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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좋아, 사람이 - 김인국 신부가 새로 본 신앙
김인국 지음 / 생활성서사 / 2021년 7월
평점 :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책의 제목은 저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세상이 온통, 각각의 자아 (self)가 스스로 명명하는 버블(bubble)속에 칩거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더 이상 어디에도 객관적 진리나 가치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듯이 말하고 있는, 이 포스트모던 시대에 ‘사람’을 더 높일 필요가 있나 싶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의 이런 생각은 책을 읽고 얼마안가서 바로 풀어지는 것이었지만, 이 제목은 여전히 이 책에 대한 저의 거의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더구나 이 책이 소위 ‘듣기 좋은 말씀' 하는, 요즘 흔한 ‘다 괜찮아'류의 위로의 말씀이 가득한 그런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이 책의 제목 “사람이 좋아"의 화자는 우리 인간이 아닙니다. 하느님 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하루 일과 중에 종종 성호경을 바치는데요. 세 손가락 끝으로 머리, 명치아래, 그리고 양 어깨끝을 왼쪽 오른쪽의 순서로 터치합니다. 그런데 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가 놀랍게도 그 신앙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성호경은 지극히 존귀하신 하느님께서 (이마)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셨으면 저~어 아래 인간 세상으로 (가슴아래) 당신의 귀한 아들을 보내시어 죄를 사하시고, 인간의 삶을 지탱해 주시기위해 성령을 보내주셨다(양 어깨)는, 즉 강생과 부활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부님은 그런 강생의 신비로 책을 시작하시고, ‘오늘, 여기, 바로 내가' 하느님의 나라을 누릴때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으로 책을 마무리 지으십니다.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은 우리가 고통을 겪을 때도 (아니 오히려 고통을 겪을 때 특히), 우리가 그 은총에 협력할 때도 우리와 함께 해주십니다. 아니 우리 안에 계십니다.
“상처란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을 만지는 유일한 장소요, 신성과 인성의 신비로운 일치가 이뤄지는 거룩한 지점" (145쪽)
“사람이 하느님을 믿기 전에 하느님께서 먼저 사람을 믿으셨습니다….그분의 은총이 인간의 모든 것에 앞섭니다" (197쪽)
“우리 하나 하나가 교회… 성령의 강림으로 하느님의 숨과 영을 입게 된 우리가 나설차례" (175쪽)
그리고 신부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씨'라는 것을 (189쪽) 알아야한다고 하십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편 46편 10절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인 줄 알아라.)을 이렇게 ‘우리식'으로 표현해 주셨네요. 창조주를 ‘앎'으로써 드디어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귀하디귀한 선물" (203쪽) 이라는 것을 알게 되겠고, 서로를 귀히 여기고 서로를 살리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느님처럼 ‘사람이 좋아, 사람이' 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신부님의 성모성심에 대해 쓰신 글이 특히 좋았습니다. 성모님이야말로 ‘내가 하느님인 줄' 아신 분이시라고, 당신께 일어나는 일들을 늘 마음에 담아 두셨던 그 성모성심을 늘 서 있는 성모상에서 미루어 보시고, 아들을 빼앗긴 성모님의 기막힌 심경을 광주의 어머님들에게서 보십니다. 그리고 “금쪽같은 자식을 민주주의의 대지에 밀알로 뿌리신” 광주의 어머님들처럼, 성모님의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하는 힘" (247쪽)을 본받아, 교회가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정의를 실천하고, 은덕에 보답하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일 (157쪽)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그 좋은' 사람, 우리라고.
“외로워도 힘차게, 괴로워도 기쁘게, 우리가 교회다 세상의 사목자다.” (224쪽)
<사람이 좋아, 사람이>는 쉬운 책도, 편안한 책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를 진리에 한 걸음 더 가까이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책 곳곳에서 신부님의 영적 면모 (‘참 미안했습니다')를 접하고 마음이 따뜻해지고, 성경에 대한 신선한 접근 (“예수님을 빼앗긴 이야기" 109쪽)은 말씀을 알아가는 기쁨을 만끽하게 해 줍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로 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