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교시를 마칠 때까지 호재는 내처 엎드려 잤다. 그게 뭐든간에 대놓고 포기하는 짓을 할 때마다 번번이 뿌듯했다. 공부말고 다른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사람인 양 자신만만한 자세.
내겐 다른 꿈이 있다는 선언을 담은 포기, 수학은 내 인생에 하등 도움될 리 없음을 전면에 드러내는 거라서 호재는 떳떳했다. 어느 선생도 호재의 위풍당당한 포기를 제지하지 않았다. 정말로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됩니까? 호재의 등은 그렇게묻고 있었지만 누구도 호재를 깨워 답해 주지 않았다. 정답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질문을 던진 사람의 목소리만 나 날이 커져 가는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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