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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딜 - 브루클린의 평범한 아이에서 금융계의 전설적 인물이 된 시티그룹 CEO 샌디 웨일
샌디 웨일.주다 S. 크라우샤 지음, 이주형 옮김 / 북앳북스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군에 간 아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러일으킬만한 책을 보내주려고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이 책을 고르게 되었는데, 내가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금융의 전문적인 사항들은 잘 모르겠지만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게 아주 흥미로웠다. 어릴 때 읽던 위인전처럼 고개를 쳐들고 보지 않고, 이웃 부잣집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래도 자수성가한 사람의 굴곡 많은 삶이라 여러 가지 생각할 점도 많았고, 젊은이들에겐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꿈을 던져준다고 생각된다.
우선 세계 최대의 금융기업을 건설할 만큼 성공한 요인이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까지의 전력을 보면 이 사람이 금융계의 거물로 올라서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소심하고 비사교적인 성격을 지녔고, 학교생활도 특기할 만한 게 없다. 아이비리그 출신도 아니고 유명대학의 MBA 학위도 없다. 학창시절부터 뜻을 가지고 금융을 공부했던 것도 아니고 집안이 좋아 뒤를 밀어주었던 것도 아니다. 쉽게 말하면 길을 가다 증권사 객장의 떠들썩한 소리에 흥미에 느껴 그곳에 들어갔고, 바닥부터 열심히 일해서 시티그룹을 건설한 것이다. 샌디 웨일씨는 이 점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여러 번 이야기한다. 이건 겸손의 소치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본인이 직접 얘기하지는 않지만, 증권계에 입문한 이후의 스토리들을 보면 흔히 얘기하는 성공의 자질들을 추출할 수 있을 것이다. 비전과 원대한 목표, 열정 및 의지 그리고 강인한 실천력, 뛰어난 직관 등을 말이다. 하지만 나같이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선 그런 요인들보다 그냥 길가다 돌부리에 채여 그렇게 되었다는 얘기가 훨씬 재미있다. 그래야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도 희망을 가질 테니까 말이다. <캐스트어웨이>란 영화에서 무인도에 떨어진 주인공이 여러 번 자살 충동을 느끼다가 파도에 휩쓸려오는 낯익은 물건들을 보고 희망을 가지듯이 말이다. 그래 험악한 인생살이의 파고 속에서 또 무엇이 떠내려 올지 모르니까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서 기회를 기다려보자.
다음에 무엇보다 가슴에 와 닳는 얘기는 가족생활이다. “내 인생 최대의 거래는 1955년 6월 조앤 모우셔가 조앤 웨일로 이름을 바꾼 것이었다.” 샌디 웨일 씨에게 인생 최고의 거래(real deal)는 시티은행과의 합병이겠지만, 립 서비스일망정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삶이 얼마나 멋있는가? 부록 편에 나오는 샌디 웨일 씨 아내와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이 말이 단순한 립 서비스는 아닌 듯하다. 남편의 업무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으면서 그림자처럼 남편의 일을 헤아리고 격려하는 조앤 웨일 씨의 말을 통해 남편이 일과 가정생활을 어떻게 조화시켜왔는지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이런 남편이라면 어떤 여자가 사랑하지 않겠는가?
샌디 웨일씨와 두 명의 추종자, 피터 코헨 및 제이미 다이먼과의 관계도 아주 흥미롭다. 이들의 얘기는 상사와 부하, 멘터(mentor)와 멘티(mentee)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에 관해 많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샌디 웨일 씨는 가장 아끼고 신뢰했던 부하가 배반하여 결국 쫓아냈다고 하는데, 다른 편의 반박 혹은 변명을 듣지 못하니 실상은 모르겠다. 하지만 멘터와 멘티가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혜안을 제시하는 듯하다.
맨주먹으로 세계 최대의 금융제국을 건설한 사람인데, 그동안 너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이런 부문을 잘 모르는 탓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신문지상을 통해 웬만한 유명 CEO나 경제 관료의 이름은 많이 들어왔는데 샌디 웨일이란 이름은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었다. 흔히 말하듯, 이 사람이 유태인 출신이라 그런가? 다른 유명인들처럼 아이비리그나 명문대 MBA출신이 아니라 그런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관치금융의 시대가 끝나고, 펀드 공화국이 되어가는 듯한데, 이런 사람처럼 세계를 주무를 만한 금융인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옆집 아저씨의 흥미로운 얘기를 듣듯이 재미있게 책을 읽었다. 우리 아들도 이 책을 보면서 꿈과 희망을 가지고, 파고에 밀려올 미지의 행운을 움켜잡을 수 있도록 내공을 연마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