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페미니즘
니나 파워 지음, 김성준 옮김, 미셸 퍼거슨 해설 / 에디투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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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파워의 한국어판 텍스트 『도둑맞은 페니미즘(원제: 일차원적 여성)』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책의 후반부에 실린 미셸 퍼거슨의 논쟁적 해설이었다(이 글에 대한 니나 파워의 답변은 무엇일까 궁금하지만 이 책이 그것까지 포괄할 수는 없을 터이다). 두 페미니스트의 글을 통해 맑스주의의 전통이 있는 영국과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갱신을 지향하는 급진 민주주의 정치철학이 비판적 사고의 최전선에 위치한 미국 간의 차이를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학자이면서 동시에 실천 현장을 넘나들며 실험적 글쓰기를 하는 저자와 엄정한 학술적 논리를 추구하는 태도가 대조된다는 점에서도 흥미가 있었다. 여기에 책이 첫 출간된 2009년으로부터 10년 사이의 사회변화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해 주는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 이들의 텍스트들이 지닌 의미를 한국적 상황 속에서 꼼꼼이 검토하는 옮긴이의 긴 해설 만으로도 한국어판 텍스트가 갖는 가치는 충분한 것이었다.

 

우선 나는 파워나 퍼거슨의 논쟁적 두 입장을 읽으면서, 비록 인식과 방법론의 차이가 있을 터임에도 이 두 사람 모두가 오늘 우리의 삶을 벼랑 끝에 몰아넣는 신자유주의적 지배질서(자본주의)와 치열하게 대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토니 블레어와 빌 클린턴의 집권으로 시작된 '진보적 신자유주의'의 전개가 페미니즘 안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그리고 마침내 트럼프의 승리 이후 페미니즘은 불평등한 세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깝게도 여전히 '문화적 페미니즘'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의 페미니즘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니나 파워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일깨우고 있듯이 서구 페미니즘의 성과들을 그대로 적용하려 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지만, 이들의 고투는 분명 아직은 빈곤한 우리의 언어를 점검하고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게 할 자양될 것이라는 점에서 좋은 책들이 더 많이 번역되어 읽을 수 있기를 소망하게 된다.

 

나는 머지 않아 미셸 퍼거슨의 책도 한국어로 읽을 수 있었으면 하고 기대한다. 그녀는 해설에서 니나 파워가 낸시 프레이저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불평등을 낳는 자본주의와 대결하지 않는 한 여성해방도 없다는 입장(사회주의 페미니즘?)이라고 분류하며, 이러한 입장에 서서 신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을 포함한 다양한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데 동의할 수 없다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 나는 다양한 페미니즘을 인정하는 가운데 이것들이 경합하는 것에서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찾는 그녀가 자신의 급진적 민주주의의 입장에서 오늘의 자본주의와 어떻게 대결하고 변화의 지표들을 찾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논쟁이란 비록 입장을 달리 하지만 상대의 비판을 통해 자신의 논지의 빈자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이 두 영국과 미국의 훌륭한 페미니스트 사이의 논쟁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부가 부족한 나는, 아직은 턱없이 빈약할 우리의 지적 토대를 감안하더라도, 그나마도 몇 권 안 되는 서구 페미니스트들의 텍스트가 우리에게 필요한 논쟁의 씨앗이 되고 있는지를 떠올려 보고는 이내 우울해 지지 않을 수 없다. 기껏해야 '인종주의적' 태도에 불과한 난폭한 여성주의적 언사를 '급진 페미니즘'으로 착각하는 것 말고도, 책의 내용과 동떨어진 사안('남성 번역자')을 가지고 소비자 권리를 행사(여기서는 별점테러)하는 자칭 페미니스트을 목격하는 마음은 참담하다. 이것이 바로 파워가 이야기하는 '소비자 페미니즘'의 한국적 변종들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파워는 금융위기 이후 영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여러 저항의 맥락 안에서 인터넷 상의 언어적 저항을 의미있게 평가하면서도, 대체 이러한 이야기들이 여성 안에서만 한정되고 만다면 우리는 이것을 과연 '대화'라 부를 수 있을까(다시 말하면 이러한 일방적 언어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니나 파워는 자신의 한국어판 텍스트가 처한 볼썽 사나운 풍경을 두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이러한 물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우리는 이제 페미니즘이 참된 인간의 평등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묻는다. 이 질문은 고통스러운 질문이다. 니나 파워는, 페미니즘은 혁명보다 다 포괄적인 무엇이라는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사유를 계승하려고 한다. 그래서 임신, 출산, 육아와 관계된 우리의 윤리적/도덕적 감각을 넘어서는 상상력을 제시하려 한 파이어스톤의 고투가 어떻게 묵살되었는지까지 그녀의 사유 안에 끌어넣으려고 한다. 퍼거슨은 신자유주의적 페미니즘에 대한 니나 파워의 비판이 갑자기 빈티지 포그노그라피에 대한 이야기(이것은 파워의 텍스트가 지닌 약점이 아니라 빛나는 성취로 보이지만 어쨌든)로 건너뛰는(?) 것에 대해 불평하지만 나는 성을 도덕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서구의 중산층 페미니즘의 시선이 기독교 우파와 만나기도 하는 현실 앞에서 페니미즘이 도덕주의로 퇴행할 것이 아니라 해방의 가능성으로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새로운 실존의 양식을 제시하는 정치적 상상력으로서의 페미니즘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되고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읽혔다.

 

니나 파워의 한국어판 텍스트는 분량은 적지만,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논쟁'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책이며, 인트로 수준에서 반복되는 페미니즘 도서들 가운데서 이론적 논의와 대중적 논의의 경계에 있는, 일종의 실험적 글로서도 의미가 적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씁쓸한 마음으로 번역자의 약력이란 것을 읽는다.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사회구성체가 어떻게 재생산되는가'를 고민했던 현대 정치철학자들과 '가부장제적 지배가 어떻게 유지되는가'를 고찰했던 급진 페미니스트 이론가들 간에 존재하는 기대 밖의 연결지점들을 검토하는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라는 구절을 거기서 본다. 대체 왜 무엇이 불충분하며, 이 난리들인가. 책과 번역자에게 가해지는 치졸한 언어들은 이 책이 지니고 있는 그러한 가능성을 짓밟는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라고 했던가. 자신이 지닌 언어의 한계로 세계를 부패시키는 모리배-드루킹-들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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