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가족
공선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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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우산도 없이 멍하니 앉아서는 원망스레 하늘만 쳐다보는 사람들의 모습, 사회는 그들을 노숙자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지난 IMF 가 오히려 더 황금기라고 했던가.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가난, 하지만 이 단어를 자신의 두 어깨에 모조리 짊어져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텔레비전에선 드라마에서 조차 연일 상류층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꿈꾸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원망스럽게 조차 느껴지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사회는 그렇게 양극화의 길을 걷고 있고, 그것은 '성장'이라는 단어로 포장되고 있다. 누구의 성장이란 말인가.

이전에 학교 숙제를 위해 찾았던 난곡은 우리네 삶과는 동떨어진 공간처럼 여겨졌었다. 학생회 활동을 하며 보았던 세상은 가난과 폭력으로 얼룩진 곳이었다. 내 삶은 그들의 삶, 그 언저리에 발을 한 번 디뎌보았을 뿐이기에 그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떠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하루하루를 사는지 나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다 허물어져 가는 집 혹은 원치 않는 철거를 당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하지만 그 곳은 그들에게 허락된 삶의 터전이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나아진 것이라곤 하나 없어보이는 현실을 놓지 못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는 자신의 글에 담았다.

저마다 아픈 상처를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써 내려간, 집은 집이되 머무를 수 없는 공간과 관련된 이야기. 그들의 삶은 허공에 붕 떠 있는 듯했다. 그리움에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지만 어떠한 원망도 하지 못한 체 아내 앞에서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사람, 단 하나 뿐이었던 절대자를 잃고는 살 곳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여야 하는 아이, 사랑도 믿음도 깨어진 그네들의 마음은 너무도 아파서 아프다는 그 말 한마디를 표현치 못한 체 그들은 욕을 하고 술을 마신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 그들도 아프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제각각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고 나면 오히려 더 훈훈해지고 각별해지는 사이, 그것은 그네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문화였던 것이다.
외부자의 시각에서 이 아픔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한' 역시 그 정도는 덜할지 모르지만 가난하다. 그들의 사진을 찍고 그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에도 그의 귓가에는 지금 당장의 생활을 걱정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 목소리로 자유롭기 위하여, 자신의 삶을 그리고 자신의 가족의 삶을 지탱하기 위하여 유랑해야만 하는, 그의 삶은 말 그대로 아이러니이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60-70년대 우리네 부모님께서 겪었던 가난이 빗소리만이 이따금 내 귀를 때리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면서도 나는 나의 삶을 탓한다. 가지지 못한 것을 탐하고 가져야만 할 것 같다는 욕망에 시달리고, 그렇게 원망하다보니 어느새 나도 유랑 아닌 유랑을 하고 있었다.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맞닿아 이루어낸 유랑이라는 거대한 물결은 그런 것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 모두가 동참해 만들어낸, 우리 자신의 물결... 그 물결은 너무도 거칠어 빈틈을 찾아보기 힘든 듯하다. 갑작스레 아버지께서 직장을 잃으신 그 어느날 이후 단 한 번도 네 식구 온전히 모여 본 적이 없는 우리 가족의 삶이 그러하고, 등록금을 마련치 못해 무기한 휴학에 돌입해야만 했던 친구 녀석의 삶이 그러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영혼을 정화하는 행위. 하지만 아파서 울어야만 하는 것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하루는 어딜 향해 흘러가고 있으며 우리 모두는 무얼 위해 살고 있는지... 묻는 것이 두려워지는 까닭은 어쩌면 우리 모두 유랑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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