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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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타인의 삶의 자리에 가까이 가거나 때로는 그 자리에 들어가 보기도 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글로 엮어내고자 할 때의 그 굳센 결의 속에서도, 혹은 그렇게 엮어낸 것을 읽는 독자로서 책을 통해 타인을 마주할 때에도,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체화된 편견을 실감하게 되곤 한다. 오웰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탄광촌 일대를 다니며 노동계급의 일상을 생생하게 그려낸 오웰이 가장 열심히 벗기고자 한 것, 치열하게 벗으려고 한 것은 계급 편견이었다. 오웰의 르포르타주는 물질에 대한 기록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유물론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삶을 구체적으로 이루고 있는 단단한 것들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웰은 노동자 계급의 억척스러운 면들, 보통의 중산층이나 지식인 계급이 쉬이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들, 불합리나 어리석음과 같이 그들의 본질적인 성질로 귀착되기 일쑤인 모습들을 보고도 오만하게 오해하지 않을 수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계몽주의나 경멸, 또는 감상주의일 텐데, 이 책을 읽는 내내 오웰이 그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타인에 공감하고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의 최소한이 타인에 대해 적의를 갖지 않고 타인을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것임을 '몸소' 보여주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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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아가씨 - 근현대 여성 공간의 탄생
김미선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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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이어지는 오랜 시간 동안 서울의 중심지는 종로였다. 일제 강점 식민지기 일본인들에 의해 종로에 집중되어 있던 정치, 경제, 문화의 헤게모니가 다른 곳으로 이양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주요한 거류지로 '본정'(오늘날의 충무로) 일대를 개발했다. 그리고 그 배후지로서 '명치정'―오늘날의 명동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 김미선은 여성학 연구의 일환으로 근대 도시문화의 선봉이자 상징이었던 명동이라는 공간을 근대 이전 (혹은 근대화기에도 여전히) 남성 관료 중심이었던 종로와 대비해 재조명한다. 한편으로는, 식민통치를 위해 조선총독부, 중앙역, 은행, 우체국 등이 몰려 있으면서 일본인 거류자들의 생활용품 소비가 주로 활성화했던 본정과도 구별하여, 주로 조선 여성들에 의해 미용·양장·다방·영화·연극(여성 국극) 등 새로운 소비문화가 부상했던 명동, 여성들이 생산/노동의 주체가 되고 동시에 향유/소비의 주체가 되었던 해방 이후 근대화기의 명동을 풍부한 사진, 그림, 기사 등의 자료와 당사자들의 구술 증언을 토대로 재현한다.
 
저자는 '사치'라는 말로 쉽게 제단되곤 하는 여성들의 소비문화를 여성의 주체적인 측면에서 긍정한다. 당시 여성들의 패션, 취향, 유행 등을 재미나게 소개하는 것은 별책부록과 같은 재미를 주기도 한다. 명동에서 일었던,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한국사회에 불어넣어진 활력의 분위기를 포착한 저자는 그 원류가 바로 이 소비하는 여성, 즉 근대적인 여성 주체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나 서술은 약간 빈약하게 느껴진다. 물론 저자도 책의 말미에 국내(외) 경제(및 정치)적 상황을 보다 실증적으로 검토하여 근대화기 명동의 문화상이라는 연구 범주 안으로 끌어들이는 후속 연구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언급한다. 이 책(연구)에서 그것까지 다루는 것은 당장 무리였다고 해도, 그 시대의 분위기나 대중들의 감정과 인식과 같은 질적 측면에서 기술 자료나 증언 등을 좀 더 풍부하게 활용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설득력을 갖출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구술 증언자들은 대개 5~60년대에 명동에서 직업을 가지고 일한 여성들인데, 그들이 느끼고 기억하는 명동 외에, 명동 주변부나 차라리 비수도권 지역과 같은 곳에서 명동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의 진술이 더해졌다면 명동에 대한 당대의 인식과 명동이라는 일종의 기호가 가진 의미, 한국 사회 전체에서 차지한 상징적 위치 등을 유추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기대에 못미치는가, 하고 실망이 찾아오려던 순간, 이 책은 마치 내내 고전하던 유력한 메달 후보가 경기 중반 이후에 들어서 한 방으로 뒤집기 한판승을 해내듯 이 책이 지닌 강점이자 매력을 드러냈다. 저자가 인용한 당대의 몇몇 이름 있는 남성 문학 작가들은 명동의 도시적인 활기와 화려함에 감탄하다가도 환멸을 느꼈는지 결국 '데카당'적인 공간이라고 명명하고 말았다. 그들의 눈에 비친 '명동 아가씨'들은 사회를 데카당의 수렁에 점차점차 빠져들게 하는 '사치' 소비 주체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그런데 그들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소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곳에 상품을 공급하는 곳도 있으리라는, 지극히 단순한 이치이다. 이 책은 명동의 백화점이나 잡화점을 가득 채운 대량생산된 공산품 소비재들이나 장인이 한땀한땀 만든 수공예품들이 온 길을 뒤따라가지는 않는다. 대신, 명동에서 여성들이 주로 향유/소비한 상품이 미용 서비스(머리, 피부, 화장), 양장(기성복이 등장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 상품은 전근대 한국사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 즉 근대적인 것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상품들을 생산한 노동자들은 거의 대부분 여성들이었다. 미용사, 양장사 등은 식민지기 말부터 60년대(이 책이 다루는 범위)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자리였다. 여성의 경제 활동(가사노동 외의 임금노동)이 사회적으로('남성'의 시선으로) 공공연하게 장려받은 소수의 경우이기도 했다. 책을 보면, 미용사나 양장사 자격증이 처녀가 마련할 수 있는 최고의 혼수라고 평하는 당시의 신문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여성들은 식민지기 일본인 기술자에게서 배우거나 일본으로 유학을 가거나 직업학교에 등록하거나 '시다' 생활을 하며 일을 배우고 또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했다. 책에 인용된 자료들을 보면 이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서 당시에도 진단이나 조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감상에만 머무르거나 노동권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약해서 실질적인 개선으로는 나아가지 못한 듯 하다. 당시 유명 여배우가 명동의 미용 노동자들의 하루를 옆에서 보고 기록한 일일 기자 체험 기사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섬세한 감성으로 그들의 고단한 일과와 노동 강도, 직업병으로 앓은 위장병 등을 전했지만 파급력이 미미했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현실에서는 노동조합 결성이 수차례 좌절되었다. 미용 업체나 양장점이 애초에 중소규모로 명동 곳곳에 흩어져 있었기도 하고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어마어마해서, 노동자들이 시간을 내어 직접 모여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려고 시도하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사용자들로부터 방해를 받는 것도 물론이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대 이후의 여성 노동 운동을 알고 싶다면 한국 여성 노동운동사에 관한 책이나 연속 기사를 참고하면 될 것이다.)
 
이 책은 내용면에서 두 개의 큰 줄기로 구성되어있다. 각각의 줄기에서 근대적인 문화로서 부상하기 시작했던 명동의 소비문화와 그 주체였던 여성, 그리고 명동 소비문화를 일구어낸 또다른 한 축인 생산/노동 주체였던 여성이 겪은 감정, 체험, 노동(조건), 사회적 평판 등을 서술한다. 저자는 그 두 줄기를 아우르는 결론으로 명동이라는 근대적 도시 공간에서 소비와 생산의 주체로 행위했던 여성이 그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주체성/여성상을 형성/획득했다는 점을 제시한다. 구술 증언에 참여한 여성들의 자기 이야기 속에 그것들은 여러가지 말로 녹아있다. 여러가지 말로 풀이하자면 이렇다. 자립적, 진취적, 적극적, 능동적, 사회적(가정과 대비된 '공적 주체'로서의 여성), 자기 표현적, 자기 효능감 등등.
 
책장을 덮었다. 궁금한 점이 하나 남는다. 명동은 여전히 매우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번화가이다. 식민지기부터 본정의 배후지로 개발되면서부터 명동으로 변모하는 동안, 지대가 오르고 부동산 투자(혹은 투기)도 행해졌을 것이다. 여성들의 노동과 여가·오락의 장이었던 명동의 건물과 땅의 소유주, 즉 부동산 자본에 관한 내용이 당사자들의 회고나 증언 수준으로나마 언급되었다면, 또는 그에 관한 후속연구가 이루어진다면 명동 공간을 바라보는 젠더적 관점에 또 다른 사실과 관점을 더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는 다음의 가설이 전제되어 있다. "명동 공간의 지대-부동산은 젠더화한gendered 자본이었을 것이다." 얼핏 혹은 정말로 여성 주체들의 활발한 행위의 장이었던 것 같은 명동에서 가장 많은 이득을 본 것은 누구였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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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괴물을 말해요 - 대중문화로 읽는 지금 여기 괴물의 표정들
이유리.정예은 지음 / 제철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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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폴 오스터는 “이야기에 대한 아이들의 소망은 음식을 필요로 하는 것만큼이나 기본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서사는 욕구된다. 인간은 주변의 세계를 이해하고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한 본질적인 틀로써 서사를 이용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를 벗어난 가상의 이야기들을 서사로 만들어왔다. 이를 테면, 우리는 괴물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괴물을 이야기한다. 인간은 괴물을 두려워하면서도 괴물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괴물은 서사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유혹자인 셈이다.

관습, 윤리, 도덕과 같은 가치와 규율이 도전 받는 이야기 혹은 그러한 가치 규범에 내포된 모순을 드러내는 이야기들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고 억압되기 마련이다. 한편으로 인간은 불가해한 것들이나 논리정연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어 한다. 금기와 억압, 욕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비틀려 만들어진 형상으로서 괴물은 서사 속에 등장한다. 괴물은 실재하지 않지만, 괴물에 대해서, 괴물 같은 세계와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픈 욕구만큼은 실재한다. 사람들의 풍문에서부터 고전, 오늘날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서사의 원천으로 괴물은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아직까지도, 계속해서, 과연 더 이야기될 것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여전히 괴물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괴물에 대해 말해보자고 하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의도는 간명하다. ‘괴물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우리 괴물을 말해요>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저자들은 여러 대중문화 텍스트들에 등장하는 괴물들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독자와 함께 읽어가는 듯한 구성 속에서, 괴물을 통해 사회상과 인간군상의 여러 측면들을 비추는 상징적인 의미들을 해독함과 더불어, 생각해봄직한 질문들을 비교적 쉬운 언어로 독자들에게 던진다. 대중문화 리터러시(popular culture literacy)의 일환인 셈이다.

따라서 문화이론이나 문학사회학과 같은 이론적 배경에 근거한 분석적 서술 혹은 괴물의 계보학을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괴물 자체에 대한 분석이나 비평을 시도하는 전문학술서가 아니라, ‘괴물 서사’들을 다루는 교양인문서라는 점을 책을 선택하기에 앞서 분명히 인지할 할 필요가 있다. 텍스트분석 내지 담론분석과 같은 접근에 익숙한 나로서는 외려 서사창작을 전공한 두 저자들의 접근이 다소 참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흡혈귀라는 환상은 장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그리고 이 환상은 인간의 필요와 목적에 의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흡혈귀는 한때 블라드 체페슈나 엘리자베스 바토리 같은 귀족 살인마의 상징이었고, 교회에 의해 페스트 창궐의 원인으로 지목되었으며, 예술가들의 간택을 받아 낭만과 탐미의 아이콘으로 미화되기도 했습니다. 마르크스는 흡혈귀를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에 빗대었지요. 또 흡혈귀는 상극의 존재인 히틀러와 유대인, 모두와 동일시되기도 했습니다. 문화산업에 의해 백마 탄 왕자로 분하기도 했고요. 이렇듯 흡혈귀는 인간 역사의 한 부분이자, 고갈되지 않는 상징입니다. 불멸을 획득한 서사이기도 하고요. 뱀파이어라는 -피비린내 옅어진- 이름과 함께. (책, 38쪽)

왜, 어떻게 괴물이 만들어졌는지, 괴물을 이야기함으로써 사람들이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지, 혹은 말하려 하지 않은 것들이 어떻게 괴물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드러나는지. 이 책은 두 개의 메인 텍스트들을 교차시켜 읽으면서 괴물 서사의 이면을 짚어준다. 괴물에 대한 서사화의 욕망과 괴물 서사에 내포된 인간과 세계의 모순-우리 안의 괴물성-을 돌아보게끔 한다.

괴물 이야기를 다루는 다양한 대중문화 텍스트로부터 욕망, 자본, 생명, 공포, 국가 등 추상적 주제에 속하는 논쟁적인 질문들을 이끌어내고, 이를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독자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이 책이 지닌 강점이다. 청소년에서 대학생 1~2학년 정도의 독자층을 예상하고 쓴 것으로 생각되지만, 글쓰기의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접근 방식은 특정한 대상을 이론적으로 공부하고 풀어내는 사람들이 오히려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할 덕목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이 지닌 또 다른 장점은 함께 읽을거리들을 풍부하게 제시해준다는 점이다. 챕터마다 두 개의 메인 텍스트를 교차하여 읽어내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각 챕터의 본문 안에는 메인 텍스트 외에도 고대 신화나 민간 설화, 영화, 소설, 극, 회화 작품 등 다양한 서브 텍스트들이 인용되고 있다. 그러한 덕택에, 다소 예측이 되는 주제를 띤 챕터를 읽을 때에도 결코 진부하지만은 않은 읽기의 재미를 제공한다.

<우리 괴물을 말해요>는 괴물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읽어나갈 수 있을지, 괴물을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우리’들에 대해서는 어떤 점들을 성찰해볼 수 있을지 생각의 길로 들어서는 문턱까지 독자들을 초대한다. 어떤 길을 어떻게 걸어가 볼 것이냐는 책장의 마지막을 덮고 난 독자 개개인의 몫일 테다. 예를 들어, 유일하게 저자 ‘나’의 목소리가 드러나는 마지막 <YAHOO vs 황국의 제국> 챕터처럼 괴물의 뱃속과 같은 사회에 사는 ‘나’의 경험. ‘우리’의 고통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볼 수도 있다.

또는 챕터와 챕터를 맞부딪쳐 볼 수도 있다. 욕망의 두려운 착취자인 뱀파이어를 다루는 <불멸하는 매혹자> 챕터와 자본가로 변모하는 드라큘라 백작을 다루는 <더욱 강해져 돌아온 자본가> 챕터를 교차시킨다면 어떨까. ‘스타’라는 표상이자 주체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강력한 매혹자인 동시에 대자본의 축적 논리를 배후에 두고 있다. 대중은 열광하면서 분노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동시에 증오하고 혐오한다. 대중으로부터 잊혀지고 시장에서 가치를 잃은 ‘과거의 스타’는 이따금씩 미디어에, 사람들의 입에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괴물 이야기의 습성이 그러하듯이.

페르세우스는 방패를 거울처럼 비추어 괴물 메두사를 돌로 만들고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러나 괴물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혜의 여신이 그 거울 같은 방패 한 가운데에 메두사의 머리를 매달았기 때문이다. 이제 괴물은 늘 우리와 함께 있는 존재다. 그리고 우리들은 여전히 두려워하면서, 서늘한 공포에 전율하면서, 그 방패를 들춰보고픈 충동에 사로잡혀 있다. 이야기 속 괴물들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무더위를 내쫓기라도 하려는 듯 8월 극장가에는 괴물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하고 있다. <프레데터>, <메가로돈>, 그리고 조금은 깜찍한 괴물들이 등장하는 <몬스터 호텔>까지. 괴물은 아마도 계속해서 이야기될 것이고, 또한 괴물은 계속해서 말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화나 소설 속에서 괴물이 일말의 연민이나 동정도 없이 인간을 몰살시킬 때 공포를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것은 괴물의 무자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지 않는 괴물에게서 기시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조차 모르고 있던 공포가 눈앞의 괴물로 인해 형태를 갖추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괴물은 여전히 “우리들 자신에 대해 말할 것이 있거나 보여줄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되돌아옵니다. 비록 그들이 오락으로 향유되고 소비될지라도. (책, 286쪽)


괴물은 여전히 "우리들 자신에 대해 말할 것이 있거나 보여줄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되돌아옵니다. 비록 그들이 오락으로 향유되고 소비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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