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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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켄리우 #황금가지 #어딘가상상도못할곳에수많은순록떼가 #소설 #서평



켄 리우의 전작 <종이동물원>도 참 좋았다. 먼저 표지에 종이접기 전문가인 장용익 작가의 호랑이를 활용한 것이 인상깊었고, 출판사가 이 책을 섬세하게 기획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도 전반적으로 공들인 느낌이 났다. 중국계 미국인인 작가의 동양적 기질과 서양적 기질(모호한 개념이긴 하지만)을 유려하게 표현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장성주 번역가는 <종이동물원>으로 제13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내가 느끼기에 이 책의 번역은 전작보다도 훨씬 매끄러워지고 깊어진 느낌이었다. 특히 <심신오행>에서는 원작의 'gut'을 '뱃심'으로 번역한 부분이 정말 인상깊었다. (영어 원작은 LIGHTSPEED MAGAZINE 웹사이트에서 읽어볼 수 있다.) 또, '동기간의 터울' 같은 우리말 표현들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어서 높은 가독성과 몰입감을 동시에 선사했다. 더군다나 이 책은 '원서'가 없이, 장성주 번역가가 직접 켄 리우의 여러 단편들 중 공통되는 주제를 어느 정도 가진 작품들을 엮은 것이다. 앞으로도 장성주 번역가가 번역한 책은 믿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석사 때 전공한 부분이기도 해서, 반도체 공정 중 Micro Photo Lithography를 '미세 포토 공정'이라고 번역한 부분(185쪽)이 좀 걸렸는데, 찾아보니 '포토 공정'이 업계에서는 널리 활용되는 용어였다. 비슷하게 우리가 '엠알아이'로 많이 쓰는 자기공명영상장치(MRI)도 '엠아르아이'가 표준어였다. 어째서?!)



전작에 이어 이 책의 표지가 주는 인상도 강렬하다. 우선 책 이름 부터가.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사실 이 문장 속에 어려운 띄어쓰기 용례가 참 야무지게 모여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는 같은 이름의 단편에서 따온 것인데, 영국 시인 W. H. 오든의 <로마의 몰락>에서 따온 문구라고 한다. 시에는 "Altogether elsewhere, vast / Herds of reindeer move across"라고 되어 있고, 켄 리우의 단편 제목은 "Altogether Elsewhere, Vast Herds of Reindeer"이다. 번역 출판된 오든의 시집이 없는 걸로 보아 장성주 번역가가 직접 번역한 듯 한데, 시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제목으로서의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멋진 번역이었다.



마찬가지로 인상깊은 표지의 조각은 츠지야 요시마사의 작품 'Qilin'을 타케노우치 히로유키가 찍은 것이다. Qilin은 신화 속 동물 '기린(麒麟)'의 중국어 발음이다. 당연히 도자기 조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나무 조각이라고 한다. 츠치야 요시마사는 이렇게 극도로 섬세하고 몽환적인 느낌의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사실 중국보다는 일본의 느낌이 물씬 나는 작업들이고, 표지에서도 그런 느낌이 많이 들긴 하지만, 왠지 '순록 떼'와 조각이 주는 환상적인 이미지가 금색 선으로 이어져 썩 잘 어울린다. 김다희 디자이너의 역량이 대단하다.



켄 리우의 이야기는 여전히 좋았지만, 왠지 전작과 비슷한 패턴이 많이 보였다. 예를 들어 중국인과 그 문화에 호감을 갖게 되는 미국인 소녀 이야기(<모든 맛을 한 그릇에 -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에서는 종이동물원의 <파자점술사>가 떠올랐다. 어쩌면 '싱귤래리티 3부작'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종이동물원의 <파(波)>에서 정신체로 진화한 인류의 이야기를 보여주었던 작가는, 이번 책에 실린 싱귤래리티 3부작에서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납득할 만한 갈등들을 보여준다. 우리의 정신을 업로드 할 수 있는 날이 왔을 때, 작중에서와는 달리 원본을 손상시키지 않고 한 개인의 정체성/정신/영혼을 그대로 복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원래의 몸에 남은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고보면 게임 <SOMA>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제일 흥미로웠던 작품은 <심신오행(心神五行)>으로, SF에서 '한의학'을 다루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이렇게 진한 로맨스 소설일 줄이야. (웃음) 게다가 '뱃심'과 마이크로바이옴(장내미생물균총)까지 버무려내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비록 켄 리우 본인이 이민자 출신에 동양계 뿌리를 갖고 있음에도, '동양의 신비', '중국의 문화'에 대해서 지나치게 좋은 쪽으로만 묘사하는, 어찌 보면 오리엔탈리즘이라고도 볼 수 있을 만한 한계도 보인다. 다만 지금까지 주류 SF에서 아시아의 문화가 중심 주제로 다뤄진 적이 없기에 의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재밌기도 하고.



이제 <민들레 왕조 연대기> 같은 켄 리우의 장편소설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작 작가로 유명한데, 앞으로도 좋은 번역으로 계속 출판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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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얼굴들
황모과 지음 / 허블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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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얼굴들 #황모과 #허블 #서평 #이벤트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한 <모멘트 아케이드>가 실려있는 황모과 작가의 첫 소설집, 《밤의 얼굴들》을 읽었다. 우선 아주 재미있었다. 신인 작가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감각이 능숙했다. 개인적으로는 <모멘트 아케이드>보다 다른 작품들에서 오히려 작가의 개성이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와 <니시와세다역 B층>은 과거사 진상 규명을 위한 유족 DNA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신원미상 유골 식별 확인 사업을 소재로 증강현실 속에 섞여든 망자의 혼/기억을 다룬다. 첨단 디지털 기술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아날로그적인 틈새에 도시 전설과 유령 등 오컬트 요소가 섞여 들어간 아련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애니메이션 <전뇌 코일>이 생각나기도 했다. 망자의 기억과 기술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김초엽 작가의 <관내 분실>과 함게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당신의 기억은 유령>은 치매 노인의 기억 메모리에 우연히 흘러든 유령, 즉 죽은 이의 기억을 주인공이 발견하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사진이나 영상 데이터 속에 미각이나 후각을 느낄 수 있는 트리거를 넣는 '공감각 데이터 임베딩' 프로그래머다. 서브리미널 광고(간접광고)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듯하다. '데이터 임베딩'에 대한 설정이 세세하고 현실적이어서(기업의 이득을 위해 소비자나 피고용자의 안전을 후 순위로 두는 등) 흥미로웠다. 그리고 작품 전반적으로도 공감각적인 표현들이 많이 쓰여서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탱크맨>은 천안문 항쟁에서 탱크를 막아선 남자, 일명 '탱크맨'에서 영감을 받은 듯하다.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두려움을 직시하고도, 용기를 내고 계속 부딪히는 이들을 시사하는 듯하다. 한정된 공간에 갇혀있으면서 홀로그램 투사로 답답함을 해소하는 부분은 블랙미러의 <핫 샷(15 Million Merits)>이 떠오르기도 했다.

<투명 러너>는 이 소설집에서 가장 유쾌한 느낌의 작품이었다. 우선 나 자신도 TV 만화를 열성적으로 보고 자랐기 때문에, 줄줄이 등장하는 수입 일본 애니메이션에 반가움을 느꼈다. 그렇기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방영된 시기가 10년쯤 차이나기 때문에 40대와 20대 등장인물이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부분이 정말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투명 러너의 존재는 사실 좀 으스스 한 느낌이 들었는데 (일본 괴담 중 '구석 놀이'가 떠오르기도) 따뜻하고 경쾌하게 마무리되어서 내심 안도했다. '니상'이 주인공의 서툰 일본어 어휘를 마음이라도 읽은 것처럼 먼저 이해하고 맞춰주는 부분에서 나의 일본인 친구들이 떠올라 웃음이 나고 새삼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멘트 아케이드>에 등장하는 '모멘트 아케이드'는 사람들이 '모멘트', 즉 어떤 경험을 했을 당시의 감정을 공유하고 사고파는 플랫폼으로, 블로그 포스팅, SNS, 그리고 유튜브 스트리밍이 더 진화하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고 상당히 개연성 있는 설정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렇게 발달한 가상 세계를 '통해' 우리의 사회에 더 다양한 사람을 포용하고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가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는 작가님이 일본에서 오래 사셨다는 얘기를 듣고 더 흥미를 가지던 차였다. 과연 수록된 단편 중 일본을 다룬 작품들(6편 중 3편)은 일본 사회에서 직접 부대끼며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그러나 일본인의 시점으로는 좀처럼 깨닫기 어려웠을, 외부인이어서 되려 발견할 수 있었던 부분들을 예민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작가의 시선은 일본과 일본인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우리가 한국 또는 한국인을 하나로 정의할 수 없듯이, 일본과 일본인도 복합적이고 다양한 면면을 가지고 있다. 관동 대지진 학살, 니시 와세다 역 근처 육군 의과대학 전시 인체실험 등에 그저 '미안하게 됐다'라며 멋쩍게 사과하거나, '유해가 쏟아져' 나왔음을 스스럼없이 '담담하게' 얘기하는 이들. 세계대전에서 '패전'했음에도 꼭 '종전'이라고 말하는 왜곡된 역사관. 반면 위험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들을 숨겨주고, 대규모 학살을 시사하는 유해가 진상 규명 없이 소각되는 것을 막은 것도 일본의 보통 사람들과 시민사회다.

또 '친하더라도 깍듯이 유지하는 거리감'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는 예의를 차리지 않고 깊이 파고드는 '오타쿠'들, 일견 선진국처럼 보이지만 계급 이동의 희망은 일찌감치 체념하게 만드는 공고한 계층적 사회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동안 내가 일본 문화를 접하고, 일본 사람들과 지내면서 해온 경험들에 겹쳐져 격하게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았다.

이 책을 읽으며 켄 리우의 《종이동물원》이 많이 생각났다. 일본 제국주의하에서 731부대가 저지른 잔인한 인체실험, 대만의 2.28 사건 등 동아시아의 굵직한 비극들을 거침없이 다루며, 대부분이 눈 돌리고 싶어 하는 진실을 '한 명이라도 많은 이가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또 최근 번역 출판된 미야우치 유스케의 《요하네스버그의 천사들》도 떠올랐다. 첨단 기술이 등장하면서도 해묵은 갈등과 역사적인 상처를 반추하는 구성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황모과 작가는 《밤의 얼굴들》 작가의 말에서 켄 리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을 언급하며, 일본과 중국에서 출판되지 않았다는 얘기를 한다. 그리고 이 책 《밤의 얼굴들》 또한 일본이나 중국에서 출판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 책을 통해 한 명이라도 많은 한국의 독자들이 '진실을 기억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비극은 힘없는 이에게 더 자주 일어나고, 그렇기에 더 자주 잊혀진다. 누군가에게 그 일은 남의 일이고, 애써 눈을 돌리거나, <니시와세다역 B층>의 에즈라와 같이 흥미 본위로 소비하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그 일은 바로 자신의 일이다. 많은 일본인이 우리를 도왔듯 그 감수성이 꼭 '우리 민족'이나 '국가'에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황모과 작가가 들려줄 이야기가 정말로 기대된다.


덧) 참고로 황모과 라는 이름은 필명으로, '황모과장'으로 불리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연히 과일인 '모과'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ㅎㅎ

덧2) 표지가 정말 매력적이다. 묘하게 일본 느낌이 나면서 역사와 얼굴을 잃고 떠도는 영혼들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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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옥타비아 - 2059 만들어진 세계 활자에 잠긴 시
유진목 지음, 백두리 그림 / 알마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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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상상할 때 우리는 첨단의 기술과 그 기술이 열어갈 새로운 사회를 상상한다. 당연하게도 그 사회 속에서 기술의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젊고 건강한 자신을 상상한다. 그러나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 미래가 다가오는 만큼 나 또한 나이 들고 늙어간다. 사회의 한 부분이 발전하는 만큼 다른 부분은 남겨지고 도태될 것이다.


디스옥타비아: 2059 만들어진 세계(알마, 2017)는 유진목 시인의 글과 백두리 작가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운문과 산문, 픽션과 논픽션, 글과 그림의 경계를 넘나들며 농축된 만들어진 세계를 보여준다. 한겨레가 선정한 ‘2017 올해의 북디자인으로 선정될 정도로 표지에도 공을 들였다. 절제되어 있지만 초현실적인, 다른 세상을 상상하게 하는 무채색의 풍경 위에 가느다랗지만 붉게 빛나며, 날카로운 각을 세우는 기하학적인 직선들은 이 책이 머금고 있는 서늘함과 뜨거움을 암시한다.


일흔여덟 나이의 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요양보호 시설 엘더에 수용되어 살아야 할 이유도 없으면서 자신을 살려두고(p. 53)” 있다. 제목에서 연상되듯 이 세계는 언뜻 유토피아로 보이면서 또한 디스토피아다.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함과 동시에 체제에 순응하는 자에게는 안온한 삶을 보장한다. 가부장제와 낙태죄, 출산과 양육을 인간의 본성이라며 강요하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없어졌지만, 아이를 낳는 결정과 그에 따르는 책임, 한정된 자원의 배분과 노동, 노후의 삶은 국가가 아주 엄격하게 감독한다. 심지어 율리와 같은 간병인들은 엘더에서 태어나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평생을 간병인으로 산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에서 바깥세상을 꿈꾸는 헤일셤의 아이들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모는 작가였으며 죽기 직전(혹은 죽은 직후)까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글을 쓴다. 그 기록이 시간의 흐름과는 거꾸로, 2059831일에서 시작해 713일까지 전개되며 흑백 일러스트와 교차한다. 역순이지만 혼란스럽기보다는 만들어진 세계의 퍼즐 조각을 맞추는 방식으로 무리 없이 읽힌다. 책을 읽은 후 다시 거슬러 올라가며 뒤에서부터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이번에는 퍼즐 맞추기에 연연할 필요 없이, 죽음을 찬찬히 맞이하는 모의 마음과 그 눈에 보이는 풍경들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므로.


디스옥타비아라는 조어는 SF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1947-2006)’의 이름과 디스토피아를 합친 것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흑인이자 여성, 하층 노동자로 겪었던 차별과 이질적인 세계들의 갈등(또는 공존)을 소재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유진목 시인은 그 중 블러드 차일드(비채, 2016)야생종(오멜라스, 2011)에서 몇 오라기의 반짝이는 문장을 빌려와 만들어진 세계에 섬세하게 짜 넣었다. 물론 빌려온 것이 문장만은 아니다. 배제와 차별을 날카롭게 감지하는 감수성, 그 어긋남을 증폭해 보여주는, 잔인하고도 가차 없는 세계에 대한 상상력, 그러나 그 세계에 삼켜지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구축하는 인물들 또한 이 작품에 녹아든 옥타비아의 색이다. 반면 소설을 읽는 속도로는 소화하기 힘든, 아린 감정이 농후하게 배어든 문장들은 유진목 시인의 색이다. 그리고 백두리 작가의 흑백 일러스트가 두 색을 감싸 안으며 만들어진 세계를 확장한다.


SF는 미래를 상상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상상하는지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비춘다. 이 작품에서 나이 든 모가 돌아보는 과거 또한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다. 우리는 우리와 세계의 나이 듦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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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옥타비아 - 2059 만들어진 세계 활자에 잠긴 시
유진목 지음, 백두리 그림 / 알마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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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상상할 때 우리는 첨단의 기술과 그 기술이 열어갈 새로운 사회를 상상한다. 당연하게도 그 사회 속에서 기술의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젊고 건강한 자신을 상상한다. 그러나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 미래가 다가오는 만큼 나 또한 나이 들고 늙어간다. 사회의 한 부분이 발전하는 만큼 다른 부분은 남겨지고 도태될 것이다.


디스옥타비아: 2059 만들어진 세계(알마, 2017)는 유진목 시인의 글과 백두리 작가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운문과 산문, 픽션과 논픽션, 글과 그림의 경계를 넘나들며 농축된 만들어진 세계를 보여준다. 한겨레가 선정한 ‘2017 올해의 북디자인으로 선정될 정도로 표지에도 공을 들였다. 절제되어 있지만 초현실적인, 다른 세상을 상상하게 하는 무채색의 풍경 위에 가느다랗지만 붉게 빛나며, 날카로운 각을 세우는 기하학적인 직선들은 이 책이 머금고 있는 서늘함과 뜨거움을 암시한다.


일흔 여덟 나이의 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요양보호시설 엘더에 수용되어 살아야 할 이유도 없으면서 자신을 살려두고(p. 53)” 있다. 제목에서 연상되듯 이 세계는 언뜻 유토피아로 보이면서 또한 디스토피아다.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함과 동시에 체제에 순응하는 자에게는 안온한 삶을 보장한다. 가부장제와 낙태죄, 출산과 양육을 인간의 본성이라며 강요하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없어졌지만, 아이를 낳는 결정과 그에 따르는 책임, 한정된 자원의 배분과 노동, 노후의 삶은 국가가 아주 엄격하게 감독한다. 심지어 율리와 같은 간병인은 엘더에서 태어나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평생을 간병인으로 산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에서 바깥세상을 꿈꾸는 헤일셤의 아이들이 생각난다.


모는 작가였으며 죽기 직전(혹은 죽은 직후)까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글을 쓴다. 그 기록이 시간의 흐름과는 거꾸로, 2059831일에서 시작해 713일까지 전개되며 흑백 일러스트와 교차한다. 역순이지만 혼란스럽기보다는 만들어진 세계의 퍼즐 조각을 맞추는 방식으로 무리 없이 읽힌다. 책을 읽은 후 다시 거슬러 올라가며 뒤에서부터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이번에는 퍼즐 맞추기에 연연할 필요 없이, 죽음을 찬찬히 맞이하는 모의 마음과 그 눈에 보이는 풍경들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므로.


디스옥타비아라는 조어는 SF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1947-2006)’의 이름과 디스토피아를 합친 것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흑인이자 여성, 하층 노동자로 겪었던 차별과, 이질적인 세계들의 갈등(또는 공존)을 소재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유진목 시인은 그 중 블러드 차일드(비채, 2016)야생종(오멜라스, 2011)에서 몇 오라기의 반짝이는 문장을 빌려와 만들어진 세계에 섬세하게 짜 넣었다. 물론 빌려온 것이 문장만은 아니다. 배제와 차별을 날카롭게 감지하는 감수성, 그 어긋남을 증폭해 보여주는, 잔인하고도 가차 없는 세계에 대한 상상력, 그러나 그 세계에 삼켜지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구축하는 인물들 또한 이 작품에 녹아든 옥타비아의 색이다. 반면 소설을 읽는 속도로는 소화하기 힘든, 아린 감정이 농후하게 배어든 문장들은 유진목 시인의 색이다. 그리고 백두리 작가의 회색조 일러스트가 두 색을 감싸 안으며 만들어진 세계를 확장한다.


SF는 미래를 상상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상상하는지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비춘다. 이 작품에서 나이 든 모가 돌아보는 과거 또한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다. 우리는 우리와 세계의 나이 듦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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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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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김승섭 교수님의 페이스북에서 글을 자주 읽었고, 그 때마다 아프고 서글프면서도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과,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 하는 안타까움. 그래도 끝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 화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어떤 경험을 해왔을 지 궁금하기도 했다. 책 마지막의 '우리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요'에서 그 의문을 조금 해소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읽게 된 칼럼도 있고, 처음 읽는 글도 있었다. 어려움 없이 읽히고, 상황과 맥락에 감정적으로 깊이 공감되면서도, 엄밀한 과학적 방법론과 데이터에 기반한 연구 결과들이 조심스럽지만 단단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받치고 있는 글이다. 


나는 과학커뮤니케이터를 꿈꾸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정말로 과학소통의 모범이 되는 과학저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과학이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고 철이 들 무렵부터 생각해 왔는데, 김승섭 교수님의 연구와 저술이야말로 그런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한다. 


특히 '지극히 개인적인, 과학적 합리성의 세 가지 요소'는 책상앞에 붙여놓고, 두고두고 읽고싶은 글이다. 데이터에 기초한 합리적 의사결정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면서도 그 데이터와 결론이 사회와, 정치적 가치의 문제와 독립적일 수 없음을 인식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 과학사회학 공부를 하면서 의문을 가졌던 부분들인데, 필자의 나름의 결론을 군더더기 없이 풀어내고 있어 정말 크게 배웠다. 


책을 읽으면서, 읽고나서, 가슴이 먹먹하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는 것은 일견 이타적인 행동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모두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행동이기도 하다. 사실 그렇게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나누어 지려는 인간이 아닌가. 




이러한 연구를 둘러싼 비윤리적 행위들은 과학 일반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떨어트리는 역할을 합니다. "왜 저런 논문을 썼지? 또 어디에서 돈 받은 거 아니야?"라는 말을 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이는 과학 연구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음모론을 싹트게 하는 토양이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합리적 근거에 기초해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정치적 힘에 의한 결정만이 남게 되지요. 결국 가장 큰 힘을 가진 집단의 의견이 의사결정에 반영되고, 그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당연히 힘을 행사할 수 없었던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p.79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아요.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꾸 되새김질을 하고 자신이 왜 상처받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하잖아요. 아프니까. 그래서 희망은 항상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요. 진짜에요.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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