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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로냐프 강 1부 1 - 로젠다로의 하늘, 한국환상문학걸작선
이상균 지음 / 제우미디어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판타지 소설을 많이 읽어봤지만, 요즘 나오는 판타지 중에는 괜찮은 작품이 없다.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주인공들이 설치는 말도 안되는 오락성을 중시한 허섭한 판타지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전의 작품을 찾아 읽을 생각도 없었다. 왜냐하면, 글쎄. 어쨌든 예전 것이니까, 랄까.

하지만, 확실히, 사람들이 강추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는 사람은 다들 알겠지만, 하얀 로냐프 강은 판타지 매니아들이 강추하는 몇몇 작품 가운데 하나다. 왜 강추하는가 하는 의문을 오늘에서야 풀게 되었다. 좀 더 일찍 알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하지만, 오늘이라도 알게 된 게 어딘가.

<하얀 로냐프강>판타지 소설이 범람하기 시작할 때, 그러니까 이런저런 판타지가 막 나오기 시작하던 초기의 작품이다. 그래서 아주 색다른 구성이라든가, 특이한 세계관을 가진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실망하지 말라. 보편적인 세계관을 차용하긴 했지만 그 구성이 탄탄하다. 또 보편적인 판타지의 세계를 차용했기에, 전지적 작가 시점의 고전적인 전쟁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읽기에 무리가 없다(어쩌면 이건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카발리에로'라는 로맨틱한 제도가 있는 환상적인 세계. 귀부인을 숭상하는 기사들과 그들의 우정. 하지만 그 속에는 신분제도로 인한 사회의 불합리 등의 많은 갈등 요소가 존재한다. 환상으로 우리를 이끌지만, 그것은 사실 우리 사회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더 환상을 갈구하게 된다.

약간 옆길로 샛지만 어쨌든, <하얀 로냐프강>은 판타지 소설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이 없다. 예를 들면, 마법의 남용이라든지, 주인공이 수백 명의 적을 무찌르고 상처 하나 없다던지, 수십 명의 여자들과 사랑을 나눈다던지(사실 이건 조금 과장이다).

세 나라 간의 전쟁을 기본 요소로 하며, 판타지 로맨스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나라 중 가장 신분제도가 철저한 나라에서 고귀한 신분인 기사와 제일 천한 계급인 음유시인의 사랑 이야기가 주인데, 그들을 둘러싼 이야기들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급박한 전쟁 중에서도 인물들의 사랑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잘 표현하여 사람을 울린다. 음유시인의 시 또한 서정적이며 아름답다.


1권에 나온 노래를 한 편 적어보자면,


다시 태어난다면 바람으로 태어나겠어요

바람이 된다면 항상 당신 곁에 머물 수 있겠죠

먼 훗날 당신의 땀을 당신 모르게

닦아 드릴 수 있겠죠, 먼 훗날에라도


다시 태어난다면 햇볕으로 태어나겠어요

햇볕은 눈을 가지고 수많은 눈을 가지고

당신이 어디에 계신지 항상 바라볼 수 있겠죠

바라볼 수 있겠죠, 먼 훗날에라도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의 발자국으로 태어나겠어요

당신이 가시는 걸음걸음 따라다니며

당신이 혹 잘못 디뎌 넘어지지 않도록

보살펴 드릴 수 있겠죠, 먼 훗날에라도


그림으로 그릴 수 없을 거예요 나의 사랑은

붓을 들면 화폭엔 눈물만 쏟아질 테니

햇살처럼 항상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만 기억하세요

당신이 느끼지 못하기를 바래요, 나의 사랑은


어느새 루운은 저물고 하늘엔 보석이 박히네요

이 밤이 지나면 난 떠나지만 당신은 여기에 머물러 계세요

어쩌면 새벽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잖아요

나의 사랑 대신 짧은 인사말만 놓고 갈게요


그대여 그럼 안녕.. 영원히.


아름다운 노래이지 않은가. 하지만 난 사실 이 노래보단,


그들이 모두 깊이 잠들었을 때

폭풍우 몰아치는 평야를 건너라

빌렐라 빌렐베 헤이 호 헤이 호

발 소리 내지 말고 숨을 죽인 채


모두 가슴에는 하나씩 연인을 품고

한 손에는 달빛에 빛나는 무기를 들고

빌렐라 빌렐베 헤이 호 헤이 호

미친 듯이 불어오는 바람을 젖히며


그들은 잠들었는가, 깊이 잠들었는가

별은 빛을 잃었는데 아직도 깨지 않았다면

이제 드디어 그들의 가슴을 찔러라

불타는 장막 속에서 그들의 심장을


피와 갈증으로 타는 목

돌아가면 그녀가 빚은 레타라슈를 마시리라

빌렐라 빌렐베 헤이 호 헤이 호

그녀에게 돌아가기 위해 그들을 찔러라


이 노래가 더 좋았다.

어떤 노래가 더 좋든 간에,

이 감상을 읽는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싶은 건,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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