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정수일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평점 :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샀다. 재생용지일까. 종이의 느낌도 424페이지를 다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맛있는 과자를 야금야금 먹으며 그 먹는 맛에 기쁨 반, 작아져가는 과자를 보는 아쉬움 반의 마음으로 이제 막 다 읽었다. 다 읽었다는 것이 이렇게 오래도록 아쉬워본 적은 참 오랫만의 일이다.
지금 당장 저자에 대한 지금의 내 마음을 적어보라면,
인간적으로 닮고 싶은 롤모델,
학문에 대한 열렬함에 전염되고싶다.
민족에 대한 20살 청년같은 꼴통(?) 신심을 갖춘 사람
이미륵의 감수성과 내가 알고있는 모든 해박한 사람을 다 적어보아야할 것 같은 사람.
조로하는 한국사회에서 환갑도 넘으시고, 간첩(?)이시기까지 한 분이 써놓은 피로 쓴 영혼의 편지를 읽었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겠다라고...그리고 '소가 밟아도 깨지지 않게' 굳건히 다지겠노라고.... 선생의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부끄러움에 계속 무릎꿇는 자세로 다시 고쳐앉곤 했다.....어떤 조건 하에서도, 자신의 영혼이 훼손되지 않는 길을 찾을 줄 아시는 분.....부조리하고, 고통스럽지만 있는 그대로의 엄정한 현실을 정면승부하며 살아온 아름다운 인생.....인간의 존엄이란 어떻게 생기고, 지켜지는가를 보고싶은 사람은 꼭 이 책을 봐야한다. 더군다나 조로하는 한국 사회에서 10대도, 20대도, 30대도, 40대도 여전히 '이미 늦었다'라고 탄식하며 살아오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학문을 좋아하는 걸 넘어서서 '사랑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첫눈에 알아보았다. 학문하는 사람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무한한 긍정. 공부를 시작하려면 먼저 책상치우다 지쳐서 한숨자고 시작하려드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고, 한해의 게획은 봄에 있으며, 일생의 계획은 부지런함에 있다'라고 독려하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내가 뭐라도 할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내가 아는 모든 부정적인 생각에 대해 집요하게 반박하며 긍정하는 그 사고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민족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내게 또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종교, 민족 분쟁에 대해 좀 촌스럽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저자의 주장이 합리적인 부분은 더 공부를 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어릴적 추억을 듣노라니, <압록강은 흐른다>가 떠올랐고, 촌각을 아껴쓰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신명이 났고, '늙음이란 성숙이나 기여를 뜻하지만, 낡음이란 썩음이나 쓸모없는 대명사'이니 '늙은 젊음'으로 살아야한다고 하시는 부분에서는 나도 저렇게 늙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고, 자연을 찬미한다. 이상기온으로 날씨탓하기 좋아하는 투덜거리는 우리네와는 달리 자연이 주는 의미를 읽어내려 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렇게 자연을 존경하듯이, 자기 아닌 모든 것들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탁월함을 배워, 스승의 중요성, 제자로 연결되는 환생하는 시간과 의미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그래서 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한국의 노신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