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문장론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김욱 옮김 / 지훈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평소에 철학에 대한 관심 때문에 관련 책을 몇 권 읽어보면서 그의 이름을 본 것이 생각난다. 언젠가 한 번 읽어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마침 내가 일을 그만두면서 직원 선배가 이 책을 선물해 주었다. 이 책의 내용은 그의 에세이 집 ‘여록과 보유’에서 사색, 글쓰기, 독서에 관한 부분만 역자가 추려낸 것이고 제목은 그것에 맞게 임의로 붙인 것이다. 분량도 그리 많지 않고 생각보다 어려운 편이 아니라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쉽게 읽을 수 있다고 해서 내용이 가볍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읽고 보고 듣는 것이다. 주업이라고도 말하기 부끄러운 그림 그리기나, 글 쓰는 것은 그보다 뒷전이고, 사색하는 것은 제일 뒤로 밀려나 있다. 받아들이는 것엔 익숙하지만, 만들어 내는 것엔 익숙하지 못하다. 사색하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꾸 피하게 된다. 내 방 청소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하물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생각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줘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색하는 것은 세상 모든 활동 중 가장 힘든 활동일 것이다. 차라리 방청소 하는 편이 수월하다.

  

내가 주업으로 하는 그림 그리는 것을 그가 말한 글쓰기에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표현하는 도구의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무엇을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연필을 들고 스케치북을 마주하면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다. 널리고 널린 게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위대한 예술가로써 칭송받지 못하는 것일까? 반대로 어떤 사람은 점하나 찍어놓았을 뿐인데 역사에 길이 남을 화가로 칭송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무엇을’ 그렸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무엇’은 그림에 표현된 대상이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사색 없이는 만들어 질 수 없다. 

  

그는 무조건적인 다독은 나쁜 버릇이라고 말한다. 무비판적이고 생각 없는 독서는 저자의 사상만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며, 결국에는 스스로 사색하는 힘까지 잃게 된다고 말한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자신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창작은 물론이고, 독서라든지, 영화 감상이라든지 감상 후 그것에 대한 생각 없이 바로 다음 것으로 넘어가기 일쑤다. ‘내가 무엇을 느꼈는가?, ‘그 작품이 말해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요즘 사회 풍조는 책 많이 읽는 것이 아주 고상한 취미라도 되는 듯이 여기는데, 한 번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책도 텔레비전과 다르지 않다. 문자로 되어 있느냐 영상으로 되어 있느냐의 차이밖에. 내용에 따라서 책도 오락거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책을 통한 지식습득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랴. 더군다나 책의 내용이 행여 잘못된 것이라면?

  

그의 문체는 그의 고집스런 얼굴만큼이나 자신에 가득 차있다. 그 때문에 그의 말들이 옳게 여겨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내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대부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내가 예술을 하기로 결정한 이상. 예술을 한다고 하니 왠지 웃음이 나오지만. 철학도 모르고, 예술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 둘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철학은 정신적인 활동이고 예술은 그것의 표현이다. 과연 철학이 없다면 예술이 이루어 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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