주의를 극복하고 동아시아 삼국의 입장을 고루 반영하여 객관적 시각에서 임진왜란을 기술했다고는 하나 현병주 역시 임진왜란이 있은 지 300여 년이 지난 뒤에 태어난 사람이었기에 전쟁을 문자적으로 파악했을 뿐 경험적 혹은 실존적 차원에서 파악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가 300여 년 전에 태어나 조선 팔도를 누비며 일종의 종군 기자 역할을 했었더라면 우리는 오늘날 임진왜란에 관한 불멸의 역작 하나를 갖게 됐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만한 저작을 통해서도 우리는 역사 앞에 홀로 마주앉는 두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문명을 배반한 야만의 극치이며, 인류가 저지른 가장 잔혹한 행위의 흔적이라 일컬어지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제4동 입구에 폴란드어와 영어로 쓰인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 에스파냐 출생의 미국 철학자 겸 시인이자 평론가)의 경구다.

   매일 같이 광화문 광장에서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촛불이 도도하게 타오르는 요즘, 이 말이 주는 의미와 무게가 칼날처럼 뼈와 살 깊이 와 닿아 한없이 쓰리고 아프기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