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타이거 - 2008년 부커상 수상작
아라빈드 아디가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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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그때 왜 그렇게 진지했을까...?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은 진중함에 있다고 믿었겠지?
위트와 유머는 깊이가 없다고 생각했겠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민중과 민주의 거룩한 이름에 '웃음'은 반역이었겠지?
그래서 그렇게...... 한 손엔 화염병을, 한 손엔 에로영화 포스터를 손에 쥐고
한 치의 웃음도 존재하지 않던 푸석푸석한 그 시대의 아이러니를 절망했겠지?


그때는 20세기.
지금은 21세기.  

그때는 웃음이 죄악이었지만
지금은 진지함이 죄악이 되어버린 시대.
온갖 진지함들은 '허세''오글레임'의 단어 속에서 학살 당하고
오로지 깃털같은 가벼움과 순간의 웃음만이 존재하는 시대.


그래도 최소한 20세기, 웃음을 실종했던 그 시대에 우리는
비록 절반의 성공이었지만 세상의 판을 아주 잠깐은 엎어버렸지. 
87년 그해 여름에.. 어쨌건 그놈의 지긋지긋한 진지함은 세상을 변화시켰지.

 
그러나 진지함이 '가식'이 되어버린 지금 시대에
'진지함'은 아무런 영향력도 끼칠 수가 없지.
과거의 방식으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말은 다시 말해
과거의 진지함으로는 너무나도 가벼운 이 시대를 단 한 부분도 바꿀 수 없다는 말이겠지.
그 누군가가 단상 앞에 서서 피를 토하며 사자후를 내뱉어도 나는 미동도 하지 않을 것이고
머리에 띠를 두르고 목청을 높여 세상을 바꿔보자 소리쳐도 우리는 움직이지 않겠지.

 
이제 세상은 변했어.
우리는 괴리감이 아니라 동질감을 원해.
지금껏 한번도 보지 못한 신형 유닛.
나는 그 희미한 실루엣을 이 책에서 봤어.
 

이건 21세기 현재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나라 중 하나의 국가에 살고 있는
어느 한 기업 CEO이자 살인자에 대한 이야기.
동시에 20세기를 그리워하는 '그들'에게 바치는 21세기 혁명가의 노래.

 
그가 노래하는 인도는 곧 과거 어느 순간 우리나라의 이야기였고,
그가 느끼는 부조리함은 지금도 건재한 우리 생활의 이야기이며,
그가 느끼는 울분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은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였지.
 

한때 우리는 지구상에 존재하던 수많은 독재국가 안에 존재하던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이들'이 부러워하던 국가였지.
'무혈혁명'은 그만큼 위대한 것이었지.
진지함에 대해 무자비함으로 억누르면서 곳곳에서 '희망'들이 나가 떨어졌을 때,
우리만큼은 총과 칼의 무자비함을 끝까지 '진지함' 하나로
눌러버린 기적을 보여줬었지.
 

그러나, 그뿐이었어.
'진지함'을 내세우던 이들은 그들만의 세계에 너무나 심취한 나머지
점점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잊어버리다가
결국엔 '그런 시절이 있었나' 할 정도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았지.

 
이제 남은 건 진지함을 경멸하는 가벼움이고
점차 그 가벼움에 익숙해져가는 우리들.
'진지함의 언어'조차 잊어버린 이 시대에
나는... 혹시 20세기에 우리 사회에 차지했던 '진지함'의 위력을
대신해 줄 수 있는 21세기의 언어가 있다면 바로 이런 형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했던 거지...

 
인도인들은 21세기 이 세상 그 어떤 '혁명가'도 해내지 못한
'21세기의 언어로 20세기의 사자후를 내뿜는' 이 사람의
존재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모르겠지(라고 나는 생각해).
 

폭풍의 눈은 고요하다고 했던가.
나와 내 주위는 타자가 볼 때 정확할 수밖에 없어.
우리의 모습은 먼곳에서 볼 때 객관화되고 정확할 수밖에 없어.
과거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여전히 우리가 그러고 있는 것처럼
그들 역시 이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르지..

 
단 한번의 자그마한 날개짓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이 책은,
나비효과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폭풍같은 책.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책 한권이 (그 어떤 부분에서라도)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그 주인공은 바로 이 책, [화이트 타이거]가 되지 않을까.

 
네가 그리워하는 그 시절의 생각을
우리가 원하는 우리만의 언어로
너와 우리가 마음 속에 공유하고 있는
'뜨거운 그 무엇'인가를 발산하고 있는 이 책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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