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통권 135호 - 2014년 3월~4월
녹색평론 편집부 엮음 / 녹색평론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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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대한 투명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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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별이 총총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9
배영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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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가 등단한 시인인 줄 몰랐다.   

나처럼 스무 살 티를 갓 벗은,  

그러나 아직은 후드티를 즐겨입는 또래라 여겼다.  

그것은 선배가 동안이라는 얘기도 되겠지만, 

그는 늘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고,  

대답하기보다는 질문하는 쪽이었다.

어느날부터인가 선배가 너무 좋아지고

선배의 아주 작은 일까지 알고싶어지면서

나는 그의 등단작부터 찾아 읽게 되었다.

선배와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선배를 바래다줄 때면

늘 선배집 앞의 철길을 건너야 했다. 

 

 

 

기차에겐 후진이란 게 없다, 그걸 알 때까지 

아이들은 습관처럼 손을 흔들었지만 

되돌아오는 건 늘 매캐한 기름 냄새뿐이었다 

사람들은 차창 밖으로 질주하는 풍경엔 관심조차 없었으므로, 

그 어떤 답례나 화답은 없었다 

비릿한 쇳내와 주인 모를 지린내를 맡으면서도 

기찻길 놀이터엔 언제나 때 묻은 아이들로 북적였다 

누가 누구랑 x x 했다는 붉고 삐뚤삐뚤한 글씨가 써진 철교 위에서는 

사춘기를 거치지 않고 

재빨리 어른들의 세계로 진입하려는 아이들이 

달려오는 기차와 정면으로 마주치곤 했다 

그것은 어른이 되기 위한 이곳 기찻길 동네만의 통과의례, 

몇 해 전 한 사내가 철로를 안고 자다 객귀가 되었고 

점(占)집 봉식이는 끝내 어른이 되지 못한 채 

기차의 제물이 되고 말았지만 

강물은 언제나 그런 영혼들을 무심히 받아먹곤 했다 

객기와 담력을 구별하기엔 

기차는 너무 빨랐으며 강물은 너무도 태연히 흘렀다 

철교 아래서 듣는 기차 소리가 

내 몸을 밟고 지나갈 때마다 내 치마폭도 조금씩 요동을 쳤지만 

제풀에 꺾여버린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거대한 바퀴가 바퀴를 끌고 가는 

그 끝없는 갈증이 

어른이 되어서도 지워지지 않았다  

                                          - <바퀴는 무럭무럭 자란다> 전문

 
   

그러다 나는 또 선배가 시인이라는 사실을 차츰 잊게 되었다.  

그는 글 쓰는 사람입네 하는 포즈 대신  

작고 좁은 말에 오래 몸 떨구었고

아픈 자세를 취하지 않고도 좀 수척해져 있었다.  


   
 

돌아가신 엄마의 수레꽃밭을 시멘트로 봉해버리고  

아버지는 하릴없이, 

대청마루에 앉아 있는 날들이 늘어만 가신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신다 

                                             - <수레국화> 전문 

 
   


언젠가 대학원 강의시간에 선배가 갖고 온,  

이 시집엔 실리지 않은  

'어떤 시를 쓰고 한동안 아파야 했다'는 글에 묻어 있는 아득함을

이제 조금 느낀다.    

 

이 시집의 표지이기도 한 보라빛은  

그런 점에서 선배를 참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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