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사다리 - 불평등은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키스 페인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불평등의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관계에 있다.

이 책에서 키스 페인은 실험심리학을 근거로 금전적 재산이 행복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친다. 중요한 것은 문제 그 자체보다 그 문제를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것이다. 


책을 읽고 느낀 첫번째는, 불평등에 대해 생각보다 나는 무지했고 또 무뎠다는 것이다. 

불평등은 문제다. 안다. 그렇지만 이 시대에 불평등은 사라질 수 없는 문제이고, 

그렇기에 사회경제적으로 인간은 불평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고 있고, 

그래서 그게 나와 크게 관련있는 문제라고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스 페인은 내게 좀 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불평등'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 이야긴 굉장히 흥미로웠다.


흔히 이야기하는 수직적 구조. 계층. 우리 사회의 그 사다리는 이미 예전에 놓여졌다. 우리는 크고 거대한 하나의 사다리를 사용하지만 개개인이 놓여진 그 위치가 다를 뿐이다. 사다리 맨 아래 사는 사람들과 사다리 맨 위에 사는 사람들의 세상은 명백히 다르다. 그치만 주어진 현실, 놓여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들의 행복지수는 위든, 아래든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이 책이 이야기하는 '부러진' 사다리다. 실제로 지위의 사다리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주관적 인식은 우리 앞날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실험에 따르면 가정환경이 여러 선택뿐만 아니라 개인 신체 기능에도 영향을 미치며, 2000년대 중반 즈음에는 불안정하고 가난하고 혼란스러운 가정에서 자란 소녀들이 좀 더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란 소녀들보다 더 먼저 사춘기에 이른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자기에게 무엇이 이득인가 하는 것은 

'타인과의 비교'로 정해진다.

우리는 자기와 의견이 같은 사람은 똑똑하고 통찰력 있다고, 의견이 다른 사람은 현실도 제대로 못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코미디언 조지 칼린도 이런 명언을 남겼다. "나보다 천천히 차를 모는 사람은 멍청이, 나보다 더 빨리 달리는 사람은 미치광이라는 걸."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나와 다른 타인에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신경쓰는 것일까.


사회적 유기체인 우리는 나 자신을 타인과의 비교로 평가하고 판단한다. 혼자 살 수 없다면, 즉 그 알고리즘을 벗어날 수 없다면 우리는 좀 더 나은 비교 방법을 찾아야한다. 요점은 비교를 할거면 현명하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현명한 비교를 하려면 자신의 목표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보다 객관적이고 뚜렷한 비교 잣대를 들이대려면 나의 목표를 확실하게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 맞추어 상향 비교나 하향 비교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상하향 비교를 효과적으로 사용한다면 스스로 근성있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훌륭한 당근과 채찍이 될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를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내 경험, 내 속마음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기에 하향비교의 이점을("적어도 이제 그 얼빠진 십대는 아니잖아!")  취하면서, 자신의 인생이 상승 궤도를 타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된다. ("세상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무엇보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면 무의식적으로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여 자신의 가치를 매기는 패턴을 끊을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결과가 

'운'으로 결정된다는 생각을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불평등에는 이유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내게 주어진 불평등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합리화 할 수 있는 인과관계가 필요한 것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결과가 '운'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사실보다 그동안의 노력에 따른 보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맞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불평등의 원인이 개인의 문제적 행동이냐 아니면 시스템적인 요인이냐 하는 논쟁은 요점을 놓치고 있다. 그렇게 일방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나역시도 그동안 "불평등=빈부격차"라고 생각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불평등과 가난을 자주 혼동하고, 불평등 감소라는 목표를 경제 성장의 목표와 혼동한다. 하지만 불평등을 만드는 건 사람들의 소득차이가 아니라 그 소득이 만들어내는상대적인 현실이다. 물질적 가난뿐만 아니라 불평등 문제를 진지하게 마주해야 하는 만큼, 지금 우리가 처한 곤경에서 벗어나는 일이 깨나 어려운 일이다. 


사실 우리의 지각과 믿음은 

그 순간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달라진다.

옛날 채집시절, 우리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다양한 상황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위해 정말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자가 치료법을 사용해왔다. 그게 바로 오늘 날 우리가 '스트레스'라고 알고 있는 것이다. 몸을 긴장시켜 만에 하나 있을 위험에 대비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호르몬을 마구 생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유기체들이 훨씬 적어진 지금, 스트레스라는 치료법은 질병보다 더 해로운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 이전에 좋았던 것도 오늘날은 나쁘게 받아들여진다. 우리의 지각과 믿음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이 살기 힘든 현실이라는 말에 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사다리 상위 1%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항상 행복을 갈구하지만 그럴수록 행복은 멀어져만 가는 것 같다. 그렇게 행복을 쫓는 일상이 반복 되다 우리는 그 '행복없는 행복찾기' 사이클에 갇혀버린다. 형태, 의미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우리는 각자가 만들어 낸 불평등, 악순환의 고리와 싸우고 있다. 악순환 안에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지만 많은 이들은 그 악순환 고리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 무지해서가 아니다. 악순환을 끊어내려하지 않고 그 안에서 그냥 체념한 채로, 포기한 채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악순환은 일종의 중력을 만들어낸다. 때문에 거기에서 탈출하기도 점점 더 어려워진다. 중력에 비유할 만도 한 게,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탈출 속도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에서 탈출 속도란 행성의 중력에서 벗어나는데 필요한 속도를 말한다. 예를 들면 가난한 동네에서 좀 더 평등한 동네로 이사가기 위해서는 초기 자본이 필요하고 직장이 맞지 않는 회사원에게는 다른 도전을 해볼 용기와 도전하는 시기를 버틸만한 자본이 있어야한다. 그러기에 쉽지 않은 것이, 아니 굉장히 비현실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실제로 긍정적인 대화 5분만으로도 악순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동력이 크게 생긴다고 한다. 홍보 회사든 구급 대원이든 생물체이든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딱 한 가지뿐이다.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것을 파악하고,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는 것이다. 그게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법이고, 행복할 수 있는 비법이다.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답을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고려하게 되는 점은 무엇을 하면 가장 행복해질까 하는 것이다.

불평등의 사다리를 부러트릴 수 있는 건 바로 나 스스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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