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드랑이와 건자두
박요셉 지음 / 김영사 / 201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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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가 참 많다.

그림으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던 게 미술부에서 아그리파를 끄적이던 나의 중2였다. 당시 최고의 폰은 옴니아 2 정도였으며, 온라인 커뮤니티는 해봐야 싸이월드나 다음 카페 정도였다. 10년이 지난 오늘., 텀블러와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BEHENCE .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이 자신의 기량과 감성을 보여줄 수 있는 매체가 너무나도 많아졌고 그만큼 우리는 다양한 작가를 손안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우리는 어려운 그림을 해석해야 하지 않아도 된다. 지적 배경을 가져야만 그림을 소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혹은 미술사나 표현기법을 배워야지 미술을, 미술관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안니다. 러프한 느낌도 아방가르드 한 느낌도, 그로테스크한 느낌도. 범 장르적으로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들이 사랑받는 것을 보면, '실질적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사회의 진행 정도를 볼 수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조그맣게 그려보았다. 그래서 난 일러스트레이터가 늘어나는 것이 좋다.

 

근데,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정말 많다. yck F

나도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계속해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소비와 투자를 하는 중인데, 이번에 디노마드에서 주최하는 yckF 2018을 다녀오면서 마음을 정확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일러스트 페어 등이 우후죽순으로 열리는 오늘에서 결코 쉽게 진입할 수 없는 분야라는 것을 느꼈다. 대략 어림잡아도 100분 이상의 작가분들이 yckF에 모였었는데, 내가 아는 분은 '이슬아, 집시, 푸름이, 604, 미스터두낫띵' 정도였다. 딱 네분을 알아보았고 나머지 분들도 고퀄리티의 작품 활동을 하시지만 다만 내가 모르는, 나만 모르는 작가분들이셨을 뿐이다. 게다가 모두가 다 다른 장르와 감성의 작품 활동을 하고 계셔서,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금전적인 목표나 블루오션으로 보고 진입하기에는 바보 같은 선택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한편으로는, 10억을 빚진 사람이 있다면, 빚쟁이가 아니라 그만큼 사업 수완이 있었던 사람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정말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모여있는 저 시장을 보면서 수익성이 강하긴 한가?라는 생각도 한편에서 움직인다.

 

"내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본인이 독립운동을 했으면, 친우들의 정보를 난방 조금만 틀어줬어도 술술 불었을 것이라는 내용인듯하다. 전반적으로 책의 내용은 크게 모난 부분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이 점에서 의아했다. 적절한 비유였는가? 건전한 표현이었는가? 나의 알량한 지식과 부족한 표현능력으로 이점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바를 명확하게 쓰지는 못하지만, 독립운동가분들과 당시의 어두웠던 사회에 대해서 이렇게 우스갯소리로 비유를 해도 되는 것인가?.. 이 부분은 분명 꼬집힘을 당할 수 있는 표현이고 작가님이 좀 더 조심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이 나를 퉤- 하고 뱉어내고 떠나갔다.“ 에세이를 읽는 것은 어쩌면 이런 간질간질한 표현들에 작은 미소를 띄는 나를 보기위해서이지 않을까.

 

"방귀를 내뱉는 장면과 마주했다. 우연히 생명의 탄생을 목격한 기분이다. 그렇게 대단한 걸 내놓은 것에 비해 너무나도 의젓한 아저씨의 태도는 감탄스러울 정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여행은 돌아온 시점부터가 시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필요한 기억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좋았던, 혹은 인상적이었던 기억들이 서로를 끌어당겨 결국엔 완벽한 하나의 아름답고 단단한 여행으로 남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 기억의 무늬를 하나하나 더듬으며 마음껏 탐하다 지루해질 즈음에 다시 떠남으로써 비로소 여행은 아무리 된다. 어쩌면 여행을 떠난다는 행위 자체는 거대한 여행과 여행 사이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여행이 주가 되고, 비여행적 삶은 중간 정류장에 불과하다. 여행은 돌아온 시점부터가 시작이다. , 여행은 시작과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돌아와 사색함에 그 의미가 있다는 것. 책을 읽는 것도 동일하다. 책을 고르고 구입하고 혹은 빌리고 읽는 일련의 과정은 사실 가치를 생산하지 못한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친구를 만나고, 음악을 듣고, 여행을 가고. 이런 모든 행위는 결국 '사유함을 통한 내적 가치를 남기는 것'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책과, 영화, 여행 등은 하나의 일에서 분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뭘 그려야 할지 멍하니 생각하는 시간이 좋다. 생각을 제어하지 않고 머릿속을 가만히 부유하게 내버려 두면, 몇 번이고 그림을 완성하고 무너뜨리는 것을 반복한다. 이거다 싶어서 그림을 그리면 생각과는 조금 다른 그림이 나오는 것도 재미있다. 계획을 완벽하게 짜서 진행해야 하는 클라이언트 일보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는 것은 조금 더 놀이에 가까운 행위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오늘은 일을 때려치우고 낙서나 실컷 하고 싶지만 꾹 참아야지. 누가 시간을 돈으로 살수 없다고 했나. 나는 시간을 벌기 위해 일하고 있다. 그림 그릴 시간을 벌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니." 낙서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비생산적이고 낭비적인 이미지는 이제는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사회가 원하는 교육, 형식 등의 틀에 맞춰진 시간 동안 우리가 현실도피를 하기 위해서 가장 쉽게 하는 행동이 낙서였을 것이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혹은 얕은 생각의 면을 따라 손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반무의식상태로 그림을 그려가는 행위의 낙서. 어쩌면 가장 가감 없이 내면에 존재하는 것들을 빠르고 부드럽게 토해내는 방법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볍게 읽기 좋은 책

에세이는 보통 작가가 단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메시지들을 한데 모아서 출간하는 경우와, 자신의 삶이나 가치관에 대한 튼튼한 통찰을 거대하게 집대성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전자에 해당하는 책으로, 가끔씩 뜨문뜨문 읽기 좋은 책이다. 다만, 어떤 큰 감명을 받거나 감동을 받을 가능성을 높지 않을 것 같고, 평소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그들의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모습) 혹은 박요셉 작가의 팬이라면, 박요셉 작가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작품집이 아니기에 그의 그림은 많이 담겨있지 않았지만, 그에 대해서 처음 접하는 우리들을 위해서 분명 작가 자신뿐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알릴 수 있는 매 채가 되었을 텐데 그 점을 활용하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그만큼 글에 집중하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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