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이권우 지음 / 그린비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시간이 날아간다. 큰 애의 친구들을 모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인문학 교실을 시작한지 벌써 6년 차가 되었다. 그 사이 은밀한 소문(?)이 나서 초등반이 2, 중등반이 1개로 모임이 늘었고, 잠깐 거쳐간 아이들까지 합하면 대략 40명 가량이 되는 것 같다. 매주 1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는 것이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지만, 한 번 시작한 아이들은 꽤 오랜 기간을 버텨주었다. 힘든 과정이지만, 서로가 써온 글을 읽고 토론하는 것을 내심 즐기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애써 버티는 사이, 자신들의 글 실력이 늘었음을 확인하는 것은 즐거운 덤이다. 함께해준 아이들이 고맙다.

이권우의 <책 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는 중등반에서 아이들과 함께 읽은 책이다. 내친 김에 평소에 눈 여겨 보았던 책 읽기와 글 쓰기 책 몇 권을 겹쳐 읽었다. 책 읽기와 관련해서는 야마무라 오사무의 <천천히 읽기를 권함>, 글 쓰기와 관련해서는 서민의 <서민적 글쓰기>와 임승수의 <글쓰기 클리닉>을 함께 보았다.

우선 저자들의 면면이 눈에 들어 온다. 이권우는 국문학과를 나와 줄곧 책 언저리에서 살아온 도서평론가이다. 스스로를 책에 눈 멀어 책만 읽으며 살아가려는 한심한 영혼이라고 폄하하지만, 나는 그의 뚝심이 맘에 든다. 그래서 인지 그의 책 <호모부커스>는 읽는 내내 꽤 신뢰가 되었다. 한편 서민과 임승수는 글쓰기를 통한 커브가 절묘하다. 서민은 기생충학과 교수요 의사이지만 글쓰기에 대한 욕심이 대단하다. 임승수는 자칭 글치 공학도였는데, 아예 전문 작가로 전업한 경우이다. 두 사람 모두 글쓰기가 인생을 바꿨다고 힘주어 말한다. 야마무라 오사무의 이력은 특이하다. 대학 문학부를 나온, 현재는 학교법인 직원이다.  그러나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바, 그는 단연코 책 성애자이다. 빨리 녹아버리는 초콜릿이 아까워 천천히 빨아 먹는 아이처럼, 그는 천천히’ ‘탐닉하며읽기를 적극 권한다.

저자들의 인생 약력이 입증하듯, 책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사람이 배움에 이르는 통로 세 가지를 흔히 사람, 경험, 책이라고 말한다. 책은 사람을 바꾼다. 좋은 인생을 살고 싶다면, 좋은 책을 가까이 하면 된다. 책은 어떤 이에게는 직업을, 어떤 이에게는 치유를, 어떤 이에게는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니 나에게도 무엇인가를 가져다 주지 않을까? 책으로 인해 계 탈 날을 은근히 기대해본다.

네 권의 책을 겹쳐 읽으며 얻은 소득 중 가장 큰 몫은 마음의 부담을 덜고, 열등감을 해소한 것이다. 고백하건대, 사실 나는 책 읽기에 대해 약간의 열등감이 있다. 책 읽기보다는 영화 보기와 자전거 타기를 더 좋아하는 나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산다. 그래서 한 해를 시작하며 읽은 책 목록표를 만들어 보리라 다짐하고 부지런을 떨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스코어도 40권 남짓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한 주에 한 권 정도 겨우 읽는 셈이다. 더욱이 내 주변에는 책 읽기라면 이골이 났다고 할 법한 재야의 고수들이 제법 포진해있다. 그들의 독서 내공 앞에서 나는 수련이 시원찮은 사제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러니 언제쯤 하산이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나를 우리나라 사람 이권우가, 바다 건너 일본 사람 야마무라 오사무가 괜찮다고 위로해주니 눈물이 난다. 오히려 천천히 읽는 것이 더 좋단다. 이들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식의 독서법에 제동을 건다. ‘한쪽을 읽는데 1, 좀 늦더라도 2, 3로 읽어대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속독법이 아닌 천천히 읽는 법, 즉 지독법(遲讀法)이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이라고 명토 박아 말한다.

책 읽는 방법도 시대의 흐름을 타는 걸까? 빛의 속도로 달려나가는 현 시대를 닮아 책 읽는 것 조차 빠르게 읽고 정보를 소화해내는 속독법이 인정을 받는 눈치이다. 꼭 속독까지는 아니어도 책을 빨리 먹어 치우는 사람들의 은근한 자랑은 SNS에서도 좋아요를 외치며 엄지 손가락을 들게 만든다. 그러니 일주일에 겨우 한 권을 읽었다는 말은 명함도 못 내민다. 그러데 야마무라 오사무는 과거에는 책을 천천히 읽으라는 조언이 제법 많았다고 귀띔한다. 심지어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저자와 함께 15일 동안 집을 비우는 일이라고 말할 정도였다니! 이럴 수가, 그에 비하면 나는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많이 읽고 있는 셈이다. 천천히 읽기는 속도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의 반론이 아닐까? 빨리 읽어 치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외침 말이다.

물론 오해는 없어야겠다. 이들의 천천히 읽기는 어쩌다 한 번씩 책을 들추는 게으르게 읽기가 아닌 책을 사랑한 나머지 탐닉의 경지에 이른 것을 말한다. 오래 곱씹고 반복하여 읽으며, 천천히 음미하며 읽는 것이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책의 감추어진 진면목이 있다. 빠르게 읽기로는 결코 눈치 챌 수 없는 찰나가 있다. 이것이 조금 이해 되는 것이, 성경을 읽을 때 다독을 위한 통독도 하지만, 세밀하게 읽고 살피는 묵상도 하지 않는가? 천천히 읽기는 책을 묵상하듯 읽으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을 읽다 보니 송나라 북송 시절 시인이요 학자였던 구양수가 학문을 하는 자세로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 했던 삼다의 방법이 보다 정확히 이해가 되었다. 적어도 다독에 있어서, 그것은 말 그대로 많이 읽는다는 것인데, 그 옛날 책을 구하는 것이 쉽지도 않았을 뿐더러 지금처럼 쏟아져 나오는 출판의 양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을 테니, 구양수가 말한 다독은 빠르게 읽기가 아닌 반복하여 읽기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독은 속독보다 지독에 가까운 독서법인 셈이다. 그렇게 천천히, 반복하여 읽는 중에 다상량즉 많이 생각하기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목적에 따라 빠르게 읽어 내야 할 순간도 있겠지만, 책을 사랑하여 천천히 그 내용을 살피고 음미하라는 가르침이다.

반면에 글쓰기의 노하우는 달라진 바가 없다. 다작! 그것이다. 서민은 자신이 경험했던 글쓰기 지옥훈련을 소개한다. 10년 동안 하루에 두 편씩 블로그에 글쓰기! 글의 완성도야 알 수 없지만, 하루에 두 편의 글을 꼬박꼬박 써서 올렸다니, 그의 성실함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서민의 글쓰기 노하우는 성실한 글쓰기이다. 임승수는 사람들이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완성도에 목을 메느라 시간을 지나치게 낭비하는 경향을 꼬집는다. 글쓰기를 배우는 입장이라면 완성도에 집착하지 말고 일단 글의 양에 집중하라는 조언이다.

글을 많이 써보라는 조언과 관련하여 불편한 것 하나는 어느 수준까지 나를 드러내느냐의 문제이다. 어차피 글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는 것이니만큼,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표현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나는 이 적정 수위에 인색하다. 인터넷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지인들을 볼 때면, 그들의 용감한 자기 개방이 좋기도 하면서(엄지 척!), “아니, 이런 것까지?”라는 물음이 슬그머니 마음 한 켠을 차지한다.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는,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한 마디로 인터넷 상의 시시콜콜함이 나는 싫다. 그러니 인터넷에 글을 쓰려면 아예 노출증 환자가 되라는 임승수의 조언이 부담스럽다. 서민은 자신의 책에서 작정한 듯, 자신의 외모를 셀프 디스한다. 책 사이사이에 얼마나 자신이 못났는지 입증하려는 듯 전신 사진을 올려놓았다. 이런 외모였으니 왜 열등감이 없었겠느냐고, 또 글쓰기로 열등감이 자신감이 되었다고 강변한다. 외모를 보아하니, 미안하지만 그랬을 것 같다. 덕분에 그의 책은 유쾌하고 설득력이 있다. 서민의 책에 부재로 붙은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이 느껴진다.

인정한다. 글쓰기에 대한 욕망과 노출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나는 두려움이 조금 더 큰 셈이다. 이런 생각이 누군가에게는 아쉬울 것 없는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솔직한 나의 현 위치이다. 그러니 이 부분에서 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책을 읽으며 야마무라 오사무의 책에서 발견한 코끼리와 생쥐의 비유가 마음에 들었다. 심장 박동이나 혈액 순환 사이클에 있어서 코끼리가 생쥐보다 열여덟 배나 긴 리듬으로 산다는 어느 교육 방송의 연구보고이다. 음식을 먹는 코끼리와 생쥐를 상상해보라. 생쥐에 비해 열여덟 배 느린 코끼리의 리듬은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반면에 생쥐의 리듬은 빨리 감기를 하듯 쏜살같다. “살아가는 리듬이 다르면 세계관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33). 물론 저자는 책 읽기에 있어서 코끼리의 리듬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나는 이 비유를 다르게 읽었다. 책 읽기는 코끼리의 리듬으로, 글 쓰기는 생쥐의 리듬으로 하면 좋겠다. 코끼리처럼 천천히 곱씹어 보는 깊이 읽기를 실천해보리라. 생쥐처럼 글감을 발견하면 완성도 때문에 혹은 노출 수위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일단 재빨리 써보리라.

그러고 보니, 그 동안 리듬을 반대로 살아왔다. 책 읽기는 생쥐의 재빠른 리듬을 따라가지 못해 버거워하며 숨이 찼다. 반면에 글 쓰기는 완성도를 따지고, 노출 수위를 생각하느라 코끼리 리듬으로 쓰다 보니 완성하지 못한 채 미적거렸다. 어떤 리듬을 타느냐가 중요하다. 책 읽기는 코끼리처럼, 글 쓰기는 생쥐처럼. 적절한 리듬감이 책 읽기와 글 쓰기를 생동감 넘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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