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플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 그리고 앤서미 밍겔라 감독의 '리플리'의 원작자로 유명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어찌보면 서스펜스 장편 소설작가로 명망높은 그녀의 신간이기에 기대감이 너무 앞선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책을 펼치면서 놓기까지 일관되게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어쩌면 책을 보는 내내 불편한 내 심리를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냉랭하면서 담백하고 거침없이 쏟아내는 표현, 그리고 실소를 자아내는 글귀에 내 스스로가 불편했음은 분명했고, 그녀의 자유분방한 실존주의 사상이 신의 존재를 믿고, 생활하는 나의 신념과 충돌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쉽게 써내려간듯한 짧은 소설에서도 '이게 뭐야~'라는 나의 생각과 상반되게 생각나게하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매혹적인 흡인력이 있었다.
 
솔직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런 주제도 아니고... 그리고 감동과는 조금은 거리가 먼 책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나의 일면을 보는 것같아 낯 뜨거워 감추고 싶기도 했다.
 
책의 첫부분에 나오는 '손'이란 작품은 결혼을 의미하는 손을 달라는 것을 기괴하게 진짜 손을 잘라줌으로써 한 인간의 끝을 보게하는 블랙코메디 같은 내용이다. 중의적 의미를 띈 문장을 가지고 어찌보면 말장난처럼 써내려간 내용을 보고 있자니, 언어 선택이나 말을 함에 있어서 따르는 책임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전도사'란 제목의 작품에서는 갑자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이 세계적인 전도자로서 살다가 너무나 허무맹랑한 자기 오류에 빠져 창에서 뛰어내려 최후를 맞이하는 스토리다. 과연 평생 자기가 맞다고 믿었던 것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을 전도했지만, 결국 너무나 허무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보면서 인생무상을 말하고자하는 작가의 염세주의가 여실히 들어난 부분이었다. 하지만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난 작가의 그런 시선이 과연 그녀가 잘 알지 못하면서 써내려간것은 아닐까 하는 작가 스스로의 오류가 아닐까한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었다.


'머리로만 책을 쓴 남자'

소설가였지만, 평생 눈에 보이는 책은 한권도 쓰지 않은 남자. 결국 머리속에서는 완벽하게 책을 8권을 썼지만, 그외에는 아무도 그 소설을 본 적도, 그 내용도 알지 못했다. 가족까지도 말이다. 그러나 한 편 그는 행복한 사람이었단 생각이 든다. 비록 그의 아들은 그를 조소했지만, 그의 아내만큼은 그를 훌륭한 소설가로 여기고 심지어 숭배하기까지 했으니. 심지어 머리도 같은 방향으로 틀어져(?) 그의 남편이 가족묘에 묻혔음에도 불구하고, 문인 묘지에 묻힌걸로 착각하며 죽었으니 말이다. 
 

살면서 행복하려면 같이 나누는 사람과 같은 방향으로 미치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정상적이지 못한 것을 지적만 하고 살았다면 그 부인만큼 불행한 사람도 없었을텐데, 배려가 착각이 되고, 그 착각속에서 살다보니 그녀는 그 남편만큼이나 행복한 생애를 마칠 수 있었다. 가끔은 이렇게 함께 미쳐주는 것도 삶을 행복하게 사는 하나의 방법일까?

 
'당신이 견디며 살아가야 할 것'

부부에게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그 부인이 살인자로 평생 자책하며 사는 것을 평생 지켜보는 남편.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숙명으로 알고 견디어 내는 어쩌면 이런게 사랑일까? 

 
-----

사실 그 때문에 그들의 결혼 생활이 반쯤은 망가졌다. 하지만 결코 이혼까지 갈 문제는 아니었다. 지니에 대한 그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쨌거나 그녀는 여전히 지니였다. 좀 달라진 것뿐이었다. 지니도 자신이 달라졌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견디며 살아야 할 것이지." 스탠은 혼자 중얼거렸다.

-----

 
잔인한 내용을 감정을 싣지않고 휙~휙~ 써내려가는 글에 화가났다. 그런데 책을 덮은 지금 건조한 그의 글이 끈적하게 남는건 왜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책을 다시 한번 뒤적일 것만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