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전후사의 인식 1
송건호 외 / 한길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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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중권은 [폭력과 상스러움]에서 역사에 대해 정의하길, "역사란 과거의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닌, 과거의 기억을 현재에 맞게 조작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른 어느 학문들 보다 경제, 정치를 비롯한 전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역사'를 두고 뜨거운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이유는 인류에게 있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가장 강력한 불멸의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결정적인 무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최종 목표는 '권력'이라는 달콤한 꿈이겠지만.  


 이렇게 권력의 성향에 따라 끊임없이 조작되는 역사라는 놈에게 '사실'이란 것이 과연 존재할까. 우리는 그저 과거의 기록을 역사학자의 취향에 따라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위치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은 더없이 중요하다. 특히나 지금과 같이 또라이트, 아니 뉴라이트 같은 '합리적 보수'를 위시한 이들이 역사를 날조하려 하는 이 시점에서는. 


 이런 의미에서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역사의 관점을 보여주는 의미에서 특별하다. 더군다나 (초판이 발간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해방전후사에 대한 총체적이고 다양한 결과물의 모음이 [근대를 다시 말하다]를 제외하면 극소수라는 점에서도 이 책이 갖는 상징성은 매우 특별하다. 


 이 책은 전 6권으로 되어 있다. 1, 2권까지 읽은 상태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책의 구성은 여러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들이 해방전후사에 벌어진 정치, 경제, 법률, 문학과 같은 사회의 총체적인 분야에 관해서 세밀하게 분석하는 논문 형식의 묶음집 형태를 띠고 있다. 미지의 개혁이었던 해방전후의 토지개혁에 대한 개괄적인 분석이나, 광복 후 한국사회에서 가장 먼저 자발적으로 형성된 정치조직인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대한 이야기, 친일문학인들의 분석과, 비극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반민특위의 슬픈 종말, 해방 후 공산주의의 발발 환경 등.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해방 직후의 문학분야와 노동운동 분야이다. 


 해방 후 문학분야에 관한 글은 1권에선 염무웅과 임헌영이, 2권에선 김윤식이 각각 다루고 있는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시각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 순간의 신의 머무름이 가능한 공간이었다" 이 말은 비록 해방 직후 열린 '전국문학자대회'를 가리켜 한 말이지만 해방직후의 폭발했던 창조성을 상기해본다면 그 시절을 노래하는 말이라고 해도 틀리진 않을 것이다. 조금 길긴 하지만 김윤식이 쓴 이 문단보다 그 시절을 '문학적'으로 표현하기란 불가능할 것 같아 그대로 옮겨 본다. 


 해방공간은 서사시에서 비극을 거쳐 플라톤 철학으로 넘어가는 그리스사회의 공간과 흡사하다. 현상과 본질이 완벽한 화해상태이던 서사시(서사적 상태)는 8.15 해방의 찾아옴에서 확인된다. 그것은 신과 더불어 온 것이다. 그러나 그 신은 한순간 우리의 눈을 멀게 한 뒤에 어느새 이땅을 떠나버렸다. 현상과 본질이 분리된 것이다. 그것이 비극(비극적 상태)이다.그렇지만 비극은 아직도 조금의 희망을 갖추고 있다. 주인공(영웅)의 죽음의 순간에 현상과 본질이 일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 문학자 대회는 비극의 상태라 규정된다. 그것은 한순간의 신의 머무름이 가능한 공간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만약'으로 표현되듯 한순간의 일이고, 그 순간이 지나자 본질(이념)과 현상은 영영 갈려 서로 마주보며 평행선을 긋게 된다. 삶의 원자로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으로 된 세계에서는 본질이나 의미가 이데아들의 순수지적인 영역으로 피신하게 되는 것, 그것이 플라톤 철학이다. 우화라든가 신화 속에서 자기를 표현하는 경우를 제하면 철학 속에서는 본질과 현상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마주치지 못한다 


 해방공간이 문학사에서 남긴 폭발성은 결코 길지 않았다. 길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후 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서 문학은 산산조각이 났다. 미국과 소련이 땅을 갈라놓고 있던 그때, 정치적인 불순물 없는 순수문학은 사치였을까..? 문학은, 글은 현실을 투영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로 인해 해방전후사에 남았던 것은 난도질당한 너덜너덜한 문학의 껍데기였다. 


 해방전후사의 노동운동은 나에게는 완전하게 신선한 내용이었다. 2권에서 성한표가 쓴 <9월 총파업과 노동운동의 전환>은 가장 가슴 아프게 읽었던 주제임과 동시에 유럽의 노동운동을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하나의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켜 주었다. 97년 노동자 총파업 이전에,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전에, 79년 YH여공 투쟁 이전에, 70년의 전태일 이전에, 우리의 노동운동 역사에는 1946년 9월 총파업이 있었다. 그리고 이 9월 총파업은 한국 근현대사상 가장 처절한 투쟁의 현장이었다. 무려 200명의 경찰이 죽고, 민간인 1천여명이 죽었으며, 3만명의 인원이 검거된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난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을 상당히 수동적인 성향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런 이미지는 작년 촛불시위 때 어느정도 바뀌었지만 이것은 10~20대, 30대에 한정된 '사건'이었기에 소위 말하는 기성세대, 즉 40대 이후의 사람들은 그들이 혈기왕성하던 시대에 권위주의적 체제에 억눌려 지내왔던 탓이 크겠지만 굳이 정치적 성향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수동적인 느낌을 상당히 많이 받아왔던게 사실인데, 이는 조선의 유교문화의 영향 때문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기 때문에 일제시대, 해방후, 현대사의 사람들 역시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지만 이 글에서 언급하는 하나의 통계는 이런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뀌게 해주었다. 


"해방 후 1년간 1299건의 파업 발생, 26만7천명의 노동자 참가,  2331명 해고, 1090명 검거" 


 실로 어마어마한 파업 건수이다. 이는 물론 해방이라는 격변 속에서 국민의 열망과 국가의 대처가 불합치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막연히 수동적인 기성세대라는 편견만은 가지고 있던 나에게 이런 투쟁 건수와 노동자들의 파업 참가 숫자는 일종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화가 났다. 이토록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기본권'을 외쳤음에도 전혀 바뀌지 않은 현실이. 게다가 그때 그들이 그토록 외쳤던 건 유럽과 미국과 같이 노동환경의 질적인 개선이 아닌 '먹고 사는' 기본적인 생활의 보장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사항일 것이라는 건 굳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즉, 다시말해 그들에게 파업은 단순한 임금협상, 노동자의 최후의 무기라는 선진화 된 개념이 아니라 '목숨, 그 자체' 였다. 모든 것을 걸고, 모든 것을 던져서 파업을 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라는 한국 역사상 최초의 노동조합. 8.15 직후 이들은 '정치투쟁'을 선언한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오해할까봐 미리 밝히자면, 난 결코 전평의 정치투쟁 선언을 비난하는게 아니다. 모든 노동운동은 결국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의 투쟁에 점화선이 된 것은 해방 직후 제정된 '파업규제법'이었다. 살기 위해 파업을 하는 이들에게 귀를 기울여주기는 커녕 법을 제정해 이들을 합법적으로 말아버리려는 수작이었던 것이다. 


 이것도 모자라 미군정은 "민주주의적 노조의 발전을 장려한다"는 내용의 법령을 발표하고, 미군정청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도 밑에서 '대한노총'이란 새로운 노동조합이 탄생한다.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굳이 말 안해도 뻔하지 않은가? 게다가 전평은 박헌영의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에 미군정이 노리는 타겟 1순위였던 것이다. 


 1946년 9월의 총파업은 이때 벌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는 결코 전평의 계획적인 노동 봉기가 아니었다. 맨 처음에는 서울 철도국의 경성 공장에서 시작해 부산과 전남지구로 이어졌고, 전국의 철도노동자로 확산되었다. 이어서 서울의 전화국과 우체국, 전기주식회사, 부산의 전신국 노동자들도 파업에 참여한다. 9월 말, 파업 참가 노동자는 남한 전체에서 무려 26만 4천여명에 달했다. 서울에서만 295개 기업에서 3만여명의 노동자가 참여한다. 


 생각해보라. 굳이 상대적인 비교를 하지 않더라도 이정도 파업 인원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 마르크스가 주창하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벌어질 수도 있는 역사적인 인원과 조건이었던 것이다. 전평이 볼셰비키였고, 박헌영이 레닌의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면 말이다. '혁명이 일어나기 더없이 충분했던 찰나의 순간'을 전평은 무능력한 지도부로 인해 날려버린다. 폭발적인 파업혁명 속에서 전평이 갈피를 못잡고 있을때, 대한노총은 이승만을 위원장으로 개편하고 공장 경영자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파업대책위원회와 제휴해 '총파업대책협의회'를 조직하고 빠른 시일 내에 파업을 파괴하겠다고 군정 당국자에게 충실하게 약속한다.

 

 이후의 이야기는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나도 처참하다.... 장택상이 지휘한 2,100명의 경찰들은 9월 30일부터 경성공장의 모든 외곽선을 포위한다. 애국청년단원들과 대한노총원들이 농성장에 돌입해 1,400명을 검거하고 파업단을 강제 해산시킨다. 이들은 전국으로 퍼져 미군정의 든든한 지원아래 삽시간에 파업단을 분열시킨다. 전평은 이후 급격하게 무너진다. 지도자들이 대량검거되면서 사실상 해체되게 되고 대한노총은 이 틈을 타서 곳곳의 공장에 침투해 노동운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노동운동' 본연의 역할과는 전혀 동떨어진, 권력에 야합한 더러운 이름 대한노총은 현재 '한국노총'이란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참으로 한스러운 대한민국의 노동운동사다. 그시대의 노동자들이 대단한 걸 원했었나. 하다못해 농지개혁법이라도 해방직후 제대로 제정이 됐었다면 그들이 파업이란 배수진을 쳤었을까. 겉멋들어서 그들이 파업을 한게 아니다. 내 배 부르자고 그들이 파업을 한게 아니다. 인간의 생존이라는 기본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요구를 하고자 해서 최후의 수단으로 파업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미군정과 그 뒤를 졸졸 따르는 졸개들은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초전박살 내버린다. (더 웃긴건 9월 총파업 강제 해산에 가담했던 김두한 같은 새끼가 많은 이들에게 협객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씨발스럽다) 


 이후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완전히 죽었다. 1970년 전태일이라는 영웅이 나오기 전까지 노동자는 그저 기계였다. 전태일이 나온 뒤에도, 민주화가 된 후에도, 21세기에도 대다수 노동자는 기계처럼 산다. 우리도 유럽처럼, 미국처럼 존나 멋진 슬로건 내걸고 우아하게 협상하고 싶다. 망루에 올라가서 흔들거리는 목숨을 담보로 걸고 피터지게 절규하는게 아니라, 봉쇄된 건물 안에서 내 와이프, 내 동료가 목 매달고 죽었다는 소식에 피눈물만 흘릴 수 밖에 없는 처절한 투쟁이 아니라, 시원하게, 당당하게, 목숨을 내걸고 처자식을 내건 투쟁이 아니라 씨발 좀 멋스럽고 당당한 요구를 하고 싶은거다.  


 해방 직후 노동운동사에 대한 이야기가 예상보다 너무 길어졌는데 성한표가 다룬 이 주제 하나만으로도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나에게 너무나도 뜻깊은 저작물이다. 이 책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기성세대를 수동적인 기성세대로만 생각했을 것이고, 따라서 무력한 노동자들밖에 없었기에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사는 전태일 혼자서 이룩한 것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진심으로 고마운 것은, 우리나라에도 진정 '노동자'라고 부를 만한 이들이 존재했다는 것. 그 사실을 일깨워줬다는 것 그 하나가 나에겐 너무나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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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반역
오르테가 이 가세트 지음, 황보영조 옮김 / 역사비평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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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사회계약론이 18세기를 대변하고,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19세기를 대변한다면,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역이 20세기를 대변할 것이다


위의 말은 월간 대서양이라는 잡지에서 본 작품 [대중의 반역]을 일컬어 했던 말이다.
홍보문구의 과장됨은 감안하더라도 사회계약론과 자본론에 비견될만큼 이 책이 가치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고 책을 접하게 됐다.

말그대로 이 책은 '대중'에 관한 이야기이다.
책의 발행년도는 20세기 초,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였다.
지금의 대중들이 사이버 공간을 중심으로 집단을 자유롭고 유동적이게 구성하며
이른바 '집단지성'을 창출하면서 창조적인 유기체로 움직인다면
(물론,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지만)
20세기 초 대중들은 하나의 '대의'를 통해 움직이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20세기 초, 즉 아직까지 사회주의가 일국사회주의,
스탈린 체제로 변질되기 전 하나의 이상향을 보며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던 그 시기에 대한 향수같은 게 있다.
(이런 향수의 근본적 뿌리는 레닌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런 애잔함과 그리움은 사회주의는 물론 자본주의가 신제국주의로 변질되기 전,
다시말해 대공황 이후 일반이론과 뉴딜이 만나며 다시는 오지 않을 자본주의의
유토피아 시절이었던 1960년대, 딱 68혁명 전까지의 기간도 포함이 된다.
  

 

그 시대의 향수는 그 시대의 사람들, 즉 대중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는데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본작은 그 시절의 군중을 조명하고 있다.

그가 바라본 그시대의 군중, 아니 이 책이 쓰여졌던 동시대의 사람들은
"우리 시대만큼 군중이 직접적으로 지배하는 시대가 역사상 언제 있었을까"라고 말한다.
군중의 힘이, 대중의 힘이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막강했던 시대라는 말이다.
"이제까지의 역사는 인간이라는 식물에 이로움을 주는 공공생활방식을 얻기 위해
온갖 실험을 다 해본 하나의 거대한 실험실"
이었다는 과거 역사의 단언과 함께.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대중'은 결코 긍정적인 시각이 아니다.
"'대중'이라 함은 삶의 계획없이 표류하는 인간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의 가능성과 권력이 막강하다 할지라도 아무것도 건설하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나오는데,
"무리가 많기 때문에 대중이 아니라, 소극적이기 때문에 대중이다"
라는 것. 이 한 문장은 이 책 전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가 바라보는 대중은 무력하고 소극적이다.
반면, '소수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훌륭한 노력을 경주하는데
이들을 우리는 선택된 사람, 고귀한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 

즉 우리가 보는 '선택된 사람'은 실상 타의에 의해
선택되어진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훌륭한 노력을 경주하는 사람들로
이들의 삶은 영원한 긴장의 연속이며 훈련인 것이다.
그들이 흘리는 땀과 눈물겨운 노력은 대중들이
그들에게 부여하는 호칭과 경이로움으로 보상받는다는 것이다.

현대의 대중은 매우 영리하며,
그 어느 세대보다 뛰어난 지적능력을 갖고 있지만
자신이 지적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그 생각 자체가
스스로를 폐쇄시켜서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대중의 반란'은 이러한 평균인들의 폐쇄성에서 기인하며,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거대한 문제는 대중의 반란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대중의 반란'은 혁명과 같은 역사적 전복,
앙시엥레짐의 타파와 동의어가 아니었던가?
그것은 오랜 세월 인간의 본성과 옳음, 인권의 자명함이
한 순간에 일시적으로 폭발한 거대한 불꽃축제라는 말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러한 물음은 본 저작에선 완전한 '모순'에 해당된다.

일단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말하고 있는 대중의 정의는
결코 인민과 동의어가 아니다. 그가 말하는 대중은 '즉흥적'이고,
때론 오랜 기억도 역사 의식도 없는 평범한 이들에게 좌우될 수 있는 '나약함'자체이다.
즉흥적임과 나약함의 근본적 메커니즘이 자기폐쇄성이라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지성이 뛰어나게 진화하면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어떤 정통성도 없는 '일부 평범한 인간'에게 휘둘리게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대중의 나약함과 나태함, 폐쇄성 속에 등장한 것이
생디칼리즘과 파시즘 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그가 말하는 대중은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한없이 쪼개진 구심점 없는 수많은 덩어리들이다.
그같은 덩어리들 중 특정한 덩어리들,
즉 하나의 동질적인 대중이 공적권위를 제압한 후,
반대집단을 모두 진압하고 전멸시키는 경우..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거의 모든 국가에서 보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는 분명 파시즘, 나치즘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겠지만
민주주의라고 해서 다를건 또 뭔가?  어차피 그들 역시 의회를
'장악'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권력의 분출에 있어서는 매일반이다)
 

 

"대중이란 오늘날 사회의 모든 계급에서 볼 수 있는,
그래서 우리 시대를 대표하고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압도하는 종류의 인간"
이며
그들은 "독자적으로 행동할 때는 별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사적 폭력이라는 단 하나의 방법은 사용"한다.
여기서 우리는 제목에서 느꼈던 '혁명'과 같은
고상한 낭만적 이상주의가 아닌, 일국 사회주의의 '주체'로서의 대중을 만난다.

그는 마지막으로
"유럽을 거대한 국민국가로 건설하는 일이야말로 유일한 성공의 길"이라고 말을 한다.
이같은 바람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EU의 형태로 토대를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제레미 리프킨이 줄기차게 이야기하던 유러피안 드림이라는
유럽 사대주의는 이제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가는 것 같다.

글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과연 EU가 '드림'이 될지 의문이 간다.
반미와는 뗄레야 뗄수가 없는 EU가 최소한 '상징성'에 있어서
미국만큼 성장한다면 그때 우리에게 남은 건 '전세계의 화합'인가,
아니면 '미제국주의'에 반하는 '유럽사대주의'인가.
무조건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는 EU의 무시무시한 성장이
과연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바라던 '성공의 길'일까.

그는 자유주의자 이다.
본작품에서 자유주의를 정의하길,
다수가 소수에게 권리를 부여해주는 것이며,
따라서 지상에 울려퍼지는 가장 고귀한 외침이고,
그것은 강한 적 뿐만 아니라 약한 적과도 공존하겠다는 결의를 선언한다, 라고 말한 바 있다.
그가 꿈꾸었던 유럽의 국민국가가 '유럽제국주의'에 빠지지 않고 소수의 이들에게도
스스럼 없이 손을 내밀 수 있는 그런 공동체가 되길 바라는 것은 너무 유토피아적인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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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희망이다 - 혼돈의 시대, 한국의 지성 12인에게 길을 묻다
김수행 외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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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소녀가 13세 때 커피 중독에 걸리는 나라예요 (우석훈)-


개인적으로 출판사를 보고 책을 사는 스타일은 아닌데
어떻게 된 것이 이 책은 출판사만 보고 그냥 책을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책의 구성도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닌 인터뷰 형식이었지만,
시사인 정기구독자 입장에서 이 책만큼은 사줘야 한다는 사명감 이랄까요 ^^;


시사인이 주최한 신년강좌를 활자로 묶은 이 책은
총 여섯 가지 강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른 책들과 차별화 되는 점은 넓은 영역에서 선별한 사람들이라는 점인데
음.. 솔직히 읽기 지루한 몇몇 강의들도 있었음은 굳이 부인하고 싶지 않습니다 -_-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본 내용은 [녹색평론]발행인 김종철 님의 강연과
제가 존경하는 분, 희망제작소 박원순 님의 강연이었습니다.


시사인의 첫 단행본 출간.
그것에 의미를 맞추고 싶어요.
앞으로 계속해서 올바른 언론이 올바른 책을 많이 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온 국민이 지지하는 운동이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절망을 즐겨야 됩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금은 소수가 지지하지만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다수가 지지하는, 그런 운동으로 전환하는 것이 우리들 희망제작소의 사명입니다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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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 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쏘다 우리시대의 논리 12
서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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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상한 2시간짜리 재판에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나는 이때부터 이 재판에 매달렸고, 지난 2년의 시간을 대부분 여기에 쏟았다-


석궁테러사건 보통 우리에게 김명호 교수 사건은 이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세간 사람들에겐 간단히 이 한 단어로 정의가 되지만 김명호 교수 사건은
그 시작부터 결론까지 한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거기에 얽힌 수많은 사연들을
제외하고서라도 꽤 긴 문장이 됩니다. 
 

성균관대 수학과 김명호 교수가 지난 1995년 대입시험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 시정을 요구하자 이에 앙심을 품은 학교측에서 재임용을 탈락시키고,
이에 김명호 교수는 2005년 부당한 재임용 탈락이라며 학교 측을 상대로
고소하기에 이르나, 법원은 바로 몇 달 전 똑같은 상황에서의 교수 승소 선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패소하게 되고, 이에 앙심을 품은 김명호 교수는 당시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들고 찾아가, 바로 현장에서 구속됩니다.


대한민국 사법부 역사상 최악의 비극은 인혁당 사건이었지만,
대한민국 사법부 역사상 가장 웃긴 재판은 석궁 테러 사건입니다.
모든 정황과 물증은 김명호 교수를 우발적 상해로 판단하게 하고 있는데  
오로지 담당 판사와, 담당 검사, 사법부 만이 그를 고의적인 범행으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판결은 사법부의 치부를 드러내는 김명호 교수의 끝없는 대항에 대한 
일종의 괘씸죄가 적용이 된 것이죠. 
 

현재 성동구치소에서 징역 4년을 받고 수감 중인 김명호 교수.
이 책은 1995년, 그때부터 석궁테러 이후, 5차공판까지, 이후 항소심까지의
재판정에서의 모든 과정을 영화 드라마 시나리오와 같이 적어놓은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재판의 속기록과 녹취를 통해 집필된 이 책은
세상 어느 소설보다, 어느 영화보다, 어느 드라마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그 어떤 뉴스와 신문보다도 훨씬 더 사실에 근접한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은 서점에서 신간 코너에서 책을 고르다가
우연히 집었었는데 그 자리에서 선 채로 다 읽었을 정도로 굉장한 몰입력을 자랑해요.
내용이 너무나 흥미진진해서 읽다보면 중간에 화장실 가는 것도 까먹을 정도이죠.
 

한가지, 이 책이 좋은 점은 보통 이런 류의 책에서 흔히 저지르는 문제점 중 하나가
책에 해당하는 본인 당사자를 '사법부 권력에 맞선 혁명가' 정도로
인물을 심하게 위인화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작가의 그러한 견해가 
거의 들어가 있지 않아 인물을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뒤에 수록된 석궁테러 관련 인터뷰 부분의 인터뷰 대상들만 봐도
상당히 중립적인 입장에서 채택했다는 것을 볼 수 있구요.
 

허나, 명백한 사실 자체가 김명호 교수를 범상치 않은 인물로 만들어 주는 것을 
이 책을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수시로 느껴지는 '소름'에 주의하세요


-본인 김명호는 피해자일 뿐입니다. 그들의 판결문은 다용도용 흉기이며,
본인은 수십만, 수백만의 그 흉기에 당한 피해자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본인은 최후수단인 국민 저항권과 박홍우(당시 담당 판사) 살인 흉기 사용에 대한
정당방위권을 행사한 것일 뿐, 무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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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시민을 불온하게 하는가? - 대한민국을 뒤흔든 이슈와 논쟁에 관한 최강욱 변호사의 뜨거운 변론
최강욱 지음 / 갤리온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법은 늘 사람 곁에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법조인 중 한 분인 최강욱 변호사의 책입니다.
이 책은 이번에 소개하는 책 중에서 가장 신작임과 동시에,
계속되는 그들과의 저항에서 필히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채워주는 샘물같은 책이라고 생각을 해요.


전두환 정권을 단 7년만에 아작내기까지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건 무엇보다도 책이었습니다.
 

전대갈이 학살의 원죄를 덮기 위해 시행한 정책 중
과외금지, 의료보험 국영화 등과 함께 문화예술산업의 육성이 있었는데
이틈을 타 봇물처럼 밀려들어온 수많은 사회과학서적은
광주의 부채를 안고 있던 운동권을 수많은 지식으로 무장하게
해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같은 지식의 축척이 행동으로 이어지며
87년 6월의 뜨거운 혁명을 이루어 낸 것이죠. 


지금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건 그당시 운동권들의 게릴리식 투쟁방법이 아닙니다.
2008년 6월에 우리는 전 세계의 모든 진보진영이 놀랐던 '신 문화'를 형성한 주축입니다.
시위는 곧 투쟁이라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획기적으로 파괴한 1년 전 여름의
성숙한 저항방식은그들은 물론 386세대들에게 까지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오며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건 '성숙한 저항방식'과 결합된 '지식의 무장'이 되겠죠.
그런 면에서 최강욱 변호사의 얇은 이 책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은 과거, 그리고 현재까지도 사회적 이슈가 됐던 문제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석합니다. 광고주 불매운동이나, 용산 참사, 이랜드 파업, 삼성특검,
신영철 대법관 사건 등 그토록 딱딱하기만 했던 법 이야기가 우리가 뉴스와 신문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알고 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만나면서 딱딱한 법 이야기는
마법처럼 친근하고 재미있게 다가옵니다.


삼성 특검. 떡검 하는데 삼성 비리가 구체적으로 왜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논란이 됐는지
정작 그 내용과 실체는 모른 채 그저 인터넷에서 나쁜 놈들이라니깐,
언소주 불매운동 대상이니깐 무조건적으로 욕을 하고 그들과 슬그머니 동화되는 것은,
비판이 아닌 목적없는 비난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대항이, 나의 저항이 힘을 얻기 위해선
실체에 대한 뚜렷한 개념과 지식이 있어야만 힘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 책은 우리의 대항이 좀 더 긴 생명력과 
큰 파급력을 갖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직접 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사회 전반에 관한 자신의 소견과
법조계 내부의 오랜 관행으로 여겨져 있는 악 들 까지도 들추기는 분명히 쉽지 않았겠지만
당신이 꿈꾸는 세상을 위해, 글로 세상을 밝히기 위해 선뜻 일어난 용기에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를 보내며 많은 이들이 흘린 눈물은 그가 그토록 일구고 지키려 했던
인권과 정의가 늘 비주류의 위치에 머무는 현실에 대한 비탄일 것입니다
법이 진정으로 사람을 떠받들고 서러움에 북받치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따뜻하고 푸르른 세상이 오면, 그때 작은 비석 앞에서 탁주 한 잔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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