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재발견 - 한국 자본주의와 기업이 빠진 조직의 덫, 개정판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2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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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과 함께 쓴 [88만원 세대]로 우석훈이 얻은 명예와 인지도는 어마어마했다.

이 책([88만원 세대])이 지금과 같은 '20대의 바이블'이 된 것에는
책에서 보여준 사회 인식이 탁월했다기보다는 이 사회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사회적 지진아' 취급하는 20대를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이 가장 큰 역할을 했지만,
어쨌건 책의 대히트로 적어도 조금이나마 20대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이야기들이
공론화되었다는 점은 아마도 우석훈이 이 책을 통해 이루어 낸 가장 큰 업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두루뭉실하고 현실과 괴리감 있는 결론 부분은 참 아쉬운 부분이다) 

[조직의 재발견]은 우석훈의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두번째 작품이다.
그가 서문에서도 말하듯 전작이 한국의 20대 중 90~95%를 차지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20대의 나머지 5~10%,
즉 치열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그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이 속해있는 '기업'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 한국에서 '조직론'이라는 건 다소 생소한 분야이다.
아직 우리는 한국의 조직을 들여다볼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게 가장 솔직한 이유일 것이다.
뒤돌아볼 새 없이 급속도로 무분별한 팽창을 이어가며 
죽음의 외줄타기를 하고 있던 한국 경제가 민주화 물결과 더불어
그제서야 겨우 내부를 들여다 보려는 찰나, 외환 위기가 닥쳐왔다.

제조업 분야의 폭발적인 성장과 반비례한 노동자의 권익은
87년 7~8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기업의 내부는 어느정도 서구형 선진국의 면모를
부분적으로나마 갖추고 발전해시키려는 찰나에 신자유주의의 물결과 함께
무섭게 밀려들어 온 구조조정의 바람 앞에서 모든 것은 무용지물이 된다.
무조건 컴팩트해야 한다. 90년대 후반 이후 기업들은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결국 우리는 우리 내부의 조직을 차분히 바라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IMF란 이름 아래 허망하게 날려버린다.

대기업의 극단적인 독과점과 아웃소싱으로 겨우겨우 연명해가는 중소기업,
정규직은 점점 줄어들고 비정규직 천지인 우리 사회에서
'조직론'은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인 게 아닐까?
우석훈은 바로 이 '조직론'이야말로 한국 기업과 경제,
나아가서 한국 사회 전반을 발전시키는 해답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 조직을 줄여아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나왔던 지난 수 년 간,
사실 정부 조직은 전체적으로 하나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졌다. (...)
지난 수년 동안 우리나라의 정부 조직이 커진 실제 이유는 민간부분의 조직들이
생동감을 잃는 동안에 거기서 탈출한 인재들이 정부 부문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유럽형 사민주의를 추구했던 노무현 정부에서
정부 조직이 커진 근본 원인이 유럽형 사회와는
전혀 다른 이유라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조직의 덩치가 작다, 크다라는 외형적 모습이 핵심이 아니라
그 조직 내부의 구조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는 점이 핵심이다.

정부 조직이 비대하진 이유는 우리 사회가 유럽형 사민주의를 향해
발전해서가 아니라 종신고용과 안정성이 붕괴한 한국 기업 시장에서
유일하게 '안정성을 보장하는' 분야가 공공부문이기 때문이다.

기업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나라의 기업은
전통적으로 형식상 미국형 기업 구조를 띠고 있다
즉, "CEO를 정점으로, 말단사원까지 내려오는
수직적으로 분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구조는 "모든 정보가 CEO에게 집중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의사결정라인의 중간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CEO의 판단, 능력에 문제가 생기면
조직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며, 일반 사원들은 부서가 서로 다르면
인적 교환 뿐 아니라 정보 소통이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전후~60년대 말까지 소위 말하는
포디즘 시대의 경제에 굉장히 효율적으로 작용해왔다.
자신이 할당받은 분야, 업무만 일하면 되는 제조업 중심의 체제에서
직원들의 상호 정보 소통은 큰 의미가 없었다. 창의적 능력 역시 큰 필요가 없었다.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진입하는 한국 사회가
받아들인 기업 시스템 역시 미국형 구조였다.
그리고.. 한국에서 미국형 기업 구조는
경영자의 절대적 권위를 발전시키는 최악의 형태로 진화했다.

반면 일본형 기업구조 "팀이라고 부르는 실무 단위로 움직이고, 조
장이나 반장의 의사결정을 따른다" 여기서 "조원, 반원은 순환보직에 의한
수평적인 방식으로, 주기적으로 서로의 업무를 교환하고,
수평적 조직에도 형식적으로 CEO는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사항은 수평적으로 협조하는 팀 단위로 결정"한다.

이 구조에서는 "기술혁신을 비롯한 새로운 방식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일반적인 관점이다.

미국형 기업구조, 일본형 기업구조를 이론으로 정형화시킨
일본 경제학자 아오키의 주장은 물론 일반화의 경향이 있음은 무시할 수 없고,
이러한 이론을 발표한 시기가 1988년이란 점, 즉, 일본의 '버블경제' 최대호황기에
발표되었다는 점은 레이거노믹스의 부작용이 만연하던  당시 미국보다 자국의 시스템에
더 우월성을 둘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이었음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일본식 기업구조가  "창의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돌연변이"의 탄생이   

더 쉬운 환경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비록 일본 경제의 거품이 빠지면서 일본 역시 신자유주의의 역풍으로
일본 고유의 기업 시스템이 무너지는 위기를 맞이하긴 했지만
한국처럼 무분별하게 다운사이징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종신고용제가 무너지고, 세계화의 바람과 동시에 IMF 외환위기를 동시에 맞은
한국 경제에서 조직 내부에 대한 심도있는 통찰은 아예 전무했고,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조직컨설팅'은 "조직시스템을 일관 되게 유지하는 게
아니라
기계적인 감원을 의미하는 조정만을 목표로"했다.

"따라서 암묵적 협약같은 진화의 결과로 생겨난
일종의 간접자산들이 그런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사라져버리고,
이는 결국 조직에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는데,
사람들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침묵의 조절장치들이 같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암묵적 협약은 기업과 노동자가 맺은 노동자의 '권익'에 해당한다.
'IMF'라는 괴물은 한국 경제의 거시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조직 내부의 미시적인 측면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는데
그 변화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간접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이다.
이것은 단순히 임금하락, 인원 감축을 넘어 기업 내부의 '조절 장치'의 제거를 의미한다.

근본적으로 기업 내부를 '가족' 모델로 구성해서 한국인 특유의 정을 바탕으로
조직을 꾸려가거나, '군대' 모델을 차용해 수직적 기업형태에서
CEO가 미처 신경쓰지 못하는 개개인 조직원의 감시를 특정 직급의 조직원에게
권력을 부여해서 통제하는 형태로 이어갔던 한국 기업 내부의 시스템에서
노동자들이 쟁취한 자신들의 권리는 간신히 기업의 균형성을 지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지만, IMF 시기에 기형적으로 변형된 한국의 '조직 컨설팅'
개념에 의해 이 균형추마저 무너져버린 것이다. 

대신 기업들은 이러한 무차별 다운사이징에 대한 명목으로 인센티브제 등을 도입한다.
사람들은 잘라야 겠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자를 순 없다.
그래도 어느정도 합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인센티브제'로
조직원끼리 경쟁시켜 낙오자를 떨어뜨리는 방법을 택한다. 



여기서 우석훈은 시장과 조직의 차이점, 조직론의 미묘함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구성원 사이의 경쟁 수준을 기계적으로 높이면 이에 대응하는 개인들은
오히려 소그룹을 만들어 소그룹 사이의 경쟁으로 전화시키면서
자신을 둘러싼 직접적 경쟁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대응전략을 사용"한다.

"조직 구성원 사이의 경쟁 촉진을 위해 IMF 이후 도입한 인센티브제 등
새로운 제도들이 오히려 소그룹 등장을 촉진시켜 생산적인 경쟁을
제약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을 우리는 지난 10년 간 목격했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인가? 아마도 그럴 것 같다.
하지만 단언할 수만은 없는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보다 잘 살고 싶어하지만 성과급제와 같은
극단적이고 인위적으로 경쟁을 촉진시키려고 한다면 오히려 사람들은 뭉치게 된다.
나 하나의 성공보다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안정성'을 택하는 것이다.
(문득, 어쩌면 여기서 진보주의의 성공 전략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경쟁이 없어도 소그룹이 강화되고, 경쟁이 강해지면 소그룹은 더욱 강화된다.
즉 경쟁의 촉발은 기업 내부의 다양성을 줄이는 힘으로 작동하여
결국 조직의 효율성과 창조성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조직론이 미묘하고 섬세한 이유다.   

 

조직론이 아직까지도 체계적인 이론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조직의 결정은 수많은 가치와 목표가 충돌하면서 우연히 만들어진,
의도하거나 기획되지 않은 자기결정체에 가깝기 때문이다.
조직이 오래되고 커질수록 이러한 성향은 더욱 강해진다.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조직은 너무나도 불안정하다.
사실 그 내부의 허약한 뼈대를 생각하본다면 조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우는 한국 경제의 황금시기에서
조직 내부의 문제는 그저 '덩치 키우기'로 가려졌다.
경제 발전이란 국가적 목표 아래 조직 내부는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눈부신 경제성장률이 모든걸 가려줬다.

한국 경제가 세계화로 개편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황은 더욱 최악으로 발전했다.

우석훈은 "현재 우리나라 시스템이 그래도 버티고 있는 것은
실업률이 증가하고, 대기업과 같은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일자리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가봐야 별 볼 일 없다'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현재 골격이 유지되는 셈이라는 점이다.
이런 조직 내부에서는 결코 지식기반 사회에 필요한 창의적인 돌연변이가 탄생할 수 없다.
노동자를 적대시하고, 기업이 더 많은 권력을 갖기 위해
비정규직만 늘어나는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힘들다.

조직원들을 경쟁시키는 것과 노동자를 상품화해서 일정기간 계약하는 것..
이러한 일련의 정책들은 조직을 시장과 동일시해서 취급하는 것에 기인한다.
그러나 조직은 결코 시장과 똑같지 않다.

"조직이라는 특별한 관점으로 기업을 분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조직은 시장과 달리 경쟁을 제한해서 '협동진화'를 만들어낸다는 데 있고,
바로 이 협동진화를 위해 이사회와 총회를
비롯한 수많은 협력 장치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협동'은 조직이, 그리고 인간이 시장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특징이다.
한국의 대기업이 '아름다운 기업'이 되는 힘이 조직론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우석훈의 가장 큰 장점은 탁월한 현식인식과 문제제기이다.
그러나 이는 장점과 동시 단점이 된다. 용두사미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문제제기 면에서는 탁월하지만, 결론으로 다다르면 힘을 급격히 잃어버린다.
그가 결론이라고 내세우는 해결책은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원론적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조직론을 통해 이루어야 할 '아름다운 기업'이라는
지극히도 역설적인 표현은 "희망은 없다"며 잔뜩 겁을 주고 시작한
초반의 문제제기와 비교하면 차라리 반전에 가깝다. 

비단 이것이 우석훈 혼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한국 경제학 사상 유례없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제도경제학자 장하준 역시
머리를 치게 만드는 문제 분석에 비해 결론은 두루뭉실하다.
폴 크루그먼이나 로버트 라이시의 경제학 관련 저서들을 보아도 답은 '없다'

결국 이것이 경제학의 기본 특성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쩌겠는가.. 태생이 절망적인 학문인 것을.
이런 문제제기마저 자본주의 체제 내에 잠식당하는 그 순간, '희망'은 없는 것이다.

사회는 상충되는 입장이 부딪치면서 발전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견해는 오히려 부적용을 유발시키지만
사회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런 문제 제기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의 현실 분석은 [촌놈들의 제국주의]와
'경제대안시리즈' 최고의 저서 [괴물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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