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택적 친화력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2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평점 :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선택적 친화력>은 인간의 감정과 도덕적 갈등 그리고 운명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깊이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네 주인공, 에두아르트, 샤를로테, 오틸리에, 그리고 대위의 삶은 그들 각자의 사랑과 욕망, 그리고 친화력이라는 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들의 이야기는 인간 관계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그 본질이 우리의 삶과 가치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색하는 매우 흥미로운 여정이다.
이 작품의 제목으로 사용된 ‘친화력’이라는 말은 처음에는 화학적 결합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용어였다. 두 물질이 서로를 '찾아가는' 자연스러운 경향을 의미한다. 하지만 괴테는 이 용어를 우리 인간이 어떻게 서로를 찾아가는지, 어떻게 서로에게 이끌리고 어떻게 서로에게서 멀어지는지를 정서적 차원에서 설명하는 데에 사용한다. 이것은 인간 관계의 본질에 대한 괴테의 독창적인 통찰력을 보여준다. 18세기 유럽 사회에서 '친화력'은 우리가 오늘날 이해하는 사랑과 닮아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시대의 사회적 규범과 도덕적 가치와 공존하기 어려웠다. 당시 귀족들의 결혼은 이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목표로 한다. 즉, 사랑해서 결혼다는 건 서민의 특권이고 귀족에게는 사랑과 결혼은 별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족들도 마찬가지로 여전히 본능적으로 서로를 찾아가고, 이런 관계는 자신들의 삶을 깊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친화력의 복잡성을 괴테는 네 주인공, 에두아르트, 샤를로테, 오틸리에, 그리고 대위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는 부부지만, 그들의 결혼은 이상적인 사랑보다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맺어진다. 그러나 에두아르트는 오틸리에에게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되고, 이것은 그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려는 노력과 사회적 규범에 맞추려는 압력 사이에서 고통스러워 한다. 반면에 샤를로테는 대위에게 빠지지만 그녀의 사랑과 욕망을 억제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녀는 그녀의 결혼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노력은 그녀가 사랑에 대한 그녀의 이해를 바꾸게 만든다. 이것은 그녀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질문들을 제기하게 만든다. 오틸리에는 이 작품에서 가장 복잡한 인물 중 하나다. 그녀는 자신의 삶과 욕망을 추구하려는 에두아르트의 욕망의 대상이다. 그녀의 존재는 그를 사랑과 욕망의 괴로움으로 이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리고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깨닫게 된다. 마지막으로, 대위는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는 친화력의 복잡성을 깨닫는 사람이며, 이를 통해 그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는다. 그는 사랑과 욕망, 그리고 사회적인 압력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다. 이렇게 '친화력'은 그 시대의 사회와 인간 관계에 대한 괴테의 섬세한 관찰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사랑과 욕망, 그리고 인간의 삶에 미치는 그들의 영향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는다. 즉, 우리가 어떻게 삶과 사랑, 그리고 우리의 가치를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는 친화력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괴테는 또한 구원이라는 개념을 소설의 주요 주제로 다룬다. 사랑과 친화력이 인간의 삶을 주도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괴테는 구원이 인간의 존재와 정신 세계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강조한다. 구원은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찾는 의미와 행복에 대한 중요한 출발점이다. 이 구원 모티프는 오틸리에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드러나는데, 오틸리에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겪지만, 그녀의 구원은 고통에서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오틸리에의 사랑, 에두아르트와의 연결,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은 그녀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는데, 이를 통해 오틸리에는 인간의 욕망과 애정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지 깨닫게 되고, 이런 깨달음을 통해 그녀는 구원을 찾는다. 이렇게 개인적 수준에서의 구원은 "친화력" 전체의 주제로 확장되는데, 사랑과 욕망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정의하며, 이런 감정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찾는지에 대한 괴테의 탐색은 모든 인물들의 삶과 갈등을 통해 드러난다. 즉, "친화력"에서의 구원은 단순히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구원을 넘어서 인간의 존재와 그 복잡성, 그리고 그것들을 결정하는 감정에 대한 괴테의 깊은 이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괴테는 인간의 욕망과 애정, 그리고 이것들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재정의한다.
사회학적으로 볼 때, 이 소설이 쓰여진 시대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그리고 이는 유럽에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시기였다. 이 시기의 유럽은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절제와 규칙에서 감정과 개인적인 욕구를 중시하는 문화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또한 개인의 사랑과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이전의 시대에는 결혼이 주로 사회적 계급과 경제적 이익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면, 낭만주의 시대에는 사랑과 개인적 감정이 결혼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기성세력, 특히 귀족사회는 여전히 전통적인 결혼관을 고수한 시기다. 따라서 불륜은 종종 이러한 전통적인 제약과 개인적인 욕구나 감정 사이의 갈등을 반영하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이러한 불륜의 모티프는 사랑과 욕망, 그리고 사회적 의무와 도덕적 규범 간의 충돌을 묘사하고 있다다. 이런 모습은 괴테가 살아가던 시대의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던 이슈와 갈등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괴테는 개인과 사회, 그리고 그들 사이의 갈등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제시한다. 즉. <선택적 친화력>은 단순히 개인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통해 당시 사회의 모습과 문제를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괴테의 사회 비평과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로 볼 수 있다. 즉, <선택적 친화력>은 계몽주의와 과학주의의 산물로 볼 수 있는 ‘친화력’이라는 화학작용의 개념을 이용해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해 새롭게 도래하는 낭만주의 시대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발터 벤야민의 '친화력' 해석은 이 작품에 대한 많은 비평 중에서도 독특하다. 그는 오틸리에를 아름다움의 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그녀가 에두아르트의 사랑과 욕망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벤야민의 시각에서 보면, 오틸리에의 존재는 에두아르트의 죽음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벤야민만의 독특한 철학적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다른 비평가들은 오틸리에에 대해 더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해석을 제공하며, 그녀의 선택과 행동이 이야기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친화력'은 괴테의 다른 작품들 못지 않게 인간의 복잡하고 섬세한 내면을 드러낸다. 사랑과 욕망, 도덕과 사회적 규범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물들의 심리적 변화를 심층까지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이러한 점에서 '친화력'은 괴테의 소설 작법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괴테는 샤를로테의 아이 죽음을 통해 삶의 우연성을 보여준다. 이 사건은 샤를로테의 삶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 샤를로테의 아이의 죽음은 "친화력"의 주요 테마인 인생의 허상과 우연성에 대한 강렬한 표현이다. 우리는 삶을 통제하고, 운명을 예측하고,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샤를로테의 아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이런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허무하고 무력한지를 보여주는 순간이다. 이 순간을 통해, 괴테는 삶의 불확실성과 변덕스러움, 그리고 인간의 능력이 그것을 제어하거나 예측하는 데 얼마나 한계가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단계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샤를로테의 아이의 죽음은 그녀 개인의 통증을 넘어서 "친화력"의 광범위한 주제와 결합되며, 이야기 전체를 통해 이해되어야 할 핵심 메시지를 강화한다. 이는 인간의 삶과 운명에 대한 괴테의 복잡하고도 깊은 관찰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선택적 친화력>은 내가 읽은 괴테의 어떤 다른 작품보다도 사랑과 욕망, 도덕과 사회적 규범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물들의 심리적 변화를 세밀하게 그려내며, 인간의 복잡성과 그 안에 내재된 다양한 가능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삶과 사랑, 그리고 삶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자연 속의 어떤 것들이 서로 만나는 순간 금방 서로를 붙잡거나 서로를 규정하는 경우, 우리는 그것들을 친화적이라고 부르지요. 서로 간에 대립됨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서로 대립되기 때문에 가장 확실하게 서로를 찾고, 서로를 붙들고, 서로를 수정하면 함께 하나의 새로운 물체를 형성하는 알칼리와 산의 경우에 그러한 친화력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 P56
저에게는 그것들이 혈연상의 친척이라기보다는 정신의 또는 영혼의 친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들 사이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진정 의미 있는 우정이 생겨날 수 있을 테죠. 왜냐하면 서로 대립되는 특성들이 더욱 내밀한 결합을 가능하게 해 주니까요. - P57
우리는 이처럼 죽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언제나 작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들을 관심을 가지고 눈앞에 떠올려 보아야 합니다. 그것들이 어떻게 서로를 찾고, 서로를 끌어당기고, 붙잡고, 파괴하고, 삼키고, 먹어 치우며, 그러고 나서는 가장 내밀한 결합으로부터 어떻게 다시 예상치 못한 새롭고 갱신된 형태로 등장하는지를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것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더 나아가 감각과 오성이 있음을 비로소 인정할 수 있지요. - P61
|