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특유의 시골 풍속과 민속 전통을 십분 활용한 배경을 세밀하게 묘사한 후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는 추리극을 벌인다. 긴 분량인데도 흡인력 있었다.
사회파 미스터리임에도 오컬트적 요소를 단순히 '어쩌면 그랬던 것 아닐까...?' 하는 부가적 요소의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실체로 만들어버린 점이 좀 놀라우면서 새로웠다. 이성이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논리와 상관없는 것들로만 구성된 세계를 긍정하는 이야기가 정치, 비리, 살인사건 같은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플롯에 통합되었다는 게 묘하다.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그리움과 가엾음에 가슴이 뻐근해져 오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이런 것도 필요할지도 모른다.
마지막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맺는 말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한다. 최근에 읽은 호모 픽투스의 모험과도 상통하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추구하고 결핍을 채우려 하는 '이야기'에 대한 것도 있고, 피해자의 어쩌면 반복되는, 비슷비슷한 이야기에 진심으로 나는 전부 재미있었다 라고 딱 잘라 말하는 그 태도가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대단하다고 느꼈다. 눈 앞의, 말주변이 좋은 것도 아니고 화려한 인생을 산 것도 아닌, 평범하기 그지 없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매혹되고 일일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수성을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한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는데 내 안의 인간적 모습이나 인류애에 새로운 관점을 불어넣어줬던 것 같다.
미치오 슈스케의 여섯 개 단편을 모은 책이다. 거꾸로 뒤집어도 N, 수학에서 미정의 자연수를 뜻하는 N. 어떤 단편을 먼저 읽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기를 의도해 일부러 책을 뒤집어가며 읽도록 만들었다. 나같이 그냥 항상 앞에서부터 읽는 사람을 생각해 인쇄 자체를 각 단편마다 아예 뒤집어서 만든 것이다. ㅋㅋㅋ 아무래도 인쇄에 많은 비용이 들겠지만 마치 답지가 분권이 되는 문제집처럼 각 단편을 전부 분권할 수 있게 해서 만들어도 재밌을 것 같다.
이야기에는 빌런이 필요하다내 편에 공감하는만큼 빌런을 혐오하게 된다이야기는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것처럼 사람을 증오하게도 사랑하게도 한다모두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나의 이야기를 존중하는 만큼 세상엔 모두가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