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 차별, 처벌 - 혐오와 불평등에 맞서는 법
이민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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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이라는 말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는 같은 반 아이들로부터 담임 선생님이 "차별을 하신다."는 말을 들었다. 선생님이 유난히 이뻐하던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는 친구들로부터 따돌려지게 되었다. 선생님의 차별이 특정 아이를 향한 집단적인 차별로 이어진 것이다. 지금은 김영란법으로 선물이나 촌지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지만 그 시절에는 부모님의 학교 방문이 학교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던 시절이었다. 부모님의 재정적인지원 덕에 그 아이는 학급의 반장이 되었고, 중요한 행사때마다 발표나 주인공 역할을 도맡아 했었다. 부모님의 협조(?)를 못 받은 아이들은 그저 부당한 차별을 받고도 별 소리 내지도 못한 기억이 있다. 나는 정의를 수호하는 사도는 아니지만, 차별에는 다소 민간함 편이다. 저자는 차별을 경험한 일이 그다지 없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뉴욕의 거리에서 수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우리가 서로에게 갖는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서로를 구분하고 속단한다고 경고한다.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속에는 수 많은 차별이 존재한다. 성별, 나이, 종교, 인종, 지역, 장애, 학력,정치성향, 성적 지향, 성 정체성 등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요소로 인해 차별을 당하거나 차별을 행한다. 입사지원서에 사진을 붙이는 것이 외모나 성별, 인종에 대한 차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받아 들이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 책에서는 특이 여성이나 약자가 차별을 받아왔던 수 많은 역사적 사건을 소개한다. 피해자인 여성보다 가해자 위주의 법적 처벌, 범죄자로 오해받고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희생된 흑인,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사연들은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얼마 전 ,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여 중국인에 대한 혐오가 아시아인 전체를 향한 혐오로 이어지고 동양인 여성이 길거리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한 뉴스가 소개되었다. 이런 혐오범죄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저자는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선언한 "인간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인간 사회에는 수많은 분류 기준이 생겼고, 이를 기반으로 위계질서를 정립했고, 특정 집단이 사회의 위계질서에서 더 우월한 위치를 차지했을 때, 대개 종속 집단은 지독한 차별과 억압을 경험했다고 설명한다. 차이가 차별로 이어진다. 2020년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었고, 2021년 '평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었다고 한다. 차별금지법안에서 차별의 정의를 살펴보면 이렇다.

합리적인 이유없이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출신지역, 용도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의 영역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 배제. 거부하거나 불리하는 대우하는 행위

출처 입력

합리적인 이유 없이 라고 되어 있으니,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인정이 되면 정당한 차별은 해도 된다는 말인가. 전문가인 저자는 냉철하지만 따뜻한 가슴을 가진 법조인으로 이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어떤 차별이 법적인 처벌이 되는지 이해하게 된다. 모든 차이의 구별이 차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또 모든 차별이 부당한 것은 아니며, 모든 부당한 차별이 법적 제재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차별금지법"이 우리 모두를 위한 법이 될 수 있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보탬이 되고자 한 저자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다.

<말이 칼이 될 때>의 홍성수 교수의 추천의 말.

"차별이 왜 발생하고, 어떤 사회 문제를 낳고 있으며,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까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차별 문제에 관한 거의 모든 쟁점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미국의 이론과 사례를 주로 다루면서도 한국 사회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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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 도덕을 추구했던 경제학자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다카시마 젠야 지음, 김동환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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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론>으로 유명한 그 애덤 스미스 맞다. 교과서에서 접한 애덤 스미스는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이루는 시장 기능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설명했고, 자유방임주의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은 도덕을 추구했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에 대한 "오해와 진실(?)" 판이라 하겠다. 작가는 일본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다카시마 젠야로 마르크스 주의와 애덤 스미스 연구자이다. 출간된 지는 벌써 50년이 지났고, 이 책의 작가가 타계한 지도 30년이 되어 가며, 애덤 스미스가 탄생한지 무려 297년, 거의 300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서 다시 애덤 스미스를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작가는 고전 중에 고전이 되어버린 <국부론>과 그 보다 스무해 전에 나온 <도덕감정론>을 통해 애덤 스미스를 다시 세상에 불러 온다. 경제학자를 넘어선 사회철학자, 도덕철학자, 사상가, 법률가로서의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통해 시장경제, 자본주의, 시민 사회의 미래에 대한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저명한 학자에 생애와 그의 사상에 대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연구한 흔적이 곳곳에 나타난다. 일반적인 위인전이나 전기와는 결이 다르다고나 할까. 인물탐구 학술서(?), 전문가나 전공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을 위한 가이드 같은 느낌의 책이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던 "자유방임"은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바와는 다르다고 설명한다. 자유방임이 아니라 자연적 자유, 자유경쟁이라고 해석해야 한단다. "어떻게 국부를 늘릴것인가"에 대해 생산력 증대, 농업중시와 분업에 대한 개념을 산업혁명이 일어나기도 전에 생각해 낸 최초의 경제학자, 이기심이라는 개념으로 경제활동의 주체인 인간의 속성에 대해 간파한 학자, 그렇지만 도덕을 추구했던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에 대해 아주 조금 알게 된 책이다. 그야말로 그 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시대적인 배경과 내용적인 면, 일본의 역사와 상황에 대한 초반 설명이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분량이 두껍지는 않아 중반 이후부터는 비교적 몰입을 하게 된다. 고전을 통해 현대를 새롭게 바라보게 해준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도덕 감정론>과 <국부론>은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진다.

이기심이 경제세계의동력이라고 한다면, 경제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추

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무엇을 해도 좋다는 말인가. 물론 그런 것은 아니다. 스미스에게 있어서 경제의 세계는 정치나 법의 세계의 일부이다(스미스에게 경제는 언제나 정치경제였다). 다만 경제라고 하는 것은 개별 인간의 자유로운 활동에 맡겨두어도 지장이 없는 세계,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보다 더 효과적인 세계이다. 스미스는 이것을 편의의 원칙이 지배하는 세계라고 설명한다. 편의의 원칙이 지배한다는 것은 편의상 그렇게 하는 것이 국가나 사회 번영을 위해서도 엄격한 규칙을 강요하거나 권위나 권력으로 강제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좋다는 의미를 지닌다.-104p

"이기심이라는 경제적 동기에서 각자가 최선을 다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신이 의도하지도 않았던 전체의 목적이 실현된다"고 하면서도 "이기심은 정의의 한계 내에서 발휘되지 않으면 안 되며, 경제인의 활동은 전체적으로 국가나 사회의 번영에 도움이 되지않으면 안 된다", "자유경쟁은 공정해야 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즉, 애덤 스미스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을 뛰어넘어 인간의 본질을, 국가· 민족· 지역을 초월한 사회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 했다. -2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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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늑대, 그리고 하느님
폴코 테르차니 지음, 니콜라 마그린 그림, 이현경 옮김 / 나무옆의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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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늑대, 그리고 하느님>은 깊은 울림을 주는 우화다. 작가인 폴코 테르차니는 독일 잡지 <슈피겔>의 특파원으로 오랜기간 중국, 일본 등 아시아에 거주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다룬 많은 에세이를 썼단다. 동양의 역사와 문화, 철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이 작품속에도 자연, 무소유, 공생과 나눔의 정서가 잘 드러나는 듯 하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주인공 "개"는 사랑하던 주인에게 어느날 갑자기 버려진다. 따뜻한 곳에서 누군가의 보살핌과 챙김으로 걱정없이 편하게 사는 것에 길들여진 개는 하루 아침에 아무 것도 없는 빈 몸으로 세상에 던져진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하고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가 불안하고 자유롭지 못한 까닭은 바로 온전한 나 자신만으로는 행복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기 때문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자연의 세계를 둘러보자. 자연에서는 동물이며 식물이며 스스로 살아간다. 법륜 스님의 강연을 듣고 있는데 스님도 늘 강조하는 것이 있다. 동물들은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간다는 것. 하루 하루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그 날 그날 주린 배를 채우며 살아간다. 내일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뭘 먹어야 하나로 고민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동물처럼 살라는 얘기는 아니다. 쓸데없이 더 욕망하고 더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개도 처음에는 스스로 먹이를 찾아야 하는 고통, 추위와 불편한 잠자리로 인한 불편함, 친구를 가장하여 이용하려고 드는 나쁜 손길 등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개는 순례자이자 안내자인 늑대 무리를 만나면서 "달의 산'에 가기로 마음 먹고, 멀고도 험난한 여행을 떠난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의 가치를 찾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개가 "달의 산"에 도착했을 때, 발견한 것과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늙은 까마귀와의 조우로 분명 개는 한 단계 성장한 듯한 느낌이 든다. 자신이 그 동안 자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기에 자신도 돌려주고 싶다는 까마귀는 "내가 죽으면 네가 날 먹으렴. 그럼 산을 내려갈 힘이 생길 테니."라고 말한다. 자연으로부터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완벽한 계획이었다고 말하며 책은 마무리 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을 북디자이너 니콜라 마그린의 멋진 삽화와 함께 생각해 볼 기회를 던져 준다.

멀고 도달하기 이려운 목표를

향해 걸어가겠다는 획고한 결심이 필요하단다. 가능성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니 스스로에게 말해야 해, '나는 간다'고, 그

곳에 도착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어떻게 돌아오게 될지 묻지

말고,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거든, 중요한 건 길을 가면서

네게 일어난 일에, 네가 지나가는 곳의 풍경에, 만나는 존재들

에 주의를 기울이는 거야. (중략)

우리는 모두 그런 여행을 완수하기 위해 태어났어. 하지만 지름길

은 존재하지 않아. 길은 아주 멀단다. 너 혼자 갈 수 없어. 우리

와 같이 가자. -69p

"넌 언제나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만 하는구나, 형제." 귀를

기울이고 있던 무니가 말했다. "네가 이미 얻마나 많은 걸 가졌

는지 모르는 모양이야. 너에겐 멋진 털이 있잖니?"

"당신들 털처럼 수북하지 않아서 추위를 막아주지 못해요!"

"네 몸 앞에는 널 인도해주는 영리한 머리가 있잖아. 안에는

필요한 음식을 저장할 수 있는 자루처럼 큼직한 배가 있어. 그

밑에는 지구 끝까지라도 널 데려다줄 튼튼한 네 다리가 있고,

그리고 뒤를 돌아보렴. 네가 찾는 걸 이미 갖고 있는지 아닌지!"

개가 돌아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유롭게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그렇지만 가능

한 일이기는 해. 형제, 너도 주인이 필요 없다는 걸 알게 될 거

야. 네 자신이 주인이 되어봐! -601p

난 여기서 기다려. 난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바라지 않고 내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웠지.

시간이 흐르면서 온갖 일이 다 일어난단다.

난 내 존재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기쁨을 준다고 생각해.-1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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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정약용의 인생강의 - 다산은 아들을 이렇게 가르쳤다
정약용 지음, 오세진 옮김 / 홍익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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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책은 예전에도 있었다. <유배지에서 온 편지>라는 책이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인생 책으로 꼽았던 책이라 주저없이 사서 한 숨에 다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한 책은 이 뿐만이 아니다. 정민 교슈가 쓴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은 다산의 전방위적인 지식 경영에 대한 책으로 누군가가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책을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책이다. 다독가, 애독가였던 다산 선생의 지식경영에 너무나 홀려 버린 나는 다산 선생을 닮고 싶어서 닉네임을 "지식경영자"라고 했을 정도다. 이제 나도 나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싶어 나의 모토이자 브랜드를 "지식경영자"라고 명명하였다. 남들은 비웃을 지라도 과감히 네이밍을 한 것은 감히 근처에라도 다다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용기를 낸 것이다. <아버지 정약용의 인생강의>는 정약용을 흠모하는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책이었다.

<유배지에서 온 편지>보다는 좀 더 읽기 편한 구어체와 말투로 그리고 해설도 좀 더 편하고 쉽게 읽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자신이 관직에서 쫓겨나 폐족이 된 가문의 자식들이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에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식을 편집하고 깊이 있게 성찰할 것을 강조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독서를 강조하는 것은 진리인 듯 싶다. 그 자신 또한 유배지에서 엄청난 양의 독서와 작품을 남겼듯이 자식들이 공부에 소홀히 할까 늘 걱정하고, 폐족이 된 가문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공부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근과 검. 바로 근검 정신에 둔 경제 관념도 정약용이 강조한 점이다. 근이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것이고, 검이란 말그대로 검소하라는 것이다. 의복은 몸을 가리기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고 음식은 목숨을 보전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본연의 것 외에는욕심을 멀리하라고 가르친다. 지나친 소비를 불필효한 것으로 본 정약용 선생이 오늘의 우리들을 보면 뭐라고 하실까. 옷이 없어서 사는 게 아니라 입을 옷이 많아도, 꼭 필요하지도 않은 옷을 단지 예쁘고 유행이라고 사 들이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세상의 의복, 음식, 재물은 모두 허상이자 헛된 것이다. 옷은 입다 보면 해어지게 마련이고 음식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재물은 자손에게 물려주면 결국 탕진되어 흩어지고 만다. (중략)

재화를 비밀스럽게 저장해 두는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은 남에게 베푸는 것이다. 그러면 도둑에게 빼앗길 염려도 없고, 화재로 인해 소실될 걱정도 없으며, 소나 말이 운반하는 고생을 치를 것도 없다. 게다가 자기가 죽은 후에도 꽃다운 명성을 가져갈 수 있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이익이 어디 있겠느냐. 재물은 꽉 쥐려고 할수록 손에서 더 미끄럽게 빠져나간다. 재물이란 점어(메기)와 같은 것이다. -78P

남에게 베풀었던 것만이 죽은 뒤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은 참으로 멋지고 훌륭한 것 같다.

둘째 아들이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것을 걱정한 편지에서도 그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정조 임금이 술로 인해 우발적으로 살인을 한 사건에 대해 "사람이 죽인 게 아니라 술이 죽인 것"이라며 고의성이 없다는 명목 하에 죄인을 석방해 준 일이 있었다. 하지만 다산 정약용은 술에 취해 저지른 범죄는 오히려 더 큰 죄라고 보고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술로 인해 절제를 잃을 것을 알면서도 술을 마셔서 과오를 저지른 것이기에 절제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오늘날에도 가끔 음주를 핑계로 죄의 형량을 낮추려 하는 모습들을 접하는 데, 음주가 면죄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중하게 처벌을 해야 하는 것이 옳다는 다산의 생각에 깊이 동감한다.

천주교와 서학을 받아들였다는 명목으로 정치적인 탄압을 받았던 정약용, 자식들의 죽음과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정신적인 강인함과 유연한 사고방식, 실용적이고 창의적인 마인드를 잃지 않았던 정약용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교훈을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우리에게도 전해 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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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는 습관 -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 하루의 기록
메이슨 커리 지음, 이미정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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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예술을 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여성 예술가들은 어떤 일상을 살아갈까, 가사와 육아를 병행하면서 창조적 작업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18세기 위대한 작가부터 현대에 주목 받는 젊은 아티스트까지 무려 131명의 여성 예술가들의 하루를 통해 결정적인 습관, 리추얼을 찾아낸 놀라운 책이다. 도입부에서 던진 물음은 예술가들에게만 필요한 질문은 아닐 것이다.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여성 누구든지 가졌을 법한 질문일 것이다. 표지는 참으로 우아하고 낭만적이지만, 책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지금 이렇게 혼자서 글을 쓰는 것도, 그리고 책을 읽는 것도 아이들이 잠 든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낮에는 직장에서 시달리고, 퇴근후에는 육아에 시달리는데 평일에 나만의 창조적 시간을 갖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평일엔 출퇴근 시간에 잠깐, 아이들이 잠 든 후 밤에 잠깐 동안의 시간이 주어질 뿐이다. 그 마저도 밀린 집안일과 육아에 에너지와 시간을 뺏기기 일쑤다. 주말엔 또 주말대로 밀린 가사와 육아가 기다리고 있다. 요즘엔 남편이 해외 출장중이라 그마저도 친정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는 버겁다. 여성이 사회적으로 자신의 몫을 해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수 많은 여성들이 눈물 흘린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싶다. 세탁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청소기가 집안일을 대신 해주니 세상이 많이 편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기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리하는 시간과 실제 기계를 돌리는데  육체적, 물리적 힘이 필요하단 사실은 왜 쉽게 무시가 되는지 나는 늘 분노한다. 내가 좋아하는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외쳤고 ,<린다 브렌트 이야기>로 해방노예의 자립을 도왔던 해리엇 제이콥스가 "혼자 조용하게 보낼 수 있는 두 달의 시간을 훔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무너지더라도 밤낮으로 글을 쓰겠다." (259p) 고 불평할 수밖에 없는 심정에 너무나 큰 공감이 간다.

남편은 블로그만 하지 말고 유명한 북튜버들 처럼 유투브도 함께 해보라고 쉽게 말한다. 과연 나 자신의 성장만을 바래서 하는 말인지 의심스럽다. 블로그는 그저 좋아서 취미로 서평을 올리고 있지만, 이 것도 굉장히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다섯 살, 세살 둘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인 나는 슈퍼우먼이 아니다. 나는 이렇게 대응한다. "유튜브는 아무나 하나, 시간과 노력이 얼마나 필요한데, 지금 블로그도 간신히 하고 있으니, 내가 진정 유튜버가 되길 순수한 마음이 있다면 당장 나에게 자유와 독립을 달라고." 고작 책 읽고 서평 올리는 일에도 절대적인 시간과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을 독립적인 공간이 필수적인데 예술을 하는 작업은 말해 무엇하랴.

시카고의 흑인문학 운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하 주빌리의 작가 마거릿 워커는 소설 한 편을 완성하는데 30년이나 걸렸다.

워커는 할 수 있을 때마다 조사하고 글을 쓸 시간을

내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7년 동안은 한 단어도 쓰지 못했다.

"가족을 돌보고 교사로 일하면서 어떻게 글 쓸 시간을 냈냐고 다들

제게 물어보죠." 수년 후 워커는 이렇게 썼다.

시간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렇게 오랫동안 <주빌리>를 붙

들고 있었다. 작가는 매일 일정 시간 동안 글을 쓸 수 있어

야 한다. 특히 소설가에게는 글을 쓸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

요하다. 시를 쓰는 것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은 매일

일정하게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완성할 수 있다. 한 여성이

아내이자 엄마, 정규직 교사로 살면서 글을 쓰는 것은 인간

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주말과 밤, 휴가를 모두 독서

에 바쳐도 글을 쓰기에는 부족하다.

워커는 남편과 아이들을 일시적으로 떠나 아이오와 대학원에 가

서 논문을 대체할 소설을 쓰겠다고 계약을 맺으면서 그 소설을 다

시 쓰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빠르게 작업했고, 막바지에 다다를수

록 더욱더 오랜 시간 동안 글을 썼다.

이듬해 봄. 워커는 아침 7시부터 11시까지 작업을 하고 나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식사 후에는 다시 타자기 앞으로 돌아가 저녁시간이나 4시에 차 마시는 시간까지 일했고, 저녁식사 후에도 밤 11시까지 글을 썼다. -155p

참으로 처절한 예술의 탄생이 아닐 수 없다.

재봉틀의 대명사 싱거 가문의 싱거가 이사도라 던컨에게 청혼을 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속에서 여성 예술가로서의 삶과 자유를 포기할 수 없었던 이사도라 던컨은 결국 청혼을 거절하고 비혼주의를 택한다. 책에는 이사도라 던컨 외에도 비혼을 택한 알마 토머스도 등장한다. 결혼과 출산이 여성 예술가들에게는 특히 가혹한 걸림돌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책에서 얻은 결론은 절대적인 자신만의 시간과 예술활동을 지지해주는 가족, 특히 배우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인 도리스 레싱, 수전 손택, 그리고 유명한 버지니아 울프와 코코샤넬의 일상에서 그들의 루틴을 보는 색다른 재미가 있었지만, 아이들이 잠들기만을 바라는 마음을 자책하는 엄마의 마음이나 삶과 예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고뇌는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그저 시간을 내서 몰입하는 것만이 해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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