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왕후, 수렴청정으로 영조의 뜻을 잇다 영조 시대의 조선 13
임혜련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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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화변이 일어난 기점으로 해서 이야기가 나뉘어지는 책이 두 권 있다. 최봉영이 쓴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는 임오화변으로 치닫게 되는 원인과 과정을 여러 갈래로 세심하게 살펴서 쓴 책이고, 정순왕후, 수렴청정으로 영조의 뜻을 잇다는 임오화변이 일어난 뒤의 사람들 이야기다.

나는 임오화변의 슬픔만 생각하고 다른 주위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당사자인 영조와 아들인 사도세자, 그리고 뒤주에 갇힌 아버지를 구하지 못한 정조, 남편의 죽음 앞에서도 아들의 목숨이 위태로워 온전히 슬픔을 드러내지 못하는 혜경궁 홍씨 정도를 임오화변의 안타까운 당사자로 생각하였다. 물론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슬픔이야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들의 아픔을 세월 속에 놓아버리고 정조와 정순왕후에게 집중한다.

 

정순왕후는 15살 나이에 66세인 영조의 계비로 간택되어 궁궐 생활을 한다. 꿈 많은 15, 일반 사대부와 혼인을 했더라면 알콩달콩 자식들 낳고 행복하게 살았으리라. 그녀 개인에게는 불행이요, 가문 입장에선 가세가 일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낯선 궁궐에서 정순왕후가 기댈 사람은 영조와 친정인 노론 세력이었다. 일설에선 사도세자의 참극인 임오화변은 정순왕후의 역할이 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노론인 친정세력의 강화를 위해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를 이간질 했다는 시각이 있는데, 이 책은 그 점에 대해서는 정순왕후가 결백하다고 한다.

 

영조가 붕어한 후에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등극하였다.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 묘를 수원 화성으로 옮기는 등 아버지를 높이는 일에 정성을 다했다. 그리고 임오화변에 관련된 사람들에게도 죄를 물었는데, 그 화살은 정순왕후의 친정인 벽파 경주 김씨 세력들이었다. 정순왕후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절치부심했을 것이다. 실제로 정조가 죄인으로 귀양 가 있는 동생 은언군에게 시혜를 베풀자 그와 대립하였다.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가, 11세의 순조가 즉위하였다. 정순왕후는 왕실의 가장 어른인 대왕대비가 되어서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다. 정순왕후는 선왕인 정조가 구축한 장용원을 폐지하고, 척신들을 등용하고 규장각의 역할들을 축소하였다. 정조와 배치되는 정책들을 행사했는데, 이런 점들로 정순왕후는 비난받았다.

 

이 책은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따른 정치는 정조의 유지가 아닌 영조의 의리론이었다. 임오화변에 대한 영조와 정조는 의리가 달랐기 때문에 정조의 의리 대신 영조의 의리로 해석되는 순간 정국은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국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끌고 간 여성이 정순왕후다. 영조의 의리를 끌어와 정국을 노론 벽파로 만들고, 친정 경주 김씨가 다시 등장할 수 있도록 했다. 절차에는 문제가 없지만 사심이 없이 오로지 나라를 위해서 수렴청정을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친정 경주 김씨를 위해서 영조의 의리를 끌어온 것 뿐이다. 포장은 영조의 의리였으나 속내는 정조의 의리를 따르는 사람을 축출하는 것이었다.

 

정순왕후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책이다. 정순왕후는 정조의 발걸음을 잡는 독기 품은 여인 같은 이미지로, 순조 대 천주교인들에 대한 신유박해로 무자비한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 책은 궁궐에서 외로웠을 그녀의 처지를 동정하며, 친정세력과 풍산 홍씨 세력과의 힘겨루기에서 친정 세력을 도울 수 밖에 없는 여인으로 그려져 있다. 정조의 개혁 정책도 영조의 의리를 내세워 정국을 바꿔버린 노련한 정치력을 가진 정순 왕후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정순왕후에 대한 또 다른 연구를 기대해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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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 영조 시대의 조선 8
최봉영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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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사도세자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로, 소설로 많이 알려진 내용이다. 영조가 장자인 효장세자를 잃은 뒤에 귀하게 얻은 아들이 사도세자이다. 그 아들을 한창 젊은 나이인 28세에 뒤주에 가두어서 죽였다. 11세인 손자가 아비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소리도 묵살하며 죽인 사건, 그것이 임오화변이다. 왕인 아버지가 아들을. 그것도 다음 대를 이를 세자를 죽였다는 충격에서 두고두고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특히 요즘 상영하고 있는 영화 사도를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더욱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에 대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자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해졌다.

 

영조가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떤 책에서는 사도세자가 당쟁의 소용돌이에 희생된 것이라 하고, 또 어떤 설에서는 사도세자의 정신병으로 인해서 일어난 일로 얘기하기도 한다. 사도세자의 빈인 혜경궁 홍씨가 지은 한중록에서는 그런 사도세자의 정신질환들에 대해서 서술한 부분이 많다.

 

저자는 이미 알려진 입장 중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대리청정을 하던 젊은 세자를 죽일 수밖에 없는 당쟁의 격렬함이 있었는지 아니면 사도세자의 억울함에 맞추어서 책을 서술했는지 궁금했다. 영조와 사도세자 중에서 누구의 편에서 풀어나갈지도 관심사였는데, 나의 예상은 틀렸다.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닌 영조와 세자의 성격적 갈등에 있었다고 얘기한다. 부자의 성격이 달랐다는 것은 조금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비극으로까지 이어졌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저자의 연구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도세자를 둘러싼 연구 내용이 더 풍부해지는구나하는 생각에 내심 흐뭇하다.

 

성격이 다름을 인정해주었으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을. 영조는 어린 시절 어머니인 숙빈 최씨와 고립된 생활을 했는데, 어머니는 친척이 매우 적었다. 따라서 영조도 고립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또한 생모의 지위가 낮아서 푸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왕자인 자신도 그런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에 출신에 대한 열등감이 심했다. 그리고 어머니 숙빈 최씨로 나타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생모를 얕보거나 괴롭히는 사람으로 나타나는 미워하는 사람으로 주변 사람들을 구분지었다. 심지어 자신의 자녀들에게까지 적용이 되어 사랑을 받는 자녀는 넘치게 사랑했고, 사랑하지 않는 자녀는 질책을 하고 꾸중을 하는 등 심하게 대했다. 사도세자는 사랑하지 않는 왕자였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태어난 지 백일 만에 생모의 품에서 떼어내어 경종이 지냈던 저승궁으로 보내 세자로서의 위엄을 갖추도록 했다. 젖먹이가 엄마와 아버지를 떠나 홀로 생활해야 했던 공간, 이 대목을 읽으면서 어린 아기의 슬픈 울음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 외로웠을 세자.

더군다나 생모인 영빈 이씨가 자주 찾아 올 수도 없는 곳, 부왕인 아버지도 오지 않는 곳에서 나인들 틈에서 자라는 세자는 부모의 정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랐다.

 

그랬기에 정치상황에 빨리 대처해서 살아야하는 부왕 영조와는 다르게 행동하게 된다. 부왕의 물음에도 대답이 느리고, 자신의 소신을 얘기하지 못하는 세자. 부왕의 질책에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세자, 그래서 동물들을 죽이거나, 심지어 대항할 수 없는 내관을 죽이는 것으로 자신의 두려움을 해소하려한 세자. 어릴 때 세자를 홀로 두지 않고 곁에서 키우면서 부모의 사랑을 알고 자랐다면, 부왕이 엄하게 야단을 치더라도 그렇게 주눅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더라면 임오화변같은 참극은 없었을 텐데, 참으로 아쉽다.

 

세자는 성년이 되자 부왕에게 반항하기 위해 영조가 싫어하는 일을 한다. 술과 여자를 경계하라는 부왕의 분부에 오히려 술과 여자를 가까이 하며 부왕의 권위에 반기를 들었다. 부왕의 질책이 심하면 두려움에 떨면서도 다른 방법으로 해소했다. 심지어 궁궐을 나가서 여인들, 기생들을 궁으로 데리고 들어오거나, 자신의 시중을 들어주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몰래 평양으로 20여일이나 나가 궁을 비운 일 등 세자로서 자질을 의심받는 행동을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경언이 세자에 대한 비행을 적은 고변서를 올리고, 이를 대한 영조의 분노는 급기야 자신의 아들인 세자를 포기하게 했다. 영조는 유독 의리에 집착을 했는데, 종묘사직을 위한 공적인 의리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사적인 의리에서 처리하는 방법이 달랐다. 영조는 종묘사직을 위해서 아들인 세자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결국에는 세자가 뒤주에 갇혀서 죽는 임오화변이 일어났다.

 

왕실에서 일어난 조선 시대의 비극적인 부자의 이야기 중에서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준다. 성리학이 국시인 나라에서 아버지에 의해 아들이 죽게 되는 이야기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슬프다.

 

이 책은 기존의 당쟁의 격화 속에서 희생되었다는 주장과 사도세자의 정신병이 문제가 되어서 영조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들이 부딪치는 학계에서 영조와 사도세자의 성격이 발단이 되었다는 전개가 참신하다. 물론 부자의 성격상의 차이가 임오화변의 모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서 당쟁이 끼어들 빌미가 되었다. 가볍지만 속이 꽉 찬 내용으로 이루어져 영조와 사도세자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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