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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무 살 무렵부터 엄마의 전화를 피했어. 엄마는 내가 전화기를 집어던지고 욕을 해도 계속해서 전화를 해왔어. 그 말을 듣다보니 정말 내가 정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했어. 내가 정이 없어서 엄마와 오빠를 이해하지 못했고,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에게 예쁨을 못 받았고, 정이 없어서 대학에 와서 친구들 별로 사귀지 못했고, 정이 없어서 연애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았어. 엄마의 장례식 내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문득문득 울었어.
-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 정지향,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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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은 해가 질 즈음에는 언제나 앉을 만한 곳을 찾았지. 우리는 매일 벤치나 인도와 차도 사이의 턱에 걸터앉아 하늘을 올려다봤어. 이전에 내가 그 도시에서 일부러 노을을 기다린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건 남는 시간이 있느냐 하는 것과는 별로 관계없는 일이었지. 서울에 비하면 공기가 맑아서인지, 늘 조금씩 다른 온도의 색으로 저물어가는 노을을 볼 수 있더군. 그러고 보면, 민영은 그저 고아의 도시로 여행을 온 게 아니었어. 그애가 나에게로 여행을 데려온 거야.
-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 정지향, P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