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얀 필립 젠드커 지음, 이은정 옮김 / 박하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예전에는 책 표지의 중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한 것 같은데, 최근 눈에 띄게 예쁜 책이 있으면

내용을 전혀 모르더라도 일단 펼쳐서 읽게 되는 것 같다. 이 책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도 그렇게 선택하게 된 책.

흰 바탕에 외국소녀의 옆모습 그리고 빨간 꽃송이들이 그녀 주변에 떨어지듯 그려져 있는 이 표지를 보자마자 내가 든 생각은.

'아.. 책 한번 예쁘게 만들었네.' 어서 빨리 보고픈 마음이 컸다.

 

소설은 줄리아 윈, 이라는 미국인 어머니와 미얀마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 그녀가

자신과 어머니를,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틴 윈의 행방을 찾기 위해 아버지가 살았었던 고향에 오게 되면서 그녀 앞에 나타난

한 노인 우 바를 통해 듣게 되는 아버지의 과거 이야기가 중심이었다.

 

글을 읽은 처음에는 줄리아의 입장에서 읽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버지가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을 엄마에게로부터 받고

그것을 계기로 다시 아버지에게 명확하게 가족을 떠난 이유를 듣고 싶어한 딸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고향에서 만난 우 바라는 노인에게서 아버지의 옛 이야기를 들은 줄리아는 점점 혼란을 겪게 된다.

아버지가 사랑했던 여인을 놔두고 어머니와 바람을 핀 것일까, 아니면 어머니를 놔두고 다시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간 것일까 하는.

그런 혼란들.. 나 또한 마지막까지 읽기 전에는 결말을 알 수가 없어 궁금함에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저자가 책의 두께를 이렇게 두껍게 할 수 밖에 없음도 이해가 갔다. 해야할 이야기가,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많았을 것이다.

 

줄리아 입장에서는 믿을 수 없겠지만 믿고싶지 않겠지만 그녀의 아버지 틴 윈과 아버지가 사랑했던 미밍의 사랑 이야기는

정말 순수해서 때묻지 않아서 더 안타까웠다. 줄리아의 엄마를 만나기 전 아버지는 녹내장에 걸려 앞이 보이지 않은 상태로

성장했고 그의 곁에는 미밍이 있었다. 맹인으로 살아야했던 틴 윈과 다리에 장애가 있는 미밍.

그들은 서로의 눈과 다리가 되어주며 그렇게 순수한 사랑을 마음을 나누며 함께 성장했고, 그때 틴 윈은 자신에게

아무리 작은 미물이나 사람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날 틴 윈의 고모부라는 사람이 틴 윈을 수도로 불러 눈을 수술해 주겠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 뒤로 둘은 헤어질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스스로의 시간을 각자의 공간과 상황 속에서 보내게 된다.

그들은 서로에게 편지를 매일 같이 보내지만 개인적 욕심에 편지를 중간에서 가로채버린 틴 윈의 고모부 때문에 둘은 연락이 끊기게 된다.

그렇게 틴 윈은 미밍을 마음 속에 묻고 미국에서 줄리아의 엄마를 만나게 되면서 딸을 낳고 가족을 꾸리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가 줄리아가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고 그 후로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날 아버지가 소리 소문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줄리아는 마지막에 되서야 아버지가 사랑하는 미밍의 심장소리를 따라 찾아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알고보니 미밍은 점점 심장이 약해져 틴 윈이 찾아오고 얼마지나지 않아 죽게 된다.

그리고 그 옆에서 아버지 또한 자신의 의지로 심장박동을 멈춘다. 이제 세상에 없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줄리아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찾아가 왜 그랬냐고 이유를 듣고 싶은 나였지만, 저자가 풀어놓은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한 편의 아름다운 장편 동화를 읽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점점 틴 윈과 미밍의 사랑을 응원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처럼 둘이 해피엔딩을 맞은건 아니었지만, 어떤 측면에서 보면 그들에게는 해피엔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두꺼운 두께로 읽기 전부터 부담이 되기도 했는데 오랜만에 괜찮은 소설을 하나 알게되었고,

나도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박동을 멀리서부터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고백이니 폭로니 하는 것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아무 효과가 없는 법이란다.

너무 이르면 충격에 압도되고 말지. 그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데다 아직 판단을 내릴 수 없으니까.

반대로 너무 늦으면 기회를 잃고 말지. 불신과 실망이 이미 너무 커진 상태거든. 이미 마음의 문이 닫힌 거지.

그래서 어떤 경우든 친밀해지려고 애써봐야 거리감만 생기기 쉽지.  46p.

 

 

 

"사실이라고 해서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가 말했다.

"설명할 수 없어도 사실일 수 있죠."    3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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