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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다 - 인류는 전쟁 없는 세상을 꿈꿀 권리가 있다
아르노 그륀 지음, 조봉애 옮김 / 창해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인간은 왜 폭력성을 보이는걸까?
인간은 왜 같은 인간을 죽이는걸까?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권력자들이 왜 학살을 저지르고, 잔혹해진걸까?
인간과 인간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하고, 강력한 무기를 갖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하나의 수단이 된 현재에 총, 칼 없는 평화를 이룰 수는 없는 것일까?
「평화는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다.」의 저자 아르노 그륀은 인간은 본래 선하고 창조적이며, 사회 통념에서 벗어나 즐겁고 행복한 삶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쩌다 악한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걸까.
아르노 그륀은 천편일률적으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같은 삶을 강요하고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와 어렸을 적 부모로부터의 심리적 억압에 그 이유를 두고 있다.
오늘날에는 '나와 남의 치열한 경쟁'이 진리인 것 마냥 인식되고 있다. 최고가 되기 위해선 남을 이겨야 하고, 지는 것은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한다. 타인과 협력관계를 맺기 보다는 짓누르고 이겨야할 존재로 인식한다. 이런 생각은 아주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주입되어 진리가 되고, 훗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교훈이 된다. 이러한 바탕에서 충실히 살아온 사람들은 타인과 협력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사람들을 철이 없고, 현실은 생각하지 않고 이상만 꿈꾸는 사람이라고 비웃는다. 정말 사람들은 경쟁이 아닌 협력과 배려로 평화를 이루며 살 수 없는 것인가?
저자는 인간을 결속시키는 것은 감정이입, 즉 공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공감능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폭력성을 보이고, 악한 본성을 드러내는데, 공감능력을 상실하게 된 데에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받은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다. 살인을 한 사람들의 몇 가지 예를 통해 본 바로는 이렇게 폭력성을 가진 사람들 곁에 권위적이고 복종을 강요하는 부모들이 있었다. 이 부모들은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고, 아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경쟁 사회 속에서 예민한 감수성과 타인을 향한 따뜻한 애정은 나약한 것이라며 벌을 주고, 부모가 바라는 삶을 살도록 강요했다. 결국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아이들은 부모가 바라는 모습과 자신이 원하는 모습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부모에게 버림받지 않고 보살핌을 받기 위해 거짓된 자아를 만들어 내게 된다. 이렇게 독립된 자아로서가 아닌 거짓된 삶을 살게 된 아이는 자존감을 잃게 되고, 그로 인해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이들의 고통은 어른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별 게 아닌 것으로 여겨지기 쉽상이다. 나약함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 사회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환경에서 결국 아이는 내면에 자신의 감정을 떼어내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아이들이 감정을 우습게 여기고,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법을 모르는 어른으로 자라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결과는 약한 사람에게 폭력성을 보이거나,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하게 된다는 것. 다른 사람을 죽임으로써 자신에 대한 증오를 표현하는 것이다. 한 살인범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이 필요해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다고 한다.
저자는 히틀러의 예를 들었는데, 히틀러는 보기에 강인해보였지만 실제로는 나약한 인간이었다고 한다. 그는 고통과 절망을 자기 스스로 극복하지 못해, 사람들이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못할, 위대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이 절망에서 탈출하는 길이라 여긴 것이라고. 히틀러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지 않았던 부모로부터 어린 시절 따뜻한 경험을 하지 못한 상실감을 없애기 위해 다른 사람을 장악해야 마음이 놓였던 것이다.
p.116~117
아이는 자신이 육체적 · 도덕적으로 무력하다고 느낀다. 아직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이런 생각이 틀린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모의 강압적인 힘과 권위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고, 심지어는 분별 능력마저 상실하고 만다. 불안이 극에 달하면 아이는 자동으로 공격자의 뜻에 굴복하고, 공격자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 자발적으로
따르게 되며, 마침내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잊고 공격자와 동일화하는 단계에 들어선다.
p.136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기대에 자신을 맞춰야만 시선을 끌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자신이 아닌 타인이 원하는 감정을 연기하면서 자신의 분노 어린 진짜 감정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든다. 그럼으로써 연기하는 배우가 되어 타인과 진정으로 공감하지 않는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이런 부모 안에서, 사회 안에서 자란 사람들이 권력에 탐닉하게 되는데 이 사람들은 거짓된 겉모습 치장에 능하다. 삶에서 고통과 불안을 느끼는 대중들은 이런 현란한 겉모습, 강인한 모습에 현혹되어 지지하고, 의존하면서 전쟁에도 합세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것이 말도 안되게 잔혹한 전쟁명령을 '성스러운 수행'으로 여기며 수행하게 한다고 말한다.
공감이 절실하다.
p.188
"이웃을 도울 수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도울 수 없다. 이것은 사랑과 공감을 지속시키며 다른 사람의 고통으로 들어가 그것을 나누는 우리의 능력이자 인간이라는 종이 계속 살아남기 위한 기본 원리다." -달라이 라마
어린 시절 있는 그대로의 본모습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정면으로 맞서며 살아가는 법을 배운 사람은 어떤 무기력한 상황 속에서도 자존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타인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저자는 교육과 이성만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타적이고, 자신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고통을 바로 볼 줄 아는 사람과 대화를 해야한다고. 함께 공감하고 연대를 맺음으로써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부모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육아서는 아니지만 읽어보면서 부모로서 경계해야할 것들을 느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인간이 본래 선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경험이 훗날을 좌우한다고. 숱한 매체를 통해 어린 시절 부모의 육아방법이 인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개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한번 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그냥 평화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어른으로서도.
조금 아쉬웠던 점은 반복된 이야기가 지루하게 느껴졌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