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굴뚝청소부
이진경 지음 / 새길아카데미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4년 전 내가 신입생 때 선배들이 추천해준 책인데, 올해에도 계속 그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 보면, 아직도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담론의 유효함을 알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은 단순한 철학 입문서가 아니다. 하기에 서양 철학 사상의 원류인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를 훌쩍 뛰어넘어 데카르트의 코기토부터 시작하는 대담성이 돋보인다.

철학 사상의 통시적 흐름이나 주제의 분류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큰 흐름을 이어나간다. 일관된 문제 의식의 틀 속에서 각 철학 사상들을 적절이 배치/연결시켜 나간다. 즉, 중세를 넘어선 근대, 근대 철학에 대한 회의와 해체, 탈근대로 넘어가는 길목 등의 분절적 지점들에 주목하여 각 경계들의 극복을 부각시킨다. 이를 기반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의 형성을 도출해내고, 결국 푸코와 들뢰즈에 이르는 최근의 담론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물론 중세와 근대의 철학적 개념에도 소홀히 하지 않아, 진리의 권위를 넘어서는 근대적 주체 형성 과정을 짚고 넘어감으로써 철학 입론으로서의 기본적 요소에도 충실하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은 역시 맑스, 프로이트, 니체 등에 의한 근대 철학의 해체가 구조언어학, 사회인류학, 정신분석학과 맞닿는 과정과 그것을 통한 철학의 해체(즉, 포스트 모더니즘의 형성)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므로 포스트 모더니즘 입문을 위한 철학사 및 개념 상의 지도 그리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데카르트의 코기토로 비롯한 근대 철학의 '주체'는 푸코 등에 이르러 해체되는 양상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들뢰즈의 '욕망하는 생산(desiring production)'을 근대의 한계를 넘어서 힘과 권력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으로 인정하지만, 이에 대한 자세한 부연이 부족하여 허전한 감이 있다.

이 책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쉽게 쓰였다는 점이다. 어려운 철학적 개념들을 쉽게 설명하려고 애썼고, 작자 특유의 감각적 비유 등을 통해 이해를 돕고 있다. 스피노자의 '실체'와 '양태'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터미네이터2>의 T-1000이라는 인조인간을 들장시키고, 푸코의 '동일자'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설명하기 위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란 영화 속의 정신 병원을 예로 들고 있다.

하지만 '철학의 경계 설정과 해체'라는 문제 설정에 중심을 두었기 때문에, 각 철학 사상들의 일면만을 다룬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철학 입문자의 경우에는 다른 일반 철학 개설서와 병행해서 읽으면 그 이해의 폭을 한층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이진경씨가 쓴 <상식 속의 철학 상식 밖의 철학>, <논리 속의 철학 논리 밖의 철학>도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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