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심장 훈련
이서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발표작 두 편과 여러 문학지에 수록된 다섯 편의 소설을 하나로 엮은 소설집이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과도기에 있는 여성들이다. 어린 아이였다가, 보호자 없이 의무교육을 마쳐야 하는 청소년이였다가, 노동과 수입이 사회에 일원이라는 증표가 되는 성인이기도 한 여성이다. 멀티버스 속 모든 나일까, 이상하게 이들은 서로가 낯설지 않다.
첫 번째 소설인 <검은 말>은 미국 문화를 마주하고, 검은 총에서 말의 생명력과 운동성을 느끼는 연상기법에서 시작한다. 글쓰기는 검은 말처럼 내달리며, 신호탄처럼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다.

두 번째 소설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옴니버스인지, 한 인물의 일대기로 장제목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어려웠다.
아이는 점점 자라나고 자라난 시대에서 섬광처럼 뿜어져 나온다. 원형으로 태양처럼 빛났다. 마치 한 인물의 성장기를 보는 것처럼 그 다양한 상황에서 다른 이름을 가진 주인공들이 개별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각기 다른 삶 앞에서도 그것의 주인이 나인지 혼동되는 것은 우리가 ‘요람에서 죽음까지’를 공유하고 있고, 삶을 일률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위협적인 차별을 겪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의 정체성과 자아의 확립을 막는 것은 ‘일반적’, ‘보통’, ‘평범한’ 이라 불리는 사회 시스템에 포함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라카스 수업의 장면들 - 베네수엘라가 여기에
서정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라카스에 잠시 정착했던 경험을 토대로 쓰인 책은 일상의 감정을 되살리는 것을 넘어 정치/경제/문화 등 베네수엘라 사회를 받치고 있는 구성 요소들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베네수엘라는 남미의 나라로 수도는 카라카스이다. 인플레이션으로 무너진 경제와 정치적 혼란, 산유국은 익숙한 이미지이다. 뉴스에서 볼 수 있는 표피 같은 이미지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던 적이 없었을 것이다. 어디서든 존재하는 장소 아빌라 산, 문 틈새로 일렁이는 투명 비늘, 꺼지지 않은 인문 서점과 같은 너머의 것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벽사상과 종교공부 - K사상의 세계화를 위하여
백낙청 외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벽은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린 물리적 현상을 말한다. 세계 창조자로 단일 존재인 신을 믿는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는 큰 범주의 하늘이 있다. 동학은 서학이 유입되던 시기 조선에서 수운 최제우가 창시한 종교이자 철학이며, 하나의 정신이다. 동학의 ‘시천주’ 개념은 내 안의 하늘을 깨달아 계급, 신분, 성별을 초월하여 대동을 아는 것이다. 시천주는 개벽사상의 단단한 토대가 된다. 당시 조선의 국학이었던 유학의 수직구조를 타파하고 수평적인 ‘플레타르키아’로 일대 전환을 이룩한 것이 동학이었다고 도올은 말한다.
지금까지 서구의 사회체계와 종교 개념을 더 발전된 형태로 인식해왔지만 현재에 와서 여전히 유효한지를 되묻는다. 대답으로 새로운 기준의 민주주의를 규정해 나가야 될 것을 주장한다. 사람의 정신과 마음에 일어나는 근본적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사상이 열리는 대변혁인 후천개벽은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독자적인 운동이다. 백낙청은 ‘근대 적응과 근대 극복의 이중과제’라는 과업이 수행됨에 따라 ‘개벽’의 차원에 도달함으로써 원만한 성공에 기할 것을 말한다.

문학평론가 백낙청 선생님이 창비와 백낙청 TV에서 진행한 좌담을 엮은 책이다. 1부에서는 도올 김용옥의 신작 <동경대전>이 갖는 의의와 가치를 살펴보고, 비평적 시각에서 토론을 진행한다. 동경대전 초판본을 입수•비정하여 판본학을 통해 동학의 역사자료들을 새로운 시점으로 재구성한다. 책에 등장하는 용어 ‘플레타르키아’는 민본원리로 해석할 수 있는데, 민본성의 관점으로 동학의 핵심을 잡고자 하는 독보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2, 3부는 동학의 정신을 이어받은 국학인 원불교와 천도교의 계승 과정과 현재, 그리고 방향성까지 살펴본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담론들을 다루면서 여러 종교들을 조망하게 되었고, 종교공부라는 제목으로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학의 연구부터 그것을 계승한 종교,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영향력이 큰 기독교까지 순차적으로 다루었다. 한 권으로 한국의 사상이나 동학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는 길잡이이다. 동서양의 학문을 두루 공부하시고 깊이 있게 연구하신 분들의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의견을 자유롭게 펼치고 수용하는 모습을 통해 현재의 논의들을 폭넓게 알 수 있다.
마지막 챕터인 기독교 파트는 책에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환경윤리와 여성 관점에서 해석한 기독 교리와 경쟁적인 사상 발전 과정을 설명한다. 서양의 근대 개념(modern) 근대와 현대를 모두 포함하는 용어로 경계가 모호하다. 우리는 근대, 근대성, 근대화, 현대, 현대 등을 모두 독립적인 개념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올바른 해석이 불가하고 문제의 논점을 흐리게 된다. 이러한 서구 중심, 기독교 중심을 넘어서는 관점이 필요한 시점이다.
책에 등장하는 종교들은 사상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공부에 힘쓰고 있는지, 현실의 물질에 심취하고 있지는 않은지 와 같은 객관적인 반성을 한다. 동학의 포용성으로 교리를 보완하는 사상의 통합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
서구의 자본주의가 현대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이행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하며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천되지 않고 있음을 피력한다. 자본주의는 한계에 다다르고 계급과 빈부의 격차는 심화되어 간다. 물질세계의 국가 간의 갈등이 첨예해지고 국민들은 피해자로 전락하고 마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민족의 자생적인 사유에 기초하여 창출한 동학의 개벽사상이 새로운 시대의 열쇠가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값의 비밀 -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년을 맞아 새로운 논의와 함께 개편된 책은 팬데믹 이후 미술 시장의 성장, 이건희 컬렉션과 같은 현재의 한국 미술시장 이슈를 함께 다루면서 과거부터 미술시장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역사와 발전 과정을 다룬다.

최근 유행 중인 '아트 테크'라는 단어는 아트와 재테크의 합성어이다. 미술품의 천문학적인 가격과 상승률이 증명되어왔고, 기업이나 자본가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자금 운용자들이 구매를 한다는 점, 또 연예인과 같은 컬렉터들의 등장이 재테크로서 안전한 방식임을 입증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재테크의 한 방식으로 미술품 구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과거부터 자본력 있는 구매자들이 과시의 용도나 구원의 수단, 이미지의 영원성을 이용하여 자본주의와의 하나의 집합을 만들었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되던 미술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면서 예술성을 발굴하여 현대적 미술 작품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지난다. 책은 미술시장이 형성되는 단초가 되었던 흐름들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설명한다. 각 장이 파트별로 짧게 구성되어있고, 차근차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조적으로 진행하여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작가-딜러-구매자'로 요약할 수 있는 미술시장은 이 세 요소가 자본을 욕망할 때 존재하게 된다. 미술가의 성장을 자본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새로우면서도 재미있다.

작가는 재테크의 수단 보다 미술에 대한 애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신진작가들을 후원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는 구매자의 입장에서도 적은 금액으로 더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내수시장에서 신진작가의 작업을 구매하는 일은 더 쉽고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국내의 미술시장이 돌면서 가격이 오르면 해외 구매자들은 더 높은 가격으로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사게 되고 자연스럽게 한국 미술 시장의 규모는 커지게 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돈을 뒤따르는 것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미술을 구매하는 일도 그런 일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