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고전'을 언급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이 또 있을까.

 
고전의 의미는 '작품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전의 진짜 속뜻은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생각의 합의'를 본 작품이다.
비록 그 사람들 중에서 나의 의견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큰 상관은 없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말이기 때문에
고작 나의 의견 따위는 고전에 대한 어떠한 영향력도 끼칠 수 없기에.
뭐 그런 것들을 우리는 흔히들 '고전'이나 '명작'이라는 고상한 단어로 품위있게 표현한다.

 
그래서 나는 '고전'이니 '명작'이니 꼽히는 책들에 대한 언급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른데...' 라고 말해봤자 소리없는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고,
'이 책을 읽었다'라고 말하는 순간 여지껏 그걸 이제야 읽었어? 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다.
 

하지만 이 책, 조지 오웰의 [1984]는 조금 예외다.
물론, 여전히 '이 유명한 고전을 지금 읽다니...'와 같은
소에는 솔직히 얼굴이 좀 후끈거리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언급하고 싶은 이유는,
'고전'이니 '명작'이니 하는 바운더리에 묶여 있는 통에
많은 사람들이 그저 이 작품을 의무감으로 접하거나,
혹은 '고전' '명작'이 풍기고 있는 아우라 덕택에
괜히 작품에 대한 거리감 때문에 접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 정말 안타깝다.
이 작품은 '고전'이기에 더욱 평가절하당하는 소설이다.
'고전'이 갖추어야 할 필수 조건이 '작품의 나이'인 덕택에
이 소설이 한참 지난 과거의 이야기를 하겠지라는 지레 짐작으로 인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듯 보이는 것도 안타깝고,
50년도 더 된 과거의 작품이 여전히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거울이라는 점도 안타깝다.
비록 우리는 이제 빅 브라더의 존재를 '자각'할 능력은 일부 갖추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위에서 빅 브라더로 군림하려고 하는 이들의 존재마저 없앨 수는 없다.

 
여전히 빅 브라더를 꿈꾸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국가......
이것이 이 작품이 고전으로 존재해선 안 되는 진짜 이유다.   

 

이 소설에 대한 찬사의 대부분은 소설의 '메시지'에 치중되어 있지만,
소설이라는 이야기적인 재미의 측면으로 봤을 때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다.
물론 여느 소설들과는 달리 '메시지'와 '이야기'는 서로를 따로 생각할 수 없을만큼
절묘하게 어우러져서 이야기의 재미니, 메시지니 구분하는 게 별 의미없는 짓이긴 하지만
이 소설은 결코 메시지에 잠식 당해 이야기를 놓쳐버리는 아마추어리즘은 느낄 수 없다.
(사실 이건 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조지 오웰에게 아마추어리즘을 논하다니..-_-;)

 
특히나 이 작품은 숨통을 조여오는 상황 전개가 일품이다.
 

내용을 임의적으로 나눠 본다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부는 윈스턴의 직장등 주인공을 중심으로한 주변의 상황 묘사가 주를 이룬다.
조지 오웰이 구축해놓은 '빅 브라더의 세계'는 굉장히 치밀해서
조금은 경직된 설명조의 문체가 주를 이루고 있음에도 지루해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비단 조지 오웰의 글빨이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린 윈스턴이 처한 그 상황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이 미디어를 통해 접한 간접 경험이든, 혹은 그 시대를 몸소 체험한 직접 경험이든.)
 

2부는 빅 브라더의 세계에서조차도 억압할 수 없는 '사랑''혁명 단체'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의 감정 그 자체를 통제하려 한 당은 과거의 실패를 교훈삼아
실제로 (무산계급을 제외한)당원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도 인간인 이상 그 획일적인 세계에서도 '사랑'이란 감정은 피어났고,
그 무시무시한 철권 통치의 세계에서도 혁명을 꿈꾸는 이들은 존재했다.
줄리아를 만나며 중년의 윈스턴은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오브라이언이 수장으로 있는 '형제단'을 통해 윈스턴은 사회의 혁명을 꿈꾼다.
(물론 이 소설은 사랑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서 구질구질한 연애담으로 이어지는
통속적인 소설은 결코 아니다. 기억하라. 작가는 조지오웰이고, 소설은 [1984]임을..)   

 

3부는 혁명 음모를 꾸민 사상죄로 구속된 윈스턴의 모습을 그린다.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이자 이 소설에서 가장 보기 힘겨운 부분이다.
이전까지의 내용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훌륭하지만,
[1984]가 아직까지도 명저로 남아있는 이유는
바로 이 3부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특히나 후반부에 나오는 윈스턴과 오브라이언의 대화가 전해주는 임팩트는 상당하다.
사상죄라는 이데올로기로 시작해서 인간 본연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물음으로 끝을 맺는
이 부분을 읽고 가슴 떨림을 경험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그 어떤 소설보다도 강렬한 여운을 주며 끝을 맺는다.
 
 

고전은 많은 이들이 감동했고 공감했기 때문에 고전으로 존재할 수 있다.
고전은 많은 이들이 감동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고전으로 존재할 수 있다.

 
기가 막힌 아이러니... 

 
이미 수많은 인사들에 의해 고전의 반열에 오른 뒤에는
고작 나 하나 따위가 그 작품에 대해 그들과 같은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철옹성같은 업적에 대해 흠집 하나 낼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전 앞에서 솔직해지지 못한다. 아니 솔직해 질 수 없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은 고전을 평가함에 있어서 일말의 영향력도 끼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것 하나도 공감하지 못하는' 무식한 지성에 대해 조소와 멸시를 받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전을 더더욱 꺼리게 된다.
하지만 고전에 관한 이러한 패러독스의 공식에 해당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돌연변이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 작품을 꼽고 싶다.

 
그 이유는, 거의 박물관의 유품처럼 딱딱해져버린 이미지가
연상되는 고전이란 범주에 이 작품을 넣어 버리기에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재미'라는 생명력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기 때문이고,
고전이란 경계에 갖혀서 이 작품에 대한 더 이상의 새로운 해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도 덜 진보되었기 때문이며,
빅 브라더를 꿈꾸는 자들이 여전히 건재한 이 사회에서 우리가
이 작품을 고전이란 이름 아래 박제시키는 건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고전'이란 이름으로 이 작품의 확장된 재해석과 감상을 막는 이들이야말로
어쩌면 빅 브라더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는 엉뚱한 상상을
나는 이 책을 읽은 늦여름의 어느날 밤에 문득 생각했다.

 

열심히 읽고 
뜨겁게 느끼고
치열하게 생각하자.

  

이 작품이 벌써 고전이 되어버리기에는
아직까지 우리 가슴은 너무나 뜨겁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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