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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ㅣ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평점 :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 인
<사피엔스>에서는 유인원이 지구를 어떻게 지배하게 됐는가에 대해, 즉 인류의 과거에 대해 조명하였고(이 내용은 TED에서 강의를 진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후 <호모 데우스>에서는 미래의 인류는 결국 신이 될 수 있는가에-지능과 의식의 최종 운명에대한 문제를 제시하며,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논의했다.
그런 그가 세번째 책으로 돌아왔고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P.13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가?"
책의 머릿말 중에서 가장 책을 관통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었다.
이 글귀는 처음이 아니라 책을 다 읽은 후에 가장 떠올랐는데, 그 이유는 결국 하라리는 현재의 수많은 이슈들 속에서 "오늘의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있는가?"에 대해서
또한, 그렇다면 나아감에 있어서 고려해야하고 판단해야 할 것들 은 무엇인가? 에대해서 말하고자 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P196 종교 - 인류의 문제를 전통 종교는 해결해줄수있는가?
하라리가 제시한 21가지 주제는 총 5부로 구성되어있었는데, 하나의 부보다 2부와 3부에서 부분적으로 연결되는 '종교와 신'에 대한 파트가 기억에 남았다.
그 이유는 단연 나의 배경에 있다.
나는 일종의 '슈퍼크리스챤' 집안에서 태어나 애매한 선데이크리스챤으로서 기독교에 대한 어느정도의 신뢰는 있으나 확신은 없는 상태로 살고있다.
처음에는 당연하다듯이 부모님의 말씀따라 기독교가 옳은 것이고 다른 것은 그른 것인줄 알았다.
하지만, 하루하루 더 살아가며 - 과학을 공부하기도하고 기독교 외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공부할수있었고 현재는 '의문'의 단계에 이르러있다.
방황하는 나에게 있어서 지침서가 필요했다. 꼭 어느 방향을 장려하지 않아도, 각각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얘기해주는 책이 말이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가장 '일반적인'사고에 맞춰 객관적인 논리로 담담하게 얘기하는 책이었다.
"당면한 현재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위기에 집중한다. - 과거에는 대부분 주술적, 종교적 대상들이 대응했던 재해나 질병에 대해서 현재는 과학의 승리로 모두 과학이 그를 대체하고있고, 마지막분야로 일컬어지던 정신질환영역 역시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오고있다. - 이제는 우리는 농사나 의료를 종교와 관련짓지 않기도 한다. - 과학은 언제든지 잘못을 인정하고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나 주술과 종교는 더 나은 변명을 내놓는 법에만 익숙하다. 그런점때문에 종교는 기술적인 영역에서 갈수록 권위를 잃어갔다. 카를 마르크스가 주장했듯 종교는 겉치장일 뿐이다."
나도 부족한 사유능력이지만, 작은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인간은 신이될수있는가? 과학이 증명하지 못한 부분을 채워가는 여집합으로써의 현재의 종교는 그 존재의 의미를 갖는가?
혹은 그 모든 과학이 그른것일까?"
이와 같은 고민을 해본 적이 많다. 결국 종교는 과학이 아직 볼수 없는 일련의 경계 밖을 지칭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단순했던 고민에 응답이라도 하듯 - 하라리는 다양한 예시와 그 흐름을 읽어주며 정당성을 부여해줬다. 종교와 주술을 동일 선상에 놓는 것자체가 새로운 시선이었다.
특히나 눈에띄었던 부분은 '과학은 언제든지 잘못을 인정하고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나 주술과 종교는 더 나은 변명을 내놓는 법에만 익숙하다.'였다. 과학에는 실로 많은 파가 존재하며, 1에서 주장한 것을 2에서 반박하며 논증의 과정을 거쳐 결론에 도달한다.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내용들과 논의중인 것들이 많지만, 결국에는 1과 2중 어느 한곳을 바라보게 된다. 히지만, 종교는 어떠한가? 1이라는 성서와 규율을 만들어놓고 2는 모두 그르다고 '이단'이라고 지칭한다. 하라리의 말을 인용하면 '오늘의 나는 어제와 다르고, 오늘의 뇌는 어제와 다르다. 오늘의 우주도 어제의 우주와 다르다.' 아주 작은 원자도 계속해서 움직이며 변화하고있고 가장 큰 단위인 우주도 어제와 다른데, 어떻게 1은 항상 옳은 것인가? 어제와 오늘의 차이라는 변화를 받아드리지 않는 다면 어제에 머무를 뿐-멈춰있는 시계위에 남아있는 아닐까.?
"일본의 '국가 신도' - 소비재화로써, 수단으로써의 종교는 언제까지 존재할수있는가? - 카미카제 : 국가 신도에대한 신뢰에 비롯한 종교적 교리 주입의 결과 - 전통 종교는 인류가 당면한 치유책이 아니라 그 문제의 일부에 불과하다."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우리나라도 '불교'를 이용했고 일본은 '국가 신도'를 이용했다. 이처럼 종교는 어쩌면 언제나 수단으로써 존재한 것이며 이는 본질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처럼 종교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써의 기능만 계속해서 수행하게 된다면, 모든 것이 그렇듯 언젠가 수단으로써의 가치는 소멸할 것일진데, 그 이후의 종교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종교는 과연 우리에게 '본질'로서 존재하는가? 그래왔던 적이 있었는가?
P 295
신
"우리가 신을 불러오는 것은 가장 심오한 우주의 수수께끼를 설명하려 들때이다.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 존재하는가? - 근본적인 물리법칙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의식이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 이런 무지에 대해서 우리는 신이라는 이름을 붙여 해결하려한다. - 우리는 빅뱅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성애 결혼 합법화에 반대표를 던져야 한다. : 이 두명제는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뿐더러 사실은 상충된다. 우주의 신비가 깊을수록, 그것에 책임이 있는 것은 무엇이 됐건 여성의 복장이나 인간의 성적행동에 관심을 가질 확률을 희박하다. - 지난 몇세기가 입증했듯이, 우리가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해 굳이 신의 이름을 불러들일 필요는 없다. 세속주의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언제나 변화는 두렵고 불편하다.
정지관성이라는 것은 어디든 존재하고 변화는 그 관성에 저항해야하는 힘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은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할 수 있는 책이며, 논란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책일 것이다. 현재의 이슈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이 다양하듯, 이 책을 해석하는 시각도 다양할 것인데 나는 이 책을 가장 깨어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두꺼운 책이고, 빽빽한 책이다. 글씨보단 내용이 말이다.
책이 가진 두께에 비해 두꺼운 내용을 담고있고, 빽빽하게 다양한 주제로 현재를 그려내고 있다.
하라리는 오늘에 대해서 결국 어떤 명확한 해결방안이나 나아갈 길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지표를 설치할 장소를 마련했다는 것이며,
지도를 그릴 종이를 펼쳐냈다는 점이다. 그가 펼치고자했던 생각에 대해서 내가 어느만큼 따라왔는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관련 논제에 대해서 상세하게 다루는 다양한 책들이 나와 이 책과 함께 현재의 주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밑받침 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가 정성스레 펼친 논제를 받았으니, 이제는 우리가 사유하고 고민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