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그레이스 페일리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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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페일리의 이야기와 문체에는 한번 빠져들면 이제 그것 없이는 못 견딜 것 같은 신비로운 중독성이 있다. 거칠면서도 유려하고, 무뚝뚝하면서 친절하고, 전투적이면서도 인정이 넘치고, 즉물적이면서도 탐미적이고, 서민적이면서도 고답적이며, 영문을 모르겠으면서도 알 것 같고, 남자 따윈 알 바 아니라면서도 매우 밝히는, 그래서 어디를 들춰봐도 이율배반적이고 까다로운 그 문체가 오히려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 문체는 그녀의 명백한 특징이자 서명이며 흉내 내려 해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이렇게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대가(?)의 추천사로 이 책은 시작한다. 어쩌면 나에게 이 추천사는 일종의 복선이었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싫어한다. 글 읽기가 짧고 능력이 부족한 나로서는너무 추상적이고 어순이 어려운 무리카미의 글을 읽는 것은 일종의 노동이고 피로감이었다. 처음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읽은 것은 심지어 히가시노 게이고인 줄 알고 잘못 책을 고른 탓이었다.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쭉 읽어올 정도로 그의 추리소설을 좋아한다.여하튼, 그렇기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추천사는 나에게 감점 요인이었고 이 책을 웃음기 없게 시작하게 된 시작점이었다.물론 책의 내용 자체도 웃을 수 있는 부분은 많이 없었다. 가족, 사회, 개인, 문화 등 총체적인 분야에 대해서 소설임에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었지만, 책의 제목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에서 느껴지는 것들로부터 나는 "엄청난 변화들"이어떻게 나타나고 급격하게 주인공을 바꿔놓을지를 기대하였다.하지만, 책은 "마지막 순간"에 더 집중하고 있는 듯했고 이 책을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그 점이 아쉬웠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전 남편을 만났다. 나는 새로 지은 도서관 계단에 앉아 있었다. 잘 지냈어? 내 인생. 내가 말했다. 27년을 부부로 살았으니 그렇게 말해도 무방하다고 느꼈다."


나는 책을 잘못 읽은 줄 알고, 이 부분을 다섯 번가량을 다시 읽었다.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무라미카루하키" 라고 써놔도 다들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쓰여있는 듯 자연스럽게 읽는 것처럼 무언가 장난쳐져 있거나 잘못 써져있거나 한 줄 알았다.전 남편을 만난 주인공이 "내 인생"이라고 말을 건네는 대목은 그저 '쿨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삶의 가치관과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마디였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아들을 위해 온전히 받치며 살아왔음에도, 남편은 바람피우다 젊은 나이에 죽었고 아들도 남편과 비슷한 길을 걷는다. 그녀는 인생을 받친 두 남자를 보며, 무엇을 위해 인생을 소비했는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인생의 큰 기점으로 여기는 결혼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극명하게 상반된 태도로 여자를 찾아오는 자녀들을 비롯해 다양하도록 불행한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퍽퍽했다. 고구마 천 개를 입에 넣은 듯했다. '아몬드'와 비견할 수 없는 우울감이었고,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도 같은 우울감의 연속이었다. 책을 읽고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는 것이 보통은 어떤 가치관에 대해서 새로 배운다거나, 공감하는 부분에 대해서 그 근거를 스스로의 경험에 기반해서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좀 달랐다. 그저 '현타'가 오는 듯했다.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다른 책보다 유독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여러 번의 다시 읽기가 필요했으며, 여러 잔의 커피가 필요했다. 이 책은 꼭 다시 한번 천천히 오랜 기간을 두고 곱씹어 봐야 할 책인 듯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추천사처럼 오래 씹을수록 맛이 난다고 하는데, 한 번 씹는데도 이렇게 오래 걸렸으니, 대부분의 독자가 오래 여러 번 씹기는 힘들지 않을까 한다.좋았던 것은 구성적인 부분이었다. 안 그래도 얇은 책이 17편의 소설로 구성되어있어 짧게 짧게 읽어나가기에는 부담이 없었다. 모두 하나같이 우울한 이야기뿐이었고 '변화'에 대한 기대조차 어려웠다는 점을 생각해도 말이다. 아주 짧은 소설부터, 다소 실험적이라고 생각되는 구성의 단편소설도 함께 구성되어있었다. 가장 일상적인 여성의 삶 속에서의 우울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17편을 읽으면서 작가가 최근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고 소개사에서 본부분이 다시 기억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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