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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어게인 - 포르투갈을 걷다, 리스본에서 산티아고까지
박재희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본 서평은 푸른향기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푸른향기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 이 서평에는 해당 책의 내용이 다소 포함되어 있어 스포가 될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기 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 여행을 다녀오면 그 후에 나는 아마 그전의 나와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그러나 여행을 다녀와서 생각보다 달라지지 않은 나를 보고 약간 당황했었다. 아, 아마 여행을 가까운 곳으로 짧게 다녀와서 그런가 보다, 그러면 다음 여행 때에는 분명 뭔가 바뀌어있을 것이다. 그런 꿈을 안고 그 이후로도 여행을 갈 때마다 떠나기 전 그런 기대를 안고 비행기에 올랐었다. 그러나 다녀온 이후에도 나는 나였고, 그래서 스스로에게 실망하곤 했었다. 나는 왜 변하지 않는가, 왜 깨달음을 얻지 못할까 하며 자책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나는 그 여행을 다녀와서 180도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바뀌었다. 소중한 여행의 경험은, 그 속에서 보고 느낀 것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저 재미있게 놀고만 왔다고 생각했지만 낯설고 새로운 풍경들 속에서 나는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대화는, 다시 집에 오면서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한 그 시간은, 문득문득 떠오르며 나를 조금씩 바꿨다. 늘 집에만 있고 싶어 했지만(아,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여행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게 되었고, 좀 더 씩씩해지려고 노력 중이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작가님은 프롤로그에서 첫 번째 산티아고 길을 걷고 난 후에 오른쪽 둘째 발톱이 빠졌고, 또 다른 발톱에는 검은 멍을 얻었지만 품었던 의문에는 대답을 얻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다만 길에 무거운 질문들을 던지고 왔다고. 그러나 그곳에서 작가님은 답에 가까워지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열하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와 마주하며 '나'에 가까워진 작가님은, 그래서 계속 그곳을 그리워하게 된 것이 아닐까.

자기답게, 나답게 살겠다고 했지만 정작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될수록 나는 어떤 나로 살고 싶은 건지 더 혼란스러웠다. '나는 누구인가.' 초조한 질문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한 번 다녀온 후 계속 그곳이 눈에 밟혀 그리워하다가 작가님은 다시 한번 산티아고로 떠났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시작된 여행은 다시 한번 산티아고로 향했다. 그러나 리스본에 도착한 첫날 소매치기를 당하며 환전해 간 현금과 카드, 여권까지 몽땅 도둑맞고 만다. 주저앉고 싶은 사건에도 작가님은 툭툭 털고 일어나 순례길을 걷는다. 날이 더워 곧 쓰러질 것만 같은 순간에도, 다리가 천근만근일 때도, 베드 버그로 괴로운 순간에도 언제나 걷는다.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작가님은 좀 더 스스로와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 같았다.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나'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게 하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해서 걷는 일정 속에서 분명히 지치고 힘든 순간은 자주 찾아올 것 같다. 운동 못하고 체력이 좋지 않기로 소문난 나였다면 매일매일 그만두고 싶은 마음,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싸우며 걷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정말 못하겠다며 길 위에 앉아 엉엉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걷지 않아도 된다는, 이건 당신의 길이니 걷지 않는 것 역시 당신의 선택이라는 따뜻한 말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작가님의 말처럼 때로는 힘내라는 말보다, 힘을 빼고 쉬라는 말이 더 위로가 될 때가 있는 것 같다.
길 위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순례길이 올랐다. 다들 자신만의 고민을 안고 길 위를 걸으며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다들 산티아고 순례길을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으며, 그곳에서 자신과 마주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신기했다. 그런 경험이 가능한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진짜로 자신과 마주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매일매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일 것 같기는 한데, 그렇더라도 정말로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한 번쯤은 걸어보고 싶다.
책을 읽는 내내 걸을수록 몸은 더 힘들어지지만 어쩐지 다들 단단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또 자신을 만나며 더 단단하고 꽉 찬 사람이 되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덩달아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왜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 번도 걷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걸은 사람은 없다고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길을 걸으며 힘내라는 인사를 받고, 정말로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 갑자기 나타난 천사가 물을 건넨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다정함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정말로 예뻤다. 길 위에 그런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서 많은 여행자가 길을 완주하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가서도 걷는 것을 최소화하고 싶어 하는 내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 번쯤 걸어보고 싶게 하는 책이었다. 포르투갈 여행을 꿈꾸고 있었는데 그 꿈이 조금 더 커졌다. 길을 따라 그저 걸으며 '나'와 마주하는 그 시간이 어떨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보내고 난 후의 '나' 역시 같이 궁금해진다. <산티아고 어게인>은 산티아고 순례길이 가보고 싶고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선생님이, 이미 다녀와서 그곳을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훌륭한 선물이 될 것 같은 여행 에세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