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의 시대 - 일, 사람, 언어의 기록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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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배춧잎은?

바로 1만원 권!.....^^ (꺄르륵;;;ㅎㅎㅎ)

그 1만원 권에 계신 훈민정음 창제자 세종대왕님!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불편함 하나 없이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효율적으로 발전해왔다.

'훈'이 없는 일상은 정말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물론 요즘 도를 넘은 언어 파괴 문제가 심각해

적지 않은 우려의 목소리들이 있다.

이는 어쩌면 우리가 너무 익숙해지고 당연하게 생각해

평소 그 감사함과 위력을 잊고 살기 때문 아닐까.

018.12.03.


[대리사회]로 많은 사랑을 받은 김민섭 작가가

[훈의 시대]를 통해 이번엔 우리의 '훈'을 주제로

감사함과 위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우리 유년시절의 전부, 학교의 훈

모든 학교에는 교훈이 있다. (중략) 우선 등교할 때마다 학교 정문을 지나 올라가다 보면 교정의 어느 적당한 곳에 큰 바위가 있고, 거기에 크고 검은 글씨로 교훈이 새겨져 있었다. 굳이 눈길을 주는 일이야 별로 없었지만 학교를 오갈 때마다 그 단어와 마주해야 했던 것이다. 그에 더해 수없이 불렀던 교가에는 반드시 교훈이 포함되어 있다. (중략) 하나의 노래를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반복해서 부르는 경우는 아마도 '애국가'와 '교가'가 유일할 것이다. 어떤 유행가도 이처럼 타율로서 강권되지는 않는다. 마치 후크송처럼 반복되는 단어들은 그에 노출된 이들에게 의미를 사유할 여유를 주지 않고 그대로 각인되어 버린다. 훈은 이처럼 기계적이고 폭력적으로 개인에게 가서 닿는다.

훈의 시대 (p.34-35)

아직까지도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 중에 하나가

걸스카우트 노래이다.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는데 유년시절 학교의 훈들이

아직 정체성과 가치관 성립이 되지 않은 우리에게

강하고 폭력적일 수 있음을 알았다.

어떤 훈으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을지

글을 읽고 너무 궁금해져서

내가 졸업한 초중고의 교훈을 찾아보았다.


본오초등학교

-교훈: 기본이 바로 된 착하고 슬기로운 학생

-교육지표: 바른 마음 바른 행동으로 꿈을 키워가는 본오 어린이

-교가: 해란의 넓은 들을 마당을 삼고/수리산 높이 보며 배우는 학교/도우며 도와주며 서로 이끌어/즐겁게 씩씩하게 얼른 배워서/우리의 본오교 빛나게 하세.

상록중학교

-교훈: 정직, 사랑, 봉사

-교육목표: 인간을 존중하며 규범에 따라 행동하는 도덕인, 학력 증진에 힘쓰고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탐구하는 창조인, 몸과 마음을 튼튼히 관리하고 자율과 책임을 존중하는 건강인, 공익을 앞세우고 더불어 사는 지혜를 기르는 협동인 육성

-교가: 푸름의 이상이 펼쳐진 전당/한마음 한뜻이 여기 모였네/상록수 높고도 깊은 뜻 새겨/온 세상 밝히는 등불되리라/서해의 훈풍이 머무는 터전/마음이 모여서 큰 뜻 지녔네/봉황의 지순한 높은 뜻 알고/온 누리 비추는 거울 되리라/우리는 배우리 정성을 다해/영원히 빛내자 상록중학교.

●안산동산고등학교

-교훈: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자(정직, 근면, 친절)

-교육목표: 존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세상을 섬기는 인재 육성

-교가: 안산의 반석 위에 온누리 굽어보는/하나님의 뜻으로 우뚝선 전당 있다/푸른 꿈 이루려고 모여든 형제들 지혜 위에 지식 닦아 겨레의 소망되고/믿음으로 한데 뭉쳐 나라의 기둥되자 아~ 동산고교/동산고교 인재의 요람 영원 무궁/빛난다 우리의 동산.


출처는 지식백과.

지식백과에 학교 관련 내용이 상세히 나와서 신기했다.

다녔던 학교 홈페이지를 방문하는데 기분이 묘했다.

옮겨적으면서 보니 새록새록 기억나서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기도 했고, 혹시 바꼈나? 하는 내용도 있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초중고에서 키워내고 싶던

사람으로 잘 자란 것 같다고 자평하기로 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회사의 훈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10년 전만 해도 '고객은 왕입니다'라든가 '고객이 항상 옳습니다' 하는 문구가 대형마트의 현수막에 적혀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훈은 모두가 아는 역효과를 낳았다. 자신을 정말 왕으로 인식한 소비자들이 생긴 것이다. 그들은 상식을 벗어난 무리한 요구를 하기에 이르렀고, 소비자라는 단어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게 되었다. 기업은 소비자와 판매자 사이에 위계 관계를 부여하고 정작 자신은 몸을 숨겼다. 왕이 된 소비자를 응대해야 하는 것은 현장의 사원들이었고, 그로 인한 감정과 육체의 소진 역시 그들이 짊어져야 했다. '갑질'이라는 신조어와 '감정 노동'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훈의 시대 (P.127)

갑질논란 이슈가 끊이지 않는다.

워낙 충격적이라 현상에만 초점이 맞춰져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글을 읽으면서 새삼 느끼는 훈의 위력에

놀라움 반 무서움 반.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일상 단어들도

잘 사용하고 있는지 한 번씩 경계해야겠다고 느꼈다.

이 다음에 이어지는 글에서는

'고객'이라는 단어의 뿌리에 대해 얘기한다.

사실 '고객'이라는 단어부터가 소비자의 최상급 높임말로 변질되었고, 그 자체로 우리 시대의 천박함을 드러내는 하나의 훈이 되었다. 우리는 흔히 고객의 '고'가 '높다(高)'는 한자어로서 손님(객)을 높인다고 믿기도 하지만, 의외로 '돌아보다(顧)'를 사용한다. 그러한 일반적인 의미와 함께 '방문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그러니까, '-에 방문한 손님'이 되는 것이다. 사전적으로는 '단골손님' 정도로 정의되어 있다. (중략) 한문학 연구를 하는 주변의 모 선생께 여쭈니 자신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굳이 풀이해 보면 "물리적인 실체를 나타내는 단어로 보인다. 그러니까 시선을 준다는 의미인데, 일하다가도 돌아보는, 눈길을 주어야 하는 손님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훈의 시대 (P.128)

워낙 존칭처럼 사용되어

나또한 객을 높인 말인 줄 알았는데 충격적이었다.

이처럼 잘못된 훈으로 잘못 고착한 사회 인식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직결된다.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으나, 그 노력이라는 것은 사회적일 때만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다. 개인의 소질이나 취미 계발은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타인과의 사회적 경쟁에 나설 때,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익을 위해 복무할 때, 사회적 성취를 거둔 개인이 계발에 나설 때, 그는 노력하는 개인이 된다. (중략)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을 만큼의 '노오-력', '도오-전', '여얼-정', 이처럼 현장의 개인은 단어가 가진 모호함의 크기만큼 소모되고 만다.

훈의 시대 (P.130)

18년도 직장인이 가장 많이 듣고 쓴 신조어

'워라밸'의 배경이다.

너무 서글픈 우리 훈의 자화상이다.

회사의 훈, 사회의 훈.

정말 갈 길이 너무 멀어 보인다.

나도 모르게 울컥,

'김민섭찾기 프로젝트'

이렇게 유명한 프로젝트를 이 책을 통해 뒤늦게 접했다.

왜 이렇게 울컥하게 되는지.

아직 서로를 보듬을 온기가 남아 있음에도

우리 사회가 그 온기를 숨기고 나누지 못하게 하는

상황과 환경을 만들며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후원자들은 "여행 잘 다녀오세요. 꼭 잘 다녀와야 해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자꾸 눈물이 나요." 하는 댓글을 많이 달았다. 여행을 떠나는 날, 인천공항에서 1983년생 김민섭 씨와 1993년생 김민섭 씨가 서로 만났다. (중략) 그는 나에게 "작가님, 사람들이 저를 왜 도와준 걸까요? 작가님은 저를 왜 도와주셨나요?" 하고 물었다. 그에게 멋진 대답을 하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고, 모두가 생각했을 거에요." 하고 답했다.

훈의 시대 (P.239)

제약된 환경에서 불행한 사회를 살고 있지만

우리는 서로가 잘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저마다 작은 불씨를 잃지않고 희망을 품고 산다.

이런 시국에 사회/회사의 훈에 맞서

그 불씨를 끝까지 지키려면

개인 훈의 역할이 크고 중요하다.

누군가가 나에게 "우리 사회 비정규직의 삶을 많이 담아내셨는데 이유가 있나요?"하고 물어서 "제 삶이 언제나 비정규직이었으니까요. 자신과 닮은 존재들이 눈에 잘 들어오는 것 같아요. 저는 고향에 대한 에세이집을 쓴 일이 있는데 성산동(망원동)도 이전에는 서울의 '비정규직 동네' 같았어요"하고 답한 일이 있다.

훈의 시대 (P.166)

지금도 최저시급 문제,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로

뉴스가 시끄럽다.

개인의 훈들은 개인의 삶을 똑 닮았다.

그렇기에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훈들의 충돌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또 그렇기에 누구의 훈이 맞고 틀리고의 정답도 없다.

그럼 우리가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저 무력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의 훈으로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

그게 전부이다.

김민섭 작가님이 인터뷰에서 한 대답처럼

그게 당신의 삶이고 훈이라서.

그래도 역시 작가님,

책 말미에 심금을 울리는 말씀을 덧붙여주신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나는 청년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대학생이기도 헀고 직장인이기도 했는데, 자신들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중략) 그럴 때 내가 그들에게 하는 답은 언제부터인가 거의 정해졌다. "맞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요. 수천 명의 청년이 모여도 할 수 없는 일을 누군가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서명을 한 번 하는 것으로 해내곤 해요. 우리는 무력해요"하고 답한다. 질문을 한 청년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진다. 그러나 이런 무책임한 답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면, [훈의 시대]라는 책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다음의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런데 지금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고 이러한 물음표를 가진 젊은 날이 있었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시면 좋겠어요. 학생께서도/선생님께서도, 언젠가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자리에 오르기 때문이에요." 하는 것이다.

훈의 시대 (P.243-244)

작가님 멋있어요ㅠ_ㅠ

악순환이 번복되는 건 그 고리를 끊어낼 물음표를

시간이 지나 잊어버리거나 추억으로 두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제대로 물음표를 던질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에 걱정이 앞서지만

작가님의 맺음말로 한 번 더 의지를 다지며

길었던 리뷰를 마무리한다.

저자 김민섭 / 훈의 시대

우리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편해하고 물음표를 가져야한다. 한 공간의 훈을 바꿀 위치에, 우리 모두는 언젠가 오르게 된다.

그 때 자신의 몸에 여전히 물음표를 간직하고 있다면, 그것을 추억하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크고 작은 제도와 문화를 바꾸어간다면, 우리 사회 역시 변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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