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해자들에게

나의 가해자들에게 - 학교 폭력의 기억을 안고 어른이 된 그들과의 인터뷰
씨리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0월

'착한 일진','좋은 일진'이 어디에 있어요? 일진이면 그냥 일진인 거고, 좋은 애면 좋은 애지.

이 책은 유튜브 [왕따였던 어른들] 의 인터뷰를 엮은 책으로

학창 시절 왕따를 당했던 상처를 그대로 안은 채 어른이 된 10명의 인터뷰를 담았다.

각자 자신의 경험담을 솔직하게 담은 영상은 순식간에 조회 수 300만 회를 넘기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그 뒤로 2편의 영상물이 더 제작되었다.

책에는 영상의 인터뷰 전문을 다듬어 실은 동시에,

영상에 미처 다 담아내지 못했던 이야기, 그리고 영상이 나간 후의 이야기까지 담고 있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학교 폭력 문제는 어린 시절 이야기로 끝내버리기 일쑤지만

사실은 끝나지 않는 이야기다.

괴롭힘당한 사람의 끝을 타인이 정해 줄 수는 없다.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끝나는 것도, 없어지는 것도, 잊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왕따'였던 지독한 트라우마를 안고 성장한 어른에게

그 시절이 이야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담아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일깨우는 한편, 지금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고 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가해자는 저와 똑같은 사람이었지만,

저는 그 가해자의 장난감이었어요.

가해자는, 누군가에게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겠지만

나한테는 정말 그냥 사라졌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이었으니까요.

가해자와 방관자. 그리고 피해자 뿐인 학교라는 사회에서

남는 건 끝내 피해자 뿐인 현실.

가해자는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방관자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피해자만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부당함을 우리는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대체 학교 폭력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또 '왕따'에게 상처가 남지 않도록 어떻게 다독일 수 있을까.

사과는 누가 할 것이며, 용서는 누가 해야 하는가.

사람과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타인을 괴롭히고 상처 주는 것에서 우월감, 기쁨을 얻는 것이

나쁜 거라고 끊임없이 말해 주고 싶다.

그리고 그것에 동조하고, 나도 피해 받을까 묵인하는 것이 겁쟁이인 거라고

알려 줘야 한다.

피해자는 피해를 당한 사람이라고, 잘 못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또한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제가 당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게 자꾸 문제는 바깥에서 들어오는데

저 자신을 깎았어요.

문제는 내게서 오는 게 아닌데, 근본적으로 내 잘못이 아닌데

자꾸 제가 저를 욕했어요.

이런 색각을 끝까지 안 가져야 하는 것 같아요.

나는 잘못이 없어요, 솔직히 말하면.

인터뷰에 참여 한 10명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은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하고,

함께 아픔을 겪었던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이 책이 지금 아프고 슬픈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같이 있어 줄게요. 포기하지 마요.
그리고 미안해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주지 못해서요.
더 노력할게요. 힘내요, 우리.

우리 이만 헤어져요.

우리 이만 헤어져요 - 이혼 변호사 최변 일기
최유나 지음, 김현원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8월

인스타툰으로 유명한 [메리지레드]가 제목을 바꿔 책으로 나왔다.

이혼 변호사 최변을 통해 듣는 결혼과 생활, 그리고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많은 이혼 소송으로 지칠 법도 한데 

그 속에서 인생을 배우고 성장한다는 최변은 자극적이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책에는 미공개 에피소드와 최변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는데 마치 짤막한 일기같다.

삶을 헤쳐 나가는 법을 알려주는 내 의뢰인분들이, 내게는 가장 큰 스승이다.

 -p.296

저마다 다른 이유의 상담을 보면 끝내 결혼도 이혼도 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타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조율과 이해를 요구하는 과정이 아닐까. 

그저 그 과정이 지치고 힘든 고난이 아니기를 바란다.

결혼 생활은 두 사람이 하는 것이다.

양가 부모, 형제는 '조력'할 뿐이지,

중심은 부부다. -p.246

​이 책은 이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최변호사의 성장기를 다룬 책이기도 하다.

의뢰인을 따뜻하게 위로하기도, 법정에서 의뢰인을 대신 해 강력히 싸우기도 하는

최변호사의 진정성에 응원을 보낸다.

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

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 - 쉽게 읽고 깊게 사유하는 지혜로운 시간 ㅣ 하룻밤 시리즈
토마스 아키나리 지음, 오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9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철학은 우리 삶 곳곳에 배어 있다.

철학의 역할은 지금까지 생각도 하지 못했던 당연한 현실에 사고의 칼날을 들이대고,
때로는 상식을 초월한 논리를 가져와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데 있다. -p.33

하룻밤 시리즈에서 서양철학을 다루다니!
세계사, 과학사, 중국사 등 여러 시리즈로 쉽고 재미있는 안내서라는
호평을 받는 하룻밤 시리즈의 서양철학.

언젠가는, 꼭, 깊이있게 탐독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철학.
철학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이미 익숙한 것이라고 의젓하게 생각하고 싶지만
역시나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플라톤이니 토마스 아퀴나스니 하면 이데아론인지, 스콜라철학인지 밑줄 그어야 할 것 같고,
옳은 것을 모두 고르라고 할 것 같은 도덕 시간 탓이겠지. 분명, 그 탓이겠지.
애초에 철학을 쉽게 배우겠다는 것은 오만한 욕심이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절레절레 하고 싶지도 않단 말이다.

유연하게, 조금은 쉽게 진입하고 싶은 내게 이 책은 반가운 책이었다.
고대, 중세 사상부터 현대 사상에 이르기까지
꼭 알고 싶었던 서양철학을 흥미롭게 알려주는 안내서였다.
작가는 이미 쉽고 재미있는 강의로 유명한만큼
서양철학가들의 이론을 쉽고 간결하게, 재미있게 소개한다.
철학 이론을 일상의 고민, 문제, 현상등에 빗대어 설명해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가 늘 보던 것의 본질을 탐구하고, 사람들 속에 위치한 스스로의 가치를 의심하며, 행복과 내가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바로 철학이기에
이제는 끊임없이 철학을 가까이 두어야 할 것 같다.

서양철학에 대한 가이드, 입문서가 필요하다면
다정한 해설사로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의 목적은 단순합니다. 깊게 고민할 때 그 고민을 잘 살필 수 있는 거울, 해결할 수 있는 도구 같은 철학을 당신에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p.6

이 세상이 환각일지도 모른다니.
일상에서 우리가 내리는 잡다한 판단은 정말로 옳은 것인지 더더욱 의심스럽다.
'나는 옳다'라고 자신만만한 당신은,
당신의 주관과 객관이 일치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p.206

인간의 행위는 그것을 행함과 동시에 즉시 다자의 음미와 비판의 대상이 된다.
즉 '시선'에 노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인간관계가 자유로운 주체끼리의 연결인 이상,
'시선'이라는 둘 사이의 공간에서 타자로부터의 승인을 얻기 위해
자신의 행위를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p,232(사트르트-앙가주망)

레몬

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 '안녕, 주정뱅이'로 처음 접하고 팬이 된 권여선 작가의 신작 소설.

권여선 작가님의 글은 지나치게 감상적이지도, 은유와 미화가 넘치지도 않아 좋다.

조금이라도 빨리 읽어 보고 싶어서 신청한 가제본 덕에 며칠은 힘들었다.

가제본의 특성상 초반 부분만 발췌되어 읽다 보니 뒷부분이 너무 궁금했던 것.

예약한 책을 기다리느라 힘들었다.

권여선 작가는 매 작품 같은 작가의 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야기에 맞춰 문체나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이 다름을 느낀다.

작가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글이 젊다가, 중후했다가, 이번엔 불안한 여고생의 느낌도 받았다. 권여선 작가의 글은 담담하면서도 묵직하다. 이런 작가의 매력이 미스터리 형식을 만나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 되었다.

빠른 전개와 흡입력. 그리고 묵직한 남김까지 무엇하나 빼놓지 않고 모두 담은 이야기다.

◇ 2002년, 온나라가 월드컵에 열광하던 그때 살해 된 언니 해언. 미해결로 남은 사건은 모두의 시간에 잠재한다.
그날에 갇히기도, 도망치듯 빠져 나와 살아가는 사람들.

해언의 동생 다언 역시 언니의 죽음 이후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오랫동안 닫아 두었던 그날의 문을 열기로 한다.

 "당신의 삶이 평하기를, 덜 아프기를, 조금 더 견딜 만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당신의 평하지 못한 삶의 복판에, 아프고 무섭고 견디기 힘든 삶 한가운데, 곱고 단단하게 심어 놓으면 어떨까, 그러면 그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한그루 이야기가 될까,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당신을 상상합니다. - 작가의 말"

나는 오래전 어느 경찰서 조사실에서 있었던 장면을 상상한다.

[100자평] 레몬

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권여선 작가의 글은 담담하면서도 묵직하다. 지나치게 감상적이지도 않고 은유와 미화가 넘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읽을 때 부담없이 읽히지만 읽고 나면 늘 마음에 남는다. 이번 책 역시 그렇다. 미스터리 소설의 형식으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면서 그 안엔 묵직한 남김이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