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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려 본 슬픔 ㅣ 믿음의 글들 208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루이스는 60세에 가까운 황혼의 나이까지 독신으로 지내다가 조이를 만나게 된다. 조이는 루이스의 팬으로 그와 편지교류를 한다. 서로에 대한 공통점과 매력으로 인해 그들 사이에는 우정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이는 사랑으로 이어진다. 조이는 알콜 중독자이며 바람둥이인 남편이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고 이혼을 요구하고 견디다 못한 그녀는 이혼하게 된다. 미국에서 살던 그녀는 이혼 후 두 아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오게 된다. 이 때 루이스는 그녀가 영주권을 가질 수 있도록 그녀와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법적인 절차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다 1957년에 조이가 암으로 갑자기 쓰러지게 되고 이 사건은 그동안 무르익었던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의사가 몇 개월 밖에 안 남았다는 판명에도 불구하고 루이스는 조이에게 청혼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조이는 죽지 않고 그 후로부터 3년 4개월을 더 살았다. 그가 고백하듯이 짧은 결혼생활이었지만 루이스는 정말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 "지난 몇 년간 그녀와 나는 사랑에 탐닉하였으며 그 갖가지 양식을 다 즐겼다. 심신 어느 곳이든 충족되지 않은바가 없다."
그러나 그런 행복을 질투라도 하듯 조이는 암증세가 다시 나타나고 1960년 7월 11일에 45세의 나이로 죽고 만다. 조이가 떠나간 자리는 루이스에게 고통 그 자체였다. 예전부터 <고통의 문제>와 씨름하며 하나님의 근원적 선하심에 대해 내린 결론이 조이의 빈자리 앞에서 힘없는 부르짖음과 분노와 원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를 뿌리째 흔들어놓은 이 사랑과 고통의 경험을 일기로 기록한 것이 <헤아려 본 슬픔>이다.
이 책의 앞부분은 그의 고통을 직설적으로 표현해 놓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상실로 보일만큼 많은 고민과 회의를 하게 된다. 그러나 루이스의 그런 몸부림은 믿음의 상실이기보다는 이제껏 그가 머릿속에서만 상상했던 고통의 실제를 경험함으로 인해 이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뜻을 알고자 하는 과정의 전초작업으로 변론의 한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만일 세상의 슬픔에 대해 진정으로 염려하였다면, 나 자신에게 슬픔이 닥쳐왔을 때 이처럼 압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상 속 내 믿음은 질병, 고통, 죽음, 외로움 등으로 이름 붙여진 가짜 돈으로 계산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밧줄이 나를 지탱해 줄지 어떨지 문제가 되기 전까지는 그 밧줄을 믿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것이 문제가 되자 믿고 있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오직 극심한 고통만이 진실을 이끌어 낼 것이다. 오직 그러한 고통 아래에서만 스스로 진실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믿음이나 사랑의 자질을 알아보시려고 시험을 하시는 게 아니다. 그분은 이미 알고 계시니까. 모르는 쪽은 오히려 나였다. 그분은 언제나 내 성채(요새)가 카드로 만든 집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다. 내가 그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쳐서 무너뜨리는 것뿐이었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연애 다음에 결혼이 오듯, 결혼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죽음이 온다. 그것은 과정의 단절이 아니라 그 여러 단계들 중의 하나이다. 춤이 중단된 게 아니라, 그 다음 표현 양식으로 옮겨 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에 대한 추억에 크게 마음 쓰고 있었고, 그것이 거짓되이 변할지 모른다는 점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하나님의 자비로우며 선하심 외에는 달리 생각할 방도가 없다) 나는 더 이상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일은 그런 데에 신경 쓰지 않게 되자, 사방팔방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 여지껏 가장 덜 슬퍼한 순간 불현듯, 그녀를 가장 선명하게 기억했던 것이다."
"종이 위에서건 마음속에서건 이미지란 그 자체로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순한 연결고리일 뿐. 그리스도를 원합니다, 그분과 유사한 그 무엇이 아닌. 그녀를 원합니다, 그녀와 유사한 그 무엇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 자체를 그녀에 대한 내 생각이 아닌 그녀 자체를. 그렇다. 우리 이웃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우리 이웃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실제로 고통을 겪고 나서야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고통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되었고 또한 그를 진실하게 만들어 주었다. 루이스의 위대한 점은 그를 뿌리째 흔들어놓은 이 사랑과 고통의 경험을 일기로 써 내려감으로 단순히 개인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주는 교훈을 얻고자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 책보다 앞서 <고통의 문제>라는 책을 쓴 바 있지만 이 책 <헤아려 본 슬픔>은 보다 사실적이고 성숙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애써 거룩한 모습으로 포장하려 하지 않고 직설적이고 적나라하게 표현함으로 우리 인간의 약함과 아픔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문제들로 고통받고 있는 자들에게 실제적이고 의미있는 지침서가 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