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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 퇴진 요정 김민식 피디의 웃음 터지는 싸움 노하우
김민식 지음 / 푸른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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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MBC) 김재철 사장과 이명박 대통령은 달랐다. 무슨 양파도 아니고 까도 까도 온갖 비리가 계속해서 나오는데, 눈도 깜짝 안 했다."(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128쪽)


최근 출간된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김민식, 푸른숲, 2020>를 읽으면서 잠시 기억이 희미해져 버릴 뻔한 시절을 떠올렸다. 지금 코로나 19로 일상이 무너지자 보통의 평온한 날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듯, 그때 시절이 그랬다. 특히 언론 탄압은 말로 다 못했던 때. 하도 방송이 무슨 5 공화국 시대도 아니고 대놓고 어이없이 돌아가니까 국민들은 공영방송에 등을 돌리게 되고 '나꼼수' 같은 팟캐스트로 언론의 중심이 옮겨가고 있었다. MBC, KBS 뉴스는 기레기(기자+쓰레기) 방송이라며 조롱받았다. 공영방송 파업 소식은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다. 어차피 공영방송에 대한 기대나 애정이 사람들 마음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당시 공영 방송에 몸담고 있던 이들은 괴로웠을 테고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다. 싸울 것이냐, 부역자가 될 것이냐. 이 책은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들에 대해 무심했던 사이, 방송 정상화를 위해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며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던 날들이었다.



예능 드라마 PD, 색다르게 유명해진 사연


저자 김민식 PD는 ‘뉴 논스톱(200~2002)’과 ‘내조의 여왕(2009)’을 히트시킨 예능감 넘치는 PD다. 그런데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MBC 프리덤’이라는 노조 영상과 ‘김장겸은 물러가라’라는 1인 라이브 방송이다. 어쩌다 예능PD는 직원들과 뮤비를 만들고 1인 투쟁 방송을 찍게 되었을까?

'방송 만들어서 시청자들을 재미나게 해 주는 일이 최고의 공익(45쪽)'이라 여기며 파업이나 노조에 관심 없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 어쩌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노조 부위원장 직을 맡게 되면서 인생이 180도  변하게 된다. 드라마 제작에 차질이 생기는 게 싫어 처음에는 어떻게든 파업을 막아보자 했다. 하지만 최승호 PD, 이용마, 박성제 기자와 같은 분들의 헌신된 삶에 영향을 받으며 점점 개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눈떠가게 된다.

예능 피디답게 이왕 하는 싸움 재밌게 하자며 '굿판'도 벌이고 'MBC 프리덤'이라는 뮤직비디오도 만들고 'MB 낙하산 김재철은 퇴진하라'는 구호를 등에 달고 마라톤에 참가하기도 한다. 그러다 검사한테 불려 가 영장 심사도 받는 등 수모를 겪는다.

이후 그의 PD로서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윗선에 찍힌 대가로  제작 일선에 배제된 채 방송 송출 부서로 옮겨진다(그에게 그것이 더욱 끔찍한 형벌인 것은 정권에 부역하는 뉴스를 강제 시청해야 하는 업무였기 때문이었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티고 버틴 그에게 2017년이 온다. '정윤회' 아들을 캐스팅하라는 윗선의 부당한 지시를 공론화하게 되면서 그는 MBC의 공공의 적이 된다. 그러나 물러나지 않는다. PD정신을 살려 그는 MBC 사옥에서  '김장겸은 물러가라'는 1인 투쟁 퍼포먼스를 라이브 방송으로 중계하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의 투쟁기는 최승호 PD의 영화  <공범자들>에 기록된다. 영화 <공범자들>의 개봉으로 공영방송 정상화를 향한 국민들의 심이 높아진다. 여론의 힘을 업고  MBC 파업이 재개되며 결국 김장겸 사장 해임되어 물러난다.


지는 싸움을 계속한 이유


2015년, 주조정실 엠디로 발령이 났다... 주조정실은 유배지 중에서도 'A급 전범'들을 모아놓은 곳이었다. (266쪽)


그토록 신나게 프로그램을 만들며 행복했던 피디가 작품 제작에서 손을 놓아야 하는 상황은 견디기 쉽지 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친한 선배를 통해 JTBC로의 이적을 권유받았을 때 그저 웃음으로 넘긴다. 그가 저 지경이 된 MBC에서 끝까지 버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게 드라마 피디라는 업을 빼앗고 유배지로 나를 쫓아낸 사람이 MBC 사장이 됐을 때 느꼈다. 운명이 내 멱살을 흔들고 패대기쳤다고. "이제 어떡할 거야? 도망갈 거야?" 그 순간 달아났다면,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부끄러운 마음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중략)
싸움의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이다.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는 것은 나를 죽이는 일이다.(202쪽)


2012년 파업 이후 그는 계속 지는 싸움을 반복해 왔다. 그렇지만 싸워야 할 때 싸우는 법을 배웠고 버텼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악의 평범성


이렇게 지는 싸움을 계속 해온 사람들이 있는 반면  파업으로 비어있던 자리를 꿰차며 승승장구한 무리도 있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아이히만'이라는 나치 동조자를 재판하는 과정에서 피고 아이히만의  '나는 무고하다'는 태도를 보며 저자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악'을 분석, 통찰한 책이다. 아이히만은 매우 평범한 사람으로 무슨 일을 맡든 의무를 다하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치의 사상에 동조한다거나 악의를 가지고 일 하지 않았기에 스스로 억울해했다. 그렇다면 아이히만, 그의 죄는 무엇일까?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를 '타인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생각의 무능'으로 설명했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무능력은 악이다' 
 -한나 아렌트-


MBC 파업 때 보여준 노동자들의 각기 다른 선택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 한 사람들로 가득했다면 오늘날 우리 방송은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비단 방송뿐일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지금 우리가 즐겁게 누리는 많은 것들이 실은 '악의 평범성'을 거부하며 타인과 연대한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무능하고 평범한 악인이 되지 않기 위하여


개인이 가치 판단의 기로에 놓여 행동을 선택해야 할 때 무능하고 평범한 악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부지런히 검열해야 한다. 


1. 현실을 넓은 틀에서 보고 있는가?


앞서 보았듯 김민식PD에게는 원래 드라마 제작에 대한 열정이 파업 동참의 이유보다 더 컸었다. 그러나 그는 "당신들의 소임이 방송인데, 왜 맡은 바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냐?"는 질문에 "상한 음식인 줄 알면서도 계속 만드는 게 요리사의 책임인가요?(120쪽)"라고 답하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기까지 그가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제작 자율성이 보장되는 조직문화 덕분에 MBC는 숱한 특종을 내고, 인기 프로그램을 양산했다. 그 덕분에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신뢰받는 방송이 될 수 있었다. 연출로서 나의 행복의 근원이기도 했던 제작 자율성은 사실 과거 MBC 노조 선배들이 군부독재와 피 흘리며 싸워 얻어낸 공정방송의 결실이다. (91쪽)

악의 평범한 동조자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신만의 좁은 틀에 갇힌 현실 인식에서 벗어날 때 가능하다. 내 행위가 미치는 결과의 범위를 '타인'에게로 확장하는 것이다.


2. 개인의 이익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김민식 PD는 결국 한 창 전성기 때 부당한 인사 발령으로 활동을 제지받게 된다.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드라마 연출의 전성기는 40대다. 한창 일해야 할 나이에 쫓겨났다. 나이 쉰을 넘겨 복귀했지만, 이제는 드라마 감독으로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드라마 피디는 시청자 동향에 민감한 직업이다. 매년 새로운 작가와 배우가 쏟아진다. 변방에서 산 7년 동안 연출 감각도 시장 감각도 다 잃었다. (280쪽)


투쟁의 끝에 다시 정상화를 이루어 냈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 많은 것이 달라져 버렸다. 그는 자신이 중심적 자리를 차지했을 때 혹시나 과거'한 많은' 선배들(제작 일선에서 물러나 인정받지 못한 한을 품은 선배들 중 후에 보직에 올라 그 못한 한을 풀려 후배를 부당하게 괴롭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이 그랬던 것처럼 괴물이 될 것을 우려한다. 그리고 후배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길을 내어주겠다는 선택을 한다.

드라마 피디로서 전성기가 이미 끝난 나와 달리 임채원과 서정문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연출로서 기량을 꽃피우고 MBC에 부활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역할은, 드라마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회사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회사를 바꾸는 일이 아닐까?... 내가 꼭 무엇이 되어야, 혹은 무엇을 해야 MBC가 좋아지는 게 아니다. 후배들이 마음껏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길을 내어 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이들이 MBC의 희망이다. 나에게는 개인적인 소명이 따로 있다. 재주 많고 역량 있는 후배들을 가로막는 괴물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걸 위해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쓴다. (280쪽)


승리의 열매를 후배들에게 양보하는 장면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조직과 드라마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만큼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것이다. 


3. 내 선택은 자의에 의한 것인가, 타의에 의한 것인가?


아무리 좋은 선택이라 할 지라도 그것이 자발적 동기가 아니라면 오래갈 수 없다. 김민식 PD가 힘든 기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싸워 남는 자가 이기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영화(레미제라블)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은 장면이 있다. 장 발장이 바리케이드 학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니, 마리우스를 살리기 위해 하수도를 걸어가는 장면이다. 파리 시민들의 배설물로 가득한 하수도를 허우적거리며 헤쳐나가는 장 발장의 모습. 나는 그 장면이 앞으로 내가 인생을 살아야 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똥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서 이 깜깜한 수로의 끝까지 가본 사람만이 빛을 만날 테니까.'(127쪽)


앞서 보았듯 처음에는 파업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취했었으나 점차 자신만의 파업 스타일(?)을 장착하며 저항의 중심에 서게 된다. 만약 분위기에 이끌려 참여했거나 생각 없이 동조했다면 이렇게 끈질기게 투쟁을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사장님, 어금니 꽉 깨무세요.' 등의 남다른 구호와 방식 등 상투성에서 벗어난 참신함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의지에서 비롯된 행동은 끈기의 원동력일 뿐 아니라 투쟁에서 마저 자기 다움을 빛나게 한다. 


삶이 예능이요, 드라마다


"오, 말해줘. 왜 나를 내쫓았는지. 사장님은 왜 아직도 안 나가고 버티는지."


'적들에게는 괴로움을, 우리 편에게는 즐거움을!(238쪽)'을 모토로 매주 집회에서 이렇게 노래를 개사하며 새로운 공연을 했다. 오래 버티며 싸우기 위해 '재미'있는 방식을 선택한다. 

내가 좋아하는 코미디 영화 가운데 최고의 장면은 <인생은 아름다워> 마지막 장면이다. 아들 조슈아를 살리기 위해 나치 수용소 생활을 숨바꼭질 놀이로 바꿔버린 (주인공) 귀도는 마지막에 숨은 아들이 보는 앞에서 독일 병사에게 끌려간다. 잡혀가는 아빠를 보고 숨바꼭질에서 이겼다는 생각에 아이는 환하게 웃고, 귀도 역시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화답하는데, 그걸 보는 관객은 눈물을 참기 힘들다. 예전에 <유태인의 유머>라는 책을 읽었는데, 상당수가 나치 수용소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더라.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은 유머 감각을 갈고닦았나 보다. (147쪽)


김민식 의 PD재능은 운명의 장난(?) 덕분에 정규 방송보다는 투쟁 방송이라는 장르에서 빛을 발하였다. 자신을 타고난 딴따라라고 표현하는 PD답게 그의 PD로서의 생명줄을 자르려는 세력에 굴하지 않았다. 삶으로 예능을 찍고 드라마를 찍었다. 우리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연출하는 인생 PD라고 할 수 있다. 인생 자체가 히트작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


마치며 


책을 읽고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또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돌아본다. 살면서 누구나 자신의 삶 또는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 좋든 싫든 싸워야 할 때가 있다. 행여 지금 지고 있을 지라도 옳은 것이라면 계속 나아가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전염병과 일대 전투를 벌이고 있다.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는 어둠의 시기를 헤쳐나가는 비법을 보여준다. 책을 읽고 생각했다. 도망치지 않고 싸우기로 했다면 이왕 싸우는 거 "즐겁고 독특하고 당돌하게!" 싸워보자. 혹시나 이 기간이 길어질 지라도 긍정과 연대의 힘으로 결코 좌절하거나 엎어지지 말아야겠다고 말이다.





#푸른숲 #김민식 #나는_질_때마다_이기는_법을_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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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 퇴진 요정 김민식 피디의 웃음 터지는 싸움 노하우
김민식 지음 / 푸른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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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하게 웃기게 그러나 끈질기게 싸우는 법을 배웠다. 이 가슴벅찬 이야기를 무겁지 않고 웃기게 풀어내는 작가의 연출력이 경이롭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재미와 웃음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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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 - 저출산, 저성장 시대를 맞이하는 미래 세대를 위한 처방전
우치다 타츠루 외 지음, 김영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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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일본이 '태평양 전쟁의 패배'를 무의식적으로 바라고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면 너무 터무니없는 것일까? 책 <인구감소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 우치다 다쓰루 외, 위즈덤 하우스, 2020>을 읽고 나면 이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여기에 대해서는 글 끝부분에 추신으로 언급하려한다).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고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자신을 몰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특히 '단기적, 개인적 욕망 충족'이 '장기적, 사회적 이익'에 우선하는 인간의 무지와 이기심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된다.

 

책 <인구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은 10명의 일본 석학들이 '인구감소와 일본 사회의 미래'에 대한 각자의 담론을 모은 책이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 10명의 다양한 전공과 직업이다. '생물학', '건축학', '사회학', '경제학' 등 다양한 전공 분야의 저자가 논의를 펼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다각도로 '미래사회'에 관한 생각을 펼쳐보게 된다. 지금을 더 바로 볼 수 있게 되고, 지금 내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바람직한 방향을 위한 실천 방법은 무엇 일지에 대해 말이다.

인구 감소 사회는 과연 위험한가?

 

 

인구 감소는 천재지변이 아닙니다. 자연과정입니다. 환경 수용능력을 초과한 인구 팽창에 대응하여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집단적 행동입니다. 15p

'인구 감소 사회는 과연 위험할까?' 이에  대한  10명의 저자들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그 답은 ' no'에 가깝다. 저자들은 '인구 감소 사회는 당면한 과제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며 받아들이고 대비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생물학'적 관점에서 인구 감소는 자연스러운 '생태계 평형'의 과정이며 이 평형을 통해 지나친 인구로 인한 '기아'나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도 보고 있다.


문제는 '인구 감소'가 아니라 '인구 감소가 위험하다'는 논제에 빠지는 것이다. 대응보다는 불안에만 사로 잡혀 있으며 다른 가능성과 다른 위험은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래 사회의 흥망성쇠의 열쇠- '인구'보다 '디커플링'

그렇다면 무엇이 다가오는 미래 사회에 가장 큰 위험 요소가 될까? 여기서부터 바로 '4차 산업 혁명'과 거기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점점 소수는 돈을 독점하고 다수는 가난해진다. 그 격차는 심해진다(85p)'는 명제, 즉 '디커플링'의 문제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다음의 예시를 살펴보자.(*디커플링: 미국 경제학자 에릭 브린욜프슨이 만든 용어로 소득의 중간치와 평균치 차이가 벌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구글의 사원수는 약 5만 명인데 비해서 제너럴 모터스라는 미국 자동차 기업의 사원은 약 22만 명이다. 그러나 구굴의 시가총액은 제너럴모터스의 10배 이상이다. 자동차 공장 같은 거대한 생산설비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말이다. 구굴은 다수의 박사학위 소지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들은 구굴의 기술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85p

위의 글을 보면 구글 1인당 생산성이 제너럴모터스 1인당 생산성의 40배 이상임을 알 수 있다. (구글은 제너럴 모터스 사원수의 4분의 1만 고용하지만 시가 총액은 10배가 넘기 때문이다.) 2020년 현재 '구글' 엔지니어 중 박사학위 소지자의 평균 연봉은 4억 정도라고 한다. 보통 연봉의 10배 이상이다. 이 격차는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다. 위의 예에서 보았듯 기존 산업에 종사하는 자들에 비해 IT 즉 '한계비용(생산에 추가되는 비용)'이 없는 기업의 근무자들이 40배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면 40배 이상의 임금 격차가 생긴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3차 산업 혁명부터 노동자들이 일을 박탈당하기 시작했다. 사무 노동 일자리의 급감은 (경리, 콜센터 직원 등)은 청소원이나 간병인과 같은 육체노동 종사자가 되고 노동자의 삶은 더욱 가난해진다. 84p


4차 산업 혁명 시대에는 노동의 중간 계층(사무직)은 인공지능화와 산업의 변화로 인해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지며 전문화에 실패한 자들은 육체노동 종사자로 살아가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육체노동자들의 확산은 곧 시장원리에 따라 '저임금' 즉 '가난한 삶'으로 다수를 몰아갈 것이다. 시장에 육체노동자가 많은 만큼 임금이 오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두뇌산업에 적합한 인재로 등용된 자들은 이전 시대의 사무 근로자와는 차원이 다른 고임금, 즉 '부'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양극화가 가속화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대비해야 할 미래의 문제이다. (미래의 문제라고 말하기에는 이미 현재에도 문제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4가지 대안

10명의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미래의 인구감소사회에 대해 한 목소리를 모으는 것은 바로 '양극화를 대비'하라는 것이었다.  빈부격차의 심화는 개인과 개인, 도시와 도시, 나라와 나라 사이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갈라놓게 될 것이다. 문제는 부유하지 않은 쪽에 속한 집단은 매우 비참하고 불행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우리는 우리가 부자가 될 것만 생각하며 달려갈 것이 아니라 이제 내가 또는 나의 가족이나 친구가 '부유하지 못한 자'가 될 수도 있다는 넓은 시각을 가지고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 그 10명의 석학들이 제시한 구체적 대안을 종합하여 이야기해 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큰 줄기에 도달하게 된다.


 

1.  저성장, 제로 성장 경제 체계 구축

 

우리가 이제부터 시작하는 것은 '후퇴전'입니다. 후퇴전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와 어떻게 패배의 피해를 줄일 것인가?"는 머리를 쓰는 방법이 다릅니다. 33p

책의 저자들은 일본이 아직도 과거의 영화에 사로잡혀 '80년대 이전과 같은 고성장으로의 회귀'라는 헛된 욕망에 시달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경기부양 정책이 그 대표적 예이다. 그러나 이제 일본은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저성장, 제로 성장'경제 체계를 안정화시키는 현실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즉 지금 필요한 것은 '승리'가 아닌 '피해의 최소화' 즉 '후퇴전'에 관한 것이다.

이는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지난 몇 년간 비정상적으로 폭등한 부동산 가격만 보아도 아직도 얼마나 한국인들이 과거 경제부흥시대 자산 증식에 대한 환상을 간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이 언제까지 통할까? 모든 것이 '거품'이라는 진실을 누군가 말해도 다수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환상'은 진실이 되어 버린다. 그 환상이 어느 순간 깨질 무렵, 우리도 일본과 다르지 않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저성장, 제로 성장은 비단 일본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의 이야기이다.


 

2. 최저소득 보장, 고용 보장, 기본 소득 체제 구축
 

빅토르 위고의 소설의 제목인 '레 미제라블'은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의 불어이다. 미래의 '레 미제라블'을 위해 현재의 우리는 무엇인가 대비해야 한다. 이것은 '법'과 '제도'의 문제이다.  미래사회를 대비한 법과 제도의 국가적 차원의 연구가 꼭 필요하다. 우리가 양극화 사회에 대한 어떤 대응 체제를 남기지 않고 미래를 맞이하게 될 때, 그때 그 누구도 '레 미제라블'을 위해 맞서 싸워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레 미제라블'은 내가 될 수도 있고 내 자녀가 또는 내 자녀의 자녀가 될 수도 있다는 그런 인식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최저소득', '고용보장', '기본 소득'에 대한 논의는 시대를 앞섰고 비현실적이며 매우 사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기 전에 이것은 이제 '명분' 이 아니라 곧 다가올 미래에 대한 '실리'적 입장에 가깝다는 것을 공론화해야 하는 것이다.


 

 

3. 국민 여론의 토대 구축 방법 고안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사라질 직업군 중 가장 1순위로 뽑히는 직업이 바로 '언론계'종사자들이다. 벌써부터 그 징조는 드러나고 있는데 이제는 '종이신문'을 사서 보는 일이 드물고 'TV 뉴스'마저도 영향력이 약화된 지 오래다.

과거부터 여론이란 힘의 논리에 의해 자주 조작되어 왔지만, 지금에는 '힘의 논리' 뿐 아니라 '인간 안에 내재된 파시즘'에 의해 더욱 위험한 지경에 이른 것을 볼 수 있다. '가짜 뉴스'가 그 대표적 예인데 뉴스의 '진위'는 중요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신념'또는 '이념'만이 중시되는 치우침의 사회가 되어간다.

결국은 '인간성'의 문제로 귀착된다.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의심을 배제한 채 '자기만 옳은 자'가 득세한 세상의 모습은 뻔하다. 분열, 갈등, 혐오가 만연한 사회는 그 자체가 지옥이 될 것이고 이로 이해 사회는 '가난한 자'들을 어쩌면 맬서스의 이론처럼 '유전적으로 도태된 자'로 낙인찍을지도 모른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다. '나치'의 '유대인' 탄압의 근거의 지점과 닮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과연 비약적인 것일까? 아닐 가능성이 높다. 미래 사회 언론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4. 자본주의 이전 윤리 회복


 

자본주의는 다음 두 가지를 새로운 윤리로 정착시켰다.

 

1) 개인의 소유는 정당한 것이다.
2)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았으면 갚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주의 이전'의 윤리와 상반되는 것인데 왜냐면 그 이전 사회에서는 '개인 소유'가 아니라 ' 함께 나눔'을 중시하였고, 또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라 '기브, 저스트 기브'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특히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뚜렷이 했는데 지금도 일부 수렵 채집민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즉, 누군가 사냥해온 것으로 마을 공동체 모두가 나누어 먹고 (소유의 비 개인성) , 이러한 호의를 '빚'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마움'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논의가 왜 인간의 미래 사회에 어떤 대안으로써 작용하는 것일까? 바로 그것은 '가난한 자들의 연대'에 관한 이야기 이기 때문이다. 양극화 시대의 피라미드 꼭대기 층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위치하여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 갈 것이고 반대로 아래층의 대다수의 사람들 또한 그러할 것이다. '저임금'과 '비고용' 시대에 들어서면 생존의 방안을 함께 연구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셰어하우스', '공동주택'과 같은 주거방식으로 삶의 비용을 줄여나갈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거다. 이때 필요한 윤리는 '공동체 윤리'이다. '개인 소유의 윤리'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윤리'의 중요성에 대해 눈떠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교육자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부분이었다. 미래의 주역인 우리 아이들이 어떤 가치를 지녀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마치며


책 <인구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은  '일본'사회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읽다 보니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의 미래에 관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인구감소'는 자명한 것이고 그에 대해 대비할 뿐 아니라 인구 감소 시대와 함께 도래할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인간은 어떠한 대비를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을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자'와 '부모',  그리고 지금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알고 이에 맞추어 미래를 설계하고픈  '청년'들 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대비하지 않는 미래의 비극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PS:서론에서 말한 '일본이 태평양 전쟁의 패배를 무의식적으로 바랐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yes'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이 아니라 '일본 전쟁 지도부'이다. 일본은 이미 패전 3년 전부터 전쟁 수행능력을 상실했었고 그때 백기를 들고 강화 교섭을 시작했어야 했지만, 전쟁을 주도한 지도부들은 '패배 인정'으로 인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기재위에 무리한 전쟁을 계속해왔다(20p). 오히려 '완전히 패전'함으로 사회의 큰 혼란 속에서 자신들의 책임은 조용히 묻히길 바랐다는 추정이다.


 

태평양 전쟁 진주만 폭격 장면. 일본이 이 전쟁 이전에 패배를 인정하고 전범의 대가를 치뤘다면  히로시마원자폭탄은 터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성장판 서평단 3기 활동으로 출판사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위의 서평은 전적으로 제 주관적인 감상임을 밝혀둡니다.]


#인구감소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 #위즈덤하우스 #성장판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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