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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의 마지막 설법 시산맥 서정시선 71
이선정 지음 / 시산맥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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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치킨의 마지막 설법>을 읽고 나서......

나비 채를 들고 이 골짜기 저 산야를 돌며 팔랑거리는 나비의 모습에 넋을 놓고 바라볼 때도 있었다. 때론 그 슬픈 몸짓에 억누를 수없는 슬픔에 빠져 눈물 흘린 적 또한 어디 한 두 번이랴. 나의 영혼은 나비가 가는 방향에 따라, 그의 몸짓 하나에, 그가 말하는 언어에 함께 춤추었다.

 

어느 날, 나는 치킨 두 마리를 배송 받았다.

한 마리는 싸인된 치킨으로 온전히 나의 몫이다. 다른 한 마리는 포장을 뜯기가 바쁘게 따끈따끈한 열기를 간직한 채 회사에 비치된 책들 틈에 놓여지려는 찰라, 여직원 가방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몫은 다한 셈이다.

 

시인은 나보고 칼을 잘 벼리라고 한다. 시인 잡는 백정을 시킬 심산인가 보다.

오래 썼던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오랫동안 가방 속에서 숙성되기만을 기다리던 치킨을 꺼내 들고 어느 부위부터 칼질을 할까 망설인다.

혹자는 치킨에 맥주가 궁합이 맞는다고 한다. 그래서 치킨을 먹기도 전에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아불싸, 맹탕이다. 치킨부터 먼저 먹을 걸, 왜 해설서부터 읽었나 모르겠다.

 

시인은 부위별로 조금씩 먹으라고 조언했다. 그래야 소화에 도움이 된다고.

어설픈 해부학 솜씨는 내게 맞지 않는다. 나이프와 포크를 버리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먹고 싶은 날개 죽지부터 뜯어 먹기 시작한다.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해학과 위트, 역설이 숨 쉬고 반전이 압권이다.

다음 부위는 가슴살이다. 몸에는 좋다지만 퍽퍽한 그 맛이 어디 가랴. 한입 베어 물고 가슴에서부터 올라오는 싸한 감정은 뭐지? 치킨을 먹다 눈물을 쏟아 낸다. 가슴이 먹먹하다.

치킨인줄 알고 먹었던 그 맛이 아니다. 나는 카멜레온을 마주하고 있었다.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치킨의 마지막 설법>을 마주한 나의 어설픈 감상평이다. 얼마 전, 첫 번째 시집 <나비>를 읽고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느꼈던 기억들이 두 번째 시집에 와서야 시인의 참 모습을 대면하는 것 같다.

그의 시는 일상에서 오는 소소한 형태들이 시인의 언어를 통해 해학과 역설 그리고 반전이라는 묘미를 느끼게 만들어 준다. 그의 시는 에둘러 표현하는 법이 없다. 직설적인 화법으로 예리한 비수가 되어 곧장 심장으로 날아든다. 판판이 박힌 비수들은 나의 영혼을 지배하고 그의 詩界에서 옴짝달싹을 못하게 마비 시켰다.

해무의 시는 그랬다.

 

아래에는 문정영 시인의 해설이다.

‘...시에도 인성이 있다. 시인의 인성을 닮는다. 하나의 톱니바퀴 같은 문장, 체험과 통증에서 얻어낸 문장은 시인이 경험하고 사유한 말들이 글로 쓰인 것들이다. 그것은 처음 읽는 아들에게도 이미 알고 있는 이들에게도 전율의 육체로 온다. 시인의 상상력이 문장의 옷을 걸치고 자신감을 획득한 것이다.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이선정 시인의 시적 언어들은 이미 이별을 했거나 앞으로 이별할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시인이 지금껏 살아온 세계와의 충돌로 쏟아낸 사리 같은 아픔이다. 어쩌면 그런 게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은 운명보다 기질을 믿는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을 비틀거나 모호하게 숨기지 않고 정면승부로 풀어낸 승부사의 기질을 시인은 타고 난 것이다.

 

세상은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인은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는다. 이것이 시인의 본성이며, 세상과 나를 위한 위안이며 시를 쓰는 이유일 것이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소한 것들에서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아프면서도 따뜻한 삶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은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즐겁게 세상을 겪고 자신을 탈피하며 성장하는 중이다.‘

 

 

<시인의 말>

 

너를 쓰던 시간은 거침없었다

바다로 가는 길 여럿이어도

내 속에 갈라진 수많은 물줄기

결국 그곳으로 세차게 흘러 당도하였듯

너를 향해 흐르던 시간은

끝까지, 하염없이, 명백한 너였다

이제 그 길은 아득하고 꽃향기 멀다

나는 가끔 멈추고 오래 너를 더듬는다

네게로 난 서덜길 그리 보드랍지 않아도

너로 인해, 내가 늘 생의 충동이기를 바란다

 

-시 전문

 

생의 충동은 가끔 즐겁고 자주 아프다

기록을 모으는 헛짓을 두 번째 한다

 

 

<호떡집 앞에서>

 

어쩌다 우리의 추억엔 그 흔한 호떡 하나 들어앉을 시간이 없었다

 

하얀 입김이 서로의 온기를 끌어당기는 밤 길거리 빠알간 포장마차 앞에서 호떡 하나의 우울과 마주한다. 펄펄 끓는 설탕에 입을 데이듯 불필요한 온도에 마음을 데이고 이스트라는 집착을 들이부어 퉁퉁 부풀기만 했던 그때의 무지. 능숙하게 반죽을 만지는 중년의 여주인은 호떡만큼 사랑도 잘 빚을까? 뒤집어 달라 뜨겁다 몸부림치는 호떡이, 얼음을 뚝뚝 떨구며 섰는 허기에 찬 연인들의 냉랭한 눈빛만큼 그저 애처롭기만 하다.

 

겨울바람이 휑한 자리

뜨거운 불판 위로 희미한 얼굴 하나가 납작납작 우울한 시간을 뒤집고 있다.

 

 

<치킨의 마지막 설법>

 

닭같이 홰를 치고 싶은 날

화가 치밀어 된바람만 풀풀 일으키는 날

열난 가슴 달래려 치킨을 시킨다

 

내 속의 중심이 반쯤 기울어

무단시 어깨가 쳐질 때

닭 뼈다귀라도 채워 자신감을 곧추세울까

물렁뼈까지 오독오독 남김없이 씹어 삼킨다

 

속으로 꾹꾹 눌러 가슴팍에

날아다니던 서슬 퍼런 언어들

양쪽에 날개 달고 기름진 모가지로

꼬끼오 꼬끼오 홰를 치는 밤

 

빌린 몸으로 도를 닦으니

새벽녘,

알 하나가 툭 떨어진다



<사천 38, 붕어빵 진료실>

 

아무개 씨

크게 호명된 붕어빵 한 쌍

일제히 특 속에서 튀어나간다

 

모자(母子) 붕어빵

부녀(父女) 붕어빵

모녀(母女) 붕어빵

 

옆구리 터진 곳은 없는지,

팥은 싱싱한지, 기름칠은 잘 됐는지

붕어빵 진찰사 화려한 이력으로

붕어 등짝에 청진기를 갖다 댄다

 

대기 중인 붕어들은

물을 보충하거나 전화기 너머 붕어들과

연신 모스부호로 수다 중

 

다시 퉁퉁한 부자(父子) 붕어빵이

호명되어 튀어 나갈 때

똑 닮은 뒤태를 훔쳐보며 웃던

내 옆의 붕어와 눈이 딱 마주쳤다

 

손을 꼬옥 잡는 엄마 붕어빵

-너는 아주 이다음에 어쩌니?

 

젠장, 하필 내 빵틀에 새끼 붕어가 없다

왈칵 바닷물이 차오른다

 

 

<옥계 톨게이트>

 

나는 방금

그녀들의 밥줄을 지나왔다

 

마지막 인사라며

이팝꽃처럼 하얗게 웃고 있는 매표원

흔들리는 아쉬움이

화르륵 도로 위를 덮는다

 

한 덩이씩 툭툭 떨어져 나간 이별 후

계절이 지듯 고요해진 그곳에

눈물 젖은 밥풀을 밟으며

꼬리를 물게 될 피서 차량들

 

끊어진 밥줄은

자동수납기가 체온을 잃은 채

무표정한 뼈대만 연신 덜거덕거릴 테지

 

-사람이 그리워요

사람을 주세요

따뜻한 사람이 필요하다구요

 

오가는 중얼거림이 눈처럼 수북한

6월의 겨울을 통과한다

 

 

<낙화>

 

1202

그녀가 날았다

꽃처럼

아니, 잎처럼

 

이미 파열된 생

더 금 갈 것 없는 허공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훌쩍 타 넘었다지

 

봄꽃보다 먼저 피고 싶었던 게야

화단에 조각조각 붉게 핀 그녀

 

곁에,

더 붉게 울고 잇는 어린 사내아이

 

풀썩,

평생 꽃에 찔러 꺾인 네 목

 

어쩌니?

 

 

<주홍치마>

 

엄마의 낡은 옷장에서 치마 한 장을 받아든다

 

50년 전 꽃피웠을 장년의 유서

허물어진 골반이 아프게 접혀있다

 

곡진한 세월을 볼에 부비다

쪼글쪼글 잡힌 주름을 가만히 펴다

오지 않은 밤을 칙칙 뿌리다

두려운 아침을 꾹꾹 다리다

그제야 넌지시 꿰어본다

 

아직 조금 헐렁한 슬픔

 

주홍빛 유서를 곱게 벗어

캄캄한 어느 날 꺼내어 통곡할

옷장 한편에 미리 걸어둔다

 

-더도 말고, 거기서 봄꽃을 열 번만 피워주소

 

막막한 저녁이 우거지고

포슬포슬 눈물꽃 보풀이 인다

 

 

<인생길>

 

무작정 달리던 길 위에 어둠이 내린다

 

속도를 내는 것들의 뒤꼭지에

빨간 눈물이 매달렸다

 

앞서간 이들은 휴게소에 있는 걸까?

 

-어이 거기,

내 그리운 이들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좀 알려주시게

 

인개인지 구름인지

온통 흐릿하기만 한 길이라

 

 

<재래시장>

 

그곳엔 눈이 셋 달린 고등어가 살지

 

입이 둘 달린 상추

코가 둘 달린 호박

 

작은 눈, , 입 하나씩 모아

나긋나긋 말을 걸어와

내 유년의 아이

 

뽀얗게

사라진 것들이

툭툭 먼지를 털며 걸어 다니지

 

빼꼼 거리던 골목을 한 겹 들면

와르르 쏟아져 안길 듯한

 

어린 호박 같은 아버지,

푸른 고등어 같은 할머니,

주렁주렁 완두콩 같은 고향집

 

똑똑 떼어내도 다시 웃자라는

축축한 상추 같은 그리움

 

 

<부정맥>

 

심장이 고장 났다

 

멋대로 펄떡거려도 좋을

스무 살짜리 심장도 아니건만

오십이나 먹고 제멋대로 뛴다

 

세월 간다고 철이 들겠나

심장 하나 내 맘대로 안 되니

몸뚱인들 내 것이라 하겠는가

 

쪼그라들어 들숨 날숨

제멋대로 뛰던 심장이 말한다

 

그러니,

미친 듯 사랑하라고!

 

 

<남루에 대하여>

 

결국 시가 되지 못해 버려진 문장처럼 딱히 정해둔 어딘가로 떠나지 못하고 구석에 쭈구려 앉은 관계, 측은하게 바라보며 전신주를 핥는 빗방울이 남루하다. 결기를 다지고 세차게 밀려오던 파도마저 돌아갈 시간을 잊은 채 모래톱에 꼬리를 파묻는 미련. 끝눈이 오고 막차를 기다리던 헐벗은 시간의 남루. 대합실 둥근 철제난로의 가늘게 태우던 마지막 불꽃, 거기 기댄 주름진 손가락들의 남루. 너를 보내고 구차하게 봄을 기다리던 눈이 짓무른 시간의 남루. 헤져서 더 이상 헤어져서 도저히 꿰매고 기울 수 없는 서로를 빨랫줄에 걸어놓고 간격을 재단하듯 쓸모없이 흩날리는 남루에 대하여

 

말하려다

입을 지우고

 

눈이 남았다고,

아지랑이 같은 눈이 아직 남았다고......

 

 

<비요일의 마스카라>

 

ㅠㅠ

그녀의 눈꺼풀에

월요일의 피로가 쏟아진다

 

볼터치를 하지 않아도

발그레 생기 돌던 금요일의 얼굴은

붉은 주말에 벗고

하르르 시든 꽃처럼 졌다

 

핏기 없는 아침

또각 대던 하이힐이

운동화 뒤축처럼 질질 끌릴 때

투둑, 정수리를 내리치는 죽비

순간, 지친 세포 하나씩 일제히 숲을 향한다

 

좌르륵 그녀를 일으켜 깨워

초록숲에 또렷한 붉은 장미로 서게 한 빗방울의 타전

혹시, 그가 보낸 신호일까?

 

다시 마스카라 위의 피로를 털고

허리를 곳곳이 펴고

밝게 꿈틀거리며

 

그녀, 비요일을 걷는다

 

 

<자화상.

 

뭍으로 끌려 나와

제 성질에 못 이겨 펄펄뛰다

생을 달리한 오징어

 

반짝거렸겠지 지금은 희미해진 눈,

언제였던가 바다를 품어 탱탱했던 몸,

 

쫀쫀한 흡반이 풀리고

축 늘어진 삶에 칼자국 천지다

 

지금쯤 바다에는

남기고 온 꿈이 떠 있으려나?

죽은 다리 하나가

저쪽 동해바다를 가리킨다

 

 

<환승전용>

 

고속도로 휴게소 바닥에

갖고 싶은 글자 하나

가지런히 누워있네

 

환생이 안 되니

환승이라도 하라 하네

 

,

갈아탈 인생 온다면

넉넉한 얼굴로 환승하리

 

모난 표정 다 깎고

치장한 화장 다 지우고

동그란 민낯으로 고조곤히 환승하리

 

기다리는 마음부터

화르륵 꽃불이 인다

 

 

<복수는 너의 힘>

 

잡혀온 것들로 아침을 끓인다

 

서해안 꽃게, 고흥 낙지,

묵호산 문어, 강화도 모시조개

 

움츠렸던 몸을 구부리거나 비틀거나

활짝 벌리면서 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는 마지막 탄성

그들의 절규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집게발로 탁탁 구조요청을 보내던

꽃게는 이제 움직임조차 없다

느린 죽음을 택하느니 혀를 깨물었다

 

뚜껑을 밀치고 탈출을 감행하던

문어다리 하나가 냄비의 팔 한쪽을 잡고

서서히 잠들 무렵, 잠잠하던 모시조개가

발가락까지 쥐어짜낸 폐즙(貝汁)과 함께

필사적으로 앙다물었던 고향 한 줌을 퉤 뱉고 간다

 

최후의 발설,

끝까지 근질거리던 직언을 숨기듯

품고 있던 진실은 얼마나 독한가

복수는 이런 것

 

들끓는 한 줌의 연민을 끈다

 

고요한 만찬의 식탁에

서걱서걱 모래 같은 고향이 씹힌다

 

 

<어달리>

 

금빛 머리칼이 벗겨졌다

이제, 저곳은 대머리

 

30년 전 풍성하던 머리칼이 좋아

그 집 대문 앞을 얼마나 서성였나

 

흑채를 뿌려도 민둥산인 저곳에

비키니도 사라지고 삐뜰빼뚤 분주하던

갈매기 발자국도 사라지고

달빛과 키스하던 조가비도 사라지고

광어 우럭 씨가 말라 조사들도 씨가 말라

마당 찾아 커피숍 안쪽으로 자꾸만 기어드는

바람의 구애만 서럽다

 

머리칼을 뜯어 놓았더니 합방이나 가능할까

 

해 질 무렵 노을에 질린 이마로

으헝 으헝 울어 제치는

집 나와 방황하는 젊은 파도 한 두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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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의 마지막 설법 시산맥 서정시선 71
이선정 지음 / 시산맥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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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치킨의 마지막 설법>을 읽고 나서......
그의 시는 일상에서 오는 소소한 형태들이 시인의 언어를 통해 해학과 역설 그리고 반전이라는 묘미를 느끼게 만들어 준다. 그의 시는 에둘러 표현하는 법이 없다. 직설적인 화법으로 예리한 비수가 되어 곧장 심장으로 날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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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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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을 배경으로 펴쳐지는 우리 역사에 대한 인문서적이다. 영월 서강과 동강의 경치, 단종의 유배와 죽음 그리고 종묘에 배향되기까지의 과정, 온달장군에 얽힌 설화, 중원 고구려비가 갖는 역사적 의의, 단양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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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정승일.이종태 지음 / 부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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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

 

 

 

정치적 민주주의가 만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적 자유 시장 또는 합리적 시장 경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상을 일반적으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즉 자유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경제 민주화론의 근저에 깔린 진보적 자유주의는 자유 민주주의의 한 변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11표인 정치적 민주주의와 11표인 경제적 자본주의의 관계는 늘 팽팽한 긴장과 대립 속에 있는 만큼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반드시 통제된 시장, 통제된 자본주의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국민을 위해 시장을, 특히 금융시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금융위기를 막을 수 없으며, 심각한 빈부 격차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가 이러한 과제에 실패한다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로 전락해 형식만 남게 되고, 국민의 삶은 실질적으로 시장과 자본주의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는 진보적 자유주의였음을 자부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치하에서 절실하게 체험했던 바이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모범으로 알려져 있는 스웨덴의 복지국가 시스템이 결코 평탄하게 실현된 것이 아니다. <비그로포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홍기빈 저)에 나오듯이 그것은 193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거의 반세기 가까이 온갖 정치경제적 논쟁과 대립 속에서 좌충우돌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스웨덴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재벌 문제와 노동 문제, 복지 문제 등 다양한 정치경제적 문제들에 직면했으며, 그에 대해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사회민주주의는 모두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이들 서로 대립되는 이념적 사조들은 스웨덴의 복지국가 형성 과정에서 때로는 협조하고 때로는 대립했다.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국가 스웨덴은 그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경제 민주화론자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빈부 격차 심화와 양극화라는 심각한 문제의 주원인이 박정희 체제의 유산인 재벌과 관치, 토건주의에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 우리나라가 당면한 여러 가지 경제 문제가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박정희 체제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점을 직시하고 우리 경제가 나아갈 보편적 복지정책을 제시한 책이다.

 

 

 

우리는 왜 자유주의를 경계해야 하는가?

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시장주의다

한국에는 자유주의에 대한 환상이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나쁘지만 자유주의는 좋은 것이란 식의 인식이 대중적으로 퍼져 있는 거죠. 이른바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은 자신들이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라 그냥 자유주의 혹은 합리적 자유주의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진보적 자유주의자, 사회적 자유주의자라는 말도 하더군요.

그러나 우리가 볼 때 그분들의 주장은 대부분 한국의 노동자, 시민이 아니라 국내외 금융 자본을 위한 신자유주의의 정책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민주화 세력이 집권하더라도 이런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고 그 경우 우리의 미래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는데, 바로 이런 점이 이 책을 내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진보의 착각 때문

진보적 지식인 집단 전체가 재벌 개혁, 관치 금융 폐기 등 신자유주의 노선을 진보로 믿고 지지했기 때문에 실패한 겁니다. 이런 정책들이야말로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우리나라를 양극화로 몰고 가는 원인이라고 우리가 주장해 왔음에도 말입니다.

 

 

좌파 신자유주의 대 우파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정경 유착과 그에 따른 부정부패를 강도 높게 공격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도입한 나라에서 오히려 부패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어요. 인도의 경우 과거 국가가 경제를 통제할 때 부정부패가 많았다면서 1990년대에 국가의 시장 개입을 막는 자유화 정책을 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를 보면 자유화한 다음 부정부패가 더 늘어난 걸로 나와요. 신자유주의라는 게 오히려 부패를 늘리는 경향이 있는 거죠.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자들이 교과서적으로 말하는 완전 경쟁 시장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국가가 떠나면 민간의 누군가가 권력을 쥐고, 그 권력을 이용해 좋지 못한 일을 벌이게 됩니다. 부정부패가 정부에서 민간으로 옮겨 가는 거죠.

 

 

이제는 정말 불판을 갈아야 할 때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기본적으로 모두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진해 온 게 사실이에요. 시민들이 이런 측면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안티 이명박이 노무현 시대로 회귀함을 위미한다면 정말 허무한 일 아닐까요?

 

우파 신자유주의가 마음에 안 든다고 좌파 신자유주의로 가면서 이를 경제 민주화로 포장하는 일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이젠 정말 불판을 갈아야 합니다.

 

 

10년 앞을 내다보고 99퍼센트가 나서자!

이 신자유주의라는 시스템은 1970년대에 싹을 틔웠고 1980년대에 만개해 무려 30년 동안 세계를 강고하게 지배해 왔습니다. 심지어 이 시스템은 한국에서 보듯이 정신적으로 보수파뿐 아니라 개혁적 지식인들까지 포섭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을 거예요. 따라서 한국에 바람직한 시스템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이후 10년을 보고 새로운 힘을 결집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금융위기는 복지와 무관하다

금융 위기의 주범, 금융 자본의 항변은․․․

요즘 미국과 유럽의 보수 세력은 이번 글로벌 금융 위기가 복지를 많이 했기 때문에 벌어진 것처럼 말합니다. 실제로는 그들이야말로 이번 금융 위기의 발생에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하는데도, 정작 금융 위기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번 금융위기를 일으키기라도 한 양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복지 혜택을 줄이겠다느니 세금을 더 내라느니 하면서요.

 

 

그리스, 복지가 아니라 유로존이 문제다

유럽 전체 차원에서 비교해 볼 때 그리스나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같은 남유럽 나라들은 오히려 복지 시스템이 허약한 곳이에요. 따라서 이들 나라의 재정 위기는 복지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2008년의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 비롯된 겁니다. 심각한 불경기가 닥치자 정부의 세수는 크게 준 반면에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금융권에 사상 최대의 공적 자금을 수혈하다 보니 재정 적자가 심각해진 거죠.

 

한마디로 유럽의 재정 위기는 복지와 아무 상관이 없어요. 2009년까지는 지은 죄 때문에 납작 엎드려 있던 국제 자본들이 남유럽에 재정 위기가 현실화되니까 정부 때문이라고 억지를 쓰면서 엎어치기를 시도하고 있는 겁니다. 정부가 복지 정책을 너무 많이 시행해서 이렇게 됐다는 식으로 만들어 자기들이 원하는 걸 챙기자는 전술이죠.

 

유로존의 경우 유로화로 통합된 화폐 체제에 심각한 결함이 있기 때문에 유럽의 재정 위기가 쉽게 수습되지 않는 거니까요. 화폐 측면에서 보면 유로존은 하나의 통일 국가처럼 보이지만 실은 세금도 따로 거두고 복지 정책도 나라마다 달리하고 노동 정책과 경제 정책도 각자 알아서 하는 식으로, 서로 완전히 독립적인 나라들입니다.

 

실제로 유로존 회원국이 아니었던 아이슬란드는 금융 위기 발발 이후 자국의 통화 가치가 폭락한 덕분에 요즘 조금씩 경제 상황이 개선되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리스나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은 유로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통화도 평가절하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제약이 있는 데다 재정 긴축까지 해야 하는데, 어떻게 경제를 살릴 수 있겠어요.

 

 

18세기 이데올로기에 세계 경제가 무너진다

18세기 유럽인들은 가난하게 사는 것은 검약하지 않은 자의 도덕적 결함 때문이라고 청교도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너무 놀고 낭비했거나 아니면 남을 속이기 좋아해서 가난해진 거라고 믿는 거죠. 이렇게 가난을 윤리 문제로 환원시키다 보니 금융 위기가 벌어져도 그 원인을 윤리적 결함에서 찾아요. 시스템적 위기라는 개념은 나올 수가 없는 거죠.

 

그리스가 다른 유로존 회원국들에 비해 가난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EU 내에서의 자유 무역 때문이에요. 유럽 경제 통합의 기본 아이디어는 회원국들이 서로 무역 및 서비스 시장을 활짝 열면 EU와 유로존 전체에서 생산성이 골고루 발전해 공존공영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자유무역 체제가 형성되면 무역 상대국들의 생산성이 골고루 발달한다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EU의 경우 노동력이 상대편 나라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까지 허용되니 자유 시장 이론이 잘 작동해 각 나라의 생산성이 고루 성장하게 되리라고 기대할 수밖에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아요. 아무리 법적으로 그리스에서 독일로 이민을 무제한 허용한다 해도 언어 장벽 등 한계가 많아 노동력이 실제로 자유롭게 움직이기는 어려우니까요.

 

 

양적 완화, 왜 효과를 거두지 못하나?

미국의 경우에도 단지 양적 완화로 돈만 풀 게 아니라 그 돈이 반드시 생산적 대출에 사용되도록 은행들에 대한 대출 규제 정책을 병행해야 했어요. 예컨대 양적 완화로 풀린 돈의 일정 비율 이상은 반드시 중소기업이나 가계에 대출하도록 하고, 국제 선물 시장 같은 데에는 쓸 수 없도록 강력하게 통제했어야죠.

그것이 우리나라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 금융사들이 양적 완화로 얻은 초저금리 자금을 한국 같은 동아시아 증권 시장에 투자해 엄청난 수익을 올리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내려가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경제를 살리려는 미국 정부의 양적 완화 자금이 이렇게 미국을 벗어나 제3국의 주가나 올려놓는 현상을 막으려면 미국 정부도 자본 통제, 외환 시장 통제를 해야 합니다.

 

 

재정 적자, 나무 두려워할 필요 없다

복지국가라는 스웨덴도 1990년대 초반에 금융 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재정 작자와 정부 부채가 크게 늘어나 힘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스웨덴 정부는 요즘 IMFEU가 요구하는 것처럼 무조건 재정 지출 줄이고, 무조건 민영화하고, 무조건 공무원 해고하고 그러지 않았어요. 물론 일부 복지를 줄이기는 했지만 동시에 증세도 하고 금융 시장 구제도 강화했으니까요.

이후 위기에서 벗어난 1990년대 후반부터 스웨덴은 다시 세계 최고 수준의 복자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노력해서 경제가 살아나자 정부의 세수가 늘어서 위기 후 십 년도 지나지 않아 정부 부채가 다시 원래 수준으로 낮아졌어요.

 

 

이제는 국가파산법을 만들어야 한다

요즘 미국의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55퍼센트 전후인데, 이게 역사상 초유의 사태도 아니더군요. 1943~1956년 사이에도 50퍼센트 이상이었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112퍼센트까지 올라갔다고 해요.

재정 적자가 아니라 흑자를 기록하던 클린턴 대통령 당시인 1996년에도 49퍼센트까지 올라간 적이 있고요. 결국 현재 미국의 국가 부채 비율이 높은 건 전임 부시 대통령이 워낙 감세를 많이 해서 세수가 줄어들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금융 위기, 저금리 때문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금융 위기가 자주 일어나게 된 건 1980년대 중후반부터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는 바로 금융 자본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된 시기와 겹쳐요. 시장주의자들은 금융 자본주의처럼 사장의 자유가 보장되는 시스템에서는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없다고 맹신했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그린스펀 연준 의장 같은 경우 2006년까지만 해도 미국 부동산 시장에 거품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다가 2007년 들어 사태가 너무 심각해지니까 그제야 국지적으로 작은 거품들이 있다고 마지못해 인정했어요.

 

결국 세계 금융 위기는 시장 경제 맹신이라는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금융 자본주의라는 구조적 요인에 저금리 정책까지 가세하면서 터진 사건이라고 봅니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지금 저금리에만 책임을 돌리고 있는 건 앞의 두 가지, 즉 시장 경제 맹신과 금융 자본주의가 자기들이 늘 옹호해 오던 것이기 때문이에요.

 

 

자본주의 자체의 패러다임이 달라졌다

월스트리트의 금융 자본주의와 주주 자본주의를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부르며 다른 나라들에도 금융 시장과 기업지배구조를 다 그렇게 바꾸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한 게 1990년대 중후반이에요.

마침 그때 한국 같은 동아시아 나라들은 외환, 금융 위기를 겪게 됩니다. 그러자 월스트리트가 IMF와 세계은행을 앞세워 우리가 구제 금융에 필요한 달러를 빌려 줄 테니 그 대가로 금융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자본 시장도 개방하라고 요구한 겁니다.

말하자면 월스트리트의 금융 자본, 주주 자본이 한국 시장을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한 거죠.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식으로 토양을 바꾸었고요.

 

 

결국 문제는 자유 시장에 대한 맹신이다

보수파든 개혁파든 정보 공개와 투명성 강화 정도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여전히 시장 경제의 효율성과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환상이 있기 때문인데, 이건 정말 오산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금융 개혁은 말하자면 금융 시장의, 금융 자본을 위한, 금융 자본에 의한 금융 개혁에 불과해요. 말하자면 금융 시장이 계속 돈을 더 잘 벌기 위해 약간의 수리를 하는 금융 개혁이지, 경제의 다른 부분을 도와주려는 금융 개혁이 아니라는 겁니다.

 

 

보수도 진보도 월스트리트를 선망한다

저격하면 될 걸 왜 무차별 폭격하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위험 때문에 전 세계가 저금리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우리만 금리를 올릴 경우 금리 차액을 노린 외국 투기 자본이 무더기로 들어올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금리를 정말로 인상하고 싶다면 자본 통제를 해야 하는 겁니다. 즉 헤지펀드 같은 해외 투기 자본이 쉽게 들락날락하지 못하도록 장벽을 쌓은 다음에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거예요.

 

브라질은 실질금리가 한창 높을 때는 12퍼센트까지 갔고, 2008년 이후 조금 내려가긴 했지만 그래도 3퍼센트도 안 되는 국제 금리보다는 여전히 높아요. 그 때문에 자본 통제하고 자본 거래세도 올리고 해서 캐리 트레이드를 노린 외국 투기 자본의 유입을 막으려는 거예요.

물론 브라질의 실질금리가 이렇게 높다 보니 경제가 활발하게 돌아가지를 않습니다. 다만 과거 수십 년 동안에 비해서는 상당히 양호한 수치이기 때문에 요즘 브라질이 잘나간다고 할 뿐입니다.

 

 

중앙은행 독립? EU의 경험을 새겨라

우리나라 한국은행법에는 오로지 물가 안정만 목표로 정해져 있어요. 신자유주의적 통화주의의 교리를 만들어 낸 밀턴 프리드먼이 가장 바람직하게 보는 모델인 거죠.

반면에 완전 고용을 책임지는 것은 기획재정부입니다. 미국과 달리 물가 안정과 완전 고용을 서로 다른 조직이 맡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금리 인상 같은 대포를 발사하기 전에 한국은행이 기획재정부와 공동으로 협의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게다가 금리 안상 시 발생하는 가계 파산과 기업 파산에 대비하려면 사전에 사회복지 예산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건 시장 개혁을 주장하는 분들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때 사전에 정부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고 합의해야 맞지 않나요?

 

유럽에서는 이른바 좌파라는 사람들이 중앙은행 독립에 절대 반대하는 거예요. 통화정책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걸 민주적 통제 밖에 둘 수 있느냐는 거죠.

그리스 사태에서 보듯 유럽의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요즘도 가장 많이 비판받는 게 유럽중앙은행의 독립성입니다. EU 어디에도 유럽중앙은행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장치를 만들어 놓지 않은 거예요. 유럽위원회에 권한이 없다면 하다못해 유럽의회에라도 그런 권한이 있어야 하는데, 의회에도 그런 권한이 없거든요.

 

하다못해 미국 연준도 3개월인가 6개월인가에 한 번씩은 미국 의회에 가서 머리를 숙여야 해요. 의회 청문회에 가서 연준 총재가 고분고분 말하는 거 보셨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EU에는 그런 것도 없어요. 유럽중앙은행이 요즘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 멋대로 금리를 올리겠다고 주장하는데, 그걸 막을 뾰족한 장치가 없는 겁니다.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거죠.

 

 

첨단 금융 기법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한국의 자칭 진보 경제학자들은 은행들의 주주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는다니 정말 심각한 문제네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은행 대출의 90퍼센트 가까이가 기업에 빌려준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기업 대출이 30~40퍼센트 정도예요. 나머지가 다 가계 대출인데 그중 절반이 부동산 대출이잖아요.

리고 미국이나 영국과 마찬가지로 우리 은행들 역시 주식 펀드들 압력 아래 있어요. 은행 주식의 60퍼센트 정도를 월스트리트나 런던 시티의 펀드들이 소유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은행들이 어떻게든 수익을 내서 주주들에게 나눠 주려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우리나라 은행권이 그렇게 가계 대출, 부동산 대출을 늘린 이유가 주주 자본주의의 이해관계와 직결되어 있어요. 그런데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은 이 점을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은행들이 가계 대출을 늘린 이유는 단지 바젤 규제가 도입되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물론 일리는 있죠. 바젤 규제라는 게 대출 리스크에 따라 위험을 측정하게 되어 있는데, 부동산 담보 같은 게 있는 가계보다는 기업에 대한 대출 리스크가 더 높으니까요.

 

 

은행 민영화야말로 반중소기업적이다

은행 대출의 규제 완화라는, 사실상 반 중소기업적인 정책을 지지한 분들이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이에요. 심지어 그들은 과거 중소기업은행이었던 기업은행의 민영화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요. 기업은행이 완전 민영화되면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이 그야말로 3분의 1은 줄어들 텐데도 말입니다.

 

영국 은행가들 사이에 격언이 있습니다. 돈 필요한 놈한테는 절대 돈 꿔 주지 마라는 거죠. 그게 바로 첨단 금융 기법입니다.

 

기업을 도와주려 애쓰는 은행은 수십 년 전부터 정부의 산업 육성 정책과 결합되어 있던 곳들이라, 충분치는 않지만 기업들을 재무제표나 담보 여부만으로 심사하지 않는 조직 관행이 아직 남아 있어요. 이건 우리나라 은행들의 미래 성장을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그런 소중한 관행이 지금 민영화와 주주 자본주의의 파도에 휩쓸려 그대로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어요.

 

그 때문에 기업은행이나 산업은행 같은 곳은 민영화하면 안 되는 겁니다. 우리은행도 마찬가지고요. 아직 다행히 이 은행들은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데, 관치 금융이라는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정부가 끌어안고 소중하게 잘 키워 우리나라 은행 산업의 미래를 만들어야 합니다.

 

 

은행 해외 매각, 그 책임은 누구에게?

사모펀드는 익명의 돈 많은 투자자들이 모여서 만든 것으로, 3년에서 5년 이렇게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런 사모펀드에 어떻게 국가 경제의 핏줄을 관리하는 은행을 준다는 거죠?

은행을 소유하고 있는 그 3년에서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최대한 단기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할 게 뻔한데 말입니다.

이미 사모펀드에 넘어간 외환은행이나 제일은행(SC은행), 한미은행(현 씨티은행)에서 보았잖습니까? 당장 돈이 안 되는 기업 대출은 확 줄여 버리고, 대신에 돈이 되는 부동산과 고리 대금 같은 쪽으로만 대출을 늘리는 걸요. 사모펀드 투자자 중에 재벌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사모펀드는 은행의 대주주 자격이 없다고 은행법에 못 박아야 합니다.

 

재벌 금융 규제보다 파생상품 규제부터

이번 미국발 금융 위기에서 드러났듯이 정말 중요한 건 재벌 금융 규제가 아니라 헤지펀드나 신용파생상품, 국제 신용 평가사, 이런 것들을 규제하는 거예요. 이런 데 집중해야 하는데, 근원적인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지엽 말단적인 문제를 가지고 마치 국은이 걸린 것처럼 말하면 안 되죠.

 

예컨대 재벌 계열사인 SK증권이 헤지펀드를 조성해 운영하는 것이나 독립 증권사인 키움증권이나 대신증권이 헤지펀드를 조성해 운영하는 것이나 그 위험성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겁니다. 정말로 위험한 건 헤지펀드 같은 그림자 금융 시스템이니 그걸 규제하고 금지하는 거예요.

 

 

보수와 진보 모두 월스트리트를 선망한다

시장 개혁과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도 우리나라 은행들의 가계 대출이 크게 늘어난 걸 걱정하기는 해요. 그런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물으면 그저 은행 경영진이 방만하게 경영했기 때문이라고만 합니다. 막상 은행 경영진이 방만한 경영을 한 이유가 뭔지 물으면 개인적인 도덕적 결함이나 경영 능력 부족으로 치부해 버려요.

절대로 우리나라 은행들이 주주 자본주의에 포획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습니다.

 

은행권을 주주 자본주의화한 장본인이 바로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이니까요. 우리도 요즘 선진국에서 나오는 말처럼 은행 경영진의 보너스와 스톡옵션을 규제해야 합니다.

스톡옵션이라는 게 해당 회사의 주가가 오르면 경영진이 오른 가격에 자기 보유 주식을 팔아 이익을 얻는 방식이잖아요? 그래서 회사 경영진은 죽어라고 자기 회사 주가를 올리려고 노력하는 거고요. 다른 일반 회사는 스톡옵션을 허용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은행에서는 절대 허용하면 안 됩니다.

 

 

왜 다시 박정희를 불러내는가?

한국의 경제발전이 정말 당연한 결과인가

포항제철이나 현대자동차 같은 중화학 공업의 성공이 바로 박정희식 관치 경제가 비효율적이지 않았다는 증거죠. 박정희는 결코 민주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민주주의와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총칼로 언로를 막고, 입바른 국회의원들을 정보부로 잡아들여 고문까지 하고, 유신헌법으로 민주주의의 싹을 말렸으니까요. 이런 거 다 인정해야 합니다.

 

박정희의 업적 중 하나인 산업 정책과 정책 금융은 버릴 게 아니라 이어받아야 해요. 진정으로 민주적인 국가라면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권자인 국민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제대로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요.

 

결국 시장 개혁을 주장하는 분들의 견해라는 게 산업 정책 같은 건 필요 없고, 사기업들이 자기 이익만 열심히 추구하도록 놔두면 사회 전체적으로도 이익이 된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미국 투자은행들이 자기 이익만 열심히 추구하다가 대형 사고를 친 게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아닌가요? 이런 논리는 극단적인 시장주의 이데올로기일 뿐입니다.

만약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 당사자들만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포항제철 같은 산업 정책의 성공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빈부격차가 정말 박정희 때문인가?

양극화 원인을 박정희가지 거슬러 올라가서 찾는 건 엉뚱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통계로 봐도 한국에 신자유주의가 도입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부터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는 건 쉽게 알 수 있는데 말입니다. 소득 불평등도가 1980년대에는 오히려 계속 줄어들었어요. 그러다가 1990년대 초반부터 확대되기 시작하고, 1997IMF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급등하거든요.

김영삼 정부가 경제기획원을 폐지해 산업 정책을 약화시키고, OECD 가입하고, 금융 규제 완화하면서 세계화를 부르짖을 때가 1990년대 초반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대기업의 고용 관행 변화를 잘 봐야 한다는 겁니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재벌 대기업들은 비정규직을 거의 채용하지 않았어요. 19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대기업들에 정규직을 중심으로 강력한 노조가 자리를 잡자,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들이 비정규직 채용을 늘리기 시작합니다. 1997IMF 사태 이후에는 대기업들이 아예 정규직은 새로 뽑지 않는 수준까지 갔고요. 이런 변화를 정확하게 보고 그 원인이 뭔지 찾아야 합니다. 그냥 재벌이 나빠서라고 말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1990년대 초반부터 진행되었어요. 그러다가 신자유주의가 본궤도에 오른 1998년부터는 걷잡을 수 없어진 거고요. 비정규직 채용도 마찬가지예요.

 

 

자본주의 경제발전은 선악의 잣대로 잴 수 없다

역사를 선악이라는 윤리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이 대부분 미국에서 공부해 영미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은연 중 근대화, 즉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발전은 선한 영미 민주주의정치 시스템에서 전개되어야만 정상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자본주의는 결코 선하거나 민주적인 시스템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어느 나라나 자본주의 초창기에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정착시키지 못했고요.

 

세계사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함께 성장한 나라는 없습니다. 미국과 영국 역시 마찬가지예요. 미국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였지만 여성이나 흑인에게는 투표권도 안 주고, 사설 탐정단을 고용해 노동 운동을 무력으로 탄압한 나라였으니까요.

 

 

시장 개혁 이후 남미의 현실을 보라!

1980년대부터 일찌감치 시카고학파 경제 이론과 주주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남미의 금융 위기가 그런 유형이었어요. 남미의 기업들은 투자를 꺼려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는 바람에 부채 비율도 대단히 낮았습니다. 한국이 300~400퍼센트일 때 브라질은 50퍼센트 정도였으니까요. 1980년대 우리나라의 시장주의적 관료들과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이 좋아했을 만한 체질 강한 기업들 아닌가요?

이러니 남미의 은행들이 누구에게 돈을 빌려 줬겠어요?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이었죠. 나중에 이런 대출이 부실화되면서 1982년 칠레에서, 1995년 멕시코에서, 1998년 브라질에서, 2002년 아르헨티나에서 금융 위기가 터진 겁니다.

 

흔히 박정희식 관치와 산업 정책을 정경 유착이라고 하면서 마치 산업 정책을 하면 반드시 부정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래도 산업 정책에는 일관된 원칙과 가이드라인이 있어요. 정부 보조금이나 특혜 금융은 그에 부합하는 기업에게만 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큰 부정이 일어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공개된 원칙과 가이드라인이 비효율적인 관치의 유산이라고 비판받으면서 아예 폐지되었고, 그 결과 예전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부정이 은밀하게 일어나는 겁니다.

 

 

공정 시장? 결국 영미식 자본주의다

흔히 말하는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산업들이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이라면 최소한 연 30~50만 대는 생산해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자동차 산업이나 전자 산업 같은 걸 육성할 때는 이른바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대기업의 해악을 막는 방법을 논의해야 합니다. 재벌, 즉 기업집단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주주 자본주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계열사 지원은 내부자 부당 거래가 되고 불공정 거래가 됩니다. 주주 자본주의의 관점만이 아니라 미국의 다국적 기업의 관점에서 볼 때도 그룹 계열사들 상호 지원은 불공정한 거예요. 이 문제로 일본도 많이 당했습니다. 1980년대에 미국 회사들이 일본 회사들과 국제 경쟁에서 져서 난리가 났는데, 알고 보니 일본은 미국 회사들과 달리 서로 도와주더라는 거예요. 그러자 미구 회사들이 이를 GATT에 불공정 무역으로 제소하겠다고 난리를 쳤어요.

 

 

재벌 대신 해외 펀드 지배가 공정인가?

진정으로 공정한 경제와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려면 재벌들 뒤에 있는 국제 금융 자본을 규제해야 하고, 재벌들 위에 있는 주주 자본주의 시스템을 규제해야 합니다.

외국인 주주가 100퍼센트 지배하는 씨티은행이나 스탠다드차타드, 외환은행을 보세요. 정부에서 부동산 담보 대출을 못하게 규제하니까 외국계 은행들은 오히려 다른 은행이 못하는 것 우리가 하자는 식으로 주택 대출을 더 늘렸잖아요. 이게 그들의 주주에게는 공정한 일이거든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시장이나 자본주의는 원래 공정을 실천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에요.

 

 

지식 경제-굴뚝 경제, 구분 자체가 난센스다

미국의 군사 전략과 국방 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성장한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를 한국의 진보적 인사들이 참된 기업가’ ‘착한 기업가로 치켜세우면서 이건희 회장이나 정몽구 회장과 대비시키는 모습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죠.

문제의 핵심은 나쁜 삼성 대 착한 애플의 구도가 아니에요. 이는 미국과 한국의 역사적 제도적 차이를 살펴봐야 합니다. 미국은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전한 반면 제조업은 약하고, 한국이나 일본, 독일, 스웨덴 같은 나라는 소프트웨어는 약하지만 제조업은 강해요.

이런 차이는 보지 않은 채 애플의 미국은 감동을 주는 지식 기반 경제인 데 비해, 삼성공화국 한국은 하드웨어 굴뚝 경제라는 사고는 편협한 거죠.

 

 

실리콘밸리야말로 미국 산업 정책의 결과다

미국의 가장 중요한 산업 정책은 다른 나라에 미국은 산업 정책 안 한다고 선전하는 겁니다. 다른 나라가 무장 해제를 하도록 말이죠. 그러나 실제로 미국은 산업 정책의 비중이 큽니다. 실리콘밸리 역시 정부 돈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고요. 미국이 경쟁력을 갖춘 산업은 대부분 국방과 관련 있어요. 컴퓨터는 펜타곤, 반도체는 미 해군, 항공기 산업은 미 공군, 인터넷도 미 국방부가 지원한 것이고요.

 

말하자면 미국 역시 우리나라의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이 늘 비판하는 산업 정책을 하고 있는데, 단지 한국과는 다른 형태 다른 방식으로 할 뿐이라는 거군요. 사실 미국 제약 산업의 경쟁력이 뛰어난 이유도 산업 정책 덕분이죠. 미국 제약 산업은 194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에 한참 뒤졌어요. 그런데 1940년대부터 미 국방부가 전 세계에 미군을 파견하다 보니 병사들이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 거예요. 그래서 국방부와 보건부가 발하자면 전략적으로 온갖 신약 개발을 지원하면서 제약 산업이 발전한 겁니다.

 

지금도 미국 제약 산업의 연구개발비 중 30퍼센트가 정부에서 나와요. 세계 최대 규모죠. 미국에도 이런 엄청난 산업 정책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미국은 안 한다더라, 우리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있는 거예요. 미국은 연방정부뿐 아니라 주정부도 엄청난 규모의 산업정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독일과 스위스도 마찬가지고요.

 

 

재벌 개혁,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 한다

재벌 해체는 투기 자본을 위한 잔칫상이다

흔히 스웨덴의 발렌베리를 대표적 차등의결권의 예로 꼽는데, 미국에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빅3라고 하는 포드자동차의 주식은 총수 가족이 보유한 A주와 그렇지 않은 B주로 나눠져 있는데, 거기서 A주는 발행 주식 전체의 20퍼센트밖에 되지 않아요. 그런데 M&A 등 주요한 결정에서는 아무리 B주 보유자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한다 해도 A주의 과반수가 동의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만큼 포드 가문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는 거죠.

우리나라에는 현재 이런 차등의결권 제도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재벌들이 순환 출자 같은 방법을 통해 경영권을 유지해 온 거예요. 이렇게 나라마다 시대마다 경영권을 지키는 고유의 방법이 있습니다.

 

현재의 주주 자본주의 게임에서 그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재벌 가문은 여차하면 모든 경제 권력을 빼앗길 수도 있는 만큼 어떻게 해서든 주가를 높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돌리기도 하고, 일단 뽑은 정규직 인력은 불철주야 일하게 해서 본전을 뽑아야죠. 물론 하청 단가는 남들한테 욕먹지 않을 수준까지만 주고,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같은 것도 잘못 없다고 시치미 뚝 떼어야 하고, 노동조합 같은 건 눈에 불을 켜면서 만들게 방해해야 합니다.

이런 행위들이 단지 주식 투자자들에게만 좋은 건 아니에요. 대주주인 이건희 일가 역시 당연히 과거에 비해 더 많은 배당을 받으니 좋죠. 따라서 재벌 가문들로서도 주주 자본주의가 별로 싫을 게 없어요.

 

 

키운다는 파이는 누가 먹어 치우고 있는가?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한 산업이 여전히 많아요. 우주항공, 정밀기계, 제약, 부품소재 등이 너무 약하거든요. 이런 부문으로 돈 많은 대기업들이 과감히 진출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에 기여해야 합니다.

 

제약 산업 같은 경우 영국 수준을 쫓아가려고만 해도 앞으로 10~20년 정도는 손해를 각오하고 장기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걸 누가 해요? 아무리 주식 시장이 발전하고 돈 있는 투자자들이 많다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수익이 안 나오고, 게다가 손해 볼 가능성까지 큰 투자를 하겠어요? 결국 대기업이 해야 하지 않나요?

주주 분배액의 1/51조만 매년 오리지널 신약 개발에 쓴다 해도 삼성은 10, 20년 뒤에는 틀림없이 세계적인 제약 업체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입만 열면 지금은 파이를 나눌 때가 아니라 파이를 키울 때라는 둥 분배를 하면 성장이 안 된다는 둥 말하면서 복지국가를 놀고먹는 게으른 배짱이라고 비판하는데, 오늘날 기업 투자와 경제 성장을 방해하면서 분배를 외치는 최대의 분배주의자들은 바로 주식 투자자들이고 금융 자본이에요.

신자유주의 금융 자본이야말로 최대의 분배주의자들인 거죠. 그들이야말로 배짱이예요. 경제학자 케인스도 이런 자본가들을 일러 비판하잖습니까. rentier capitalism, 그러니까 쉽게 표현하면 띵까띵까 놀고먹는 자본가들의 자본주의라고요.

 

 

경제 민주화의 이상향이라는 KT를 보라

한국은 R&D 부문에서 공공 투자의 비중이 채 20퍼센트도 안 되는 데 비해 미국은 40퍼센트에 이릅니다. 그런 데다 한국 같은 후발주자들은 미국 같은 선진국보다 R&D에 더 많이 투자해야 따라잡을 가능성이 생기는데, 문제는 신자유주의 시장 개혁 이후 투자 성향이 많이 위축됐다는 거예요.

1999년 민영화 이후 KT는 기업지배구조를 잘 바꿨다고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상을 받아 마땅했을까요? 민영화 과정에서 원래 정규직의 절반 가까이가 해고되고, 그중 일부는 다시 비정규직으로, 외주 노동자나 파견 노동자로 재고용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주주 배당은 엄청나게 높였어요. 순이익 대비 주주 이익 환원율이 2010년에는 50퍼센트 정도였는데, 2009년에는 94퍼센트더군요. 이런 기업에 진보적 시민 단체가 상을 주면서 노동자들의 눈물은 외면했어요. 정말 좋은 기업지배구조는 누구에게 좋은 걸까요?

 

 

기업의 투자마저 양극화되고 있다

주목할 사실은 민영화된 공기업이나 재벌 해체를 당한 기업의 경우 매출액 대비 투자율이 IMF 사태 이전보다 현저히 낮아졌거나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정체되고 있다는 거예요.

KT나 대우자동차, 쌍용자동차가 대표적이죠. 반면에 나름대로 그룹 체제가 유지된 재벌 산하에 남아 있는 대기업 중에서 잘나가는 일부 기업들은 매출액 대비 투자율이 계속해서 크게 늘어나고 있어요. 그 대표적인 회사들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입니다. 현대자동차에 인수된 기아자동차도 마찬가지고요.

 

 

기관 투자자는 과연 선량한가

자본주의 역사를 통틀어 적대적 M&A는 최근의 아주 예외적인 현상이에요. 선진국에서도 지난 200년간 적대적 M&A가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그게 당연한 것이 적대적 M&A가 가능하려면 먼저 해당 회사가 상장 기업이어야 하고, 또 소액주주와 기업 사냥 펀드들이 기업 이사회를 장악하는 게 용이하게끔 모든 법적 규제가 풀려있어야 하거든요. 그런 선결 조건이 과거에는 선진국에서도 없었던 거예요.

 

적대적 M&A는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가 1980년대부터 금융 시장 키우고, 금융 규제 완화하고, 주주 자본주의를 전면화하면서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나타난 새로운 현상입니다.

 

 

재벌 경영권과 복지를 맞바꾸자

시민들이 재벌에게 경영권 방어 장치를 허용한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 대가로 제안할 수 있는 건 생산 기지의 해외 이전 제한, 설비 및 R&D 투자 확대, 미래형 신산업 투자, 그리고 복지국가 건설 및 부자 증세 협조 등이 있을 수 있죠. 아무튼 반드시 그 대가는 받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은 재벌 개혁이라는 명분하에 국내 대기업들을 지금보다 더 국제 자본 시장의 압력에 노출시켜야 공정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해 온 셈입니다. 하지만 이건 한국 경제가 국제 금융 자본의 논리에 전면적으로 노출될 때 발생하는 해악을 간과하는 태도예요.

 

반면에 보수주의자들은 재벌이 바라는 건 무조건 들어줘야 한다는 태도로 일관했죠. 그러나 이건 재벌이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신사업 장기 투자 같은 어려운 일에서는 손을 놓고 지금처럼 비교적 빨리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금융이나 심지어 소매 유통 같은 서비스업으로 진출해 서민들의 밥그릇까지 위협하는 현실을 간과한 논리입니다.

 

 

투자자 이익보다 미래 산업 육성이 먼저다

기술혁신으로 기존 산업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신산업을 키우는 건 좋은 다각화지만, 로비로 규제 완화를 해서 의료 시장에나 들어가는 건 나쁜 다각화니까 그런 건 막아야 합니다. SSM처럼 국내 소상인들과 경쟁을 해서 쉽게 벌어 보겠다는 다각화도 저지해야 하고요.

 

 

복지가 중소기업을 업그레이드한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복지국가가 해야 할 첫 번째 임무는 2, 3차 하청 기업들처럼 저임금 노동자를 채용해야 경쟁력이 유지되는 한계 기업들을 정책적으로 퇴출시키는 겁니다.

동시에 최저임금을 높이고, 이들 회사의 종업원까지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산별 노조를 국가적으로 만들어 저임금 일자리가 원칙적으로 존재할 수 없도록 해야 하고요. 그렇게 되면 저임금-저효율 중소기업들과 영세 업체들은 퇴출될 겁니다.

 

이런 노동자들에게 좀 더 수익성 높은 산업으로 이직할 수 있는 직업 재훈련을 시키고, 또 산업 정책을 통해 이들을 흡수할 수 있는 신산업 부문을 육성해야 합니다. 생산적 복지를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복지국가를 중심축으로 해서 중소기업 부문의 업그레이드 전략을 전체적으로 짜자는 말씀이죠? 그게 올바른 방향입니다. 산업 구조 자체가 고도화되지 않으면 아무리 대기업의 중소기업 약탈을 정부가 규제한다 해도 상황이 본질적으로 나아지지는 않아요.

2, 3차 하청 부문의 한계 기업들은 단기적으로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근근이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기술력을 높이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힘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스웨덴은 연대임금제를 통해 한계기업들을 정리하면서 국가 전체의 산업 고도화를 이루어 내 바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에게는 같은 임금을 준다는 것이 연대 임금 원칙인데, 이 제도를 시행하면 생산성이 낮은 한계 기업들은 퇴출될 수밖에 없어요.

반면에 생산성이 높은 기업들은 더 성장하게 됩니다. 또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 내부의 임금 격차가 좁혀져 양극화도 줄어들고요.

 

우리가 이런 의견을 제시하면 보수파들은 고임금과 노조 때문에 기업 망한다고 할 겁니다. 그런데 폭스바겐이나 벤츠 노동자들은 GM 노동자들보다 월급을 훨씬 더 많이 받지만 실제로 망한 건 GM입니다. 물론 보수파들은 주주 자본주의 때문에 기술 혁신 못하고 품질 높이지 못해서 GM이 망했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고임금과 노조 때문에 망했다고만 하는 거죠.

 

노조 때문에 망했다면 노조 강한 스웨덴이나 임금 높은 독일 자동차 회사가 망해야지 왜 미국 자동차 회사가 망합니까? 결국 스웨덴이나 독일은 1시간에 40달러씩 주는데도 수지타산이 맞다는 거고, GM은 그렇지 않았다는 거 아닙니까? GM이 그렇게 된 이유가 뭐겠어요? 기술 개발 안하고, 기술이 필요하면 사브니 대우차니 해서 좀 작고 돈 없는 기업 인수해서 기술 빼내 쓰고 하다가 망한 겁니다.

지금 영국에서 쉐보레 달고 다니는 차들도 다 옛날에 대우가 디자인한 자동차들이에요.

 

독일에는 중소기업 금융을 전담하는 공립 은행인 스파르카센이 지역마다 있는데, 그 은행의 대주주는 지방 정부입니다. 우리도 이런 게 필요해요. 스파르카센은 지방 정부의 중소기업 육성 정책과 연결되어 좋은 일을 많이 합니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경기가 안 좋아지면 일반 은행들은 대출 회수를 독촉한다. 그러나 스파르카센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군요. 이런 점 때문에도 기업은행 같은 국책 은행을 민영화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기업은행은 앞으로 복지국가를 위해서도 할 일이 많아요.

 

 

가장 좋은 FTA 대책이 바로 복지국가다

왜 스위스를 알프스의 요새라고 하는가

스위스는 냉철하게 따져 보고 국익에 어긋나는 경제 통합에는 참가하지 않아요. EU는 농업을 엄청 보호하는 편이에요. 그런데도 스위스는 그 수준이 부족하다며 EU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농업에 양보할 수 없는 정체성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의 뿌리는 산촌의 농민이다, 이들이 사라져 스위스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면 개방하지 않겠다, 개방하지 않아 생기는 불이익은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거죠.

 

스위스는 기업지배구조도 대단합니다. 소액주주들이 기업 경영의 안정성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경영권 방어 장치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러면서도 소액 주주들로부터 원성이 나오지 않도록 치밀하게 그 규칙들을 짜 놓았다고 해요. 또 스위스의 대기업과 은행은 겉으로는 다 독립들을 짜 놓았다고 해요. 또 스위스의 대기업과 은행은 겉으로는 다 독립된 회사들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들끼리 거미줄처럼 복잡한 순환 출자 관계로 엮여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인근 강대국의 자본이 어떻게 인수할 방법이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거죠. 지금도 그렇다고 하고요. 이런 면에서도 스위스를 알프스의 요새라고 부른다는군요.

 

 

제조업 없이는 고부가가치 서비스도 없다

현대자동차 사람들이 1980년대까지는 엔진 기술을 배우려고 영국에 뻔질나게 드나들었어요. 당시까지만 해도 영국이 자동차 강국이었고, 엔진 디자인 능력도 대단히 뛰어났으니까요. 그런데 영국의 자동차 산업이 몰락하면서 현대자동차 사람들이 영국에 잘 안 가게 된대요.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요. 반면에 요즘에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스위스에 자주 간답니다.

이 나라들에는 자동차와 정밀기계 산업이 발전해서 지금도 기술 개발과 디자인 개발 관련 컨설팅 업체들에서 배울 게 많다면서요.

 

 

세계의 사무실인도의 열악한 경제 현실

지금 선진국 중에서 1인당 제조업 생산량이 가장 적은 나라가 호주입니다. 제조업 생산량이 다른 나라보다도 30퍼센트 이상 낮으니까요. 그렇지만 천연자원이 워낙 풍부해서 그럭저럭 경제를 꾸려 가는 겁니다.

현재 인도의 1인당 제조업 생산량은 호주의 1/30밖에 안돼요. 인도가 호주 수준까지 제조업이 발전하려고 해도 1인당 생산량이 지금보다 30배는 많아져야 한다는 뜻이죠. 지금 인도의 경제 실적으로는 제조업을 발전시킬 여력도 없어요. 그런데 서비스 부문에서 가까스로 낸 흑자로는 그 기계조차 제대로 구매할 수 없어요. 성공했다고 하는 서비스업이 이 나라 제조업 무역 적자의 20퍼센트 정도밖에 감당해 주지 못하는 상황이니까요.

 

 

한국의 제조업이 과연 세계적 수준인가?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는 게 한국 제조업은 이미 세계 수준이라는 과신입니다. FTA 찬성론자들은 이미 한국의 제조업 생산성이 선진국의 70~110퍼센트 수준까지 올라갔다는 통계를 제시하곤 하는데, 한미 FTA와 관련해 미국의 제조업 생산성과 한국의 제조업 생산성을 자세히 비교해 보면 우리는 아직 미국의 50퍼센트 수준이에요.

 

 

첨단 산업 육성, ‘할 수 있다면 그만 인가

우리나라 최대 제약사가 동아제약인데, 이 회사 매출이 연간 1조 원밖에 안돼요. 미국 화이자의 1/20에도 미치지 못하죠. 게다가 동아제약의 R&D 투자는 매출액의 5퍼센트 미만입니다. 화이자는 매출액의 15퍼센트를 신약 개발에 쓰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화이자를 따라간다는 거죠?

한미 FTA가 곧 발효되면서, 그동안 싼 복제약만 생산해 온 많은 중소 제약사들이 도산하고 그나마 오리지널 신약을 약간 개량한 개량 신약 개발 능력을 가진 동아제약이나 한미약품 같은 대기업들 위주로 제약 업계가 재편될 겁니다.

 

우리나라 제약 회사들의 오리지널 신약 개발 능력이 미국 제약사들의 수준으로 높아지려면 앞으로 10, 20년 이상 엄청난 규모의 신약 R&D 투자가 필요해요. 한 회사당 매년 신약 개발에 수천억 원씩은 투자할 수 있어야 선진국 제약 회사들의 꽁무니를 겨우 따라갈 수 있어요. 그런데 한미 FTA는 이런 실낱같은 희망마저 없애 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재벌들이 FTA를 환영하는 이유는···

예컨대 미국이나 캐나다의 한 회사가 멕시코 정부에 너희 나라 환경 규제 때문에 우리가 돈을 벌 만큼 못 벌었다고 주장하면 일단 재판을 걸어 국제중재위원회로 갈 수 있어요. 손해를 봤다는 것도 아니고 생각만큼 못 벌었다는 걸 가지고 정부를 제소하는 것이니 사실 기가 찰 조항이죠.

그런 점에서 지금의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어처구니없는 거예요. 이런 제도 하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제소하겠다고 위협만 해도 그 정부의 양보를 얻어 낼 수 있어요. 심지어 외국인 투자 유치를 갈망하는 정부가 투자자 제소가 두려워서 애초부터 규제를 소극적으로 할 수도 있고요.

재벌들이 보험이나 의료 분야에서 한국 시장을 더 먹고 싶은데, 미국 기업과 합작하면 자기네들의 능력이 단기적으로 확장할 수 있으니까요.

또 다른 추측도 있습니다. 예컨대 앞으로 영리 병원이 일단 허용되면 한미 FTA역진 방지규정 때문에 이를 철회할 수가 없어요. 철회하면 미국계 보험 회사들이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대해 투자자-국가 소송을 걸어 버릴 테니까요.

그 경우 국민건강보험 체계가 무너질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삼성생명 같은 재벌 보험사들은 더 많은 보험 상품을 팔 수 있게 됩니다. 삼성생명으로서는 차마 말은 못하나 내심 바라던 일이 일어나는 거죠.

 

 

FTA로 경제가 성장한다는 게 오히려 괴담이다

한미 FTA투자자가 예상했던 기대 수익의 흐름을 심각하게 교란한 모든 정부 조치간접 수용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투자자-국가 소송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FTA가 오히려 주주 자본주의형 재벌 개혁을 도와줄 수도 있어요.

 

앞으로 정부가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의 요구를 수용해 출자총액제한제를 대폭 강화하고 순환 출자 금지를 시행한다고 하죠. 그렇게 되면 산당수의 재벌계 대기업들이 M&A 시장에 매물로 나오게 될 테고, 그에 따라 국내외 사모펀드들의 먹을거리가 많아질 겁니다. 물론 주식 시장 역시 환호할 거고요.

그런데 몇 년 뒤 그런 잘못된 재벌 개혁으로 인해 심각해진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를 우려한 정부가 마음을 바꿔 출자총액제한제를 다시 폐지했다고 칩시다. 출자총액제한제가 지속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이미 국내에서 투자 활동을 시작했던 미국과 유럽계 사모펀드들은 좋은 투자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따라서 이것 역시 간접 수용에 해당되어 투자자 국가 소송감이 된다는 겁니다.

 

 

가장 좋은 FTA 대책이 바로 복지국가

한미 FTA가 발효되었다고 해서 한국 정부에 반드시 영리 병원을 허용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영리 병원 제도를 절대로 도입하지 않으면 돼요. 적어도 이런 결정권은 FTA 발효 이후에도 우리의 주권이고, 미국으로서는 강요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달렸어요.

비록 FTA 체제하에 있다 해도 증세를 통해 복지국가를 할 수 있고, 건강보험도 확대할 수 있고, 노인보험과 공교육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재벌 개혁도 할 수 있고, 진정한 경제 민주화도 할 수 있어요.

 

 

복지는 우리 모두를 위한 공동 구매다!

복지는 생산과 분배의 선순환 시스템

미국이나 영국에서 발전한 복지 제도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과 소비를 보완해 주는 데 집중해요. 국가 재정으로 소득을 재분배해 소비를 늘리고 경기를 활성화하고자 하는 케인스주의 경제학에 입각한 정책이죠. 이런 나라들도 기업에서 퇴출된 노동자에게 어느 정도의 실업수당은 줍니다. 그렇지만 산업 고도화를 위한 작업 재교육 같은 건 별로 없어요.

 

반면에 스웨덴이나 독일 같은 복지국가에서는 실업수당을 넉넉하게 주는 건 물론 정부가 돈을 대서 이직이나 전직을 위한 재교육도 시켜줌으로써 산업 고도화와 경제 성장이 더 잘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복지국가가 실직자와 그 가족만 돕는 게 아니라 말하자면 기업과 자본도 돕는 셈이죠. 미국과 영국처럼 복지국가가 소득과 소비의 재분배에만 집중한다면 경제 성장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아요.

 

 

다친 사람 치료 이전에 아예 다치지 않게 하라

복지정책과 금융 시장 규제, 산업 정책이 서로 결합되지 않으면 영국처럼 돼요. 영국은 금융 규제 완화로 금융 산업의 수익을 키워 주고, 거기서 세금을 거두어 복지 정책을 수행하자는 것 외에는 특별한 산업 정책이 없었어요.

교육 투자를 많이 했다고 하지만 생산성 높은 인적 자본이 크게 육성된 것도 아니었고요. 그러니 금융 위기 이후로는 나라 전체가 방향을 상실해 버릴 수밖에요. 3의 길이 헛수고가 되어 버린 거죠.

 

 

진짜 경제 민주화는 ‘11가 아니다

스웨덴의 연대임금 정책이 가능했던 것은 산별 노조와 중아 교섭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산별 노조와 중앙 교섭이 없었다면 대기업-하청 기업 간,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을 관철시킬 수가 없고, 따라서 1차 분배의 개선도, 산업 고도화도 그만큼 어렵습니다.

 

 

세금 증액 없는 복지? 불가능한 구호다

감세론자들에 따르면 세율이 낮아지면 개인이 더 많은 돈을 챙길 수 있으니까 더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저축도 더 열심히 해서 결국 정부가 세금을 더 많이 거둘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탈세도 덜하게 되고요. 기업들도 세율이 낮아야 투자를 더 해서 일자리를 더 늘리고,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도 촉진된다는 거죠. 그러나 논리와 현실은 차이가 많았어요.

 

월급을 많이 받으면 개인소득세 최고 세율인 35퍼센트가 적용될 수밖에 없는거죠. 반면에 금융 투자자인 버핏의 소득은 대부분 주식 배당이나 증권 매매 차익에서 나온 금융 수익인데, 그런 투자 소득에는 14퍼센트라는 낮은 세율이 적용되는 겁니다.

레이건 시절부터 그렇게 낮아졌다고 해요. 땀 흘려 번 근로 소득보다 쉽게 번 금융 투자 소득을 더 우대해 준 거예요.

그러면 부자 감세의 결과 정말 경제 성장이 더 잘 이루어지고 일자리가 더 늘어나요? 실제로는 이런 부자 특혜가 없었던 1950~1960년대에 미국의 경제 성장률이 훨씬 높았어요.

 

2007OECD 평균으로 보면 GDP 중에서 정부의 복지 예산 비중이 19.3퍼센트입니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30퍼센트가 넘고, 건강보험이 허술한 식코의 나라 미국은 13~14퍼센트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는 2011년 현재 GDP대비 9퍼센트로 OECD에서 멕시코에 이어 끝에서 두세 번째입니다.

 

 

노동도 부동산도 결국 복지문제다

미국식 복지로 복지를 논하지 마라

정말 밥도 못 먹을 정도로 가난한 극빈층에만 국가적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잔여주의 복지 체제에서는 혜택에서 제외된 대다수 국민은 저임금에 사내 복지 혜택도 없는 비정규직으로 힘들게 살아가야 해요. 반면에 선별된 아주 일부는 좋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훌륭한 사내 복지 혜택까지 받고요. 그게 바로 미국식 복지 시스템이에요.

 

대기업 정규직이 일자리를 잃어버리면 단지 일자리만 잃어버리는 게 아니에요. 많은 사내 복지 혜택을 다 잃어버리는 거죠. 그러니 목숨 걸고 싸우는 게 주류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합리적 선택일 수밖에 없어요. 또 요즘 대학생들이 죽기 살기로 스펙 쌓기를 해서 대기업과 공공 부문, 은행에 취업하려는 것도 시장 논리, 즉 자유 시장 논리가 잘 작동하는 환경 속에서 취업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인 셈입니다.

 

 

신고전파 포퓰리즘은 하향 평준화노선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이 신봉하는 시장 이론에 따르면 노동 시장에서 노동조합이라는 독점체가 없어지면 완전 경쟁이 보장되어 시장이 공정해진다고 하죠. 그런데 공정한 완전 경쟁 노동 시장에서는 정규직의 임금과 복지 혜택 역시 비정규직 수준으로 하향 평균화됩니다. 그게 바로 신고전파 경제학 논리예요.

완전한 시장 경쟁이 되면 최고의 효율성이 나타난다고 보는 거죠. 그 경제학에서는 기술과 숙련은 외적으로 주어져 있다고 봐요. 즉 기술 혁신은 시장 외부에서 일종의 외적 충격으로 일어나는 것이지, 시장에서 내재적으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는 거죠. 결국 시장 경쟁을 강화해서 하향 평균화하자는 게 신고전파 경제학인 셈입니다.

 

 

유연 안정성을 말하기 전에 안전망부터!

스웨덴이나 덴마크가 유연 안정성 테제를 내걸고 유연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의 일이에요. 1930년대부터 시작하여 거의 50년에서 60년에 걸쳐 대단히 높은 수준의 복지국가를 만들어 놓아 삶의 안정성이 최고도로 높아진 것을 전제로 해서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등 약간의 고용 유연성을 이야기한 거죠.

복지국가가 성숙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에 고용 유연성 이야기가 나와도 그 사회가 큰 무리 없이 받아들을 수 있었던 거예요.

 

 

재벌 개혁보다는 최저임금 규제를!

원하청 가격에 대한 공정 거래 규제에 주력할 것이 아니라 거꾸로 모든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는 데 주력하는 거죠. 물론 이를 위해서는 노동권 신장과 그 일환인 중소기업 노동조합 설립, 단체협상 활성화, 이를 통한 근로기준법 준수 등에 정부의 규제 노력이 집중되어야 하겠죠. 그리고 이 경우 노조는 당연히 산별 노조여야 하고요. 그렇게 되면 소프트웨어 개발사를 비롯한 모든 중소기업들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노동은 엄격히 금지되고, 산별 노조의 활동 결과 직원들 급여 수준도 올라갈 겁니다.

 

물론 이 경우 중소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겠죠. 하지만 그 부담을 감당 못할 정도로 비효율적이고 생산성 낮은 회사들은 도산하여 더 효율적이고 더 생산성이 높은 회사로 인수·합병되면서 규모가 커질 거고, 그렇게 규모가 커진 회사는 재벌계 원청회사와 협상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토건과 경제 체제는 별개의 문제다

미국의 경우 2007년 태풍 카타리나가 뉴올리언스 덮치고 미시시피 강이 범람했을 때 가장 큰 문제로 지적이 된 게 바로 공공 인프라의 문제였잖아요. 미국에 부시 공화당이 집권하고 큰 시장, 작은 정부를 외치며 연방정부의 토건 예산을 줄이는 통에 댐과 다리 같은 공공 인프라를 수리도 못하고 수십 년간 방치한 탓에 그런 참사가 빚어졌으니까요.

 

 

부동산 거품도 주주 자본주의가 키웠다

전 세계적으로 1990년대부터 부동산 버블이 만연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신자유주의와 금융 자본주의화 때문이에요. 금융 규제 완화로 MBS(주택저당증권)CDO(부채담보부증권)니 하는 신용파생상품들이 출현하면서 엄청난 양의 돈이 부동산 쪽으로 유입되니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않을 수 있겠어요?

게다가 주주 자본주의가 만연하면서 기업들도 생산적 투자보다는 재테크, 말하자면 유휴 자금 운용을 통해 쉽게 돈을 벌려고 하니 그 돈까지 다시 금융 시장에 유입됩니다. 이런 식으로 전 세계 금융 시장에서 투기적 이익을 겨냥한 유동 자금이 점점 더 커졌어요.

 

그런 속에서 시장 자유주의에 따라 산업 육성 정책은 약해지고 정부의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줄어드니 실물 투자 자금 수요는 자꾸 줄어들고, 그러니 금융 시장에 유입된 유동 자금이 어디로 가겠어요? 1990년대에는 남미와 동아시아에 몰려들었다가 외환 금융 위기를 일으키고, 1990년대 말에는 IT 거품을 일으키고, 다시 2000년대 초반부터는 주택과 부동산으로 몰려들어 미국과 영국에서 부동산 거품을 일으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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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시대의 중국 - 중국은 과연 세계의 지배자가 될까
사토 마사루 지음, 이혁재 옮김, 권성용 해제 / 청림출판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시진핑 시대의 중국 -사토 마사루-

 

 

 

1949년 건국을 선포한지 60여 년 만에 세계경제를 호령하는 강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지난 30년간 유지해온 도광양회韜光養晦(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 정책에서 저우추취走出去(대외진출)’를 장려하며 본격적으로 세계무대를 향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과거 시장과 기술의 교환정책을 통해 육성한 자동차산업과 중화학산업, 합자기업 설립을 모태로 기술 모방 전략을 도입했던 가전산업과 IT산업은 이미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고, 1990년대 중반 이후 정부 주도로 추진된 신에너지 산업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현재 실행 중인 135개년 개발계획(12·5 규획)’에서는 2030년까지 중국 경제를 견인할 에너지, 정보기술, 바이오 등 7대 산업에 대한 로드맵과 투자방안을 구체화시키며 미래 중국의 모습을 단계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1세대 지도자인 마오쩌둥을 시작으로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대를 거쳐 5세대 지도자에 오를 시진핑은 과거의 역사적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실용주의현장 중시철학을 기반으로 정치적 이념보다는 지역 경제 발전과 부의 재분배를 통해 계층 간의 마찰을 최소화하고 국민 정서 융합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정부 관료의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해 젊고 근면하며 중산층을 중시하는 검증된 정치인을 지도부에 등용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와 같이 역사적 당위성을 운영하는 중국식 사회주의정국은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정국 운영을 실현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경제 부문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만성적 인플레이션은 서민의 생활고를 가중시키고 규모 산정조차 힘든 지방정부의 부채는 부동산 버블의 뇌관을 자극한다. 기업 생산력을 저해하는 전력 부족 현상은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한편 서남부 지역에서 반복되는 자연 재해는 해마다 주요 식품 가격 폭등을 견인한다.

 

중국의 경제와 사회 상황, 안보 환경, 국제관계가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고, 중국의 행동 원리를 분석해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경제성장과 정계의 파벌 싸움, 공산당의 현안 대처 능력, 대미관계 등을 변수로 한 방정식에 의해 움직일 것이다. 중국 최고 지도자들의 행동이 100퍼센트 심모원려의 책략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행동은 때로는 내부의 노선 대립에서 나온 결과물일 뿐이다.

 

중국은 거대한 코끼리다. 코에 상처를 입어도 다리를 다쳐도 거대한 몸의 일부가 아플 뿐 전체적으로 건강할 수 있다. 중국 문제를 분석할 때 특정된 분야만 보는 부분 균형 분석에서는 옳을지 몰라도 전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일반 균형 분석으로는 최적이 아닌 경우가 있다. 중국 연구는 부분 균형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이 책은 정치부 기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중국의 정치체제 분석이다.

 

 

 

중국 모델은 유지될 것인가 -공산당의 강점과 약점-

류샤오보의 예언 -인터넷 민주혁명의 싹-

통치기구의 민주화보다 인권 보장이 먼저

중국 정부는 인해전술을 통해 금순공정이라 불리는 인터넷 감시 시스템을 구축했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에 불리한 정보를 규제하는 인터넷 경찰3만 명 혹은 10만 명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5모당이 인터넷 여론 형성을 주도한다. 인터넷에 친정부적 댓글을 한 번 올리는데 5마오(10마오는 1위안)를 받는다. 중국인들 입장에서 이것은 무척 손쉬운 부업으로, 5모당이 30여만 명에 이른다는 말도 있다. 중국에서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도 특별한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이용할 수 없다. 이처럼 공산당과 정부가 인터넷을 강력하게 규제하기 때문에 민주화운동의 앞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앞으로 중국의 정치, 사회에 불어올 두 가지 조용한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첫 번째 요소는 민중,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물결이다.

당국이 토지 개발을 추진하면서 주민에게 강제 퇴거를 강요하고 있다. 이에 대한 민중의 저항은 거세다. 경찰이 민중을 폭력으로 진압하는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는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민중운동은 경제적 권익을 지키려는 민간 운동 차원에서 시작됐으며, 언론과 표현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 환경 보호 등으로 확산될 것이다.”

 

 

시진핑 세대에 거는 기대

류샤오보가 두 번째 변화 요소로 지목한 것은 공산당 지도부, 위로부터의민주화 움직임이다.

특히 후진타오 세대에서 포스트 후진타오세대로 최고지도부가 교체되는 점에 주목했다. “2012년 가을에 열리는 제18차 공산당 대회는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후진타오 등 4세대지도자가 받은 교육은 철저히 마오쩌둥 시대의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 리커창, 왕치산, 보시라이 등 5세대지도자는 후진타오와 다르다. (시진핑 등은) 우리와 같은 시대 상황 속에서 교육 받았다.”

 

그의 희망은 제5세대의 교육 환경과 더불어 세대교체에 따른 정치 구도의 변화에 근거하고 있었다. 류샤오보는 포스트 후진타오 시대가 되면 최고지도자의 권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공산당 간부 사이에서도 권력 투쟁이 발생할 것이라 예측했다. 권력 투쟁 결과 최고지도부가 분열됨으로써 위로부터의 민주화 움직임이 나타나리라는 기대였다.

 

 

우리 아버지는····” 발언

인터넷이 부정과 부패를 고발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201010월 중국 인터넷에서 유행어가 된 말이 있다.

우리 아버지는 리강이다.”

1016일 밤 헤베이성 바오딩시의 허베이대학 구내에서 22세의 남자가 음주 운전을 하다가 여학생 2명을 치어 죽게 했다. 그가 경찰에 체포됐을 때 한 말이 바로 우리아버지는 리강이다였다. 리강은 국가 수뇌급 인사는 아니다. 바오딩시 베이스구 공안국의 부국장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경찰 간부의 아들임을 내세워 사건을 무마하려 한 것이다. 이 사건은 순식간에 인터넷에 퍼졌고 비난이 폭주했다. 인터넷에서 비판의 여론이 확산되지 않았다면 그 사건은 가볍게 처리됐을 것이다,

 

중국의 네티즌은 201011월 말 현재 45,000만 명에 이른다. 국민의 3분의 1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는 계산이며 보급률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공산당과 정부가 경제 발전의 과실을 당근삼아 국민의 불만을 어느 정도까지는 통제할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움튼 조용한 민주혁명의 싹은 큰 나무로 자라날 가능성이 높다.

 

 

통치의 대차대조표 -‘보이는 손과 국가자본주의-

중국 공산당은 거버넌스를 집정 능력이라 부르며 2004년부터 이를 강화해왔다. 20099월 제17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서는 공산당의 집정 능력을 높이기 위해 당건설의 강화 및 개선에 관한 결정을 채택했다.

4중전회 폐막 후에 발표한 성명서는 당내에 새로운 정세에 적응하지 못하고 당의 이념에 맞지 않는 문제가 존재해 당의 결집력과 전투력을 현저히 저하시키고 있다고 지적한 뒤 공산당 내부의 민주적 발전’. ‘간부 인사제도 개혁’, ‘처벌과 부패 예방등의 처방을 제시했다.

 

 

 

폭넓은 정보 네트워크

중국 모델 거버넌스의 첫 번째 특징은 문제점을 찾아내는 정보 네트워크가 광범위하고 치밀하다는 것이다.

우선 기업과 마을 내에서 공산당 조직이 감시 시스템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회사법 제19조는 기업의 공산당 조직 설치를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정보를 수집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2009년 말 기준으로 중국 공산당의 당원 수는 7,7995,000명이다. 중국인 17명 가운데 한 명이 공산당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2008년 말에 비해 2.7퍼센트가 늘었고,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공산당원의 신분도 다양해 사회 각계계층에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특히 대졸 이상 고학력의 젊은 층이 빠르게 늘고 있다.

 

 

빠른 의사결정 속도

중국 모델 거버넌스의 두 번째 특징은 대응 방안을 기획하고 입안하는 결정 시스템이 당 최고지도부에 집결돼 있다는 것이다.

권한이 집약된 최고지도부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 속도가 빠르다. 일단 결정된 방침에는 모두 이의 없이 따른다.

 

중국은 장기적 안목에서 정책을 입안한다. 10년 이상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짠다. ‘2020년 전면적 소강(비교적 여유가 있는) 사회 건설이란 목표를 정한 것은 200210월 제16차 공산당 대회 때였다. 그 연장선에서 5개년 경제 사회 계획을 통해 구체적인 지침을 정한다.

 

 

강한 공산당 강한 정부 vs. 허약한 국회

중국 모델 거버넌스의 세 번째 특징은 강력한 정책 실행력이다.

그 비결은 강한 공산당 강한 정부 vs. 허약한 국회에 있다. 특히 경제정책을 실행할 때 공산당과 정부가 절대 우위에 선다.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의 독립성도 취약하다. 인민은행법 제2조는 금융정책은 국무원의 지도를 받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3조에서는 통화가치 안정뿐 아니라 경제성장 촉진도 금융정책의 목표로 삼고 있다. 성장 촉진이 목적이라면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의 견제자 역할을 할 수 없다. 중국 정부가 고용을 중시하면 금융정책은 경기부양형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모델 거버넌스의 이 세 가지 특징은 현재로서는 장점이다. 그러나 단점이 되기도 한다. 중국 모델의 안정도는 자산을 늘리는 집정 능력 강화 속도가 빈부 격차 확대, 관료 부패, 물가 인상, 취직난 등 부채의 증가 속도를 앞서가는가에 달려 있다. 부채의 증가 속도가 빨라지면 공산당 일당 지배에 노란불이 커지게 된다.

 

 

GDP의 미중 역전 -경제의 대중화권’-

2020GDP 세계 1위로

중국정부가 제시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개년 계획에 따르면 GDP성장률은 연평균 7퍼센트이며, 2015GDP55조 위안(9,350조 원)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대부분의 예측이 2020년까지 경제성장률을 연평균 7퍼센트로 잡고 있다.

이 예측대로 이루어진다면 인민의 불만은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고 경제문제 때문에 공산당 체제가 붕괴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다만 성장률이 연 5퍼센트 대 아래로 떨어지는 비관적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사회 불안정이 확대되고 민주화 움직임이 높아질 공산이 크다.

 

 

중국 경제의 루이스 전환점

이 책에서는 중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의 3대 요인인 노동력 증가, 자본축적, 기술 진보 등을 통해 살펴본다.

일본 내각부 조사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01년 사이에 중국의 성장률은 평균 9.9퍼센트였다. 기여도는 기술 진보 54퍼센트, 자본 축적 34퍼센트, 노동력 증가 9퍼센트였다.

 

먼저 노동력에 대해 살펴보자. 값싼 농촌 노동력의 도시 이동은 고도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1980년 이후 4반세기 동안 인구의 25퍼센트가 농촌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미국, 유럽, 일본의 도시 인구 비율이 80퍼센트 수준이므로 중국은 앞으로도 도시화가 더 진전될 가능성이 높다.

 

농촌에서 직장을 구하지 못한 농민은 도시로 떠나게 되는데, 경제가 발전하면 공업 부문에서도 잉여 노동력이 바닥을 드러내게 된다. 공업부문에서 완전 고용이 달성되는 시점루이스 전환점이라 부른다.

루이스 전환점을 지나면 노동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 노동력 부족 사태에 직면하며 임금이 상승하게 된다. 루이스 전환점은 한 나라의 경제성장 및 공업화 수준을 측정하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한 자녀 정책의 영향으로 노동력 인구는 2013년부터 감소 추세로 전환할 것이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대졸자가 희망하는 취직자리와 실제 모집하는 직업의 불균형도 확대된다. 노동력이 과잉에서 부족으로 전환되는 루이스 전환점을 맞이하는 지역이 늘어나 임금이 상승하게 된다.

 

20111월 광둥성 선전시 정부는 법정 최저임금을 향후 5년간 2배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정부 측 경제단체인 중화전국공산업연합회의보고서는 향후 10년 동안 법정 최저인금을 지금의 4배로 올릴 것을 촉구하고 있다. 노동 분배율 향상은 소비 확대로 연결된다는 이점이 있는 반면 기업의 수익을 압박하는 위험요소가 될 것이다.

 

 

기술 발전이 핵심

두 번째로 자본 축적을 살펴보자. 중국의 자본 축적 신장률은 연평균 13퍼센트로 과거 10여 년간 계속 증가해왔다. 고저축-고투자의 결과이며 외국 자본 역시 자본 증가에 일정한 역할을 해왔다.

시진핑 시대에도 고저축 경향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교육 수준이 높아짐에 따른 인적 자본 수준의 향상으로 2008년에서 2020년 연평균 자본 축적 신장률은 13퍼센트 안팎을 유지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다만 투자에서 소비 주도로 경제 모델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경제성장에 대한 투자의 기여도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 번째로 기술 진보에 대해 살펴보자. 칭화대학 국정연구센터 후안강 주임은 기술 진보를 포함한 TFP Total Factor Productivity(총요소생산성, 노동생산성뿐 아니라 근로자의 업무능력, 자본 투자 금액, 기술도 등을 복합적으로 반영한 생산 효율성 수치)의 추세가 향후 중국의 경제성장을 좌우하며, TFP를 유지할 수 있다면 GDP9퍼센트를 넘는 성장을 지속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양에서 질로 구조 전환

중국 공산당은 2006년 제16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6중전회)에세 채택한 성명서를 통해, ‘조화 사회건설의 주요 목표와 임무로 9개의 테마를 명시했다. 목표 시한이 2020년이기 때문에 시진핑 시대의 과제를 열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내용은 인치에서 법치로 전환 경제 격차 확대 시정 취업과 사회보장제도 정비 공공서비스 향상 도덕과 학습 장려 창조력 향상 사회질서 유지 환경보호 높은 수준의 소강(비교적 여유가 있는) 사회 건설 등이다.

통치의 대차대조표란 관점에서 보면 약점인 부채부문을 정리하고 자산인 통치기구와 경제모델의 질적 향상에 역점을 두고 있다.

 

 

소득의 모자이크 국가 -벌어지는 격차, 재분배의 장벽-

미약한 농촌의 성장

2009년 도시 지역 1인당 가처분소득은 17,175위안(292만 원)으로, 농촌 자역 1인당 순수입 5,153위안(876,000)3.3배다. 전년대비 각각 9.8퍼센트와 8.5퍼센트 늘어난 것으로 격차가 급속히 벌어지고 있다.

지니계수의 범위는 0에서 1까지이며, 1에 가까울수록 경제 격차가 크다. 사회가 불안정해지기 쉬운 경계점은 0.4로 알려져 있다. 중국 전체의 지니계수는 0.48 전후다.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뒤섞인 가운데 서로 융화되지 못하는 국가를 모자이크 국가라고 부른다. 대표적으로 인도와 아프가니스탄이 이에 해당한다. 중국은 소득 격차의 모자이크 국가가 됐다. 부유층은 더욱 풍족해지고 밑바닥의 저소득층은 아무리 노력해도 상승하지 못한다. 모자이크가 뚜렷해질수록 그 사회는 불안정해진다.

 

 

기대 이하의 부동산세 효과

부의 재분배에서 가장 큰 장벽은 고소득층에게서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다. 중국에는 상속세가 없고, 개인소득세와 누진과세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는 조세의 조정 기능이 작동하도록 할 것이라고 했지만 상속세 도입 등 구체적인 대책은 언급하지 않았다. 기득권층의 저항이 격렬해 세제 개혁을 통한 소득 재분배의 앞길은 순탄하지 않다.

 

부동산세의 도입은 부의 재분배와 더불어 급등하는 주택 가격을 낮추려는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징세 대상이 신규 구입 주택이나 고가의 물건으로 한정돼 소득 재분배 기능은 기대 이하다.

저항하는 지방정부 -부동산 졸부는 시하폭탄-

토지 매각 수입은 중요한 자금원

주민의 권리를 무시한 채 강행되고 있는 지방정부 및 지방정부 계열 기업의 개발 사업은 1994년에 도입된 분세제가 계기가 됐다. 국세와 지방세를 명확히 분리해 중앙정부의 몫을 늘린 이 제도는 지방의 힘을 약화시키고 중앙 권력을 강화해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분세제 도입은 지방의 난개발에 불을 붙였다. 지방정부가 부동산 개발을 통해 세수 부족분을 메우려 한 것이다.

 

2009년 지방정부가 부동산 매각으로 얻은 수입은 전년 대비 63퍼센트 늘어난 15,910억 위안(270조 원)이었다. 지방 재원의 절반을 차지했고 일부 지역에선 80퍼센트에 달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전해에 비해 거의 배로 늘어난 29,397억 위안(500조 원)이었다.

중국에서는 토지 매각이 지방정부의 주요 자금원이 됐고, 그 여파로 지방정부는 땅 졸부로 변질돼갔다.

토지재정 모델은 지방정부에 부를 안겨주어 GDP는 늘어나지만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은 되지 못한다. 하지만 개발에 맛들인 지방 관로가 부동산업자와 짜고 주민을 폭력으로 쫓아내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방의 폭주 저지에 안간힘 쓰는 중앙정부

중안과 지방의 공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정권이 두려워하는 것은 지방의 혼란이다. 난개발이나 편법 융자는 부패에 그치지 않고 거품 등 경제 혼란으로 이어진다. 그 때문에 후진타오 지도부는 중앙의 정책을 말단까지 침투시켜 지방의 횡포를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중국인민은행이 금리인상으로 긴축정책을 펴도 지방의 기업과 금융기관은 지방정부의 의향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중앙의 금융정책이 지방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지방이 중앙의 거시경제 정책에 공개적으로 저항하는 일도 있다. 2004년 천량위 상하이 시 당위서기는 원자바오 총리에게 긴축정책 중단을 요청했다고 한다. 당시 요청이 천량위 서기를 해임한 이유 중 하나가 됐다.

 

 

시진핑 시대의 태동 -후진타오의 섭정 체제-

포스트 후진타오의 향배 -2012년 이후의 섭정-

20101018, 중국 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5중전회) 폐막일에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시진핑 국가부주석을 임명하는 인사가 단행된 것이다.

이는 시진핑이 군권 장악을 향한 행진을 시작했음을 의미하며, 후진타오 총서기의 후계자로서 차기 지도자 지위에 오르는 것이 사실상 확정된 순간이었다.

시진핑은 2012년 가을 당대회에서 당 총서기, 20133월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국가 주석으로 선출될 전망이다. 후진타오 역시 국가부주석이던 1999년 군사위 부주석에 취임했고 3년 뒤 당 총서기에 올랐다.

시진핑의 중앙군사위 진입에는 장쩌민 전 총서기 및 쩡칭훙 전 국가부주석 등 일부 장로 및 보수파의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안정적인 권력 승계를 노리다

건국 60주년의 중국 역사에서 최고지도자의 후계자 선출은 격렬한 권력 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한 덩샤오핑,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의 지명을 받은 장쩌민 전 국가주석 및 후진타오 총서기 등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최고지도자로 군림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에게는 후계자 지명권이 있었지만 장쩌민과 후진타오에겐 없다. 후진타오가 장쩌민에 이어 총서기에 오른 것도 덩샤오핑이 건재했던 시기에 결정된 인사 조치였다.

 

시진핑은 후계자를 지명할 절대 권력자가 없는 가운데 후진타오 총서기와 장쩌민 전 국가주석 간 정치투쟁의 결과로 최고지도자 후보에 선출됐다. 후진타오 총서기의 지지를 받는 리커창의 최고지도자 취임을 막기 위해 장쩌민 전 국가주석 등이 내민 카드가 시진핑이었을 뿐이다.

포스트 후진타오확정을 계기로 당과 정부의 간부들은 시진핑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고, 시진핑의 구심력은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시진핑 등 고급 간부 자제의 모임인 태자당의 세력이 커지고, 후진타오 총서기의 출신 모체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파와의 권력투쟁이 격렬해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후진타오의 출구 전략

후진타오 총서기는 새 지도부에 자신과 밀접한 인사를 심어 영향력을 유지하는 섭정 체제를 노릴 것이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공방 포인트가 예상된다.

 

첫째, 후진타오가 2012년 가을 이후에도 군부의 총책임자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내놓지 않고 군권을 계속 장악하느냐의 여부다.

 

둘째, 후진타오가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과반수를 자신과 가까운 인물로 채울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특히 두터운 신뢰를 보내고 있는 리커창 부총리를 총리로 취임시키고 중앙정부의 실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심 사안이다.

 

셋째, ‘포스트 시진핑의 최고지도자를 확정짓기 위해 후진타오의 복심인 후춘화 내몰골자치구 당위서기를 외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진출시킬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포스트 시진핑을 향한 출발 신호는 울릴 것인가

2007년 발족한 현 체제의 최고지도부에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입김이 닿는 간부가 남아 있어 장쩌민이 변함없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보도 관리 및 사상지도를 맡은 이념 담당, 공안 및 조사를 담당하는 당 규율 검사위원회 서기, 당 정법위원회 서기를 장쩌민파가 장악하고 있다. 후진타오는 2012년 이 자리들을 찾아오고 싶어하며, 후춘화가 그 후보가 된다. 그러나 후춘화의 상무위원회 입성에는 후진타오에 대항하는 세력의 맹렬한 반발이 예상된다.

 

 

중국 정계의 권력구도 -저항 세력은 기득권층-

최대 파벌은 공청단파

공청단은 1922년 중국사회주의청년단으로 발족해 1957년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됐다. 단원은 14세부터 28세로, 2008년 말 현재 7,8588,000명이다. 최고 직책은 서기국 제1서기다.

공청단은 후야오방 전 당 총서기, 후진타오 총서기, 리커창 부총리 등 젊은 간부의 등용문이 돼왔다. 공산당 간부 자리를 노리는 젊은이는 우선 공청단에 들어간 뒤 공산당에 입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후진타오 총서기는 공청단을 당내 권력 기반 강화에 활용했다.

 

 

경제계에 많은 태자당

태자당은 고위 간부의 자제들의 모임으로 젊은 나이에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는 인물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시진핑이 태자당이다. 쩡산 전 내정부장의 아들 쩡칭훙 전 국가부주석, 저우언라이 전 총리의 양지인 리펑 전 전국이민대표대회 위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시진핑 정권에서도 현역 지도자로서 자리를 유지할 태자당 인맥은 왕치산 부총리, 류엔둥, 보시라이, 리위안차오, 위정성 등이다.

 

태자당을 하나의 정치 파벌로 간주할 경우 최고지도부에서 공청단파에 이은 제2의 세력에 해당한다. 5세대는 정계 지도부에 대거 진출했지만 제6세대 이후는 경제계에서 경제 이권에 개입하는 길을 선택한 사람이 많다.

 

 

 

저항하는 기득권층

공청단파, 태자당, 상하이벌 등 중국 정치 파벌은 정치기반이나 인맥을 토대로 한 분류법이다. 이는 중국 정치를 분석하는 데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후진타오 총서기에 대한 가장 큰 저항 세력은 기득권층이다. 시진핑 시대에도 기득권층의 움직임이 정국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기득권층이란 자원분야 등 국유 독점기업, 해외에서 이권을 얻은 기업 간부, 일부 중앙 및 지방정부 관료를 말한다. 정치-관료-기업이 결탁한 것으로, 부패가 움트기 쉬운 업종이나 관청이 기득권층의 토양이다.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노선을 추진한 이후 경제 발전은 이권을 낳았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성장 중시노선을 통해 경제는 한층 더 발전했고 이권은 막대한 규모로 커졌다. 그러나 후진타오 정권이 경제성장의 을 중시하며 정책을 약자 중심으로 수정하면서 특권층의 이권 확대가 저하되기 시작했다. 부의 재분배 방식 때문에 기득권층은 후진타오에 대해 불만을 품게 했다.

 

 

여전히 발언권을 가진 장쩌민

장쩌민은 여전히 자칭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나 리창춘 정치국 상무위원 등을 통해 정권 운영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더불어 원로로서 후진타오 총서기는 중요한 시점마다 그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는 듯하다. 시진핑 시대가 와도 장쩌민은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할 것이다.

 

 

시진핑은 어떤 인물인가 -현장주의 프린스-

시진핑은 19536월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국 공산당 원로이자 부총리를 역임한 시중쉰(2002년 사망)이다. 시진핑은 태자당으로서 혜택 받은 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나 그이 아버지가 1962소설 류즈단사건이라 불리는 책 출판과 관련된 정치 투쟁에 휘말려 실각하면서 시진핑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1966년 문화혁명이 시작되면서 시진핑은 1969년부터 산시성 옌촨현 농촌에서 노동하는 하방(중국에서 관료화를 막기 위해 당원 및 간부 등을 농촌이나 공장에 보내 노동에 종사시키는 일을 말한다)됐다.

몸이 아플 때를 제외하고 1365일 거의 쉬지 못했다. 땅굴 같은 집에서 풀을 베고, 가축을 돌보았고, 들판에서 양을 방목했다.”

시진핑은 15세부터 22세까지의 예민한 시기에 익숙지 않은 일을 강요당했다. 1975년 그는 약 7년간의 하방 생활을 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22세에 명문 칭화대학에 들어가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하방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멀리했기 때문에 입학 초기의 기초 실력은 형편없었고 간단한 화학 방정식도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우선 중학교 수준의 수학, 물리, 화학 기초지식을 익혔고, 잃어버린 청춘시절을 만회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는 정계에 복귀했고, 1979년 칭화대학을 종업한 시진핑은 겅뱌오 당 중앙국방위원회 비서장 겸 부총리의 비서가 되었다. 그 후 시진핑은 환경 좋은 베이징을 떠나 지방 근무를 자원한다. “최고 간부가 되려면 지방정부 간부의 길을 걷는 것이 좋다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는 보수파인 겅뱌오 비서장이 실각하기 전에 아들을 그의 옆에서 빼내야 한다는 아버지의 판단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랜 지방 근무를 통해 다진 실무 능력

중국 정계는 출신기반이 같은 세력 간의 결속력이 강하다. 대표적으로 장쩌민이 이끄는 상하이벌이 유명한데, 푸젠벌 역시 주목받고 있다.

자칭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은 1985년부터 1996년까지 푸젠성에서 근무했고, 1993년에서 1996년에는 성의 최고지도자이자 시진핑의 상사인 당위서기를 맡았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푸젠성 성장과 성장대리를 역임한 허귀창 당 규율검사위원회 서기도 시진핑의 상사였다.

 

 

적이 없는 것이 장점

시진핑의 정치와 행정 노하우는 눈부시게 발전하는 연안부에서 흡수한 것이다. 경제적 실익을 중시하는 자세도 연안부 근무를 통해 얻었다. 1990년부터 근무한 푸젠성 푸저우시 지도자 시절의 유명한 모토는 마상취변(지금 바로 하자)’이다. 이는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뿐 아니라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전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골수 현장주위자이기도 하다. 저장성 당위서기 시절, 1년의 3분의 1을 지방 출장으로 보냈다. 한편 이념 공작에 대한 열의는 그리 뜨겁지 않다. 시진핑은 이념보다는 실무를 중시하는 실용파다.

 

 

쩡칭훙-시진핑 라인

쩡칭훙은 태자당 출신이며, 상하이벌의 우두머리 격이다. 1989년 상하이 시 당위서기에서 총서기가 된 장쩌민이 상하이 인맥 중 유일하게 그를 베이징으로 데려왔다. 장쩌민의 권력 기반 안정에 쩡칭훙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쩡칭훙은 2004년 무렵부터 장쩌민과 거리를 두었고, 대신 후진타오 총서기에 접근했다. 그는 중국 정계의 막후인물로 불리며 권력의 향배에 매우 민감하다.

200710월 공산당 대회에서는 자신의 자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시진핑을 라이벌인 리커창보다 높은 서열에 올려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시키는 공작을 했다.

시진핑과 쩡칭훙의 관계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정부장을 역임한 쩡칭훙의 아버지 쩡산은 베이징 중난하이에 살 때부터 시진핑의 집안과 친밀하게 교류했다고 한다.

 

쩡칭훙은 태자당 인맥과 더불어 상하이벌, 그리고 석유 이권을 장악한 석유재벌을 대표하는 존재다. 시진핑 체제에 쩡칭훙의 영향력이 보태지면 경제 발전 우선을 요구하는 기득권층이나, 자원 이권 확보를 중시하는 세력이 힘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군부 내 태자당의 존재도 주목 받는다. 류사오치 전 국가주석의 아들 류위안은 문화혁명 때 농촌으로 하방된 뒤 지방 근무를 했다. 시진핑과 걸어온 길이 유사하다. 그래서 둘 사이에는 깊은 교류가 있었다. 류위안 등 군부의 태자당이 시진핑의 군권 장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키워드는 안정

시진핑이 주도적으로 최고지도부 진영을 짜게 될 시진핑 시대2017년 가을쯤 찾아온다. 2017년 이전까지는 실질적으로 후진타오시대가 이어지는 것이다.

 

역대 중국 최고지도자들의 키워드는 마오쩌둥의 건국’, 덩샤오핑의 개혁’, 장쩌민의 발전’, 후진타오의 조화였다. 장쩌민의 지도이념인 ‘3개 대표론은 공산당이 광범위한 인민의 근본적 이익등을 대표한다고 했다. 이는 공산당이 민간 기업인까지 끌어안는 대중정당으로 탈바꿈해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전술이다.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자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도시와 농촌의 발전, 지역 간 발전(연안부와 내륙부), 경제와 사회의 발전(공평성), 인간과 자연의 조화(환경, 에너지 절약), 국내 발전과 대외 개방 등 다섯 가지 균형을 목표로 했다. 성장 지상주위였던 장쩌민 노선에 대한 안티테제이기도 했다.

 

시진핑의 첫 번째 키워드는 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은 20109월 공산당 간부 양성학교인 중앙당교 강연에서 마르크스주의 권력관은, 권력은 민을 위해 부여된 것이며 민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 간부는 인민에게 복무할 의무가 있다고도 말했다. 국가주석에 취임하면 그는 관료의 부패를 막고 행정 서비스의 질을 높이며 민중의 정부 비판을 완화시키는 데 주안점을 줄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키워드는 온유(안정 유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온은 사회불안을 억제하고 치안을 유지한다는 의미를 뛰어넘는다. 시진핑 정권의 최대 목표인 체제 안정, 즉 공산당 일당 지배의 견지를 내포한다.

 

 

시진핑의 사람들 -문화혁명에 농락당한 제5세대-

리커창은 고향에서 신동으로 통했다. 아버지 리펑싼은 낙후된 안후이성의 지방 간부였다. 펑양 현장을 역임한 뒤 안후이성 통일전선 처장(과장) 등을 지냈다. 가난하진 않았지만 시진핑에 비하면 출세를 위한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66년 문화혁명이 일어나면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다. 19세이던 1974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극빈 지역인 펑양현 인민공사로 하방됐다. 그곳에서 그는 아침 7시부터 밭일을 했고, 점심 휴식시간은 30분에 불과했다. 하지만 밤부터 새벽까지 책을 읽으며 독학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노력의 화신이었다.

문화혁명이 일어났던 10년간은 대학 입시가 중단됐기 때문에 그는 문화혁명 후에 치러진 대학 입시 제1기생으로, 가장 들어가기 어렵다는 베이징대학에 입학했다. 전공은 법률이었다.

이후 공청단의 정상이었던 후진타오 제1서기 아래서 일하며 두터운 신임을 얻었고,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제1서기로서 정치 기반을 다졌다.

 

 

국가부주석 후보 리위안차오, 경제통 왕치산, 유망주 왕양

공산당 중앙조직 부장인 리위안차오 역시 새로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할 것이 확실시된다. 후진타오는 리위안차오를 국가부주석(중앙서기국 수석서기)에 앉히고 싶어 하지만 후진타오 반대 세력의 저항이 예상된다.

왕치산은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며 골드만삭스 등 미국 정재계와도 막강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 경제가 어려움에 빠지는 나세의 시대에 그의 존재감이 부각될 것이다. 차기 정권에서는 수석 부총리로서 거시경제 정책을 지휘하는 자리에 오르는 것이 순리지만, 총리로 발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포스트 시진핑 레이스 -6세대의 선두 다툼-

후진타오 직계인 후춘화

6세대의 출세 경쟁에서 선두를 달리는 인물은 후춘화다. 6세대 중 처음으로 200911월 허베이 성장에서 지방 최고지도자인 내몽골자치구 당위서기가 됐다.

후춘화는 1983년 베이징대학 중문학부를 졸업한 뒤 1997년까지 14년간 티베트자치구에서 근무했다. 공청단 티베트자치구 위원회 부서기였던 그는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역시 티베트자치구의 당위서기였던 후진타오의 가르침을 받았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베이징 공청단 중앙에서 근무한 뒤 다시 티베트자치구에서 약 5년간 일했고,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공청단 최고지도자인 제1서기를 역임했다.

 

 

정체되는 정치개혁 -자정작용의 한계-

보수로의 회귀 -‘정치특구의 좌절-

시진핑 시대의 정치개혁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시나리오가 제기된다.

우선 비관적 시나리오다. 시진핑에게서는 적극적인 정치개혁 의지를 엿볼 수 없고, 보수로 회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총서기로 재임할 2022년까지 공산당의 내부 의사 결정 과젱에 절차의 민주화를 도입하는 당내 민주주의를 추진할 뿐, 복수정당제 등 당외 정치개혁에는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대신 위로부터의 민주화 과정을 완만히 추진할 것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낙관적인 전망이 가능해진다. 태자당이기 때문에 더욱 정치개혁에 저항하는 자파 세력을 설득하기 쉬울 것이다. 반부 격차는 확대될 것이고 관료 부패 역시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시진핑이 정치개혁에 나설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중국 공산당이 정치개혁의 핵심으로 꼽는 것이 당내 민주화, 즉 중국 공산당 내부이 민주화다. ‘지방 말단조직의 최고책임자 선거’, ‘민주적인 정책결정’, ‘정보 공개등이 공산당 내부 민주화의 핵심 내용이다.

 

 

형식적인 직접선거 -수준 이하의 언론 자유’-

국영 언론의 짜고 치기식 질문

중국 국영 언론사 기자는 정상회담을 보도할 때 자신이 직접 기사를 쓰지도 않는다. 외교부 보도 담당자가 쓴 기사 원고를 받아, 앞부분에 자기 이름을 넣은 뒤 보낸다. 각 언론사의 기사는 기묘하다고나 할까, 아니면 당연하다고 할까, 완벽하게 똑같다. 그들에게는 순서를 바꾸거나 분석을 덧붙이는 권한이 없다.

이러한 기사원고 보도 방식은 당과 정부뿐 아니라 기업의 기자회견에도 적용된다. 기업이 미리 원고를 준비해 기자회견장에서 나눠준다. 기업의 경우 선전비라며 기자에게 돈을 주는 경우도 많다.

 

 

자정 능력의 부재 -답보상태인 부패 대책-

44,000억 위안에 달하는 회색 수입

2010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는 회색 수입이 논쟁이 일어났다. 회색 수입이란 정부가 파악하지 못하는 수입을 말한다. 관료 등이 지위를 남용해 받은 뇌물 등이 이에 해당한다. 중국 경제개혁연구기금회의 국민경제연구소 왕샤오루 부소장은 회색 수입 총액이 연간 44,000억 위안(784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재산신고제의 허점

20101월 중국 공산당 중앙규율검사위원회는 베이징에서 열린 총회에서 부패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며 뇌물 단속 강화에 전력을 쏟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채택한 성명서에는 관료의 재산신고제를 시급히 정비하고, 주택 및 투자자금, 가족의 취업상황을 보고 대상으로 한다고 명기했다.

이 제도는 20099월 당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서 나온 것으로, 당 중앙이 다시 한 번 불호령을 내리자 나온 조치였다.

 

공산당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간부를 대상으로 하는 신고제가 이전부터 시행돼왔지만 신고 내용은 수입에 국한됐다. 부동산과 예금은 포함되지 않았으며, 가족도 신고 대상에서 제외됐다. 더구나 신고서에 금액을 기입만 하면 되며, 증빙서류를 제출할 필요도 없다. 상부기관이 확인하지도 않고, 허위로 기재해도 처벌 규정이 없다.

 

표류하는 도덕관 -‘주입식 교육의 공과-

중국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어 주목해야 할 것은 청소년들의 사고와 행동이다. 중국에서는 30세 이상 세대와 30세 미만 세대 사이에 큰 단절이 있다. 1978년에 시작된 개혁개방으로 사회의 흐름이 180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출생자를 의미하는 바링허우는 개혁개방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해마다 발전이 지속되는 현실을 목격해왔다. 이들은 극빈 시대의 중국을 알지 못하며 철들었을 때부터 생활이 나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부터 빈부 격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를 봐왔다. 이들은 또 그런 상황을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통해 시시각각으로 파악한다. 세계가 넓어지고 있고,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이 얼마나 비참한지도 잘 안다. 특히 2011년 전후로 대학을 졸업하는 1980년대 후반 출생자는 치열한 취업 경쟁에 시달리고 있어 사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다.

 

중국인들은 선악을 명확히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외국에 대한 배타적 생각, 배외주의에 빠지기 쉽다. 2005년과 2010년의 반일시위는 배외주의에 빠진 학생 등 바링허우세대가 중심이 됐다.

중국정부가 이름 붙인 신세대 농민공은 바링허우 세대 가운데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노동자를 말한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도시로 나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온촌 출신이기 때문에 도시 호적은 취득하지 못한다. 교육, 의료, 복지 등에서 차별을 받아 불만이 가득하다.

중화전국총공회의 조사에 따르면 신세대 농민공의 월평균 수입은 1,747위안(297,000)으로, 도시 노동자 월평균 수입의 57.4퍼센트에 불과하다.

 

불만의 분출구는 외국으로 향하기 쉽다. 바링허우의 이러한 특징은 철저한 애국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중국 공산당은 19948월에 애국주의 교육 실시 요항을 공표했다. 1989년 톈안먼 사태를 계기로 장쩌민 국가주석이 사회의 단결력을 강화하기 위해 애국주의를 활용했다고 한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

원자바오 총리는 20113월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행한 정부활동 보고에서 교육개혁을 서둘러, 초중등생의 숙제를 줄이고 창의력 육성에 힘쓰겠다. 초중학생에게 매일 한 시간씩 체육 활동을 보장한다고 밝혔다. 향후 1년간 정부의 시책을 밝히는 자리에서 총리가 숙제를 줄이겠다는 말까지 해야 할 정도로 중국의 교육문제는 심각하다.

 

 

결정적 순간을 맞은 협조외교 -세계 2위의 자신감과 경계-

온건이냐 강경이냐 -경제대국의 두 시각-

시진핑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국제 협조라는 기본 노선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무역과 투자를 통해 외국과 상호의존 관계를 더욱 심화할 것이다. 협조노선을 추진해온 후진타오 총서기의 영향력은 적어도 2010년대 후반까지는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시진핑의 독자적인 색깔이 집권 이후 곧바로 나올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진핑의 권력기반이 탄탄하지 못할 경우 대외강경론을 주장하는 보수파에 휘둘릴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중국이 대국이 됐다는 의식 속에서 외국에 대한 강경노선을 주장하는 보수파는 협조노선을 걸어온 후진타오를 비판하곤 했다.

 

 

군사대국의 현실주의자 vs. 책임대국의 자유주의자

강경노선이 역으로 중국에 불리한 글로벌 환경을 조성했다는 반성에서 2010년 가을부터 노선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됐다. 201010월 배이징에서 열린 5중전회에서 그런 주장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2010년 가을 이후 중국은 남중국해에 핵심적 이익이 있다는 표현을 비공식 협의에서도 사용하지 않게 된다. 1029일에는 동남아시아 국가연합과 남중국해에서의 분쟁 방지를 위한 지침 작성에 합의했다. 주권문제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해가는 전술을 강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광양회호시탐탐 패권을 노린다는 의미는 없다는 선전공작도 강화했다.

 

 

베이징 컨센서스권의 실체 -안정과 번영의 활-

베이징 컨센서스와 워싱턴 컨센서스를 대립 축으로 했을 때, 각국이 어느 진영에 가담하고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준 계기가 20083월 티베트자치구 수도 라싸에서 발생한 대규모 소요 사태다. 당시 중국의 강경진압에 대해 각국이 어떤 태도를 보였느냐가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대부분의 서방 국가는 힘으로 인권을 탄압했고 소요를 강제 진압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는 “110개 이상의 국가가 중국 정부의 입장에 이해와 지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중국 측이 거론한 64개국은 <지도 1>과 같다.

 

중국은 64개국 외에 아프리카, 아랍 국가와 상하이협력기구도 지지를 표명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건국이후 120여 개의 개발도상국에 경제 원조를 제공했는데, 원조를 받은 나라들이 베이징 컨센서스권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벨평화상 시상식 불참

베이징 컨센서스권의 구체적인 범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중국은 20101210일 오슬로에서 열리는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각국이 불참할 것을 요구했다. 중국 윽 요구에 따라 시상식 참석을 거부한 것으로 확인된 나라는 17개국이다.

17개국 중 상당수가 인권문제로 서방의 비난을 받고 있고, 중국과 자원 등을 통해 경제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베이징 컨센서스권에 속하지 않은 국가는 경제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되고 사실상의 제재를 받는다. 독일 괴팅겐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외국 정상이 티베트 불교 최고지도자 잘라이 라마 14세와 회담했을 경우, 그 국가의 중국에 대한 수출은 2년에 걸쳐 연평균 8.1퍼센트 감소한다고 한다. 그만큼 중국이 쥐고 있는 경제 카드의 위력은 크다.

 

 

자유와 번영의 활에 대항

베이징 컨센서스권의 확대와 결속에는 한계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일당 지배를 통해 성공하는 중국 모델을 응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모델의 송공 비결은 중국 공산당의 통치 능력에 있다. 중국은 문제의 발견과 해결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당 지배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기존 시스템과의 거리감

중국은 어느 수준까지 기존 국제 시스템에 도전하고 어떠한 국제질서를 구축하려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나의 결론은 세 가지다.

 

첫째, 중국은 서방의 금융위기를 계기로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겠다는 의욕은 보이지만, 공산당 정권 내에서는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모색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둘째, 중국이 노리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개혁 대상은 한정적이다. 즉 개혁 대상은 중국을 축으로 한 신흥 개발도상국의 발언권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무역 투자 면에서 세계무역기구 등 기존 규칙들을 개정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셋째, 중국이 어느 수준까지 새 질서를 지향할지는 미중관계에 좌우된다. 대미관계가 악화되면 중국은 자국 권익을 확보하기 위해 새 질서 구축에 나설 것이다.

 

 

다극화의 길 -1, 1준초, 다강 체제로의 재편-

중국은 향후 10~20년간의 세계질서에 대해 어떤 구상을 갖고 있을까.

공식적으로는 다극화를 추구하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의 뒤를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 일본이 추격하는 14강의 현 구도에 인도 등 신흥국의 비중이 높아지는 상황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20089월 리먼브라더스 쇼크로 상징되는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이 중국으로 하여금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을 모색하게 만드는 전기가 됐다.

 

중국은 다강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앞서가며 3위 이하와의 거리를 넓히고 있다. 나의 견해로는 국제사회의 선두 집단은 단순한 이극체제나 다극체제가 아닌 1(미국), 1준초(중국), 다강(일본, 러시아, 유럽연합 등)3중 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

 

 

G2론의 허와 실 -깊어지는 중미 간 의존과 불신감-

중국이 두 나라 간 외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중국에 대해선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강경노선인 봉쇄 및 억제 협조노선인 관여의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한다. 미국의 대중정책은 이 강경과 협조노선 사이를 오간다.

오마바 정권 이전의 대부분 미국 정권은 발족 초기에는 강경노선을 걷다가 2년 정도 지나면 협조노선으로 전환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미국에서 대중정책은 지지단체의 표와 직결된다. 외교라기보다 국내 정치인 셈이다. 민주당 정권 지지단체는 인권 및 환경단체와 노동조합 등이며, 공화당 정권을 지지하는 세력은 군사적 매파 및 종교 보수파다. 공화당 지지 세력은 중국에 대해서 강경노선을 지향한다.

경제면에서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은 많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미국 국채를 대거 보유하고 있는 중국의 위상 등을 감안해 중국과 경제관계를 안정시키고 강화하려는 정책을 선호하게 된다. 미국정부는 여론에 신경 쓰면서 대중정책을 조정하고 있다.

 

 

북중 혈맹의 복구 -북한 외교의 주역은 중국-

2010년 봄부터 가을에 걸쳐 북중관계에 두 가지 요소가 추가됐다.

하나는 국제협조보다 국익을 중시하는 보수파 및 군부의 발언이 강화됐다는 점이다. 군부와 보수파는 원래부터 북한에 우호적이며, 이런 중국의 내정 상황이 북중관계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는 미국에 대한 외교 국방 전략이다. 대미 노선이 대항에 비중이 실리면서 덩달아 북한의 가치가 높아진 것이다.

 

 

중국 의존도를 높이는 북한

한국과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거부한 채 중국 측에 북한을 설득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북한을 둘러싼 외교의 주역은 북한에서 중국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고, 한국, 미국, 일본의 대북정책은 한계에 봉착했다.

 

중국도 핵개발 등 군사행동에 나서는 북한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 원조 카드의 효력은 한계가 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에 대해 스인훙 중국인민대학 교수는 어느 정도 영향력은 있지만 사실 그리 크지 않다고 말한다. 포를 쏘아대는 북한의 군사행동에 대해 후원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북한 체제 불안정을 걱정하는 이유

북한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중국이 우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무장병과 난민이 국경을 통해 중국으로 밀려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북한이 붕괴한 뒤 한국 주도로 통일국가가 탄생했을 경우, 중국은 처음으로 미군이 주둔하는 국가와 직접 국경을 접하게 된다. 미국의 감시 레이더에 중국의 군사정보가 속속들이 간파될 가능성이 높다.

통일국가의 탄생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에 사는 200만 조선족의 민족의식을 자극하게 된다. 조선족의 독립의식이 높아지면 티베트나 위구르 등 다른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지며, 이는 중국 공산당의 핵심적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가 된다.

 

 

군비 증강으로 새로운 세력권 구축 -안보 균형의 변화-

중국 지도부의 최대 세력 -군부의 강력한 영향력-

중국 군부는 정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외교 및 안보 정책뿐 아니라 정치에 대한 발언권도 강력하다. 이는 공산당 정부의 요직에 앉아 있는 공산당 중앙위원(200)의 면면을 살펴보면 분명해진다.

중앙위원 중 군부 인사는 21퍼센트에 달해 태자당(19퍼센트)이나 공산주의청년단(10퍼센트)보다 많다. 군부가 중국 정계의 최대 세력인 것이다. 반면 외교부는 1~2퍼센트에 불과해 일본에 비해 큰 힘이 없다. 군부가 외교정책을 거침없이 비판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중국 특유의 권력구도가 자리 잡고 있다.

 

 

국방을 중시하는 시진핑

2022년까지 이어질 시진핑의 중국은 군사 면에서 크게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군비 증강은 아시아의 군사적 균형에 큰 변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국산 항공모함을 여러 대 배치하고 제5세대라 불리는 최신예 전투기도 배치하기 시작했다. 2020년 무렵 중국의 군사력은 기술면에서 서방에 여전히 뒤질 것이다. 운용 능력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러시아 의존에서 벗어나 중국 자체 기술로 무기체계를 갖추게 돼 미사일이나 해군의 항공 전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될 전망이다.

 

 

해양 권익에 대한 방어권 확대 -대양 해군의 실상-

중국이 냉전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군사전략을 제시한 것은 1993년이다. 방위 범위를 대륙 국토에서 동중국해, 남중국해의 해양 국토로 확대해 해양 권익 방어를 명시했다. 2008년 이후 중국-대만 관계 개선에 따라 대만을 주 전장으로 간주했던 국방전략은 영토와 해양자원 등의 방어로 비중이 옮겨갔고, 군의 방어 범위는 영토, 영해 등 외부로 확대되고 있다.

 

 

1열도선에서 제2열도선으로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는 대만에 가깝고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미국과 군사동맹 관계에 있는 일본과 대만, 필리핀이 중국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 해군은 덩샤오핑의 지시에 따라 1982년 근해 방어전략을 수립했다. 근해란 캄차카 반도에서 치시마 열도, 일본 열도,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의 안쪽을 말한다. 이를 1열도선이라 부른다.

 

 

 

중국 해군은 제1열도선에서 영향력을 확보한 뒤 이제 태평양 쪽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오가사와라 열도에서 사이판, 괌을 연결하는 2열도선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태평양으로의 출구를 확보하기 위해 착실히 움직이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했던 것처럼 어선조사선군함순으로 활동 범위 확대를 기정사실화하는 작업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오키나와와 미야코지마 사이는 중국이 태평양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중요한 루트다.

 

 

속속 진행되는 항공모함 건조

중국은 구소련에서 항공모함 바랴크 함’, ‘민스크 함’, ‘키예프 함을 도입했다. 국산화 연구에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밀한 대함 미사일이 개발된 현대전에서 항공모함은 공격에 쉽게 노출된다. 항공모함의 탑재기나 호위 구축함 건조를 고려할 때 비용대비 효과 면에서 항공모함이 아니라 미사일이나 잠수함 증강에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는 편이 낫다.

 

중국이 최초로 건조하는 국산 항공모함은 핵이 아닌 디젤기관 등으로 추진력을 얻는 재래식 항공모함으로 보인다. 배치 장소로 검토하고 있는 곳은 남중국해를 관할하는 남해 함대다. 서사군도나 남사군도에서 동남아 국가들과 영유권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항공모함의 존재는 큰 억지력이 된다.

 

 

중국의 하와이가 해군 요충지로

하이난 섬에서는 대만과 필리핀 사이를 통과해 태평양이나 말리카 해협을 거쳐 인도양으로 쉽게 나갈 수 있다. 남중국해의 해군 군사력도 강화된다. 칭다오 등 북부 기지에 비해 미국과 일본의 대잠수함 초계 능력이 높은 동중국해를 피할 수 있다.

 

 

방위를 넘어 세력권 확보로 -, 미사일, 우주-

점차 비중이 높아가는 핵전력

중국은 소련의 핵우산 아래로 들어가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1955년 독자적인 핵개발을 지시했고 1964년 최초로 원폭실험을 실시했다. 핵 클럽 회원이 되면서 유엔 가입 등 중국의 국제적 지위는 높아졌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오바마 정부의 핵군축 제안에 반발하며 핵과 미사일 전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군의 주력 탄도미사일은 고정식 액체연료 추진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찰위성 등에 발사 징후가 쉽게 포착되기 때문에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고체연료 추진 방식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고 있다. 동시에 탄도미사일의 다탄두화 및 순항미사일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신형 진급 핵잠수함에 탑재하는 사정거리 8,000킬로미터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과 관련해 미 국방부는 빠르면 2010년 초 실전 배치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측했으므로 조만간 실전 배치 사실이 확인될 것이다.

 

 

군사 외교의 전략성 -미국의 지배권 견제-

중국은 합동 군사훈련 대상국을 늘려가고 있다. 우선 2002년 키르기스스탄과 반테러 합동 군사훈련을 시작했다. 중국,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4개국이 가입한 상하이협력기구를 통해서도 2003년부터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러시아와도 2005년 초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중국 국방부에 따르면 2002년 이후 2010년까지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한 국가는 20개국 이상으로, 횟수는 44회에 달한다.

 

 

계속 늘어나는 국방비 -군권 장악과 낮은 투명성-

미국과 유럽은 감소, 아시아는 증가

중국의 2011년 예산에서 국방비는 전년 대비 12.7퍼센트 늘어난 약 6,011억 위안(102조 원)에 달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제외한 각국이 경제 발전 덕에 국방비를 늘리고 있다. 인도는 2011년도 예산안에서 국방비를 전년 대비 11.6퍼센트 늘렸다. 중국의 군비 증강은 아시아의 군비 확장을 촉발해 군비 경쟁 양상을 띠고 있다. 자원과 관련된 해양 영유권 분쟁을 계기로 군비 경쟁, 특히 해군력 및 공군력의 증강이 두드러진다. 아시아에서 국가 간 신뢰는 진전되고 있지만 군비 확장을 막을 실마리는 찾지 못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해군력 증강은 대양 해군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자원문제로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갈등을 빚으면서 해군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왔던 인도는 이제 거꾸로 러시아와 군사 협력을 강화하려 한다.

 

시진핑 시대에도 중국의 국방비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적인 여유와 더불어 시진핑이 군권을 장악하기 위해 군부를 배려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GDP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1.4퍼센트다. 중국 국방대학의 국방경제연구센터 주임인 장루밍 교수는 국방예산은 GDP2.6에서 2.8퍼센트 규모가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세계 전략과 중국의 속내 -외교 경향과 대책-

외교문제는 국제사회 갈등의 핵 -중국 어선 충돌 사건-

중국의 공식 영유권 제기는 1971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센카쿠 열도는 오키나와의 일부로서 미국의 관할 아래 들어갔고, 오키나와 반환 협정에 따라 1972년 일본으로 돌아왔다. 중국과 대만이 센카쿠 열도 영유권을 공식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유엔 조사에서 센카쿠 열도 주변 해역에 석유가 매장 돼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 1971년이다.

 

 

온건파이기에 더욱 강경하게

일본 외무성 간부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나타나는 중국의 행동 패턴으로 사실을 부인하고 책임을 전가한다 자신들의 주장을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 기정사실화한다 다른 주제로 반격한다 등 세 가지를 들었다.

센카쿠 열도 어선 충돌 사건에 대한 대응이 그 전형적인 예다.

 

 

하나의 동아시아는 불가능한 미래? -역사문제 재인식-

통화 폭락 등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부족한 외화를 빌려주기로 한 CMI 협정의 핵심은 각국의 자금 각출 비율이었다. 1,200억 달러인 CMI80퍼센트를 한국, 일본, 중국 3국이 부담하고 그 비율을 ‘1:2:2’로 결정했다. 각출 비율 순위는 국가의 경제력을 반영했다.

대등한 입장이 되면서 중국과 일본은 서로 양보하기가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됐다.

 

 

외교정책 결정의 프로세스 -수뇌 공략이 관건-

집요함은 역효과를 낳을 수도

중국은 체면을 중시하는 나라다. 상대가 집요하게 요구하면 체면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일본 총리를 역임한 한 인사는 대중정책은 중국 내정을 배려하면서 추진해야 한다. 무대 위에선 중국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무대 뒤에선 원하는 것을 요구하며 다른 안건과 거래하는 외교전술이 필요하다. 그런데 민주당 정권은 그런 노하우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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