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무’로 만든 라텍스 침대에서 깨어난 신소재씨는 ‘비단’ 이불을 3초 이내로 개켜 침대를 정리하고, ‘탄산칼슘’이 섞여 있는 시멘트 바닥을 걸어 주방으로 간다. ‘탄산칼슘(이스트)’이 섞인 빵을 알루미늄(AL)으로 만든 토스터기에 구워 ‘도기’ 접시에 담은 다음, ‘철(FE)’과 ‘알루미늄(AL)’ ‘플라스틱’까지 섞여 있는 커피 머신에서 향긋한 커피를 뽑아 역시 ‘도기’로 만든 커피잔에 커피를 담는다. 빵과 커피를 양손에 든 신소재씨는 식탁으로 향한다. TSX-B235에서 흘러나오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과 함께 ‘셀룰로스’가 함유된 책을 읽으며 여유로운 아침을 즐긴 신소재씨는 시계를 확인한 후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한다. 샤워를 마친 소재씨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콜라겐’ 성분이 함유된 마스크팩을 얼굴에 붙이는 일이다. 40을 넘으며 얼굴이 부쩍 건조해진 소재씨에게 이제 ‘콜라겐’ 마스크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옷으로 한껏 멋을 낸 소재씨는 고어텍스 신발을 신고 도보로 직장인 학교로 출근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떠들썩한 2학년 3반 교실. 수업 종이 울리며 ‘탄산칼슘’이 섞인 분필로 오늘의 수업을 시작한다. <신소재씨의 하루>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마감할 때까지, 물론 앞선 글에서는 오전 일부만 다루었지만 현재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재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은이 사토 겐타로는 도쿄 이과대학 이학부 응용화학과를 졸업하고 도쿄 공업대학 대학원에서 유기합성화학을 공부했다. 그는 2013년 신초샤 출판사에서 <탄소 문명>을 출간했고, 다행히 <탄소 문명>이 좋은 반응을 얻어 강연에도 여러 차례 초청받았는데, 어느 고등학교에서 강연했을 때 한 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유기, 무기에 상관없이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화합물 베스트 3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는 이렇듯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종종 질문이 날아와 재미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여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저자는 역시 철이나, 종이, 플라스틱과 같은 재료가 아니겠냐고 대답했다고 전한다. 당시 사회자 역할을 한 선생님의 “그럼 속편으로 ‘재료 문명론’을 써달라고 합시다.”란 말과 함께 강연은 끝이 났는데, 강연이 끝난 후에도 ‘재료’에 관한 생각이 내내 저자의 머릿속에서 맴돌았고, 그 생각이 5년 후 지금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진 이 책이라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다시 접해보는 ‘원소주기율표’. 대충 기억나는 것만 표시를 해보았는데 손에 꼽을 정도이다.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모든 제품은 ‘원재료’에 화학 물질을 섞어 만든 것으로 나는 그동안 이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품에 대한 ‘기원’에 대해서는 가끔 호기심을 갖기도 했는데, 제품을 구성하고 있는 ‘재료’에 대한 것이나, ‘재료’에 어떤 성분이 더해져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으로 변했는지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한 노력을 기울인 적은 없었다. ‘소재’와 ‘세계사’, '화학'의 결합. 이 생소한 조합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저자가 소개하는 신소재에는 인류사를 움직인 찬란한 빛 ‘금’, 만 년을 견딘 재료 ‘도자기’, 동물이 만든 최고의 걸작 ‘콜라겐’, 문명을 이룩한 재료의 왕 ‘철’, 문화를 전파한 대중매체의 왕 ‘종이(셀룰로스)’, 다채로운 얼굴을 가진 천생 배우 ‘탄산칼슘’, ‘제국을 자아낸 재료 ‘비단(피브로인)’, 세계를 축소한 물질 ‘고무(폴리아이소프렌)’, 혁신을 가속한 재료 ‘자석’, 가벼운 금속의 기적 ‘알루미늄’, 자유롭게 변화하는 만능 재료 ‘플라스틱’, 무기물 세계의 선두 주자 ‘실리콘’까지 12가지에 더하여 AI가 좌우하는 ‘재료과학’ 경쟁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다.
내가 생소한 것을 만날 때마다 궁금해하는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도대체 '왜' 이걸 만들었을까? 라는 질문을 해보는데 그런 나의 지적 호기심을 해결하는데 만족스러웠다. 흥미로운 소재들 중에서 나는 저자가 강연장에서 고등학생에게 답했던 ‘철’, ‘종이’, ‘플라스틱’에 ‘금’을 더한 내용을 이 글에 담아 본다.
경영학 전공자의 화학 입문서로는 썩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원재료’에 ‘부재료’ 한두 가지가 첨가될 때마다 자연스럽게 ‘원가’를 계산하게 되었고, 도대체 제품 가격을 얼마를 받아야 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더하며 읽었더니 지루하지 않게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런 생각은 나의 직업병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가 계산이 아니더라도 쉽게 읽히는 책 임에는 틀림없다. 생소한 화학 용어들이 나올 때마다 ‘이걸 다 찾아보고 이해하려면 전과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어 일찌감치 포기하고, 책 속에서 전달해주는 용어를 접한 것으로도 충분했다고 위안을 삼아본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 딸의 장래 희망은 ‘그린피스’ 요원이 되는 것이다. 2학년이 된 지금까지 그 생각에는 변화가 없고 여전히 ‘그린피스’ 놀이를 하며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쓰레기를 줍고 다닌다.
현재 우리가 가장 고통받고 있는 문제에서 ‘플라스틱’은 빼놓을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연에서 시작하여 인간에 의해 파멸되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하나씩, 둘씩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실험하고 연구를 거듭한 결과 우리의 삶은 전보다 윤택해졌고 편리해졌지만, 모든 것이 대 걔 그러하듯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지금까지 우리가 얻은 것들에 대해서 하나씩, 둘씩 잃어가며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소개하는 재료 ‘예찬론’을 흥미롭게 읽으며, 또한 같은 맥락에서 저자도 내가 생각하는 문제(플라스틱)에 대해 같은 고민을 해주어서 무척이나 고마웠다. 이 책은 역사와 과학 서적으로 분류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인문학’으로 분류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