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이 엉키지 않았으면 몰랐을 - 엄마의 잃어버린 시간 찾기
은수 지음 / 이비락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 엄마사람 책들이 참 많다. 좋다.

난 글을 못 쓰는 사람이라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있어도 어떻게 표현할 지 몰라 속으로 삭힐 때가 많은데, 글 잘 쓰는 엄마사람들이 요즘 많은 책으로 내 마음을 다 대변해주는 느낌이다.


<스텝이 엉키지 않았으면 몰랐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을 어쩜 이렇게 잘 썼을까 내내 감탄을 하며 읽었다. 육아서나 에세이 중 나를 막 반성하게 하지만 그러면서 나를 엄청 자책하게 만들어 우울에 빠지게 하거나 흥칫뿡하게 만드는 책이 있고,

반대로 맞아맞아 사람은 다 똑같아, 그래 나만 그런거 아니였네 하며 공감하고 그 공감으로 위로받게 하고 힘이 나게 하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나는 어딘가에서 나를 소개할 때 ‘경단녀’라는 말을 참 많이 사용했다. 그만큼 전업주부라는게 아직도 익숙치 않고 언젠가 벗어나야하는 굴레처럼 느껴져서이다.

내가 선택한 퇴사였고,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한데, 문득문득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과 함께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온다.

은수작가님도 남편직장을 따라 이사를 하며 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아이들을 키우며, 끊임없이 방황을 한다. 그 때 당시엔 그 선택이 최선의 선택인 것 같았지만, 후회가 계속 되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내 마음같고 내 이야기같아 정말 수많은 부분에서 공감했다. 하지만 나보다 더 능력있는 분이라 결국 책이란 걸 쓰고 지금 나같은 엄마들에게 글쓰기강의도 하신다는.... (여기서 또 다시 나는 뭐하지? 나는 뭘 할 수 있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란인간은 왜 특기가 없을까.....)

부제목 엄마의 잃어버린 시간 찾기 처럼 이 책은 작가가 아이들이 크며 빈 시간이 생겼을 때 찾아오는 공허함 속에 내 삶의 주인공으로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는지 쓴 에세이다. 아직은 치열한 육아중인 나에겐 조금은 꿈같고 부러운 빈 시간, 그 시간이 찾아왔을 때 너무 방황하지 않게 마음을 준비하는 일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책에 밑줄긋고 싶은 곳이 정말 많았다. 방학이라 아이들 잘 놀때 펼쳐가며 짬짬이 읽어 필사는 아래정도지만 이 책 나에겐 참 위로되는 좋은 책이었다. 은수 작가님 만나보고 싶단 생각까지 들었다. (멀다...)

블로그와 인스타를 통해 소식을 보는 걸로.


P 18-20

전업주부의 시간은 다른 사람이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발상에 화가 났다.

전업주부의 하루도 그 나름대로 계획과 구상이 있다. 하지만 갑자기 훅 들어오는 여러 일들을 방어할 정도로 위력이 있지는 않다.

돈을 버는 일이냐 아니냐에 따라 내가 방어할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진다.

전업주부가 자기 시간을 지켜 내는 것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감기 걸린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간다거나 남편의 세탁물을 빨리 맡겨야 한다거나 갑자기 당겨진 아이의 학원 시간에 맞춰 저녁을 차려야 하는 등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사소한 일 같지만 그렇다고 미룰 수 없는 급한 일에 나의 일은 '미뤄진다'.

P 29

하룻밤은 그렇게 길었다. 그때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10년이 훌쩍 흘러 있었다. 하룻밤의 결은 그토록 촘촘했는데 10년은 이렇게 성기게 갈 수 있는 걸까?

P 155

아이만 보면 뭔가 가르쳐 주고 싶고, 고쳐 주고 싶은 머릿속 회로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훈계는 언제나 아이를 위한다는 핑계를 입고 있었고 그 전제는 아이는 부족한 존재라서 내가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P 201

워킹맘도 전업주부도 아닌 엄마도 사람이다.

P 205

엄마들에게 육아의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사회가 전업주부와 워킹맘을 구분하고 육아에 성공한 엄마와 그렇지 못한 엄마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엄마에게 아이 성장의 모든 것을 책임지라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흐름이다. 설혹 엄마가 자기 한 몸을 '아이 키우기'에 갈아 넣은들 아이는 역동적인 존재라 부모가 원하는 대로 반드시 커주지도 않는다.

따라서 엄마들이 스스로 나누지도 않은 구획에 자기르 ㄹ들여놓고 이게 부족하네, 저게 모자라네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업주부와 워킹맘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서로를 재단하는 일도 멈췄으면 한다. 세상에 복잡다단한 사연을 간직한 수많은 엄마들을 어떻게 그리 쉽게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가.

P 206

박완서 작가의 소설 [살아 있는 날의 시작]에서 극중 인물 청희는 말한다. '그렇다고 몸뚱이에서 여자다움이 시들면 그 허구로부터 놓여날 수 있는 건 아닐게다. 다음은 어머니라는 신성이 준비돼 있을 테니까. 여자의 마성에서 어머니의 신성 사이엔 아무런 경계도 없나 보다. 누구나 쉽사리 옮겨 가니까. 왜 남자도, 여자 자신도 마성에만 관심이 있고, 그 이전에 인간성이란 걸 여자도 갖고 있다는 데는 괌심을 두지 않는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