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죽음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지음, 오혜련 옮김 / 샘솟는기쁨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줄 한 줄 읽는 것이 고통이었다.

 

학대받는 아이들, 어린이의 자살....

 

특히 자녀가 끔찍한 일을 당한 후 살해된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식은 땀까지 나 그만 책을 덮고 싶었다.

 

그 부모들의 고통이 너무 끔찍했다. 무서웠다.

 

직접 겪은 이들의 증언이 어찌나 생생한지 마치 내가 겪는 감정인 듯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내가 왜 이 책의 서평을 쓴다고 했을까... 후회했다.

 

 

각각의 고통스러운 상황들을 냉정하게 똑바로 직시하듯 서술한 작가의 어법이

 

처음엔 상처가 되었다가 차츰 익숙해지자 오히려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똑바로 봐. 피하면 영원히 치유되지 않아.'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비명횡사한 가족의 사체를 꼭 확인해야만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 훼손된 시신을 직접 보고 현실을 직면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시신을 보지 못한 유족은 슬퍼하는 기간이 훨씬 길다.

 

그들은 몇 년 또는 몇 십 년이나 부정의 단계에 머물기도 한다.'

 

(140p)

 

 

책을 읽는 내내 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됐다.

 

비탄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혹시 위로한답시고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야지', '그만 잊어라. 산 사람은 살아야지.'

 

따위의 말을 지껄인 적은 없었는지, 혼자 울고 있는 아이를 모른 척 지나친 적은 없었는지...

 

혹시 그랬다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다시 식은땀이 났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1년 전 스무살 아들을 갑자기 사고로 잃은 지인을 위해서였다.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먼저 읽어보고 좋으면 선물해야지..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동안 막연하게 짐작만하던 그 지인의 고통이 책을 읽고나니 선명한 윤곽과 형체를 가지고 다가왔다.

 

책 속의 어느 어머니(자식의 실종에 넋을 잃은)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앉아 있을 때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직장 상사가 전화를 걸어 무단 결근에 대해 싫은 소리를 했다는 상황이

 

그 지인의 경험과 흡사했다.

 

목숨보다 소중했던 외아들을 갑자기 잃고 고통을 주체하지 못하던 그녀가 눈물을 참지 못해

 

직장에서 자리를 박차고 화장실로 뛰어가 한 시간을 울다가 오니

 

그녀의 모든 사정을 아는 고용주가 '근무지 이탈' 이라며 시말서를 쓰라고 했단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그 사람들이 생명을 빼앗아간 범인들만큼 미웠다.

 

 

하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극심한 고통도 결국엔 이겨낼 수 있게 된다.

 

그들의 주위에는 그들을 염려하며,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 이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므로.

 

 

'당신은 강하거나 논리적이거나 민감할 필요도 없고, 또 꼭 어떠해야 한다는 생각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고통과 싸우려 하기보다 거대한 파도가 내 위를 덮치고 지나가듯이 그냥 방치해 두는 것이 낫습니다. 파도는 분노를 다 소모하고 나서 허덕이지만 산 채로 온전한 정신으로 해변에 나를 데려다 놓습니다. 그리고 다른 폭풍우와 마찬가지로 점차 사라져 갑니다. 파도는 부서지면서 점점 더 멀리 가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삶은 다시 살 가치를 찾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저는 수영을 잘 합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덮치는 파도에 삼켜질까 두려울 때는 눈을 감고 당신을 꼭 붙잡고 있는 제 팔을 느껴 보십시오. 저의 사랑, 인간 대 인간의 사랑, 한 어머니가 다른 어머니에게 갖는 사랑을 느끼십시오.'

 

(195p)

 

 

그 지인이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녀의 고통이 더 가중될까봐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한번 건네보련다. 읽어보라고.

 

 

그리고 나도,

 

책장 깊은 곳에 고이 모셔두었다가 언젠가 내 영혼이 좀 더 성숙하고 원숙해졌을 때

 

삶을 관조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겼을 때

 

다시 한 번 꺼내 찬찬히 읽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