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비판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뉴라이트 단체가 낸 저작물을 하나도 읽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두 권의 뉴라이트 비판서를 먼저 읽었다. 사실 이렇게 어떤 대상에 대한 (그것이 좋건 나쁘건) '실체'보다 '타인의 견해'를 먼저 접하는 것은 자칫하다간 '타인의 견해'를 마치 나의 생각과 주관인 것 마냥 고착될 위험이 있기에 상당히 안 좋은 접근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뉴라이트 비판]과 [뉴라이트 사용후기]라는 두 권의 뉴라이트 비판서를 읽기 전에 상당히 고민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와는 정치적 성향이 너무나도 다른 단체의 저작물을 내 돈 주고 사서 보는게 아직까지 매우 아까운 것이 사실이고,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책을 빌려보는 방법도 있으나, 사실 끝까지 읽을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다-_-;

분명 나와는 성향이 판이하게 다른 단체이지만 그럼에도 뉴라이트에 관해 긍정적인 면을 억지로 하나 꼽아보자면 이들이 있음으로 인해서 한국 사회의 정치적 담론이 다시금, 아니 최초로 활기를 띠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광복 이래로 우리 사회의 정치적 담론이 이렇게 '균형적인' 위치에서 갑론을박을 띤 적이 있었던가 싶다.

반공은 종교였고, 독재에 맞서는 담론은 '불법'이었다. 그렇기에 담론투쟁은 좌파 내에서 한정된 '그들만의 리그'였을 뿐이다. 아직도 꼴통들은 반공을 들먹거리며 과거의 영광을 찾으려 하고 있지만. 어쨌건 이들은 다시금 우리 사회, 정치 전반적인 분야에서 활기를 띠게 해주었다. 이들이 그나마 기존의 수구들과 다른 점은 최소한의 '논리'는 있다는 점이다. 뉴라이트 대표격인 이영훈의 학자적 자질은 말할 것도 없고, 신지호나 안병직 등 현재 뉴라이트를 대표하는 간판들은 결코 '반공'만 무조건 들이대던 예전의 그 찌질한 수구들과 동급이라고 볼 수 없다.

그래. 이건 최소한의 예의다.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해도 '논리'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 지금까지 보수를 위시한 수구세력들이 사회에 끼친 가장 큰 악영향은 극단적 주장과 이념 공세로 인해 젊은 층에게 정치 혐오증을 넘어선 정치적 무관심을 심어주어 정치에 눈을 돌리게 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한나라당을 위시한 수구세력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 젊은 층들의 크나큰 관심에 소위 말하는 '개혁정권'들이 부합하지 못한 실망스러운 정책 방향과 메이저 언론 조,중,동의 여론몰이도 단단히 한 몫 한 것이 사실이지만 항상 수세에 몰릴 때 극단적인 단어선택과 색깔 공세론을 펼친 쪽은 주로 수구세력들이었다)

따라서, 뉴라이트를 비판을 하기 위해선 보통 수구들을 대응하는 방식처럼 '지나가던 개가 짖나' 따위의 무관심으로 일관해선 안 된다. 이들은 '논리'가 있기 때문에 '비난'이 아닌 '비판'이 필요하고, 그 논리 속에는 충분히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이들을 자신들의 지지세력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 (실제로 젊은 층들 사이에서는 반MB 정서 못지 않게 뉴라이트의 지지자들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그래서 김기협의 [뉴라이트 비판]은 나는 수준이하의 비판서라고 생각한다. 일단 현 한국 사회의 절망적인 인문, 사회과학 도서 분야에서 갖은 현실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좋은 책을 출간해주고 있는 돌베개에서 이런 수준이하의 비판서가 나왔다는 사실에 유감을 표하고 싶다.

김기협은 한가지 명제에서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을 시작하고, 뉴라이트의 저작물과 그들의 행태에 대해 꼬치꼬치 비판을 할 때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또다시 이 한 가지 명제로 돌아와 그들을 비판한다. 이 한가지 명제는 이 책에서 뉴라이트를 비판할 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명제가 도출된 어떠한 자료나 근거도 이 책에서는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다" 이것이 이 책을 이끌어가는 커다란 중심추다.

비판하는 입장에서 이보다 더 큰 무기는 없다. 아니, 세상에! 인간이 이기적 동물이라니! 사회의 총체적인 조화를 중요시하는 '좌파'의 입장에서도 이는 완전히 상반되는 주장일 뿐만 아니라, 요새 그 폐단이 속속들이 들어나서 많은 '안티'들을 양성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사상의 중심 아닌가! 그래. 이건 쉽게 말하면 19세기 제국주의자들의 주장이다. 홀로코스트를 탄생시킨 우생학으로 발전한 그 위험한(!) 전제 말이다. 김기협은 옳지 잘 걸렸다. 하고 책 내내 '얘네가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래요~' 라면서 신명나게 쏘아댄다.

자신의 일기에 쓰는 글은 잘못된 주장이건 객관적인 주장이건 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서에서, 그것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의견을 펼칠 때에는 여러 사람이 읽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나와 뜻이 같은 사람들도 있겠고 나와는 정반대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게다. 중요한건, 나와 의견이 일치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떠나서 비판을 할 땐 충분히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라이트의 성격을 알아보기 위해 제일 먼저 검토한 것이 안병직과 이영훈의 대담집 [대힌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로, '뉴라이트 사관'의 대표 두 사람의 담론 범위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과연 이 두 사람을 '역사학자'로 볼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든 것은 이 책을 몇 장 넘기기도 전의 일이었다. 역사란 인간을 공부하는 학문이다-

"안병직과 이영훈, 이 두 사람을 '역사학자'로 볼 수 있겠는가"라는 말은 상당히 민감한 말이다. 당사자에게도 그렇거니와 안병직과 이영훈의 '시각'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김기협의 이 말처럼 아예 직업 자체를 부정하는 대담하고 치기어린 발언은 굉장히 불쾌하고 위험한 말이다. 이렇게 당당하고 대담하게 화두를 던져 놓았으면 자신이 왜 그렇게 생각을 했는지 '이유'가 나와야 될 것이다. 그런데 김기협은 바로 뒤에 '역사란 인간을 공부하는 학문'이라며 원론적인 이야기로 들어가고 있다.

물론, 뒷부분에 "안병직과 이영훈은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해놓고 그 위에서 역사 이야기를 펼쳐나간다"라고 '그들을 역사학자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이유가 나오긴 한다. 좋다. 그런데 어디에서 이들이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해 놓았다는 말인가? 자신이 그렇게 자신있게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그들의 저서에서 발췌한 부분 없이 김기협은 '얘들이 인간은 이기적 존재래요' 라고 단정지은 채 부시먼족과 홉스와 마르크스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뒤에 이들이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오긴 하지만 이는 김기협이 그들을 ‘까기’위해서 발췌한 것처럼 그렇게 중요한 의미로 쓰인 것은 문맥상으로 따져봤을 때 전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꼬투리 잡기 아니면 무엇인가. 너무 졸렬하고 치시한 비판 방식이다) 과연 이러한 비판이 설득력이 있을 수 있는가? 혹시 김기협은 자신의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그들의 대담집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를 읽었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자신의 의견을 풀어나가는 것일까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김기협의 어처구니없는 비판은 계속 이어진다. 그는 참으로 근거가 없는, 감정에 치우친 비판을 이 책에서 자주 보여주고 있는데, 일례로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일제시대 연평균 3.6%의 경제성장률'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연평균 3.6%의 경제성장률은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라며 하는 말이 "오늘날처럼 산업화가 이뤄질 만큼 이뤄진 상황에서도 연 5% 이하로 성장률 목표를 낮추는 것을 놓고 온 국민이 서운해하는 판인데, 아무것도 없던 출발점에서 3.6%가 높은 성장률이라니?"란다.

참... 할 말이 없다. 온 국민이 연 5% 이하의 성장률 목표를 서운해 한단다.

한국은 경제성장률 환상에 빠져있는 나라다. 박정희의 군사독재는 그렇게 욕하면서 대선 후보들은 연 5% 이상의 군사독재시절의 경제성장률을 약속한다. 이것이 포퓰리즘이 아니면 무엇인가. 실제로 이제 더이상 한국과 같은 선진국에 접어든 국가는 이러한 경제성장률이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이제 웬만한 사람들에게 이런 식의 경제성장률을 앞세운 자기 포장은 먹히지 않는다. 김기협은 웬만한 사람이 아닌 것일까? 아무리 '비판'을 한다한들 우리나라 정치인, 대선후보들의 매번 반복되는 근거없는 과대포장을 들먹이면서까지, 마치 그것이 온 국민이 염원하고 있는 의견인 것처럼 내세워야 할 만큼 그렇게 '무기'가 없는 것인가?

이어서 나오는 그의 주장은 참 가관이다.

"1960년대 이후 20여 년간 한국 경제가 이룩하던 연평균 7~8%보다도 높은 성장률이 근대화 출범 시점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중략) 맨바닥에서 시작하는 산업화가 수십 년간 연 4% 미만의 성장률에 머물렀다는 것은 일제 통치가 성장을 도와준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억누르고 가로막은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 이런 용감무식한 주장을 한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다.

아무리 경제학자가 아니라도, 경제라고는 전혀 문외한인 내가 봐도 이 주장은 말이 안 된다. 경제성장률의 기준을 '산업화의 정도'로 보는 시각도 그렇거니와, 이제는 하다하다 '비판'을 위해서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우는 전세계적으로 유래없는 박정희 시절의 혁명적인 경제성장률을 거론한다. 전세계적으로 극히 '예외'인 박정희 시절의 경제성장률을 들먹이며 '여기에 비교하면 3.4%는 아무것도 아님'이라고 한다. 김기협은 기적이 무슨 뜻이고 신화가 무슨 뜻인지 알긴 알고 있는 것인가?

식민지근대화론의 가장 큰 문제는 내용을 떠나 '민족정서'를 자극하는 주장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평생이 지나도 우리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질리 없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주장이 아무리 논리정연하다 그래도 민족정서에 반하는, 굴욕의 역사를 긍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이론의 이름과 내용 들은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서'에서는 비판을 하려면 최소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주관적 생각을 펼쳐나가야 한다. 김기협은 너무 감정에 의존해서 비판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판을 위해 들먹이는 근거들도 전혀 타당성이 없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근대화론이 분명 그 이론 상에 허점이나 이념적 성향이 내포되어 있을지 몰라도, 이런 식으로 비판을 하다니... 수구 세력들이 진보를 비판, 비난하는 태도와 다른게 뭔가?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주장들이 너무나도 많다. 글이 길어질 것 같아 마지막으로 하나만 들어보자. 역시 경제성장에 관련된 이야기인데, 김기협은 또다시 감상이 빠진다. "경제 통계의 한 페이지를 보며 허망한 느낌에 빠진 일이 있다. 1960~1990년간 한국의 총 경제성장률이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가 거의 같은 수준이었음을 보여주는 통계였다. 이는 한국의 고속성장이 인권의 극심한 희생을 필요로하는 '기적적'인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이 자연스럽게 거치게 되어 있는 경제발전의 한 단계였음을 시사해준다."

이건 대체 뭔 소린가? 아하. 이래서 김기협은 한국의 고속성장이 기적적인 것이 아니니 일제시대 경제성장률은 낮은 것이다라고 한건가? 참 웃기는 소리하고 계신다.

동아시아의 일부나라, 아니 그래 김기협의 말마따나 여러 나라의 1960~1990년간 경제성장률이 우리나라의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고 해서 이것이 '동아시아 지역의 당연한 경제발전의 단계'라는 결론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 단지 경제성장률의 통계만으로 그것이 당연한 경제발전의 단계라고? 경제라는 것은 정치건 문화건 사회의 모든 분야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섬세한 분야이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단순히 다른 주변 여러 국가와 대비해서 평균화, 단순화 시키는 것일까?

박정희 권위주의정책의 호불호를 떠나서 인권유린이 없었어도 경제가 지금처럼 발전했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분명 근현대사의 비극이고 내가 박정희를 개새끼로 보고 있는 이유도 이것이지만 그래도 난 김기협의 생각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평균적 발전이 어떻게 '우리날 경제발전의 당연한 단계'임을 시사해주는가. 제발 좀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말해라.

지금까지 이 책에 대해, 김기협의 시각에 대해 동의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말했다. 김기협과 나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이 뿐 만이 아니다. 쓰기가 지칠 정도로 많다. 물론 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말 그대로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내 생각을 보고 전혀 동의를 하지 못할 수도 있고, 심한 말로 “네가 김기협보다 잘난게 뭐가 있는데 어디서 아는 척이냐”라고 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제 값을 주고 구입한 책이라면 이정도 비판을 할 수 있는 자격쯤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이 불만인 가장 큰 이유는 돌베개라는 출판사도 그렇거니와 제목을 봤을 때 ‘이제야 제대로 된 뉴라이트 비판서가 나왔구나’ 생각했던 기대심에 대한 배신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책이 그렇게 '나쁜 책'은 아니다. 어찌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나쁘다'라고 단정지을 수 있겠는가. 단지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뿐이지.

나름대로 이 책이 가지는 의의라고 할까. 그것은 수많은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뉴라이트라는 단체에 대해 감정적 접근이 아닌 이성적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내가 적었던 이 책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가졌던 이유는 그의 주장이 감정적이어서가 아니라 '비판'을 위한 기본의식의 부재라는 측면이다) 감정적인 시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승만, 박정희, 한나라당하면 입에 거품을 물고 신랄하게 욕지거리를 날리는 (그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극우파들과 똑같이 대응하는)수많은 사람들에 비해서 이 책은 그래도 어느정도 '형식'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보며 참 아쉬웠던 부분은 거의 최초라고 할 수 있는 '뉴라이트 비판'에 대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비판의 당위성이나 설득력이 너무나도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뉴라이트에 대해 반감을 느끼고 있고, 뉴라이트 저작물을 하나도 읽어본 적 없는 나와 같이 '뉴라이트 비판'이 백발백중 먹힐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무장해체 상태인 나에게 있어서도 김기협의 [뉴라이트 비판]은 상당부분 의문이 들게 만들었으니... 걱정스러운 부분은 이처럼 허술한 비판서로 인해 뉴라이트 세력들이 오히려 을 얻지는 않을까 하는 부분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윤형의 [뉴라이트 사용후기]는 조금 다르다. 이 책에 관해서는 다음 포스팅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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